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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안에 머물러라

평화를 잃지 않으려면 (19)

작성자어리니|작성시간26.06.17|조회수33 목록 댓글 0

 

< 사랑의 왕도 王道 >

 

 

평화와 자유, 하느님께 대한 신뢰어린 내맡김,

우리 자신의 결함과 심지어 잘못까지도 

평온하게 받아들임에 바탕을 둔 이러한 전진이

결론적으로 어째서 권고할 만한 길이 될 수 있는가?

어째서 그런 태도가 전념과 걱정, 그리고 완덕에 대한

긴장되고 불안한 열망으로 표현되는

하느님 뜻의 추구보다 더 올바른 길이 되는가?

 

'유일하게 참된 완덕은 사랑의 완덕'이기 때문이며,

첫 번째 태도에는 두 번째보다 하느님께 대한 참된 사랑이 더 많기 때문이다.

 

파우스티나 수녀는 이렇게 말했다.

"무얼 해야 할지 모를 때 나는 사랑에게 묻습니다.

사랑은 가장 좋은 조언자니까요!"

 

복음에 따르면 흠잡을 데 없이 행동하는 사람보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더 완전하다.

가장 완전한 행동은 우리가 때로 완덕에 대해 갖는 이미지대로

흠잡을 데 없고 실수가 없으며 나무랄 데 없는 행동이 아니다.

완전한 행동이란 하느님께 대한 사심 없는 사랑이 더 크고,

자신에 대한 교만한 추구가 적은 행동이다.

 

나약하고 작은 자로 남아 있기를,

또 이따금 실수하며 자신한테든 이웃한테든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 보이기를 받아들이면서도,

하느님을 굳게 신뢰하며 하느님의 사랑이

자신의 불완전과 결함보다 훨씬 크고 중대함을 알기에

자신의 부족함에 지나치게 염려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완덕을 추구하느라 불안에 빠지는 사람보다

더 많이 사랑할 줄 알게 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성령의 비추심에 힘입어 자신의 가난함을 더 이상 과장하지않고

기쁘게 받아들이기를 배운 사람은 복되다.

그는 모든 희망을 자신이 아니라 하느님께 두기 때문이다.

하느님이 그의 부유함과 완전함, 거룩함과 덕이 되실 것이다.

 

자신의 가난함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의 가난은 하느님이 당신의 놀라운 사랑과 자비를 나타내시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무능함과 아무것도 아님이 더 이상 슬픔과 불안의 원인이 아니라

우리에게 평화와 기쁨을 줄 때 우리는 성인이 될 것이다.

 

사랑의 길이기도 한 가난의 길은 우리를 자라게 하고

차츰 우리에게 모든 덕을 얻어주며 우리를 잘못에서 정화할 가장 효과적인 길이다.

오직 사랑만이 성장의 원천이며 사랑만이 풍요롭고 사랑만이 죄를 깨끗이 씻어준다.

 "사랑의 불은 연옥 불보다 더 많이 우리를 정화시킵니다."(리지외의 데레사)

 

자신의 가난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데 기초를 둔 이 길은

평범함에 안주한다거나 완덕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 길은 우리를 완덕에 데려다 줄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다.

우리가 온전히 하느님의 손안에 놓이도록

우리를 작음과 신뢰와 포기의 자세로 이끌기 때문이다.

 

또한 이럴 때 하느님께서 당신 은총으로 활동하시고

몸소 당신의 순수한 자비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완덕에까지 우리를 이끄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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