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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관의 좌충우돌

신앙의 우선순위를 리셋하자

작성자김환기|작성시간26.06.21|조회수35 목록 댓글 0

 

 

 

신앙의 우선순위를 리셋하자(요 15:4-5)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하면서도 주님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사역은 많아졌지만 사랑은 식어지고,

열매를 기대하지만 주님 안에 거함이 없고,

주님이 중심이라고 하지만 자기가 중심된 삶을 삽니다. 

 

우리의 신앙이 건강하려면 우선순위가 분명해야 합니다.

 

오늘은 요한복음 15:4-5절의 말씀을 의지해서 ‘신앙의 우선순위를 리셋하자’라는 제목으로 피차간에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사역보다 사랑입니다.

 

사랑이 사역의 뿌리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사역은 겉으로는 바빠 보이고, 열심 있어 보이고, 헌신적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 사랑이 없으면 어느 순간 사역은 무거운 짐이 됩니다. 기쁨으로 시작한 일이 의무가 되고, 감사로 시작한 섬김이 불평이 되며, 은혜로 시작한 헌신이 자기 의가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말합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와 같다고 했습니다.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심지어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를 깊이 돌아보게 합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훌륭한 사역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칭찬받는 봉사일 수 있습니다. 누가 보아도 헌신적인 삶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중심을 보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했는지보다,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를 보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얼마나 큰 일을 했는지보다, 그 안에 사랑이 있었는지를 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오셨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는 실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큰소리쳤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자신감은 무너졌고, 사명도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런 베드로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베드로에게 이렇게 묻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야, 앞으로는 더 열심히 할 수 있겠느냐?” “베드로야, 다시는 실패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느냐?” “베드로야, 네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보여 줄 수 있겠느냐?” 주님이 물으신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이 사역의 시작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가. 주님을 향한 첫사랑이 아직 살아 있는가. 주님의 마음이 내 마음의 중심에 있는가. 

우리가 주님을 처음 믿을 때 그 첫사랑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베드로의 사랑한다는 고백을 듣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 양을 먹이라.”

순서가 중요합니다. 먼저 사랑입니다. 그 다음이 사역입니다.

먼저 주님을 향한 사랑이 있고, 그 사랑에서 양을 먹이는 사역이 흘러나옵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사역이 사랑을 대신해서는 안 됩니다. 분주함이 친밀함을 빼앗아 가서는 안 됩니다. 봉사가 예배를 밀어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 앞에서 우리의 마음이 다시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사역이 사랑에서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섬김이 사랑으로 따뜻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말과 손길과 눈물이 주님의 사랑을 담아내기를 바랍니다.

 

사역보다 사랑입니다. 사랑이 사역의 뿌리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 열매보다 거함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에서 자신을 포도나무라고 하시고 우리를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는 매우 단순하지만 깊습니다. 가지에 열매가 맺지만, 가지가 열매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나무입니다. 가지가 할 일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면 생명이 흐릅니다. 뿌리에서 올라오는 수분과 영양분이 가지로 흘러갑니다. 그러면 때가 되어 잎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열매는 우리의 노력만으로 맺히는 것이 아닙니다. 열매는 생명의 결과입니다. 성령의 열매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인간의 의지력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 거할 때 맺히는 열매입니다.

 

우리는 때로 열매를 너무 빨리 보려고 합니다. 빨리 변화되기를 원하고, 빨리 성장하기를 원하고, 빨리 결과가 나타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주님 안에 깊이 뿌리내리게 하십니다. 깊은 뿌리 없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뿌리가 약하면 열매가 많아질수록 가지가 꺾입니다. 건물의 높이는 건물의 깊이에 달려 있습니다.

 

조장(助長)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도울 조’, ‘자랄 장’을 씁니다. 빨리 자라게 하려고 순을 억지로 끌어올리는 뜻입니다. 조장(助長)은 송나라 농부가 벼를 빨리 키우려고 순을 잡아당겼다가 모두 죽인 고사에서 유래한 말로, 조급함이 오히려 해가 된다는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조장하지 마”라는 말은 “억지로 끌어올려서 일을 망치지 말라”란 뜻입니다.

 

신앙의 열매는 조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주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기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예배 안에 거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 주님과의 관계가 깊어질 때 우리의 삶은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보다 거함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이 모든 열매의 시작입니다.

 

3. 자기보다 주님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내가 나의 주인이 되어 내 마음대로 살았지만,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난 후 예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신앙은 중심이 이동된 것이고, 주인이 바뀐 것입니다. 내 뜻이 먼저였던 삶에서 주님의 뜻이 먼저 되는 삶입니다. 내 이름을 드러내고 싶던 삶에서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으로 옮겨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고백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그래서 바울은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빌1:21)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자기부정의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힐 때에 우리의 옛사람은 죽었고, 그가 부활할 때 우리도 새사람으로 되었습니다. 우리의 육의 사람은 죽고 영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겉사람은 죽고 속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제자의 길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을 미워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자기 존재를 부정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중심성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내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미신과 기독교’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미신의 목적은 ‘자기가 잘 되는 것’입니다. 건강, 재물, 안전, 성공 등 복을 얻기 위함입니다. 기독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기독교의 신앙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에, 그 은혜에 응답하며 사는 것입니다.

 

미신적 신앙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신적 신앙이란 목적이 되어야 할 예수가 자신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된 신앙입니다. 기복주의 신앙은 하나님을 경배의 대상이 아니라, 복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는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기복주의 신앙은 하나님의 영광이 아니라 자기의 복을 위한 신앙입니다. 기복신앙은 미신적 신앙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107개의 문답으로 구성된, 개혁신앙의 핵심을 가장 간결하고 명확하게 정리한 신앙 교육서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번 질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이다.”입니다. 좀 더 쉽게 질문을 하면 ‘인간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라고 묻는 것일 겁니다.

 

대답은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입니다. 두 문장을 합치면, '사람의 제일 목적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을 기뻐하며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바라보며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 이 고백은 참으로 위대한 고백입니다. 그는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었고, 참된 주인공은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성공이 무엇입니까? 내가 잘되는 것입니까? 주님이 잘 되는 것입니까? 내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까? 주님의 나라를 세우는 것입니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성경 전체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사도행전에는 핵심 단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성령과 교회입니다. 성령이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고 확장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마지막 장 마지막 절인 28장 31절에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전파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창세기 1–2장과 요한계시록 21–22장은 성경의 처음과 마지막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 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은 하나님께서 에덴의 창조 질서를 세우시는 장면이고, 계시록 21–22장은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곧 새 에덴을 완성하시는 장면입니다. 새 에덴은 어떤 곳입니까? 하나님의 통치가 온전히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입니다.

 

자기보다 주님입니다. 기복주의 신앙은 미신적 신앙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오늘 우리는 세 가지 고백을 붙들었습니다.

 

사역보다 사랑입니다.

열매보다 거함입니다.

자기보다 주님입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할 때 사역은 생명을 얻습니다.

주님 안에 거할 때 열매는 맺힙니다. 자기보다 주님을 높일 때 우리의 삶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신앙의 우선순위를 리셋해야 합니다.

 

사역보다 먼저 주님을 사랑하겠습니다. 열매보다 먼저 주님 안에 거하겠습니다. 자신보다 먼저 주님을 높이겠습니다.

 

이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사랑의 주님,

 

우리가 주님을 위해 일한다고 하면서도 때로는 주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사역의 분주함 속에서 사랑을 잃었고, 열매에 대한 조급함 때문에 평안을 놓쳤으며, 

주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나 자신을 주장할 때가 많았습니다. .  

 

주님, 우리의 중심을 다시 세워 주소서. 신앙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게 하소서.

사역보다 사랑을 붙들게 하시고, 열매보다 거함을 사모하게 하시며, 자기보다 주님을 높이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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