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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제11과 아합과 이세벨:권력의 남용

작성자sarmy|작성시간08.07.14|조회수684 목록 댓글 0
제11과 아합과 이세벨:권력의 남용
글쓴이 : 김영수 조회수 : 207.09.11 08:55 http://cafe.daum.net/sdabeijing/7K67/2주소 복사
9월 15일 안식일 (일몰: 오후 6시 41분)

기억절: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고후 6:14).

연구범위: 왕상 16:28-34, 17-18장.

학습 포인트: 아합과 이세벨은 서로에게 최악의 결과를 가져다 준 남편과 아내였다. 어떤 결혼이든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특히나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는 그 결과가 비참하다.

안식일 오후
성경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만큼 악한 부부가 있었다면 아마도 아합과 이세벨이 아닐까 싶다. 이들의 저주스런 결혼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의지가 약한 왕에다 권력에 굶주린 여인이 합세할 때 그 결과는 그다지 좋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 교과는 여러 면에서 권력과 권위에 관한 내용을 다룰 것인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권력과 권위의 남용이라 할 수 있다.
권력과 권위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것을 가진 자는 경건한 방법으로 그것을 사용할 거룩한 책임을 갖는다. 그렇지 않을 때 그들은 백성에게 뿐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범하게 된다. 이번 주에 보게 될 아합과 이세벨은 그들의 권력과 권위를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게 사용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에 상응한 결과를 거두고 말았다. 우리에게 주어진 권력이 무엇이든 간에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 모두는 귀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핵심본문: 고후 6:14

<학습 목표>
깨닫기: 권력과 권위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깨닫는다.
느끼기: 나봇에 대한 이세벨의 참소는 부당한 것이었음을 느낀다.
행하기: 다른 이들에게 정직히 대하고 동정심을 나타내기로 결심한다.

< 교과 개요 >
I.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왕상 16:30-33, 왕하 9:30-37)
A. 유약하고 이기적인 왕 아합, 이세벨의 간악한 딸 아달랴, 음란과 다산의 상징인 아스다롯 여신의 사제인 이세벨의 아버지 엣바알 등 이세벨의 가계는 뿌리부터 썩어 있었다. 이세벨은 우상숭배를 이스라엘에 도입했고, 아합은 그녀를 닮아갔다.
B. 이세벨의 전과(前過) 기록에는 착취, 대량학살, 살인, 우상숭배, 협박 등이 적혀 있다. 그녀는 강압적인 성격으로 남편을 지배했다. 배우자 중 한 사람이 상대편을 지배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II. 배후에서 권력을 행사한 이세벨(왕상 21:25)
A. 이세벨은 배후에서 아합을 조종하는 권력의 실세였다(왕상 21:25).
B. 시편 45:13에는 두로의 여왕이 금으로 수놓은 옷을 입었다고 했다.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이세벨을 지칭하는 것으로 믿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 옷이 얼마나 비싼 옷일지 상상해 보라. 아무리 값비싼 옷도 품성의 순결과는 비교될 수 없다.

III. 개들이 시체를 먹음(왕상 21:1-4, 왕하 9:30-37)
A.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열망하였다. 우리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마 5:6)이 되어야 할 것이다.
B. 이세벨이 죽었을 때 말들이 짓밟았고, 개들이 그 시체를 먹었다.

요점: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일요일(9월 9일) 아합

지난주에 우리는 다윗이 밧세바와 더불어 범했던 죄, 즉 자기 자신뿐 아니라 그의 나라까지 고통과 시련을 겪게 만들었던 죄에 대해 살펴보았다. 참으로 그의 연약한 성정이 그의 가계에 일어날 반역의 씨앗을 뿌렸으며, 한 세대 혹은 그 이후에 그 나라가 두 왕국으로 나뉘게 될 여건을 마련한 것이 분명했다.

1. 열왕기상 16:28-30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은 아합의 성품에 대해 무엇을 말해 줍니까?
왕상16:28-30오므리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사마리아에 장사되고 그 아들 아합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29 유다 왕 아사 제 삼십팔 년에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이스라엘 왕이 되니라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사마리아에서 이십이 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30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답: 그 이전에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더 악을 행하였다고 기록하였다. 그는 악을 본받는데 익숙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2. 아합 이전의 왕들이 행한 일들은 무엇이었습니까?(왕상 12:25-33, 13:33-34, 14:22-27, 15:26, 34, 16:15-20, 25). 이러한 사실들은 아합 왕의 통치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을 줍니까?
왕상12:25-33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지에 세겜을 건축하고 거기서 살며 또 거기서 나가서 부느엘을 건축하고 26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나라가 이제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28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29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숭배함이더라 31 저가 또 산당들을 짓고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32 팔월 곧 그 달 십오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단에 올라가되 벧엘에서 그와 같이 행하여 그 만든 송아지에게 제사를 드렸으며 그 지은 산당의 제사장은 벧엘에서 세웠더라 33 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팔월 십오일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단에 올라가서 분향하였더라.
왕상13:33,34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보통 백성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았으므로 34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지면에서 끊어져 멸망케 되니라.
왕상14:22-27 유다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열조의 행한 모든 일보다 뛰어나게 하여 그 범한 죄로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으니 23 이는 저희도 산 위에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목상을 세웠음이라 24 그 땅에 또 남색하는 자가 있었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국민의 모든 가증한 일을 무리가 본받아 행하였더라 25 르호보암 왕 제 오 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26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몰수히 빼앗고 또 솔로몬의 만든 금방패를 다 빼앗은지라 27 르호보암 왕이 그 대신 놋으로 방패를 만들어 왕궁문을 지키는 시위대 장관의 손에 맡기매.
왕상15:26,34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아비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한지라/ 34 바아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왕상16:15-20,25 유다 왕 아사 제 이십칠 년에 시므리가 디르사에서 칠 일 동안 왕이 되니라 때에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에게 속한 깁브돈을 향하여 진을 치고 있더니 16 진중 백성들이 시므리가 모반하여 왕을 죽였다는 말을 들은지라 그 날에 이스라엘의 무리가 진에서 군대 장관 오므리로 이스라엘 왕을 삼으매 17 오므리가 이에 이스라엘 무리를 거느리고 깁브돈에서부터 올라와서 디르사를 에워쌌더라 18 시므리가 성이 함락됨을 보고 왕궁 위소에 들어가서 왕궁에 불을 놓고 그 가운데서 죽었으니 19 이는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범죄함을 인함이라 저가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죄를 범하게 한 그 죄 중에 행하였더라 20 시므리의 남은 행위와 그 모반한 일이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오므리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

답: 여로보암은 벧엘과 단에 각각 금송아지를 만들고 백성으로 우상을 숭배하게 하였으며, 르호보암도 산 위에 푸른 나무 아래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목상을 세웠다. 그 외에 나답, 바아사, 시므리, 오므리 등 거의 모든 왕들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우상을 숭배했다.

“아사가 죽기 2년 전부터 아합이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시초부터 그의 통치는 이상스럽고 무서운 배도로 특징을 이루었다. 그의 아버지인 사마리아의 창건자 오므리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였으나 아합의 죄는 그보다 더 컸다. 아합은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었다(왕상 16:33, 31). 벧엘과 단에서 계속된 종교적 예배의 형태를 장려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아합은 여호와께 대한 예배를 버리고 바알 숭배를 선택함으로 대담하게 백성들을 가장 추악한 죄로 이끌었다”(선지자와 왕, 113-114).
우리는 이 왕들이 어떻게 그런 배교에 빠질 수 있을까하며 의아해 한다. 그런데 그것은 그들의 입장이 아닌 우리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우리가 그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했을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는 이 이야기를,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기가 얼마나 쉬운가에 대한 경고로 삼아야 한다.

아합이 저지른 죄악
“아합의 통치는 시초부터 이상스럽고 무서운 배도로 특징을 이루었다. 그의 아버지인 사마리아의 창건자 오므리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였으나 아합의 죄는 그보다 더 컸다. 아합은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고,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었다(왕상 16:33, 31). 아합은 벧엘과 단에서 계속된 종교적 예배를 장려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경배하는 대신 바알 숭배를 선택함으로 대담하게 백성들을 가장 추악한 우상숭배로 인도하였다”(선지자와 왕, 113).

<부가설명> 아합은 아비의 형제라는 뜻이다. 그 아버지 오므리의 악행을 그대로 이어받아 더 발전시킨 사실은 그 이름의 뜻에 걸맞은 것 같다.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여부를 선악의 표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역사적으론 오므리가 뛰어난 정치가로 인식되는 것 같다. 아마도 그런 정치적 수완을 발휘하여 그 아들을 시돈의 공주 이세벨과 정략결혼을 시킨 것 같다. 시돈은 두로와 함께 아마도 무역 강국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는 바알을 섬기는 나라였다. 이세벨의 아버지는 그 이름이 엣바알이다. 그것은 바알의 종이라는 뜻이다. 이세벨은 이스라엘을 바알의 나라로 변경시키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지참금처럼 대동하고 이스라엘로 시집을 왔다. 그는 아합을 완전히 장악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을 온 나라에 행하기 시작하였다. 권력을 업고 종교를 강요하는 것처럼 무서운 재앙은 없다. 아합은 바로 그 일을 열심히 수행한 최악의 왕이었다.

교훈: 아합은 그 전에 있던 이스라엘의 악한 왕들보다 더 악하여 온 나라를 우상숭배로 이끌었다. 우리는 그의 소행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아야겠다.

월요일(9월 10일) 권력을 가진 부부

아합이 범한 모든 악행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으나, 거기에 더하여 그는 사악한 이방 공주 이세벨과 결혼하였다(왕상 16:31).
아마도 이 결혼은 사랑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정략적인 성격이 강했다. 아합은 그의 22년간의 통치 기간을 대부분 벤하닷의 통치 아래 있던 아람과의 전쟁으로 보냈다. 이러한 전쟁은 아합으로 하여금 위협적인 주변 국가들과 동맹을 체결하게 만들었으며, 마침내 아스다롯의 사제였던 시돈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의 결혼으로까지 이어졌다. 얼마 후 아합의 딸 아달랴는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인 여호람과 결혼함으로 동맹을 견고히 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1. 성경은 아합이 이세벨과 결혼한 사실을 언급한 직후에 그가 무슨 일을 시작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까?(왕상 16:31-33).
왕상16:31-33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32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33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

답: 이세벨과 결혼한 후에 바알을 섬기고 바알의 사당을 건축하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우상 숭배에 몰입하여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였다.

아합은 이미 죄와 타협하는 일로 치닫고 있었으므로 이방인 아내가 조금만 부추겨도 바알을 숭배하고, 더 나아가서 온 이스라엘에 바알 숭배를 퍼뜨렸을 것이 분명하다. 이세벨이 이렇게 한 것은 바알을 열렬히 신봉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권력을 장악하려는 목적 때문이었을까? 결국 여호와를 따르는 자들이 세력을 장악하게 되었다면 그녀는 왕후가 되기는커녕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아마도 권력을 유지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신을 추앙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권력을 장악하는 수단으로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을 것이다.

2. 이세벨이 참 하나님 경배를 제해 버리고 바알 숭배로 대체하려 했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왕상 18:4, 13, 19:1-2, 21:25).
왕상18:4,13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일백 인을 가져 오십 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었더라/ 13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일백 인을 오십 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께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
왕상19:1,2 아합이 엘리야의 무릇 행한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인 것을 이세벨에게 고하니 2 이세벨이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왕상21:25 예로부터 아합과 같이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자가 없음은 저가 그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되었음이라.

답: 이세벨은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하려고 시도하였으며(왕상, 18:4, 13), 남편 아합 왕을 충동하여(왕상 21:25) 여호와의 선지자들과 엘리야를 죽이려 하였다(왕상 19:1-2).

이세벨에 의해 꼴지어진 아합의 품성
“아합은 도덕적 능력이 약했다. 단호한 성격과 적극적인 기질을 가진 우상숭배하는 자와의 결혼이 아합 자신과 국가에 커다란 재난을 가져왔다. 원칙도 없고 의를 행하는 데 대해 높은 표준도 갖지 못한 그의 성품은 쉽게 이세벨의 단호한 정신에 의해 꼴지어졌다”(선지자와 왕, 115).

<부가설명> 나는 위에서 오므리가 아합을 이세벨과 결혼시키는 일을 주선하지 않았나 생각하였다. 성경의 기록은 아합 자신이 이세벨과 결혼한 것 같이 보인다. 본교회 주석은 오므리가 시돈의 우상을 끌어들인 일을 주창하였다고 기록하였다. 미가서에 기록이 이 사실을 인정하게 한다. “너희가 오므리의 율례와 아합 집의 모든 행위를 지키고 그들의 꾀를 좇으니 이는 나로 너희를 황무케 하며 그 거민으로 사람의 치솟거리를 만들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내 백성의 수욕을 담당하리라”(미6:16). 미가는 이스라엘이 오므리의 율례를 지킨다고 하였다. 이것은 오므리가 바알 숭배를 법으로 공포한 사실을 보여준다. 그것을 따라서 아합은 더욱 바알 숭배를 주창하였을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미루어볼 때에 아합의 결혼은 오므리의 주선이 아니었을까 생각하였다. 성경은 아합이 이세벨과 결혼 사실만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그 결혼의 때에 대하여서는 성경 자체의 기록으로는 확실하지 않다. 오므리는 법을 만들과 아합은 강력하게 그 법을 시행하는데 이세벨의 역할이 지대한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좇아 가정을 이루고 하나님 뜻대로 가정을 운영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교훈: 아합이 이세벨과 결혼한 것은 물론 정략적인 것이었지만, 이세벨로 하여금 온 나라를 바알 숭배로 끌어가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다.

화요일(9월 11일) 이세벨과 엘리야

열왕기상 18장에 나오는 유명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엘리야와 이세벨 사이에 벌어진 격렬한 투쟁을 본다. 이세벨은 왕후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쥐고 있었다. 그녀는 종교적인 열정을 가지고 두로와 시돈의 왕이요 바알의 사제인 그녀의 아버지의 일을 이스라엘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아합은 이세벨을 위해 바알의 신당을 지어주었으며, 거기서 일할 사제들을 양성하는 학교도 세운 것이 분명하다. 이세벨은 개인적으로 이스라엘에서 바알 종교를 관장했으며, 그것을 국교로 만들어버렸다.

1. 이세벨은 어떤 방식으로 자기 종교의 선지자들을 후원하였습니까?(참조 왕상 18:19).
왕상18:19그런즉 보내어 온 이스라엘과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인을 갈멜 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답: 이세벨은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인을 자기 상(床)에서 먹게 하였다.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이 이세벨의 상에서 먹었다. 그들은 이세벨의 남편의 승인 하에 마음대로 왕궁을 드나들 수 있었다. 그녀는 자기 마음대로 왕을 좌지우지했던 것이 분명하다.
엘리야는 이처럼 만연한 배교에 대항하여 여호와 경배하는 일을 회복하기 위해 투쟁을 계속해 나갔다. 참으로 적절하게도, 그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는 나의 하나님이시다”였다. 엘리야가 아합 왕의 면전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없이는 이 땅에 우로(雨露)가 있지 않으리라”(왕상 17:1)고 선언했을 때 종교적 충돌은 극에 달하였다. 그것은 비(雨)의 신이요 다산(多産)의 신인 바알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었다. 아합은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자”(왕상 18:17)라고 했으나 엘리야는 왕이 그러하다고 되받았다. 가뭄을 일으키게 한 원인은 엘리야가 아니라, 여호와 경배하기를 떠난 아합에게 있었다(16-18절). 후에 갈멜산 대결에서(이세벨은 없었고, 아합은 임석했음) 엘리야는 바알의 무력함을 폭로했으며 비를 주관하시는 여호와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아합은 바알과 마찬가지로 무력했다. 그는 수백 명의 바알 사제들이 살육당하는 장면을 힘없이 보고만 있어야 했다. 왕궁으로 돌아온 아합은 이세벨에게 바알 선지자들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설명해야만 했다.

갈멜산 사건으로 격분한 이세벨
“왕은 성안으로 들어가 곧 궁궐에 도착하여 그 아내에게 그날의 놀라운 사건들과 여호와께서 참 하나님이시고 엘리야가 하나님의 택하신 사자임을 이스라엘에게 밝힌 하나님의 능력의 놀라운 계시에 대하여 말하였다. 아합이 왕후에게 우상교의 선지자들을 죽인 일에 대하여 말할 때에 냉혹하고 회개할 줄 모르는 이세벨은 격분하였다. 그는 갈멜산에서 일어난 사건을 하나님의 지배하시는 섭리로 인정하기를 거절하고 여전히 반항하는 태도로 대담하게도 엘리야를 죽여야 한다고 선언하였다”(선지자와 왕, 159).

<부가설명> 바알은 비와 번개의 신이다. 다시 말하면 바알 숭배자들은 바알을 농사를 주관하며 우로를 주관하는 신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엘리야가 비로 승부를 건 것이다. 3년 반이 되도록 바알은 무력함이 폭로되었다. 이제 엘리야는 불로 응답하는 신이 참 신이라고 제안한다. 왜냐하면 바알을 번개를 주장하는 신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알은 결코 불을 내리지 못했다. 비와 불을 주장하시는 분은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증거한 것이다. 거짓을 믿어온 자들은 그것이 거짓임이 완전히 폭로되어도 자기의 믿음을 회개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런 성질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도 성경으로 그들의 잘못된 것을 분명히 제시해도 고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처럼 우리교회 안에서도 자기의 주장이 성경과 예언의 신에 검증하여 잘못되었음이 확실해도 고치기를 원치 않는다. 바알 숭배자들이 그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지금 이 교회 안에도 결국에는 이세벨과 같은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말하면 억울한 말일까.

교훈: 엘리야와 이세벨 사이에 벌어진 대 격전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다. 비와 다산의 신이라 불리던 바알은 아무것도 아님이 드러났다.

수요일(9월 12일) 나봇의 포도원

1. 아합의 통치 아래서 형편은 점점 악화되어 갔습니다. 나봇의 포도원 이야기는 우리에게 아합의 성격적 특성에 대해 어떤 단서를 제공해 줍니까? 열왕기상 21:1-4을 읽으십시오.
왕상21:1-4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 왕 아합의 궁에서 가깝더니 2 아합이 나봇에게 일러 가로되 네 포도원이 내 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나물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합의하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3 나봇이 아합에게 말하되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 하니 4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아합에게 대답하여 이르기를 내 조상의 유업을 왕께 줄 수 없다 함을 인하여 아합이 근심하고 답답하여 궁으로 돌아와서 침상에 누워 얼굴을 돌이키고 식사를 아니하니.

답: 아합은 자기 궁에서 가까운 나봇의 포도원을 팔기를 요구했으나 그것은 조상의 유업을 팔거나 남에게 줄 수 없는 이스라엘의 규례를 넘어선 탐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합의 성격적 특성은 소심하고 유약한 편이었던 것 같다. 권력을 가졌음에도 강하게 그것을 행사하지 못하였다.

열왕기상 21:5-7에서 우리는 아합의 태도에 대한 이세벨의 반응을 볼 수 있다. 이 얼마나 대조적인가! 그녀가 온 나라의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세벨은 남편이 풀이 죽어 거의 포기하려 할 때에도 그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음모를 꾸몄던 것이다. 그녀는 “이래서야 당신이 이스라엘의 왕이라 할 수 있느냐?”는 식이었다. 이세벨에게는 권력이 중요했으며, 남편이 자신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끊임없이 조르고 또 졸랐다.

2. 나머지 이야기를 다 읽어 보십시오(왕상 21:8-16). 이세벨은 자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떻게 했습니까? 그녀는 어떤 간교한 꾀를 냈습니까? 여기서 그녀의 어떤 특성을 알 수 있습니까?
왕상21:8-16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쳐서 그 성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인들에게 보내니 9 그 편지 사연에 이르기를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힌 후에 10 비류 두 사람을 그 앞에 마주 앉히고 저에게 대하여 증거하기를 네가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게 하고 곧 저를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라 하였더라 11 그 성 사람 곧 그 성에 사는 장로와 귀인들이 이세벨의 분부 곧 저가 자기들에게 보낸 편지에 쓴 대로 하여 12 금식을 선포하고 나봇을 백성 가운데 높이 앉히매 13 때에 비류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거를 지어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저를 성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죽이고 14 이세벨에게 통보하기를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나이다 하니 15 이세벨이 나봇이 돌에 맞아 죽었다 함을 듣고 아합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그 이스르엘 사람 나봇이 돈으로 바꾸어 주기를 싫어하던 포도원을 취하소서 나봇이 살아 있지 아니하고 죽었나이다 16 아합이 나봇의 죽었다 함을 듣고 곧 일어나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취하러 그리로 내려갔더라.

답: 교활한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그를 거짓 고소하고, 매우 두려운 죄악이 발생했음을 암시하는 금식 선포를 추진하며,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나봇이 돌에 맞아 죽게 하였다.
그녀는 교활하였고,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이세벨은 이스라엘의 규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역이용할 수 있었다. 그녀는 매우 두려운 죄악이 발생했음을 뜻하는 금식을 선포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이 아는 한 사형에 처해질 죄(레 24:16)로 나봇이 고발되었음을 고하였다. 그런 다음에 그녀는 이스라엘의 율법의 요구에 따라 두 증인(민 35:30, 신 17:6)을 소환하도록 계획하였다. 이세벨은 자신이 행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었으며, 비록 여호와의 종교를 따르지는 않았으나 자기 유익을 위해 이스라엘의 규례를 이용하는 법을 알고 있었다.
열왕기상 21장의 나머지 부분(17-29절)에서 우리는, 비록 이세벨이 이 범죄의 선동자였으나 여호와께서 그 책임을 아합에게도 물으셨음을 보게 된다. 아합은 일이 어떻게 진행되어 가는지를 알았으나 그것을 멈추기 위해 아무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이 범죄에 대해 그 아내와 마찬가지로 책임이 있었다.

나봇의 포도원
“나봇은 그 포도원이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것이므로 매우 소중히 여겨 내놓기를 거절하였다. 그는 ‘내 열조의 유업을 왕에게 주기를 여호와께서 금하실지로다’고 말하였다. 레위인의 법에 의하면 어떤 토지도 매매나 교환으로 영구히 양도할 수 없었으며 모든 이스라엘 자손들은 각자 ‘조상지파의 기업을 지켜’야만 하였다.
나봇이 거절하자 욕심 많은 군주는 몸져눕게 되었다. … 아합은 그의 아내가 어떤 방법을 써서 바라는 목적을 성취시킬 지에 대해 상관하지 않았다. 이세벨은 즉시 그의 악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손을 썼다”(선지자와 왕, 205).

<부가설명> 권력을 가진 자가 이욕을 위하여 횡포를 부리면 민초들은 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은 꼭 필요한 것이다. 아합은 자기의 욕심을 아내를 통하여 이루도록 그 악행을 방치하였다. 아니 부추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세벨이 무슨 짓을 하는지 왕이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과를 자기가 취할 것만 생각하였다. 우리는 때때로 자기의 소욕이 타인의 손기를 거쳐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그 책임을 자기가 지지 않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의 동기를 아신다. 나봇에게 저지른 악에 대한 가장 핵심적 책임은 아합에 추궁하셨다.

교훈: 나봇의 포도원 사건에서 이세벨의 교활함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아합은 이세벨의 범죄를 저지하려 하지 않고 방조하였으므로 동일한 죄가 있다.

목요일(9월 13일) 마침내 끝이 이르러옴

이스라엘 백성으로 바알을 숭배하고 이와 연관된 음란한 일들을 행하게 한 아합과 이세벨의 계획적인 행동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다. 여기에 더하여 그들은 신성한 규례를 빙자하여 무고한 나봇을 살해하는 비열한 죄를 범하였다. 의지가 약한 왕과 권력에 굶주린 파렴치하고 교활한 여인과의 결혼은 그야말로 최악의 결합이었다. 이스라엘에 큰 불행이 닥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1. 아합과 이세벨은 궁극적으로 어떻게 종국을 맞이했습니까?(왕상 22:29-40, 왕하 9:30-37).
왕상22:29-40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 여호사밧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30 이스라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 왕이 변장하고 군중으로 들어가니라 31 아람 왕이 그 병거의 장관 삼십이 인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나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 32 병거의 장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이르되 이가 필연 이스라엘 왕이라 하고 돌이켜 저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지르는지라 33 병거의 장관들이 저가 이스라엘 왕이 아님을 보고 쫓기를 그치고 돌이켰더라 34 한 사람이 우연히 활을 당기어 이스라엘 왕의 갑옷 솔기를 쏜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이켜 나로 군중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35 이 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36 해가 질 즈음에 군중에서 외치는 소리 있어 가로되 각기 성읍으로, 각기 본향으로 하더라 37 왕이 이미 죽으매 그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거기 장사하니라 38 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 씻으매 개들이 그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의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의 목욕하는 곳이었더라 39 아합의 남은 행적과 무룻 그 행한 일과 그 건축한 상아궁과 그 건축한 모든 성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40 아합이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아들 아하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왕하9:30-37 예후가 이스르엘에 이르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31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가로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32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을 향하고 가로되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니 두어 내시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33 가로되 저를 내려 던지라 하니 내려 던지매 그 피가 담과 말에게 뛰더라 예후가 그 시체를 밟으니라 34 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가로되 가서 이 저주받은 계집을 찾아 장사하라 저는 왕의 딸이니라 하매 35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손바닥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 36 돌아와서 고한대 예후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로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고기를 먹을지라 37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 면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답: 아합이 전사할 때 병거에 흘린 피를 개들이 핥았으며, 이세벨의 시체를 개들이 먹었다.

이 혐오스런 결합의 파괴적인 영향력은 그들 자신에게만 미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악한 감화는 그 다음 세대에게까지 전수되었다.

2. 열왕기상 22:51-53을 읽으십시오. 이 구절들은 이 두 사람의 계속적인 악한 감화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왕상22:51-53 유다 왕 여호사밧 제 십칠 년에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 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52 저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아비의 길과 그 어미의 길과 이스라엘로 범죄케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53 바알을 섬겨 숭배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동하기를 그 아비의 온갖 행위같이 하였더라.

답: 아들도 부모의 행동을 답습하였다.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그의 아버지의 치세 동안에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놀라운 행사를 목격하였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율법의 요구를 파기하는 자들을 다루시는 방법으로 배도한 이스라엘에게 내리신 무서운 형벌의 증거들을 보았었다. 아하시야는 이 무서운 현실이 쓸데없는 우화에 불과한 것처럼 행동하였다. 그는 여호와 앞에 그의 마음을 겸비케 하는 대신에 바알을 따르고 마침내 그 위에 이 같은 가장 대담하고 불경스런 행위를 감행하였다. 반역적이고 회개하기를 싫어하던 아하시야는 ‘엘리야의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죽었다”(선지자와 왕, 209-210).

이세벨의 지속적인 감화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아들이 없었으므로 그의 아우 여호람이 후계자가 되어 십이년 동안 이스라엘 열 지파를 통치하였다. 이 기간에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모친 이세벨은 여전히 생존하여 계속 국사에 악한 감화를 끼쳤다. 우상숭배의 관습은 아직도 많이 행해지고 있었다.
여호람이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동안 유다의 여호사밧이 죽고 역시 여호람이라고 명명된 여호사밧의 아들이 보좌에 올랐다. 유다의 여호람은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 난 딸과 결혼함으로 이스라엘 나라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고 그가 통치하는 동안 ‘아합의 집과 같이’ 바알을 따랐다”(선지자와 왕, 212-213).

<부가설명> 영향력이 큰 사람의 잘못은 더 많은 잘못의 기초를 놓는다. 솔로몬 같은 지혜 있는 왕, 그 부귀와 권세를 누린 왕이 만년에 우상숭배에 빠지자 온 이스라엘에 우상숭배의 문을 열었다. 솔로몬 자신은 회개했을지라도 그가 남긴 악한 영향력은 이스라엘 국민의 두 왕국이 망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한 나라의 지도자의 잘못은 잘못하지 않은 국민들까지 망하게 한다. 그처럼 교회 지도자의 잘못은 온 교회를 망하게 한다. 부모가 잘못하면 자녀들을 망하게 한다. 솔로몬의 우상숭배를 시작으로 이스라엘 남북조가 다 우상숭배에 빠졌다. 유다와 이스라엘 왕들은 솔로몬보다 훨씬 더 발전적으로 우상숭배를 하였다. 현대 엘리야로서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성경이 지시하는 바른길로만 신앙생활을 이루어야 한다. 특히 가정을 진리 안에 세워야 하고 부모는 바른 신앙으로 가정을 이끌어야 한다.

교훈: 아합과 이세벨은 둘 다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개들이 그들의 시체를 핥았다고 성경은 기록한다. 그들의 죄악의 감화는 다음 세대에까지 미쳤다.

금요일(9월 14일) 더 깊은 연구를 위해

독서 과제: 재림신도의 가정, ‘겸손하게 권위를 행사함’(215).

“아합은 도덕적 능력이 약했다. 단호한 성격과 적극적인 기질을 가진 우상숭배자와의 결혼이 아합 자신과 국가에 커다란 재난을 가져왔다. 원칙도 없고 의를 행하는 데에 있어 높은 표준도 갖지 못한 그의 성품은 쉽게 이세벨의 단호한 정신에 의해 꼴 지어졌다. 그의 이기적 성질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는 물론 선민의 수호자요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의무도 깨달을 수 없었다”(선지자와 왕, 115).

핵심적인 토의를 위해
1. 이번 주에 우리는 권력의 사용에 대해 교훈을 얻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권력은 축복이 될 수 있으며, 또한 그것은 어떤 면에서 위험할 수 있습니다. 종교라는 범주 안에서 권력을 사용할 때 어떤 위험이 따를 수 있습니까? 신앙적인 문제에 있어 권력을 남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 종교적인 이유를 달아서 행하는 잘못된 권력의 사용은 가장 악한 결과를 만든다. 왜냐하면 그것을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죄책감이 없다. 지금 무슬림들의 인간폭탄 등이 그런 예증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르게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달아 수행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권력을 남용할 수 없다.

2. 이번 주에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영향력에 관한 것일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한 영향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개인적으로 혹은 교회 안에서 남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세상을 향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 말씀대로 살되 온유와 두려움을 행하며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실천하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3. 이번 주 교과를 통해 새롭게 깨달은 영적 교훈이나, 한 주일을 살아가면서 꼭 실천하고 싶은 내용은 무엇입니까?
* 결혼은 진리 안에서 올바르게, 신앙은 섬김으로 말씀이 실천되게 해야 한다.

요약: 아합은 처음부터 악하기도 하였지만, 이세벨의 영향으로 더욱 악하게 되고 말았다. 이들 부부만큼 권력을 남용한 이들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유다를 파멸에서 건지시기 위해 개입하지 않으시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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