성서 묵상
[견지망월見指亡月 견월망지見月亡指] 불교경전 능엄경 2권에 나오는 법어 중 선가에서 많이 사용한 “손가락으로 달을 가르키면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보아야 한다” “견지망월見指亡月 견월망지見月亡指”라는 법어가 있다. 원문의 해석을 보면, “ 어떤 사람이 손으로 달을 가리켜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손가락을 따라 달을 보아야 하는데, 여기서 손가락을 보고 달 자체로 여긴다면, 그 사람은 어찌 달만 잃겠느냐. 손가락도 잃었느니라. 왜냐하면 가리킨 손가락을 밝은 달로 여겼기 때문이다." 法執에 얽매여 열반을 이루지 못할 것을 우려한 법어다. 우리가 불경이나 성경 등 어떤 텍스트를 읽다 보면 소쉬르( Ferdinand de Saussure, 1857 ~ 1913)가 말한 기표(記表, signifiant 시니피앙)와 기의(記意, signifié 시니피에)의 관계에서 데리다(J. Derrida, 1930 ~ 2004) 가 파악한 것처럼 기의가 기표에 닿지 못하고 계속 미끌리며 텍스트상의 중요한 개념에 차연(差延 Différance)이 나타난다. 차연이란 차이와 지연이란 말의 합성어인데 기표인 어휘나 개념은 항상 기의인 의미와 공간적인 틈 즉 차이가 나기 때문에 그 개념이나 어휘는 그 자체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며 그 의미를 설명하거나 이해하고자 할 때 어떠한 방법으로든 기표와 기의의 차이를 해소해 본래의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서는 시간적으로 지연(遲延)되는 현상을 말한다. 손가락이 기표라고 보면 손가락이 가르키는 달이 기의고 손가락과 달의 차이와 지연이 차연이다. 특히 神의 계시라고 말하는 성서에 나타난 수 많은 개념들과 상징 그리고 메타포들의 의미는 아무리 설명을 잘 하거나 이해한다 해도 영혼의 근저에서 神을 만나 직접 그 뜻을 들어서 차연이 해소되기 까지는 인간과 신의 거리 어디 만큼에서 신을 만나기 까지 지연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성서가 성립된 이후 수 없이 다양한 성서해석이 있어 왔고 앞으로도 있게 될 것이다. 성서의 텍스트나 개념들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을 볼 때 그 해석은 해석자와 神의 거리 또는 손가락과 달 사이 어디 만큼에 있는 것이지 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두 상대적이다. 예로써 성서에 자주 등장하는 말 중에 '거룩'이라는 말이 있는데(히2:11) 히브리어로 코데쉬(קדשׁ)라고 하고 헬라어로는 하기오스 (ἅγιος)라고 하며 '구별되다' 또는 '성별되다'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성서에서 거룩이라 말할 때 사람이 하나님으로 부터 세상으로 구별되는 경우와 세상으로 부터 하나님께로 구별되는 경우 또 사물역시 그렇게 구별되는 큰 스펙트럼을 가지는데 성서 여러 곳에 기록된 각각의 '거룩'은 과연 하나님과 세상사이의 어느 지점이 거룩이라는 기표에 가장 가까운 기의일까? 이렇게 하나의 개념은 기표와 기의 사이에 차연이 있기 때문에 '거룩은 ○○○이다.'라고 특정지어 설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하며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재해석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서의 텍스트를 문자적으로 읽는 것은 의미가 없고 기의가 기표에 가 닿아 차연이 해소 되도록 깊이 묵상을 해야한다. 묵상할 때 한글 번역 본의 경우 가능하면 원어 성서에서 기록 당시에 어떻게 사용되여져 문맥 가운데 어떤 뜻을 전하려고 했는지 접근해 보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푸코의 에피스테메와 같이 사회 문화적 시대적 지리적 배경이 다른 언어로 기록된 성경을 이 시대의 우리말로 번역하는데 있어 그 뜻을 온전히 반영해 번역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본다. 따라서 우리는 성서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 보다 훨씬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거기에 더해 신약성서는 신화를 역사화하고 신앙공동체의 고백을 역사화하여 기록한 부분들이 많아 한 껍질을 벗겨내고 본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발견해야 하는 어려움 또한 가지고 있다. 성서 저자들이 기록한 성서의 내용은 어떤 사실이나 신앙고백이나 신앙공동체의 문제나 모두 저자들의 해석에 속한다는 점에서 기표인 해석에서 해석이 가르키는 궁극적 메시지인 기의를 파악해야 하는 어려움도 있다. 또한 시공간을 초월해 있는 신의 언어를 시공간에 갖힌 인간의 언어로 컨버전하여 계시된 성서를 우리가 신의 언어로 읽는 다는 것은 지난할 지라도 이러한 접근을 통해서 신, 시원, 인간, 신과 인간, 세상, 하나님나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와 부활, 실존의 고통 등에 대한 질문에 각자의 답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하늘의 언어를 익혀 찾은 그 답들 속에서 독자는 어떠한 삶으로 독자들 나름의 성서를 써 나갈 것인지 창조적인 그 길을 찾길 소원한다. 다만 텍스트에서 어떤 메시지를 감지하느냐는 것은 각자 체화된 철학, 신학, 교리, 고백 등의 안경을 벗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의 눈이 열려 직관할 수 있는가에 달린 것 같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13:12). 그 때에 이르기 까지 우리의 시선이 손가락에 머물지 않고 달에 이르도록 성령의 도우심으로 깊히 묵상하고 묵상하기를... 2021. 4. 25 평화🙏 |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