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기독교영성

메타노이아 복음(3)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4|조회수0 목록 댓글 0

메타노이아 복음(3)

 

내가 메타노이아 복음이라는 주제로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의 제자로 산다하고 하고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 받은 기쁨으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복음역사에 열정적으로
헌신 하고 산 것 같은데 어느날 문득 멈춰서 보니 왜 이 모양 이 꼬라지로 사는가?라는 회의가 덥쳐왔고 그 답을 찾아 창세기 1장1절부터 다시 상고 하던 중 예수 그리스도의 첫 메시지인 마태복음 4장 17절의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 의 말씀에서 회개로 번역했으나 마음이나 생각의 돌이킴 즉 '의식의 전환'을 뜻하는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로 부터 열쇠를 찾았다. 성서에는 현재 명령 복수인 메타노이테(Μετανοεῖτε)로 기록되어 있어 지금 당장 생각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고 보는 눈과 듣는 귀를 바꾸고 마음을 바꾸라는 말이다. 돌아보면 깨달음이 없던 믿음이나 교리나 신조 그리고 케리그마, 교회 시스템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겉사람이 복음역사를 감당하며 신앙 생활을 하게 했지만 속사람인 의식의 전환은 가져오지는 못했던 것이다. 내가 메타노이아 복음을 쓰는 것은 나 자신을 돌아 보며 그렇게 전환 되지 못한 의식이 얼마나 질기고 견고한 것이기에 전환 되지 못했는지 성서를 통해 먼저 찾아 보고 전환의 답을 찾아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것이다.
창세기 저자들은 창세기 저작 당시에 전해 내려온 전통과 공동체 그리고 당시에 그들이 경험하는 세계로 부터 형성 된 의식을 투영하여 창세로 거슬러 올라가 기록하였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최초 인류의 의식원형이 어떻게 발현되고 변형 되어 인류가 죽음의 불안과 고통이라는 한계상황으로서 인류의 보편적 집단의식으로 현재에 이르렀는지 신라의 승려 원효(元曉, 617년 ~ 686년)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에서 의식이 어떻게 연기적으로 현행되고 전변 되는 지를 밝힌 삼세(三細) 육추(六麤)의 구조를 통해 조명해 보고자 한다.

1. 의식의 원형 루아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1:1)'라고 기록하여 천지의 시원이 하나님(엘로힘 אֱלֹהִ֑ים)
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창1:2)'라고 하여 최초의 상태를 혼돈( 토우 תֹּהוּ), 공허(보후 בֹּהוּ), 흑암(호쉐크 חָשֹׁךְ)으로 표현하여 창조된 코스모스(cosmos)가 카오스(chaos)였음을 밝히고 그 위에 하나님의 바람(루아흐 רוּחַ)이 운행하고 있었다고 하여 구약성경에서 389회 사용된 루아흐를 하나님의 영으로 번역하였다. 루아흐( רוּחַ)라는 말은 "바람”, “영”, “생기”, “기운”, “호흡”의 의미로 사용했고 원래의 뜻은 "숨을 쉬다, 바람이 불다”, 그리고 “받아 들이다, 냄새를 맞다, 즐거워하다, 기뻐하다”였습니다. 구약 및 70인역본의 용법에서 루아흐(רוּחַ)를 심령(心靈)인 프뉴마(πνεύμα Pneuma)로 번역하여 사용하였다. 명사 프뉴마(πνεύμα Pneuma)는 "숨 · 호흡"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단어지만 신약성서에서 379회 나오며 70인역과 신약성서에서는 "심령(spirit)"으로 사용했으며 특히 성령(聖靈, Holy Spirit)으로 사용하였다. 성서에서는 루아흐를 인간 의식의 원형으로 본다.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이르시되(슥 12:1b)'라는 스가랴 기록으로 神이 사람 안에 바로 심령(루아흐 רוּחַ)을 만들어 놓았다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고 하여 흙으로 지은 사람의 코에 생기(숨 네솨마 נְשָׁמָה)를 불어 넣어 生靈이되었다고 하는 생령은 네페쉬 하야 (חַי נֶפֶשׁ)로 생명을 뜻한다. 신이 코에 숨을 불어 넣어 생명 있는 인간이 되었다는 기사다. 그런데 종종 신학자나 목회자 중에 네페쉬하야를 영혼으로 해석해 인간은 하나님의 영을 가진 영적 존재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된 견해다. 인간을 육체와 영혼을 분리해 이원적으로 보는 것은 헬라철학의 영향이다. 구약에서 루아흐를 神과 독립해 위격을 가진 성령이나 영혼으로 사용한 기록이 없다.
인간 의식의 원형은 루아흐( רוּחַ)인 心靈 이다.

2. 의식의 변형
최초의 의식의 원형을 가진 인간은 아담(אָדָם)이다. 아담은 아직 남여로 구분되지 않은 인간의 원형 아담 카드몬(Adam Kadmon)이다. 아담카드몬은 신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고 완벽히 신의 의지를 담은 원형 의식인 청정무구한 심령을 가진 인간 원형이다(창1:27). 아담의 몸과 의식 공간은 성서에 기록된 대로 에덴(עֵדֶן)이다. 이 때 아담의 의식 원형에 공간의식이 발현 된다. 최초의 의식은 존재의 둥지인 특정 공간의식이다. 그리고 창2:17에서 먹는 날(욤יוֹם)을 말하며 시간의식이 발현 된다.
그 후로 인간은 공간과 시간의식이 디폴트 된다. 그리고, 에덴 가운데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나게해 의식 원형에 생존 하려는 생명의식 그리고 선악 분별의식의 씨앗을 심었다.
3. 기신론소의 틀로 본 의식의 발현과 변형

아직 아담은 모름(無明)의 상태다. 그러나 신은 그것들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였다. 이제 아담은 무위무명(無爲無明)에서 경작하고 지키 위해 마음이 움직이는 업상의식(業相意識)이 발현하고 아담은 경작하고 지키는 자로서 主가 되고 경작하고 지켜야하는 그것들은 客이 되어 아담의 의식은 主로서의 능견상(能見相)과 客으로 서의 경계상(境界相)이 발현 된다. 이어 이것이 내가 경작하고 지켜야 할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구나 하고 알게 되는 지상(智相)이 발현된다. 한번 앎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智相이 이어지며 상속상(相續相)이 발현된다. 의식이 끊기지 않고 연속으로 상속된다.
그런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고 명한다. 경작하며 지키는 가운데 먹지 말라고한 하나님의 말씀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에 대해 취착하는 집취상(執取相)이 발현된다. 이 와중에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아니하므로 아담의 갈비 하나를 취하여 여자(잇솨 אִשָּׁה)를 만들어 배필을 삼아 無性의 아담카드몬은 남성과 여성 둘로 분리 되어 남여 분별의식이 발현된다. 그러나 그 의식은 서로 벗었어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만큼 아직 미세하다. 여자는 아담의 배필이 되어 공동 경작자가 되었다. 공동경작자가 되며 여자도 아담과 같은 의식이 발현되어 여자에게도 미세한 집취상(執取相)이 발현 된다. 또한 배필을 두기전 아담에게 지으신 모든 것의 이름을 짓게 한다. 대상에 대한 이것은 무엇 저것은 무엇 이름을 지으며 헤아려 이름 짓는 계명자상(計名字相)이 발현 된다. 이때 뱀이 여자에게 나타나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에 대한 미세한 집취상(執取相)에 불을 붙여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3:6)'하여 먹을까 말까 헤아리고 선악을 알게 하는 무슨 헛이름이야! 내가 먹어도 되는 이름이야. 이렇게 계명자상(計名字相)과
미세한 집취상(執取相)의식이 강화된다. 아담이 뭇짐승의 이름 불러 이름 지은 사건은 아담과 뭇짐승을 상대화해 主客으로 나누어 아담의 의식이 뭇짐승을 지향하게 하고 그 이름이 개념화 범주화 되어 의미가 부여되며 허망한 이름에 집착하게 된다.
이 계명자상과 집취상은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어(창3:6)' 善惡을 분별하고 그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自他로 분별하는 二元的 의식과
身口業을 일으키는 起業相의 의식이 발현된다.
이 업상은 결국 죽게 된다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피해 숨고
결국 명령에 따라 생명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못하도록 에덴에서 쫒겨나는 業報로서 업계고상(業繫苦相)의식이 발현된다. 지금 까지의 緣起的 의식 발현 메카니즘이 야기한 果로서 얻어진 죽음과 그에대한 두려움은 인류가 보편적으로 마주하는 한계상황이 되었다. 이 불안과 공포 그리고 죽음의 고통을 여의고 이미 우리의 안과 밖에 도래한 하나님 나라에서 태초의 청정무구한 원형의식인 心靈을 회복하여
행복한 삶을 누리도록 이렇게 불안과 공포 그리고 죽음의 고통을
야기한 苦執의 유전연기를 滅道로 환멸연기 할 수 있도록 예수그리스도께서 메타노이아 하라고 복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이어 좀더 구체적으로 청정무구한 원형의식인 심령이 어떻게 전변 현행되어 한계상황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메카니즘을 살펴보고자 한다.

주) 신라의 승려 원효(元曉, 617년 ~ 686년)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현시정의분(顯示正義分)에서 진여식(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게 연기적으로 현행되고 전변 되는 지를 밝힌 삼세(三細) 육추(六麤)의 전변과 현행 훈습의 메카니즘
1.삼세(三細) 미세의식
1)무명업상 無明業相(惑, 業相 무엇을 지향한 의식의 움직임 시작)→
2) 능견상 能見相(轉相 주관)→
3) 경계상 境界相(現相 객관)→
2. 육추(六麤) 거친의식
4) 지상 智相(앎의 의식발현)→
5) 상속상 相續相(생각이 연쇄적으로 이어짐)→
6) 집취상 執取相(住持苦樂取)→
7) 계명자상 計名字相(依於妄執 分別假名言相)→
8) 기업상 起業相(행동함 造業, 作業)→
9) 업계고상 業繫苦相(과보로 받음 受報)

댓글

씨알

23.08.01 15:06

첫댓글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어려우면서도 호기심 가득 장로님의 해석을 통해서 의심하고 해답을 찾습니다.
"경작하며 지키는 가운데 먹지 말라고 한 하나님의 말씀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에 대해 취착하는 집취상(執取相)이 발현된다."
왜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을 줄 알면서 선악과를 두고 불복종한 아담의 심리묘사를 밝혀 놓으셨을까요?
장로님의 해석을 통해서 답을 찾습니다.
메타노이아가 데카에서 꿈꾸고 바라본 세계라고 생각합니다.
야기한 苦執의 유전연기를 滅道로 환멸연기 할 수 있도록 예수그리스도께서 메타노이아 하라고 복음을 선포하신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