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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관의 좌충우돌

인성은 혼의 성품, 영성은 영의 성품

작성자김환기|작성시간21.06.23|조회수43 목록 댓글 0

 

 

인성은 혼의 성품, 영성은 영의 성품 (롬8:9) 

 

인간은 영.혼.육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서에서 죽었다는 말은 분리되었다는 뜻이다. 영이신 하나님과 분리된 상태는 영이 죽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말을 한다. 인격적이란 말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 번째는 ‘인격과 인격’으로 하나님과 일대일의 관계로 만나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신앙은 3인칭으로 시작되지만 1인칭으로 고백이 되어야 하다. 인간은 모두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이다. 누군가 나에게 알려준 예수가 아니라 내가 믿는 예수가 되어야 한다. 두 번째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로 창조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다. 관계가 깊어짐으로 그에게까지 자라고 그를 더 닮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다는 의미는 일대일의 관계로 하나님을 만나, 교제하며 그를 더 깊이 알아가는 것이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인성으로 살지만,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영성으로 산다. 인성은 혼의 성품이고, 영성은 영의 성품이다.

 

 

우리는 성전이다.

 

Two Popes란 영화가 있다. 현 교황인 프란체스코 교황과 전 교황인 베네딕트 16세의 이야기다. 교황은 종신직으로 소천후에 차기 교황을 선출한다. 영화는 베네딕트 16세가 중간에 사임을 하고, 프란체스코 교황이 선출되는 과정을 영상에 담았다. 베네딕트 16세는 자신의 연약함을 추기경에게 고하며 기도를 부탁한다. 과거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렸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고백한다. 추기경은 놀라며 되 질문을 한다. “교황님도 그럴 수 있습니까?” “교황이기 때문에 그렇다네” 화려한 교황복을 입고 수많은 군중을 앞에서 말씀을 전하는 교황이 아니라, 자신의 부족함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그 사람이 진짜 교황이 아닌가 생각한다. 진정한 성도는 자신이 의인임을 증명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구원받은 죄인임을 고백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자격과 조건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한량없는 사랑에 감사하는 사람이다. 

 

인간은 죄인이기에 자기 노력으로 구원할 수 없고, 스스로 성결해 질 수도 없다. 오직 예수를 믿어 '성령세례'로 구원받고, '성결의 영'(롬 1:4)인 '성령충만'으로 성결해 질 수 있다. 구원은 은혜이고, 구원받은 자답게 사는 성결도 은혜이다. 자력으로 이룬 것이 아니니 자랑할 것이 아니라 감사해야 한다.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로마서 8:9절에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의가 나와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교회 잘 다니고, 헌금 많이 하고, 봉사 열심히 해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그리스도 영'이 있는 사람만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를 성전이라고 했다.(고전 3:16, 6:19절) 

 

 

 

예배는 삶이다.

 

예배란 Worship 또는 Service로 번역한다. Worth + Ship은 ‘가치 있는 분에게 최상의 가치를 돌려 드리는 것’이다. 히브리어 '아보다'는 일이란 뜻인데, 예배란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모여서 드리는 예배도 있고, 흩어져서 드리는 삶의 예배도 있다. 예배와 삶이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 예배가 삶이어야 하고, 삶이 예배여야 한다. 교회에서 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고 세상에서 하는 일은 세상일이라는 잘못된 신앙관이 우리를 갈등하게 만든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있고, 교회에서 세상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 장소가 일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일을 결정한다. 주의 마음을 가지고 하는 모든 일은 주의 일이고, 주께 하는 것이다. 장소와 관계없이 '가치 있는 분에게 최상의 가치를 돌리는 것'이 예배이다.

 

요한복음 4장에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께 예배 장소에 대하여 질문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요4:20) “하나님은 영이시니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지니라”(요4:24) 장소에 대하여 질문한 여인에게 예배의 본질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첫째 프뉴마는 '하나님의 영'이고, 둘째 프뉴마는 거듭난 '인간의 영'이다. 영이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은, 죽은 영이 아닌 산영 즉 거듭난 영으로만 가능하다. 예배는 거듭난 인간의 영이 성령의 도움을 받아 영이신 하나님께 최고의 가치를 돌려 드리는 것이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식을 지키는 사람도 있다. 예배는 영으로 드리는 것이고, 예식은 혼으로 지키는 것이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신앙생활하고, 예식을 지키는 사람은 종교생활을 한다. 신앙생활은 특권으로 하고, 종교생활은 의무로 한다.

 

기도는 대화이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이다. 기도는 하소연이 아니고 푸념이 아니라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대화는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다.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자는 대화를 할 수 없다. 사울이 처음 왕으로 등극했을 때는 겸손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교만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블레셋과의 전투 때에서 사무엘 대신 자신이 제사를 드렸고, 아말렉과 전투에서도 자신의 뜻대로 전리품을 가지고 왔다. 결국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서 떠난다.(삼상16:14) 다윗도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고 나단에게 지적을 받는다. 다윗은 침상을 적시며 하나님께 통회하며 자복한다.  시편 51편이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10,11절) 하나님이 영이 떠난 기도는 푸념이고 하소연이며, 허공에 울려 퍼지는 공허한 메아리와 같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을 변화시켜 내 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변화되어 하나님 편이 되는 것이다. 로마서 8장 26절은 기도와 관련된 성령의 역할을 설명하고 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셔서,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에 돕는다고 했다. 요한은 성령을 ‘보혜사’라고 했다. 보혜사란 헬라어 '파라클레토스'로 'Helper, Counselor, Advocate, Comforter' 등으로 번역된다. 특별히 ‘Advocate’는 법정용어로 피고인을 대신하여 말해주는 ‘변호사’를 뜻한다. 성령은 우리가 하나님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 대신하여 간구해 주신다. 요한일서 2장 1절에 그리스도는 '파라클레토스'로서 하늘의 법정에서 죄를 범한 성도를 대변해 주는 변호인으로 등장한다.

 

이제 말씀을 마치고자 한다. 성경에 '그리스도인'이란 단어가 많이 나올 것 같은데 단 3번 밖에 나오지 않는다. 첫 번째로 사도행전 11:26(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두 번째로 사도행전 26:28(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마지막으로 베드로전서 4:16(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이다. 누가 그리스도인(Christian)인가?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이 거하시기에 우리가 성전이고, 영으로 예배드리고, 기도로 대화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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