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사자(고후 5:20)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서론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아주 분명하게 말합니다. 우리는 단순히 교회에만 출석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된 사람입니다.
사신을 ‘Ambassador’라고 합니다. ‘사자, 사신, 대사’ 등으로 번역합니다.
지난 목요일 6월 11일, Facebook에 사진 한 장이 올라왔습니다. 시카고 구세군 사관학교에서 임관하기 바로 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37년 전, 1989년 6월 11일에 구세군 사관으로 임관했습니다. 구세군 사관학교는 기수별로 학기명이 있습니다. 저의 학기명은 ‘그리스도의 사자’(Ambassadors for Christ)입니다. 사진 속에는 하나님 나라에 간 분들도 있고, 은퇴하여 사역의 일선에서 물러난 분들도 있으며, 지금도 현역으로 사역의 현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진을 보고 짧은 글을 썼습니다. 글의 결론은 이렇게 맺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수많은 계절을 지나오며 눈물과 기도, 헌신과 은혜로 빚어진 사역자들이 되었습니다. 세월은 우리를 변화시켰지만 단 한 가지, 변하지 않은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그리스도의 사자’로 부름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자(Ambassadors for Christ)
우리의 이름은 우리가 걸어온 길이었고, 우리가 붙들고 살아온 정체성이었으며, 앞으로도 우리를 이끌어갈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누구입니까?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사자’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명은 위대합니다.
우리는 하늘의 메시지를 땅에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고후 5장 20절의 말씀을 의지하여 '사신, 권면, 화목'이란 단어를 중심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된 사람입니다
본문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말은 ‘대신하여’입니다. 사신이란 왕을 대신하여 보냄받은 사람입니다. 사신은 자신을 보낸 왕의 뜻과 마음과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입니다. 사신은 자기 말을 전하지 않습니다. 사신은 자기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사신은 자기 감정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높이기 위해 살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사신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언어를 사용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지난 2월에 한국에서 가나 대사를 인터뷰했습니다. 그는 한국 선교사 자녀입니다. 이분들을 MK라고 합니다. 그는 가나에 교육을 받고 사역과 사업을 하다가 가나 대통령의 요청을 받고 한국에 온 '최고조 대사'입니다. 대사관을 방문했을 때 그는 가나의 옷을 입었고, 사무실에는 가나 대통령인 마하마의 사진이 걸려 있었고, 책상에는 가나 초코렛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체성을 ‘Born in Korea, made in Ghana’라고 했습니다. 그는 한국인이지만 가나 대통령을 대신하여 한국에 왔습니다. 그는 가나와 한국의 브리지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28장에 보면 거짓 선지자 하나냐가 등장합니다. 그는 바벨론의 멍에가 곧 꺾이고, 포로들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백성들이 듣기에는 얼마나 좋은 말이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냐는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뜻처럼 포장합니다. 하나냐는 자기 욕망을 하나님의 소원인 것처럼 말합니다(렘 28:15).
선지자는 히브리어로 ‘나비’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사람 앞에 선 사람입니다. 선지자는 자기 생각을 전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전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시대의 분위기에 맞는 말을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전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진짜 선지자는 전하기 전에 먼저 들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신은 먼저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부름 받았는가?
베드로전서 2:9절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오늘 우리가 가정에서, 교회에서, 직장에서, 이웃 가운데 살아갈 때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신이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있는 그 자리가 곧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선교지입니다. 내가 만나는 그 사람이 곧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영혼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신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언어를 사용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 우연히 던져진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보냄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의 만남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우리의 섬김에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2.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사람들을 권면하십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라고 말합니다.
“
본문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라고 말합니다. 권면이란 단순히 충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면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세우는 말입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회복시키기 위해 말하는 것입니다. 권면하시는 말은 더욱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태도는 더욱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우리의 말만 듣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함께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교회 직분이 있습니다. ‘권사’입니다. 성경에 ‘권사’라는 단어는 없지만, 교회의 여성 지도자가 권면 사역의 전통 속에서 발전했습니다. 권사는 ‘권면을 삶으로 실천하는 영적 지도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서 사람들을 권면하십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로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입술을 사용하십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다”(잠 18:21)고 했습니다.
민수기 13장에 12명의 정탐꾼이 가데스 바네아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10명은 “우리는 저들의 비해서 메뚜기”라고 보고하여 듣는 사람들을 절망시켰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고 말했습니다. 민수기 14장 28절에 하나님은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리라”고 했습니다.
"유머치료 교실에 오시는 80대 할머니가 늘 행복한 얼굴로 마냥 싱글벙글하셨다. 참 부럽기도 하고 또 그 비결이 궁금해서 말을 붙여 보았다. “할머니! 요즘 건강하시죠? 그러자 할머니께서 씩씩하게 대답하신다. “응~ 아주아주 건강해. 말기 위암 빼고는 다 좋아.”
암에 걸렸을지라도 ‘고질병’이라 생각하는 사람에겐 암 치유율은 38%에 그치지만, 점 하나 붙여서 ‘고칠병’이라고 믿는 사람에겐 암 치유율은 70%까지 올라간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잠언 16:24
선한 말은 약과 같습니다. 격려의 말은 낙심한 사람에게 힘을 줍니다. 위로의 말은 상처 입은 사람을 일으킵니다. 감사의 말은 관계를 따뜻하게 만듭니다. 축복의 말은 미래를 향한 믿음을 심습니다. 사람은 음식만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말도 먹고 삽니다. 사랑의 말을 먹으면 영혼이 자라고, 비난의 말을 먹으면 마음이 병듭니다. 사람은 긍정적인 말의 씨를 뿌리면 긍정의 열매를 거두고, 부정적인 말의 씨를 뿌리면 부정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지난주 유퀴즈에 '젠슨 황'이란 사람이 나왔습니다. NVIDIA 창업(1993)자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의 인터뷰를 보고 많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지금 만나는 사람에 집중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예우를 했습니다. 그가 사용하는 단어는 평범하지만 분명한 철학이 있고, 긍정적이며 창조적이고 건설적입니다. 어떤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하느냐는 질문에 '인간성'을 본다고 했습니다. AI 시대에 기술과 실력은 쉽게 따라갈 수 있지만 인간성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사람을 배려하고 인정하며, 다른 사람의 성공에 박수를 쳐 줄 수 있는 사람을 뽑는다고 합니다. MC인 유재석이 다음 일정이 있어 바쁠 것 같다고 하자, 그는 팔목을 걷으며 "나는 시계가 없습니다"라며 유재석에게 여유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젠슨 황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잘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는 기업보다 더 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3. 우리의 메시지는 하나님과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마지막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사신의 핵심 메시지는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라.”입니다. 화목이란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관계적인 존재입니다. 위로는 나와 하나님과 수직적 관계, 옆으로는 나와 이웃의 수평적 관계, 안으로는 나와 나의 내면적 관계입니다. 수직적인 하나님의 관계가 깨어지면, 수평적인 이웃과의 관계도 깨어지고, 내적인 나와의 관계도 깨어집니다. 세상의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것이고, 모든 문제는 하나님을 떠나면서 발생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전 3:11).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육으로 영의 갈증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중심은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화목의 길을 여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놓인 죄의 담을 허무신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생명이신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은 죽음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탄과 마귀의 의미는 조금 다릅니다. 사탄은 ‘대적하는 자, 고소하는 자’라는 뜻으로, 하나님의 뜻과 인간의 생명을 방해하는 영적 대적자를 의미합니다. 마귀는 ‘디아볼로스’로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존재’, ‘이간질하는 존재’, ‘거짓을 던져 관계를 깨뜨리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이고, 마귀는 관계를 파괴하는 영적 존재입니다. 공동체에서 이간질하여 관계를 깨뜨리는 사람들은 마귀 같은 존재입니다.
마태복음 12장에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자 바리새인들은 “저건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의 힘을 빌린 것이다”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이 사탄을 쫓아내면 그 나라가 서겠느냐” 즉, 악한 영들도 자기들끼리는 싸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싸우면 자기 왕국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사탄도 자기 왕국을 지키려고 내부에서는 싸우지 않는데, 만약 우리가 서로 싸우면 사탄보다 더 어리석은 일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사탄보다 나쁜 놈입니다.
오늘 우리가 세상에 전해야 할 메시지도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세상은 갈등으로 가득합니다. 나라와 나라가 갈등하고, 세대와 세대가 갈등하고, 가정과 가정이 갈등하고, 사람의 마음속에서도 끊임없는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모든 화목의 시작은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은 자신과도 화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은 이웃과도 화목의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은 세상 속에서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사명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초대해야 합니다. 정죄의 손가락이 아니라 화목의 손길로 초대해야 합니다. 차가운 판단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으로 초대해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삶을 통해 세상에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말씀을 마칩니다.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세상은 여전히 화목의 복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처를 입은 영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길을 잃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신입니다. 우리의 사명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다 같이 손을 들고 여러분이 전도해야 할 분을 생각하며 크게 외칩시다. “하나님과 화목하십시오”
기도
은혜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불러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화목'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은혜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의 말에 사랑이 있게 하시고,
우리의 섬김에 진실함이 있게 하시며,
우리의 눈물에 하나님의 마음이 담기게 하옵소서.
정죄가 아니라 사랑으로,
교만이 아니라 겸손으로,
명령이 아니라 권면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삶의 자리마다 화목의 은혜가 흐르게 하시고,
우리를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