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와 그리스도
[사변적 사고와 믿음] (히브리서 10장)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실제로 죄를 제거할 수 없는 것입니다.(히10:4) 새해가 되면 새벽부터 일어나 일출을 보며 소원도 빌고 다짐도 하며 해맞이를 합니다. 해맞이를 하는 사람마다 떠오르는 태양의 의미가 각각 다르고 소원도 다를 것입니다. 경험과학적으로 보면 어제의 해와 오늘의 해는 똑같은 물리법칙에 따라 지구의 자전 때문에 보이는 현상인데 왜 해맞이를 하죠? 12. 31의 일출과 1.1의 일출은 물리법칙으로 볼 때 같은 현상인데도 불구하고 1.1에 해맞이를 하는 것은 고대로 부터 인류의 의식속에 유전 되어온 사변적 사고 형식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나와 태양의 관계를 'I - It' 즉 주체 - 객체(세계)로 분리하여 일출현상 안에 있는 보편적이고 객관적 원리 법칙을 찾아 삶에 이용하지만 고대인들은 나와 태양의 관계를 'I - You' 즉 나와 태양을 분리 시키지 않고 나를 태양과 함께 있는 우주의 일부로 보며 일출을 보면서 태양이 나에게 주관적으로 다가와 나타나는 현현으로 인상을 남기기 때문에 그 현현은 누구나 경험하는 보편적 사건이 아니라 개인적이며 개별적 사건으로 인과관계가 무시되고 일출현상의 배후에 누가(who? 神) 있어 그의 의지(will)로 현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신의 의지가 어떻게 현현되고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상상과 유비를 통해 만들어진 이야기가 신화입니다. 1.1 새벽 해를 맞으며 소원을 빈 경험을 이야기로 쓰면 그 사람의 신화가 됩니다. 우주에 어떤 사건이 있을 때 그 사건의 배후가 신이며 신의 의지가 계시로 현현된 것으로 믿는 믿음의 체계가 사변적 사고위에 구축 되었다면 그에 따라 신화가 생성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성서는 성서에 기록된 모든 사건의 배후가 하나님이시고 나타난 일들은 모두 하나님의 계시로 믿고 쓴 신화입니다. 히브리서 또한 사변적 사고의 틀을 기초로 예수께서 십자가 형으로 피흘려 죽은 사건이 갈릴리 나사렛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된 사건으로 해석하는 신화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의 모든 사건들이 현현하는 배후인 신화로 기록된 성서를 하나님에 대한 믿음 없이 읽어 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10장 후반에 '우리가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히10:39)라고 말합니다. 11장 부터 이 '믿음'에 대한 서사가 펼쳐집니다. 믿음을 정초(定礎)로한 성서 읽기를 하려는데 10장에서 이를 가로막는 의문이 생깁니다. 황소와 염소의 피로는 죄를 제거할 수 없다고 선언하면서(히10:4) 그 동안 율법과 규례로 정해진 제사를 옛 약속으로 폐기했는데(히10:18) 왜 예수께서 십자가 형을 받고 피흘려 죽은 사건을 옛 약속인 제사 즉 제물을 예수님 자신으로 짐승의 피를 예수님피로 대체하여 설명하여 우리를 다시 옛 약속으로 끌고 갈까? 그리고 황소와 염소의 피는 죄를 사할 수 없다고 했는데 예수님의 피는 죄를 사한다고 하는가? 이러한 옛 약속과 새 약속의 충돌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점심 식사를 나누며 산성님에게 이 문제를 물으니 의외로 답이 쉽게 나왔습니다. 산성 왈' 유대인들에게 쓴 편지니까 유대인들에게 맞게 쓴거죠. 그런 것도 모를까봐 저를 무시하시는 거예요?' 무시는 아니고 정답입니다. 한 발자욱 더 나아 간다면 같은 신화시대에 산 사람끼리 서로 가장 잘 통할 수 있는 제사신화로 설명한 것입니다. 대기설법(對機說法)과 응병여약(應病與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듣는 사람의 의식수준과 이해 능력에 맞추어 법을 설하는 것이 병에 따라 약을 처방하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오늘 10장 말씀은 핍박과 고난 가운데 있는 유대 기독인들에게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피흘린 것은 우리가 조상대대로 지내온 속죄제사와 같은 것인데 그 속죄제사로는 죄가 완전히 속죄 되는 것이 불가능 했지만 예수님이 스스로 제물이 되고 피를 흘림으로 완전한 제사가 드려져 우리의 죄가 용서 되었으니 더 이상의 제사는 필요 없으니 다만 예수께서 그렇게 그리스도 되심을 믿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인내로 흔들리지 말라고 쓴 서신입니다. 이 서신이 유대기독인들에 대한 대기설법이고 응병여약이라면 과연 역사적 공간적 배경이 다른 현대에 사는 우리는 이 서신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라는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첫번째 열쇠는 현대인에게도 1.1에 해를 맞이하고 동네 어귀에 장승과 솟대를 세우며 최신 전자제어장치가 집약된 차를 사면서 북어를 차대에 매달고 무사고를 기원하는 사변적 사고 즉 신화생성적 사고(mythopoeic thought)의 정신적 유전자가 전해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사변적 사고와 축의 시대( Axial Age)이후 정신적 대전환으로 이성적이며 합리적 사고가 함께 있어 서로 충돌합니다. 인류사의 큰 획을 긋는 축의 시대( Axial Age)에 이르러 신들은 신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신이 배제된 고등종교와 철학적 전통이 시작 되며 큰 변화를 맞게 되어 현대에 이르렀습니다. 기원전 6세기 철학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탈레스(Θαλής, Thales)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다."라고 주장하여 만물의 근원에서 神을 배제하고 인간이 주체가 되어 우주와 인간을 통찰하고 사유하면서 사변적 사고로 부터 철학적 사유로 전환 되기 시작 하였습니다. 인도에서 B.C. 624에 태어난 고타마싯닷타 (Gotama Siddhattha)는 35세에 인간과 세계에 작용하는 근본 원리가 연기(緣起)법 임을 깨닫고 모든 고통으로 부터 벗어나 붓다가 되어 범신(梵神:Brahman) 을 배제한 새로운 종교인 불교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중국에서는 BC 551년에 태어난 공자(孔子)가 인(仁)으로 宗을 삼는 지덕(至德), 지선(至善)의 인도주의(人道主義)로 유교를 열고 BC 3c에는 道를 宗으로 삼는 노장(老莊)이 道家를 열어 하늘의 신인 천제(天帝)를 땅으로 내리고 사람의 倫과 道의 가르침을 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당시 유대에는 에레미야와 같은 걸출한 선지자가 나타났지만 그 시기가 바벨론 유수기로 유대전통을 회복하고 지키기 위해 성서를 결집하는 등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도약은 없이 축의 시대에서 비켜나 여전히 고대 신화시대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6세기가 지난 후에 예수께서 나타나 대 혁명을 일으켜 기독교를 탄생 시킴으로 半神話시대에 접어듭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1세기 신약성서 기자들은 갈릴리 나사렛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심을 해석하고 변증하면서 완전히 신화화 해버립니다. 이러한 성서를 차연을 최소화하여 읽는 첫번째 열쇠로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는 사변적 사고의 틀을 불러 올려 그 틀로 성서를 읽어 낸다는 것입니다. 그런다고 사람 몸에 독수리 머리로 표현되는 이집트 최고의 신 라(Ra)나 사람 머리에 몸은 말로 표현된 그리스 신 켄타우로스(Centaur)와 같은 원시 신화를 만든 사변적 사고의 상상력과 유비능력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사변적 사고로 성서를 읽는다는 것은 현재의 나를 그 역사의 현장에 내려 놓고 그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합리적 사고로 굳어진 나를 버리고 내가 바라보는 객관적 사건이 아니라 비분절적이고 전일적인 사건으로 나에게 현현되게 건너 들어 가 나의 사건화로 의미를 찾는 것입니다. 보통 이러한 과정을 말씀 묵상의 표상화라고 합니다. 성령의 인도함으로 그 사건의 현장에 몰입하여 상상과 유비의 경험을 생생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서를 묵상하며 그리스도에 참여하여 나의 신화를 쓰면 됩니다. 한마디로 주석서가 필요 없습니다. 토마스 머튼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러한 묵상의 길을 연 스승입니다. 두번째 열쇠는 고대 신화시대 부터 우리의 의식 속에 유전 되어온 '믿음'이라는 열쇠입니다. 다행히 예수께서 삶으로 우리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그 믿음이 정초(定礎)되지 않고는 성서의 한 줄도 아버지의 뜻에 합당하게 읽어낼 수가 없습니다. 성서를 읽는다는 것은 믿기 위해 알아 가는 것이 아니라 알기위해 믿는다고 말합니다. 백 마디 사실의 말이 아닌 한 마디의 믿음의 말이 우리의 영을 살리고 9에 갖힌 의식을 데카로 열고 나가게 합니다. 믿음 없이 읽는 성서는 단지 한권의 고전일 뿐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각자에게 맞춤 서비스인 대기설법(對機說法)과 응병여약(應病與藥)으로 히브리서 10장 말씀을 주셨습니다. 왜 믿음이 정초되어야 하는지 11장부터 대 서사가 펼쳐집니다. 11장을 기대하며 편히 쉬소서! 2021. 6. 20 평화 호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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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
21.06.21 09:20
첫댓글 현존하는 종교를 망라해서 해석하고 풀이한 글을 통해서 믿음의 定義에 한걸음 다가서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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