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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영성

믿음(πίστις)의 점검(1)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4|조회수0 목록 댓글 0

믿음(πίστις)의 점검(1)

 

믿음(πίστις)의 점검(1)
[영성적, 사변적, 자각적 믿음]
<엔네아 (9 ἐννέα)에서 데카(10 δέκα)로 顯現>
( 히브리서 11장)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히11:1)


우리는 살아 가면서 어떠한 방법이 되었든 현재의 실존적 문제에 대한 답을 찾고 미래에 대한 길을 찾기 위해 애씁니다. 그런데 찾아 보니 찾아졌습니까? 영적 스승들은 엔네아(9 ἐννέα)의 세계 까지에는 아상(我相)이 가로막고 있어 열고 나가 답과 길을 찾을 문이 없다고 말합니다(大道無門). 그러나 '믿음(πίστις)'은 엔네아 그 끝에서 그 문을 찾아 뚫고 데카(10 δέκα)세계, 一味世界로 나가 답과 길을 현현시켜 자신의 땅과 하늘을 거닐게 한다고 말 합니다(乾坤獨步).  
믿음의 대상과 수준은 다를지라도 누구나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은 모든 종교의 시작이자 완성이며 믿음과 실천이 따르지 않는 종교는 지적 유희에 그치고 만다고 '믿음'의 중요성에 대해 말합니다.
성서에서 사용되는 '믿음(피스티스 πίστις)'이라는 용어는 믿음 이외에도 신실함, 신뢰, 신념, 확신, 보장, 신용 등의 뜻으로 다양하게 사용되며 '신뢰(페이토 πείθω)'가 어원인 정신작용과 태도 입니다. 그리고 우리말로 '믿음'을 영어로는 'Belief'와 'Faith'라는 두 단어를 혼용합니다. 그런데 Belief는 좀더 일반적이고 범용으로 사용되며 이성적, 논리적 성격을 가집니다. 그리고 '인식론적 동의’를 뜻하며 어떤 사건에 대해 내가 인정한다는 의미로 내발적인 나의 의지로 나타나는 정신작용과 태도 입니다. 한편 Faith는 특히 종교적 의미로서의 신앙체계를 말할 때 사용하는데 신의 의지인 타력이 나의 반응으로 나타나는 정신작용과 태도를 말합니다. 히11:1의 믿음을 NIV나 KJV 성서 모두 'Faith'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말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성서에서는 플라시보 효과나 시크릿의 끌어당김 법칙,  체널링에 작용하여 의식과 믿음이 현실화 된다고 할 때의 믿음을 믿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설사 그 이면에 신의 의지가 작동한다 해도 그 신은 인간의 보편적 욕망이 투사된 우상일 뿐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다양하게 사용되는 '믿음'이라는 말이 히브리서에서는 어떤 의미로 사용 되는지 살펴 보고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10장까지의 모든 말씀을 11:1의 '믿음' 위에 얹어 놓습니다. 이 말은 10장 까지의 모든 말씀이 11:1절의 믿음을 정초(定礎)로 하고 있다는 의미 입니다.  11:1을 볼 때 '믿음'이라는 정신 작용과 태도는 시공을 초월하여 미래(
아직 yet)가 앞당겨 지고 과거( 이미 already)가 현재(지금 now)로 되돌려 지는 즉 과거나 미래의 신의 의지가 지금 여기에서 현현(顯現)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10:39은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우리를 구원한다'라고 하여 바라고 기대하는 것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 분의 의지에 의해서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현현 되기 때문에 1절의 '믿음'은 구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장차 이루실 약속과 이미 이루신 약속에 대한 믿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 전통의 믿음에는 '종교적 믿음'과 '영성적 믿음'이 있다고 봅니다. 종교적 믿음은 하나의 믿음 체계가 타인들의 믿음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도그마(교리, 신조, 교의 등)위에 세워지는 믿음을 말합니다. 북송 때의 시인 소동파가 쓴 일유(日喩)에 毆槃捫燭(구반문촉)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장님이 쟁반을 두드리고 초를 어루만져 본 것만 가지고 태양에 대해 말한다는 뜻입니다. 장님이 어떤 사람에게 태양이 어떻게 생겼냐고 물으니 쟁반과 같다고 하고 다른 사람에게 물으니 불켜진 촛대와 같다고 하니 장님이 쟁반을 두드리며 태양이라 하고 촛대를 만지며 태양이라 말한다면 그 것이 맹신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분명 새약속은 내가 각 사람과 개인적으로 체결 하겠고 각 사람의 가슴에 새기겠다고(히8:10)했는데 나를 배제하고 그들의 믿음과 경험으로 만든 도그마를 믿는 것은 毆槃捫燭(구반문촉)과 같습니다. 영성적 믿음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나와 1:1로 맺은 약속이 지금 여기에서 현현 된다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극히 개인적이며 비분절적이고 내밀한 믿음이며 나에게 하신 약속을 자각함으로 지금 여기에서 깨어 믿는 믿음 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 말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곧 영성적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직접 하나님으로 부터 1:1로 맺은 약속이 현현 될 때 까지 인내로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결국 약속 20년 후에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1절의 믿음은 10:39 말씀과 11:3 이하의 말씀을 볼 때 종교적 믿음이 아닌 영성적 믿음을 말 하는 것이 확실합니다. 과연 당신의 믿음은 종교적입니까 아니면 영성적입니까? 
 우리의 의식 안에는 정신유전적으로 학습된 '사변적 믿음체계'와 '합리적 믿음체계'가 공존해 있습니다. '사변적 믿음'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의 배후에 하나님의 의지가 있고 나타난 현상은 그 의지의 현현인 계시로 믿는 하나님과 나의 1:1관계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입니다. 그리고 사변적 믿음은 일정한 원리나 법칙에 의해 예측할 수 있는 믿음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현현됨을 믿는 믿음 입니다. 사변적 믿음은 구약의 모든 사건들과 이천여년 전에 살았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하나님의 의지로 지금 여기에 현현하게 합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의지로 태양을 멈출 수도 거꾸로 가게할 수도 바다 위를 걸을 수도 있게 합니다.
 따라서 사변적 믿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위로 부터 온 카이로스적 믿음 입니다. 합리적 믿음은 우주에서 일어난 사건을 객관적이며 가시적으로 경험과학적 검증을 통해 확인된 것을 믿는 믿음으로 대자적 그리고 자의적 믿음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현상으로 미래의  예측이 가능한 믿음 체계입니다. 따라서 합리적 믿음은 시간과 공간에 종속된 크로노스적 믿음입니다. 3절로 볼 때 1절에서 말하는 믿음은 합리적 믿음이 아닌 사변적 믿음이 확실합니다. 당신의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20세기의 가장 뛰어난 영적 스승으로 손꼽히는 구르지예프는 믿음에 대하여 '자각된 믿음은 자유이다.  감정적인 믿음은 노예이다. 기계적인 믿음은 어리석음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노예가 되거나 어리석게 되기 위해 믿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하신 약속으로 그리스도를 통해 참 자유를 주셨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우리에게 주어 하나님을 알게 하신 것으로(엡1:17)
확증됩니다. 그렇다면 1절의 믿음은 자유를 주는 '자각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각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한 약속 즉 밖에서 나에게 타력으로 오는 신의 의지를 스스로 깨닫고 신의 의지에 반응하여 깨어 있는 믿음입니다. 계약서를 장롱 깊히 넣어 둬 잠재우지 않고 늘 깨어 약속의 말씀을 상고하며 깊히 묵상하는 삶이 드러나는 것이 자각의 믿음 입니다. 당신은 지금 아버지의 약속을 자각하여 반응하고 있습니까?
영성적, 사변적, 자각적 믿음은 지금 여기에 현현한 아버지의 약속을 붙들고 불확실한 미래를 기다림과 인내로 건너가게 하는 원동력 입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한번 묻겠습니다. 지금 당신은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한 정당한 이유와 타당한 근거를 말할 수 있습니까? 만약 답할 수 없다면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이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통하여 무슨 일을 하셨는지 그리고 예수께서는 왜 그리고 어떻게 그리스도가 되시며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살펴 보시면 깨달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 깨달음이 눈먼 믿음에서 눈 뜬 믿음으로 나아 가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될 것은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어도 믿음이 하나의 정신 작용과 태도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약하게 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뇌에 있는 믿음의 회로를 강화시켜야 합니다. 이를 위해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할 때 눈앞에 장면이나 이미지를 떠올리는 표상화로 기쁨과 평안 가운데 깊히 묵상하는 생활이 필요합니다.
분명히 자각한 아버지의 약속을 이렇게 표상화하여 깊하 묵상하면 믿음위에 믿음을 더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변화무쌍한 나로 부터 비롯된 자의적 믿음은 나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수시로 흔들리기 쉽습니다. 
기억할 것은 내가 하나님께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 실상이고 보이지 않는 증거가 되는 믿음이 엔네아 (9 ἐννέα)의 믿음이라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바라고 기대한 약속에 대한 영성적이며 사변적이고 자각하는 믿음은 9의 문을 열고 나간 데카(10 δέκα)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데카의 믿음은 엔네아 까지의 에고에 갖힌 두꺼운 껍질을 깨고 나가 자기의 하늘과 땅을 거침 없이 거닐게 하며 영원한 평안과 자유를 주는 통합적 정신작용과 태도입니다.
나의 하나님 나라가 이 믿음의 정초위에 세워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고 기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지금 여기에 현현되게 하는 믿음으로 불안, 근심, 염려를 내려 놓고 어려운 이 시대를 탕탕(蕩蕩)하게 건너가길 소원합니다.
[한발 더]
' 다른 사람 믿음은 내 믿음이 아니다.' '한결 같은 한 마음으로 如如 一心'  평안하소서!
2021. 6. 27. 평화 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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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씨알
    21.06.28 07:47
    첫댓글 "영성적, 사변적, 자각적 믿음은 지금 여기에 현현한 아버지의 약속을 붙들고 불확실한 미래를 기다림과 인내로 건너가게 하는 원동력 입니다." 장로님의 글을 통해서 불확실한 미래를 용감하게 건너고자 말씀을 전하고 설교한 히브리서 설교자의 고뇌를 헤아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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