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기독교영성

향유 한 옥합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5|조회수2 목록 댓글 0

향유 한 옥합

 

[지도무난 至道無難
유혐간택 唯嫌揀擇
지극한 도는 어렵지않으니, 다만 간택함을 꺼릴뿐이다.]
이 말은 초조 달마대사와 2대 혜가를 잇는 3대제자인 승찬의 신심명에 나오는 첫 구절이다. 궁극적 도는 어렵지 않지만 일상에서 판단하고 선택하는 일이 심히 꺼려질 정도로 어렵다는 말이다. 우리의 삶은 판단과 선택의 연속이지만 나의 욕망으로 부터 또는 편견과 아집으로 부터 자유로운 판단과 선택은 얼마나 될까? 성서의 마가복음 14:3로 부터 14:9까지 한 여인이 300데나리온의 가치가 있는 향유 한 옥합을 식사하던 예수님의 마리에 쏟아 부은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에서 여인과 제자들 사이의 판단과 선택에 갈등이 묘사된다. 제자들은 여인을 나무라며 그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데 왜 낭비하느냐고 판단했고 여인은 가장 지극한 박티로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하는 사랑과 헌신으로 향유를 사용하는 판단과 선택을 한 것이다. 유한한 자원의 한계로 볼 때 기회비용의 입장에서 제자들은 낭비라고 보았다. 공동선의 입장에서 볼 때 제자들의 판단과 선택이 전혀 잘 못된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 제자들의 판단선택 이면에 그 여인에게 화를 버럭 내고 나무란 것은 그 여인의 향유를 마치 자기들의 소유인 것처럼 사용하고자 하는 탐이 작용 했으나 마음대로 되지 않은 연유에서다. 이웃을 돕는 공동선을 추구하는 뜻이 아무리 좋아도 그 판단과 선택이 탐욕에서 비롯된 경우라면 지극한 박티를 위한 여인의 판단과 선택을 넘어설 수는 없다. 지들 것도 아닌데 왜 지들 마음대로 하려는가? 아무리 선한 일을 하려는 판단과 선택이라도 선을 한참 넘은 것이다. 이어지는 네러티브가 너무나 가슴 아픈 유다의 배반이다. 유다가 배반하는 판단과 선택이 돈궤를 맡은 자의 탐욕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역사적 예정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맡은 배역으로서 배반 했을 지라도 탐욕에 물든 유다의 판단과 선택은 미화될 수가 없다. 오죽하면 예수께서 그가 태여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부정 했을까. 말 그대로 유혐간택이다. 판단과 선택이 지극히 어렵기에 삼가 꺼려지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유월절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판단과 선택의 방향과 방법을 제시하신다. 위대한 리더는 문제의 답을 주는 것이 아니다. 떡을 떼어 주며 먹으라 이는 내 몸이라 하시고 포도주를 주시며 이는 내 피라고 하신다. 내 몸을 먹고 내 피를 마신 너희는 이제 나와 일체가 되어 주의 몸과 생명으로 지극한 사랑에 터해 판단과 선택을 하라는 방향과 방법을 알려주신 것이다. 어려운 이웃을 돕는 판단과 선택도 배신자 유다에 대한 판단과 선택도 너희 마음대로 너희 욕망에 따라 할 것이 아니요 예수님의 생명과 그 사랑으로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지극한 도인 사랑도 쉽고 선택과 판단도 꺼려지지 않는다. 지극히 고요한 마음 가운데 예수님과 만나 일치 되어 예수님의 시선과 안목으로 판단과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하자. 할렐루야!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