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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구세군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경주, 인천, 부토리, 원동, 함흥, 영덕영문을 거쳐 1948년부터 서울 서대문영문을 담임하던 중 1950년 6.25 전쟁으로 서울이 점령당해 아수라장이 되고 교인들 중 피난 떠난 이들이 있었으나 다수 교인들이 남아 있었기에 영문과 교인들을 버려 두고 떠날 수 없어 여러사람들의 피난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보살 피던 중 1950년 8월 23일 오전 10시경 기독교 민주동맹회의(서울에서 자생한 기독교 반역도당의 위장단체)에 참석하라는 통지서를 가지고 온 2명의 청년들에게 주택에서 연행되어 당일 교계 지도자 50여명과 함께 공산군에게 인도된 후 납북되어 순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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