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안의 프란치스코 교황님 >
저는 주로 신문에 글을 쓰며 살았지만,
틈틈이 어린이들에게 삶의 길잡이가 될 수 있는 분들을
소개하는 책들도 썼습니다.
마틴 루터 킹, 헬렌 켈러, 넬슨 만델라 같은 분들이 제가 소개한 분들입니다.
킹 목사나 헬렌 켈러는 저의 소개로 꽤 많은 우리나라 어린이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책을 몇 권 더 쓰면 인세로 노후 생활을 영위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까지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인세 욕심 때문에 이분들의 삶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회적 약자였던 그들이 추구하는 정의에 대해 공감했고,
그들이 정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겪은 좌절과 고통을
타자와의 연대와 화해로 승화시켜가는 모습에 마음이 끌렸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어린이에게 소개하는 책을 낸 이유도
기본적으로는 비슷합니다.
하지만 가톨릭 신자인 제게 이 책은 위의 책들과 달리
가톨릭교회에 대한 저의 믿음을 회복하고 좀 더 단련하려는 노력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 입교한 이래 가톨릭 신자라는 정체성을 저버린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독실한 신자는 전혀 못 되었습니다.
교회가 우리 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데 대한 불만을
제 나태한 신앙생활의 핑계거리로 삼기도 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그런 제게 교회가 달라지리라는 희망을 주시고
저를 다시 교회로 부르신 분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비의 교회’를 지향으로 내세운 교황님은
2014년 한국을 방문해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마음을 다해 위로하셨습니다.
그것을 정치적 행동으로 규정하려는 시도에 대해서는
“인간의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며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그분이 쓰신 글과 그분에 대해 쓴 글을 찾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분도 한때는 독선과 아집으로 지탄과 외면을 받은 적이 있었고,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 편에 서야 한다는 그분의 확고한 믿음은
그런 독선과 아집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통회의 결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점이 제가 삶이 아직 완결되지도 않으셨던 그분을 소개하는 모험을
감행하기로 마음먹은 이유였습니다.
이후 그분의 말씀과 행동은 제 삶에, 그리고 제 신앙생활에 버팀목이 되었습니다.
최근 몇 년 이런저런 일로 어려움을 겪을 때는,
“인간은 단순히 삶이라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역사를 만들어 가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그분의 말씀이 저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덕분에 끝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립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
권태선 마리아 |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