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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교훈글-도주의돈(陶朱猗頓)

작성자태풍|작성시간26.06.07|조회수15 목록 댓글 0

 

도주의돈(陶朱猗頓)

도주(陶走)와 의돈(猗頓)과 같은 큰 부자라는 뜻으로,

막대한 재산이나 돈이 많은 부자를 이르는 말이다.

    陶 : 질그릇 도
 朱 : 붉을 주
       猗 : 아름다울 의
    頓 : 조아릴 돈

중국 춘추 시대의 큰 부자이던

도주(陶朱)와 의돈(猗頓)이란 뜻으로

최고의 부자를 일컬는 말입니다.

 

이 말은 도주(陶朱)의 부유함과 의돈(猗頓)의

부유함이란 뜻에서 도주지부(陶朱之富),

의돈지부(猗頓之富)라고 나누어 말하기도 하고,

또는 도주의돈(陶走猗頓)을 줄여서

그냥 도의(陶猗)라고도 합니다.

도주공(陶朱公)은 도(陶; 지역)가

천하의 중앙에 위치하여,

사방으로 제후(諸侯)의 나라들과 통하여

물건이 교역(交易)되는 곳이라 생각했다.


여기서 도주공(陶朱公)은 산업을 닦고

재산을 쌓아 때를 놓치지 않고

매매로 이익을 올리되

사람들에게 쥐어 짜는 일은 하지 않았다.

 

교묘하게 생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을 잘 이용하여

때에 응할 수 있다는 것이 이것이다.


이리하여 19년 동안에 세 차례나

천금(千金)의 재산을 만들어,

 

그 중에서 두번은 그 재산을 가난한 친구들이나

멀리 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것이 소위 부자가 되면 기꺼이

그 덕을 실천하는 사람인 것이다.


늙어서 기운이 쇠퇴한 뒤에는

자손들에게 맡겨 두었는데 자손들도

집안일에 힘써 재산을 늘리어,

 

드디어는 만대(萬代)로써

손꼽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그러므로 부(富)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들은

모두 도주공(陶朱公)을 칭찬하였다.


도주지부(陶朱之富)는

도주공(陶朱公)의 부(富)라는 뜻이다.

 

도주공은 중국 고대 전국시대 거부(巨富)로

중국인들에게는 장사꾼의 신(神)이라고 불린다.

 

도주공이 신격(神格)으로까지

추앙받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도주공의 본래 이름은 범려(范蠡)로

월(越)나라의 대부였다.

 

2500년 전 중국 월(越)나라의 범려(范蠡)는

재물과 권력을 활용하고, 놓을 줄 알았다.

춘추전국시대를 한때나마 제패한

월(越)나라의 상장군(上將軍) 자리도 걷어차고,

제(齊)나라의 재상(宰相) 자리도 거부했다.

 

큰 돈을 벌고도 쌓을 줄 몰랐고,

권력을 겸손하게 거절할 줄도 알았다.

 

춘추시대 월왕(越王) 구천(勾踐)은

참모 범려(范蠡)가 간하는 것을 듣지 않고

오(吳)나라에 선제 공격을 했다가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갔다.

 

구천은 범려의 간언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그에게 조언을 구했다.

구천은 범려의 권고대로 오(吳)나라에

항복하고 뒷날을 기약하며 쓰디쓴 쓸개를 맛보면서

부국강병에 힘써 마침내 오나라를 멸망 시킴으로써

회계의 치욕(會稽之恥)을 씻었다.

 

상장군이 된 범려는 구천의 인품이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지만

즐거움은 함께 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가족을 이끌고 제(齊)나라로 탈출했다.

 

제(齊)나라에서는 이름을

‘치이자피’로 바꾸고 장사를 하여

엄청난 돈을 손에 쥐게 되었다.

제(齊)나라는 범려의

비상한 재주를 높이 평가하여

재상이 되어 달라고 했지만,

 

“천금의 부를 누리고

재상까지 된다는 것은 영화의 극치다.

 

게다가 명성까지 누리는 건 좋지 않다”면서

제(齊)나라의 제의를 사양하고

수 만금의 재산도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도(陶)땅으로 이사를 했다.

 

이름을 다시 주(朱)로 바꾸고

여기서도 장사를 시작해서

또 한번 엄청난 재산을 모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도주공(陶朱公)이라고 불렀다.

그가 사람들의 우러름을 받은 것은

철저한 상술로 이익을 도모했지만

사람들을 쥐어짜는 일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이번에도 번 돈을

빈민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뒷날 도주공(陶朱公)의 자식들도

부전자전(父傳子傳)으로

많은 돈을 벌어 들였다고 한다.

한편 의돈(猗頓)은 노(魯)나라 사람으로

황하 기슭 남쪽에서 소금과 목축(牧畜) 사업으로

거부(巨富)를 이뤄 제후들 보다

풍요로운 생활을 하였으며 도주(陶朱)에

버금가는 큰 부자가 되었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도주의돈(陶朱猗頓)이라고 하면

부자의 대명사로 쓰입니다.

 

또 막대한 재산 또는 거부를

도주의돈지부(陶朱猗頓之富)라고도 한다.

 

맹자(孟子)에 보면 ‘재물을 모으자면

남에게 어진 덕은 베풀지 못한다(爲富不仁)’는

말이 있습니다.

 

부자가 되는 것과 어진 일을 함께 하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누구나 부자가 되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부정한 방법으로 또는 남의 것을

빼앗으면서까지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얼마 전에 평생동안 어렵게 모은 전 재산을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 써 달라며

사회에 기부했던 분들의 일이

세간의 화제거리가 된 적이 있었습니다.

과연 나라면 저분들처럼 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기도 했습니다만,

 

그분들도 호의호식(好衣好食)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보다 어렵게 지내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발동을 했기 때문에,

 

그래서 나 자신의 편안함보다는

어려운 사람과 함께 하고자 하는

나눔의 정신이 더욱 중요하다고,

 

판단을 했기 때문에

그런 용기있는 선행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남편과 외아들을 잃은 뒤에

평생동안 온갖 궂은 일을 하면서,

 

모은 전 재산을 털어 무료 양로원을 짓고

노인들을 돌보아왔던 이순덕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이순덕 할머니는 비록 힘들고

궁색한 삶을 살았지만,

 

그 어려움 속에서도 나눔을 실천했기에

우리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남을 것입니다.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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