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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교구 주보

제2616호 2026년 06월 07일(가해)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ㅣ말씀의 이삭

작성자어리니|작성시간26.06.07|조회수30 목록 댓글 0

 

< 방구석이 좋을 리 있나 >

 

 

지난달 말, 한 북토크에 다녀왔습니다.

고립과 은둔의 시간을 견뎌낸 청년들이 자신의 삶을 직접 들려주는 자리였습니다.

짧게는 7년, 길게는 13년 동안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았던 청년들은

왜 스스로 방문을 걸어 잠글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세상으로 나올 용기를 얻게 되었는지를 담담히 털어놓았습니다.

 

청년들이 은둔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저마다 달랐습니다.

어떤 청년은 아버지의 폭력 앞에서 어머니와 동생을 지키려다

결국 자신마저 무너졌다고 했습니다.

극단적 선택까지 실패한 후엔, 아예 세상과 관계를 끊었습니다.

 

부모로부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으며 자랐던

또 다른 청년은 어느 순간 자신이 정말 무가치한 존재라고 믿게 되었고,

결국 방 안으로 숨어 버렸다고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반복적으로 부정당하고, 자신을 쓸모없는 존재로 여기며 살아온 이들에게

방 안은 마지막 피난처였지만 동시에 감옥이기도 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방구석’이란 감옥에서 나올 용기를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독방 체험을 통해 성찰 기회를 제공하는 ‘행복공장’이었습니다.

청년들은 그 단체의 ‘고립은둔청년 회복캠프’가 자신들을 바꾸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특히 도움이 된 프로그램은 ‘비난과 방어’라는 역할극이었답니다.

이 역할극의 목적은 참가자들이 가해자가 없는 ‘안전한 공간’에서

그들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쏟아내고, 가해자 역을 맡은 이로부터

그의 이야기를 대신 들으며 맺힌 응어리를 풀고

자신의 상처를 객관화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이 과정에서 상처를 준 사람 역시

또 다른 절망 속에 있었음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 순간 자신을 오래 붙들고 있던 증오와 분노의 사슬이

조금은 느슨해지는 경험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30대 한 청년의 이야기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는 역할극을 통해 가정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하던 시기의 아버지가

현재 자신과 같은 30대의 가장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IMF 때 사업에 실패해 감당하기 어려운 빚을 떠안은 채

가장이라는 책임감에 짓눌렸을 한 남자의 모습을 떠올리자,

그동안 증오의 대상일 뿐이었던 아버지가 삶의 벼랑에 몰린 한 인간으로 다가왔고,

처음으로 연민이라는 감정을 느꼈다고 고백했습니다.

     

이 청년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리스도께서 “네가 사람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는 거기에서,

어쩌면 그곳에서만 너는 ‘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묵상한

토마스 할리크 신부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감히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하려면

우리 역시 이 청년처럼 이웃의 상처에 연민을 느끼고

어루만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권태선 마리아 |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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