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 כהן גדול)의 원형(原型)인 그리스도
(히5장) 고대 원시신앙으로 부터 오늘 날에 이르기 까지 인간들이 형성해 온 제사문화는 그 양상이 각각 달랐을 지라도 신께 드리는 제의적 성격, 통치를 위한 정치적 성격, 공동체 질서를 위한 사회윤리적 필요와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 예로 우리 나라에서 제사문제로 촉발된 천주교에 대한 1791년(정조 15년)의 신해박해(辛亥迫害)는 윤지충과 권상현 등이 폐제분주(廢祭焚主)로 시작되어 강상죄(綱常罪)로 처형되어 순교하는 사건이 있다. 제의적으로는 기독교의 유일신 사상을 가진 윤지충(尹持忠) 집안에서 천주교식으로 상을 치룰 뿐만 아니라 제사를 드리지 않고 신주를 불태워 조상제례 문화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 아닐 수 없었다. 뿐만아니라 이는 전통적 유교사회의 제례질서를 파괴하는 패륜(悖倫)이요, 무부무군(無父無君)의 불효·불충이라는 사회윤리적 도전이 되였다. 정치적으로 조정 사대부들은 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심각한 도전으로 봤고 당파적으로 남인벽파(공서파)가 남인시파(신서파)를 맹렬히 공격하는 정치문제로 비화되어 권력 다툼에서 반대 세력을 약화시켜 권력의 중심에 서려는데 이용했다. 이렇게 제사를 중심으로 유교문화와 기독교문화의 큰 충돌이 있었다. 또 한 예는 성경에 최초로 기록된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은 것을 빌미로 형인 가인이 아벨을 죽였는데 이는 어떤 제사가 바른 제사인지 종교적 의미를 묻는 사건이면서 정치적으로 제사권을 독점하기 위한 정치 살인이였다. 그리고 형이 동생을 죽인 근원적 윤리파괴의 사건이였다(창 4:3~17). 그런데 히브리서 기자는 인간이 만든 제사는 제의적, 정치적, 사회윤리적 필요와 성격을 가진 제한적이고 불완전한 모형일 뿐이고 이러한 필요와 성격을 모두 완성하고 초월한 제사의 원형과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 또는 신관이나 제관의 원형이 있다는 것이다. 그 원형을 밝히기 위해 기자는 유대인이면 누구나 체화 되어 있는 유대의 제사와 제사장을 예수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대비하고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의 원형임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구원의 서정에 있어 그 중심에 있는 그리스도를 1~2장에서는 선지자와 천사, 3장에서는 사도와 시내산 안식으로 이끄는 모세, 4장에서는 가난안 안식으로 이끄는 여호수아, 5장에서는 대제사장과 대비하고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단순한 비교우위가 아니라 절대우위를 가지는 비교 대상의 원형(原型 archetype)으로 보고 있다. 이런 레토릭을 볼 때 히브리서 기자는 원형(原型)을 에이도스(είδος)나 로고스(λόγος)로 보는 그리스 철학의 전통적 사유의 틀로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와 천사의 원형, 사도의 원형, 안식의 원형으로 인도하는 분, 대제사장의 원형이 되심을 말하고 있는 것 같다. 특히 5장에서는 대제사장의 원형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밝히고 5장 이후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용서와 화해의 중재자 로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기록하고 있으며 대제사장 아론과 그리스도를 대비 시켜 그리스도께서 종교적, 정치적, 윤리적 성격과 필요를 완성시켰을 뿐만 아니라 초월한 대제사장의 원형이 됨을 밝힌다. 대비에 있어 먼저 공통점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자(καλέω)(히 5:4)로서 대표성을 가지고 사람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예물 과 속죄제사를 드려(히5:1) 용서와 화해를 하도록 하는 중재자 직분이라는 점이다. 차이점은 첫째 아론이 사람에게서 취한 대제사장이요 아론 이후의 대제사장은 아론의 세습에 의해 위임 되지만 그리스도는 특별히 하나님께서 직접 위임한 멜기세덱의 반차로 세습되지 않는 단 한번의 제사장이란 점이다. 둘째는 아론이 연약하여 백성을 위해 속죄함 같이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제사를 드려야(히 5:3)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어 자신의 속죄제는 드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위해 드렸다는 점이다. 셋째 아론은 세습으로 대를 이어 반복해 미완의 제사를 드렸지만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로 단 한번의 제사로 완전하게 완성했다는 점이다. 넷째 가장 중요한 차이가 아론의 반차에 따른 세습은 기름부음으로 위임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의 순종으로(히5:8-9) 대제사장이 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에 의해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아론반차의 대제장들의 필요와 성격을 완성하고 초월하여 원형이 되신다. 첫째 아론반차의 대제사장들은 반복적이고 제한적인 불완전한 제사를 드렸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용서와 화해를 위해 자신의 삶과 죽음이라는 순종으로 단 한번의 완전한 제사를 드림으로 제의적 필요와 성격을 완성하고 초월하였기 때문에 원형이 되신다. 둘째 아론반차의 대제사장들은 하나님과 백성사이를 중재하는 중재권을 위임 받아 대체불가한 권력과 제정일치 시대에는 권력의 최정점에서 백성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지성소로 들어가는 성소의 휘장이 위에서 부터 아래로 찢어져(마27:51) 대제사장이 일년에 단 한번만 들어갈 수 있었던 지성소에 우리도 들어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완전한 평등을 이뤄 종교권력을 무너뜨려 정치적인 필요와 성격을 완성하고 초월하였기 때문에 원형이 되신다. 셋째 각 지파의 장로들에게 재판권을 주어 계율에 정한 바에 따라 질서를 지키게 하였으나 스스로 판결이 어려운 문제는 하나님께 직접 가져 오라고해 최종적으로는 제사장을 통해 재판하도록 했는데 (신1:15~18) 이 재판권은 그리스도께서 잡히실 때 까지 계속되였다(마26:57~27:1) 그렇지만 이제 그리스도께서 심판의 주가되어 이제 율법에 의한 대제사장의 재판이 아니라 내 안에 거하는 성령의 규율로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천국시민의 윤리로 사회윤리적 필요와 성격을 완성하고 초월하였기 때문에 원형이 되신다. 그리스도 이전 까지 하나님과 소외된 인간 사이에 용서와 화해를 위한 중재자로서 제사장이 필요해 기름부어 위임하여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반복적 제사를 드렸는데 그리스도께서 친히 고난의 순종으로 대제사장이 되셔서 한번에 완전한 제사를 드림으로 대제사장의 원형이 되셨다는 것이다. 이제 예수그리스도께서 유대인 여러분들이 존경하고 따랐으며 의지했고 야훼신앙의 중심에 있던 대제사장은 모형인 그림자일 뿐이고 그 원형이 되니 더 이상 흔들려 유대교로 돌아 간다거나 고난을 두려워하여 달아나지 말고 고난의 순종으로 대제사장이 되신 그리스도를 붙드십시요라고 외치고 있다. 이것은 한 하나님으로 부터 나온 우리의 형제요 친구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창세 이래로 모든 대제사장들의 원형이 되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중재자가 되셨으며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히5:9 ) 는 선포다. 돌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도록 성전은 훼파 되었는데 어디에서 성전을 찾고 대제사장을 찾을 것인가? 신즉신전(身卽神殿) 하나님이 거 하시는 이 몸이 신전이고 내 영혼의 가장 깊은 그 곳 근저에 지성소가 있다. 대제사장인 예수그리스도의 친구요 형제인 우리가 이제 흠 없는 왕같은 제사장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내 영혼의 근저에 내려가 아버지의 근저와 맞닿은 그 지성소에서 아버지의 면전에 서자. 왕같은 제사장으로 아버지의 면전에서 순종함으로 온전한 삶을 드려 하나님나라를 살자 그리고 영적 성장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가자. 지금 여기에서! 할렐루야! 2021. 5. 16. 평화 호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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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씨알
21.05.16 22:03
첫댓글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용서와 화해를 위해 자신의 삶과 죽음이라는 순종으로 단 한번의 완전한 제사를 드림으로 제의적 필요와 성격을 완성하고 초월하였기 때문에 원형이 되신다. " 멜기세덱을 이어 대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가 그 역할을 부여받았음을 장로님의 글을 통해서 통찰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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