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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영성

사랑!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5|조회수1 목록 댓글 0

사랑!

 

(그 아름다움으로의 초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요 13:1b)
여기서 말하는 ‘끝까지’는
시간의 끝이나 공간의 한계를 뜻하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시점이나 죽음의 순간만을 가리키는 말도 아닙니다.
끝까지란 마음이 더 낮아질 수 없는 자리, 텅 비어 더 움켜쥘 것이 없는 그 바닥까지 내려간 다한(盡) 마음의 끝입니다.
예수의 사랑은 멀리 올라가 닿는 지고한 사랑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 스며드는 사랑이었습니다.
여기서 사랑은 감정만이 아닙니다.
좋아함 / 싫어함, 집착 / 갈애 그리고 눈 멀어 탐진치에 물들어 눈물의 씨앗이 되는 사랑이 아니라, 하늘아버지의 성품이 온전히 드러나 존재하게 하는 힘 입니다.
광야에서 금식 후 맞이한 유혹의 자리에서 주님은 능력을 증명하지 않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돌을 떡으로 만들지 않았으며,
세상의 영광으로 자신을 정당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비워진 마음으로
아무것도 취하지 않는 그리스도의 길을 택했습니다.
이것이 케노시스,
자기를 비워 끝까지 돌파해 내려가는 아름다운 사랑의 첫 걸음이었습니다.
그 이후의 삶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죽을 때까지
작고 낮은자들, 버림 받고 외면 당한 사람들과 함께하며 고치고, 만지고, 함께 앉고, 섬겼습니다.
치유는 기적이기 전에 연민이었고, 섬김은 역할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자기 사람들 앞에 무릎을 꿇고 그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주와 스승의 자리를 내려놓고,
종의 자리, 가장 낮은 자리에 몸과 마음을 두셨습니다.
다만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다고 할 뿐이었습니다.
사랑은 말로 완성되지 않고
낮아진 존재양식으로 드러났습니다.
겟세마네의 기도에서도
주님은 뜻을 관철하지 않았습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라는 말은
체념이 아니라 마음이 더 이상 자기를 주장하지 않고, 피눈물로 쓰여진 완전한 비움과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리고 죽음. 그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끝까지 내려간 사랑의 완성이었습니다.
도망치지 않고, 저항하지 않고,
끝내 자신을 내어주는 자리.
그곳에서 사랑은 더 이상 의지가 아니라 아름다운 존재 그 자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끝까지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은 얼마나 오래 얼마나 높고 큰 사랑을 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비어졌는가의 문제였습니다.
끝까지란 자아가 더 주장할 수 없는 자리, 사랑 외에는 남아 있지 않은 마음의 밑바닥 끝입니다.
그 사랑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더 하라는 요구를 받기보다, 그 낮아진 자리로 함께 내려오라는 초대를 받습니다. 그 초대는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번 물은 것과 같이 나에게 묻는 물음으로 시작됩니다. 보통 진선미의 가치를 말할 때 진과 선은 아름다움에 포섭된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그렇게 눈물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고백합니다. 나는 어떻게 답할까요. 그 답의 자리가 끝까지 사랑이 멈추지 않는 자리이며, 비로소 참된 생명, 가장 아름다운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곳입니다.
사랑합니다!
병오년 이월 둘째 주에
평화 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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