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느끼는 불안 1 >
평화를 잃게 하는 원인 중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명확히 알 수 없을 때의 불안감과
시련을 겪는 양심의 불안에 대해서다.
우리는 잘못 생각하고, 우리가 내린 결정이 유감스런 결과를 낳고,
주님 뜻을 거스르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이런 상황은 의외로 고통스럽고 불안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이제까지 우리가 말한 포기와 신뢰라는 일반적 태도,
어떤 것도(심지어 우리의 실수가 가져다줄 결과까지도!)
'극화'하지 않도록 해주는, 하느님 손길에 모든것을 맡기는 태도는
바로 이처럼 불확실한 상황에서 지녀야 할 중요한 자세다.
여기에 덧붙여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때
내적 평화를 간직하기 위한 몇 가지 유익한 지적을 하고자 한다.
먼저 말해야 할 것은 우리가 이제까지 말한 것과 같은 노선에 있는데,
우리는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을 때
지나치게 서두르거나 조급해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정을 잘 살펴보면서 우리 마음이 좋은 해결책을 향해
평화롭고 부드럽게 나아가게 하려면 어느 정도 느긋해야 한다.
성 빈첸시오 드 폴은
충분히 성찰하고 무엇보다 기도한 후에야 비로소 어떤 결정을 내렸기에
그의 주변 사람들은 그가 너무 느리게 결정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열매를 보아야 나무를 판단할 수 있는 법이다!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상황을 명확히 보고,
조급하거나 임의적인 결정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곧 상황의 여러 측면을 분석하고 개인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결정하기 위해 자신의 동기를 성찰하며,
성령께 하느님 뜻에 맞게 행동할 빛과 은총을 청하는 기도를 하고,
필요하다면 결정에 빛을 주는 사람들의 조언을 구해야 한다.
누구나 영성생활을 하다 보면 아무 빛도 보이지 않아 영적 지도자의 도움 없이는
평화롭게 식별하거나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
주님은 우리가 스스로의 힘에 자족하기를 바라지 않으신다.
우리가 때로 자신의 힘으로 빛과 평화를 찾지 못하도록 이끄시는 것도
주님의 교육 방법 중 하나다.
우리가 마음을 연 누군가의 중개를 통해서만 우리는 빛과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지닌 문제나 딜레마에 대해 다른 이에게 말하기 위해서는
겸손과 신뢰의 태도가 필요하다.
바로 이런 태도야말로 주님을 한없이 기쁘게 하며
우리 원수가 우리를 속이거나 불안하게 하려고 파놓는 함정을 꿰뚫어 보게 한다.
우리가 이제까지 말한 소중한 내적 평화는
삶의 어떤 순간에는 우리 혼자서 찾을 수 없음을 명심하자.
그때는 누군가에게 우리 영혼을 열어 보이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
성 알폰소 데 리구오리도 뛰어난 영적 지도자였지만
자신의 영성생활을 위해서, 자기를 열어 보이던 사람의 도움 없이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고 했다!
이제까지 말한 것에 한 가지 덧붙여야 할 것이 있다.
우리가 결정을 내리기 위한 빛을 받고 주님 뜻을 행한다는 것을
확신하기 위해 (기도하고 숙고하며 조언을 구하는 등)
제아무리 신중을 기한다 해도(신중함을 지니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 가볍게 결정할 권리가 우리한테는 없다.)
언제나 이 빛을 분명하고 명백하게 깨닫지는 못한다는 점이다.
이미 결정된 상황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하지? 주님의 듯은 어디에 있을까?' 하고
자문하더라도(우리는 늘 자문해야 한다!) 언제나 분명한 답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가 하느님 뜻을 찾고 식별하려고 노력할 때 주님은 다양한 방법으로 말씀하시며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 분명히 이해하도록 하신다.
그때는 평화롭게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을 수도 있다.
이는 지극히 정상적이다!
때로 주님은 우리를 자유롭게 놔두신다.
또 그분만이 아시는 이유 때문에 응답을 주시지 않는다.
이를 알아두는 것이 좋다.
우리는 흔히 잘못 생각할까, 또 하느님 뜻을 행하지 못할까 두려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응답을 받으려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숙고를 거듭하고 기도하며,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구절이나
필요한 빛을 얻으려고 성경을 몇 번이고 펼쳐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 모든 노력은 그 어떤 것보다 더 우리를 동요와 불안으로 몰고 갈 뿐
많은 빛을 주지 못한다.
우리가 비록 어떤 성경 구절을 찾았다 해도 어떻게 그것을 해석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주님이 우리를 불확실 속에 버려두실 때는 평온하게 빋아들여야 한다.
'억지로라도' 답을 들으려 하면서 응답이 없다고 쓸데없이 안달하기보다
파우스티나 수녀가 말한 원칙을 따르는 것이 좋다.
어떤 것이 더 좋은 일인지 모를 때는 숙고하고 고찰하며 조언을 구해야 한다.
양심에 확신이 없는 상태로 행동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확실한 상태가 계속될 때 스스로 이렇게 말해야 한다.
하느님은 우리가 좋게 여기는 것을 받아들여 좋게 보아 주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올바른 방향이 아니었음을 알았을 때도 슬퍼하지 말아야 한다.
하느님은 그 행동을 시작했을 때의 우리 의향을 보시고 그 의향에 따라 보상해 주실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원칙이다.(영적 일기, 7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