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기독교영성

부활(復活 ἀνάστασις resurrection)

작성자호건|작성시간26.06.15|조회수4 목록 댓글 0

부활(復活 ἀνάστασις resurrection)

 

[부활을 믿으나 부활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 11:25~26)

오늘은 교회 공동체에서 부활을 들여다 보고 부활에 참여하는 소망과 기쁨으로 지키는 축제의 날입니다.
부활절에 즈음하여 부활을 믿으나 부활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부활에 대한 몇가지 단상을 적어봅니다.
위 요절 말씀은 “나는 부활이며 생명이기 때문에 살아 있으면서 나를 향해 자신을 맡기고 믿는 자는 결코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존재의 방향 전환인 메타노이아를 뜻합니다.
한계사황에 갇혀 나를 중심으로 고통속에 살던 존재가 더 큰 존재에 참여하여 자신을 내어 맡기는 존재의 구조 전환입니다.
'죽어도 살고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은 육체적 죽음의 부정이 아니라 영원한 현재인 지금 여기에서 비존재의 위협으로 벗어난 존재의 질을 가리킵니다.
부활을 단순히
“죽은 육체가 다시 살아난 사건”으로 이해 하거나 물리적 사건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는 나와는 상관 없는 일로 신앙을 왜곡할 뿐만아니라
부활의 역사적 사실 여부에 집착하면 과학적 검증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맙니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해석 된 의미의 차원의 사건이며 지금 여기서 비존재를 넘어서는 새로운 존재로의 대 전환입니다.
부활은 예수 안에서 나타난 “새로운 존재”가 죽음에 의해 부정되지 않았다는 선언입니다.
부활은 죽은 몸의 재생이 아니라, 존재의 근원적 새로움이 죽음조차 부정하지 못한다는 계시적 사건인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을 존재론적·내면적 사건으로 접근 해야 믿음으로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고 낮아지고 비워 지금 여기에서 부활을 체험하는 존재의 용기가 솟아납니다. 부활은 비존재의 위협에 대한 응답으로
죽음 이후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비존재를 넘어서는 존재의 용기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믿으나 부활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자아를 못박을 존재의 용기는 모든 소유로 부터 초탈할 용기, 심지어 신으로 부터도 벗어날 용기, 낮아지고 낮아질 용기, 비우고 비울 용기, 자아가 서 있는 존재의 기반을 무너뜨릴 용기, 내 의지를 포기하고 은총에 맡길 용기들 입니다.
부활을 상징하는 새로운 존재는 이 용기로 그 장애를 돌파하여 낮아지고 비워진 영혼의 근저에서 태어납니다. 부활은 곧 하나님의 것으로 예수와 함께 새롭게 태어나는 존재의 대 전환입니다. 우리는 저녁에 잠들고 아침에 깨어 일어나며 작은 부활을 체험하며 삽니다. 자면서는 온갖 꿈을 다 꾸면서 꿈 속에서 그 꿈을 현실로 착각 합니다. 그러나 깨고 나면 현실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부활은 잠과 꿈에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살면서 겪는 꿈 중에는 자아가 실재한다고 믿는 착각,
세계를 고정된 실체로 보는 집착, 생사를 실재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있습니다. 부활은 이런 꿈에서 깨어 연기실상을 여실하게 보는 깨달음이기도 합니다. 곧 무명에 싸여 탐진치로 물든 존재가 전식득지로 다시 태어나는 원만성실과 니르바나의 부활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에서 꿈에서 깨어 낮아지고 비워진 그 자리에서 부활의 새로운 존재로 감사와 기쁨과 사랑이 넘치길 기원합니다.
병오년 부활절에 평화 호건🙏🙏🙏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