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덕산 순교성지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읍내리 348-1 덕산초등학교 (덕산 관아 터)
덕산 순교 성지는 복자 정산필 베드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곳이다. 정산필은 1794년 말 복자 주문모 야고보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내포 지역의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복자 박취득 라우렌시오, 복자 원시보 야고보,복자 방 프란치스코 등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자신이 맡은 직분을 다하였다.
그러다가 1798(1799?)년 무렵 체포되어 덕산 관아로 끌려왔다. 정 산필은 모진 형벌과 문초에도 굴하지 않고,옥중의 동료들을 격려하며 모범적으로 신앙을 지키다가,끝내 1799년 50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당하였다.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그를 시복하셨다.
옛 덕산 읍치 구역에 자리한 덕산 순교 성지는 옥 터 인근으로 비정 된 곳이다. 인근 덕산 초등학교 자리에 있던 관아 터와 더불어 잡혀 온 교우들이 신앙을 증언하였던 현장이다. 대전교구는 이곳에 부지를 마련하고,경당과 순례자를 위한 편의 시설을 마련하였다. 또한 정 산필과 순교자들을 현양하는 한편 순례자들에게 성사를 집전하도록 이곳에 전담 사제를 파견하였다.
덕산 순교지 2
덕산지역은 5회에 걸쳐서 박해가 일어나는데,첫 번째 박해는 1897년 정사박해이고,곧이어 신유박해(1801년)가 일어나고,정축년(1817년)의 박해와 기해박해(1839년),병인박해(1866~1868년) 걸쳐서 다섯 번의 박해가 일어난다.
1) 정사박해(TB泊害,1797년)덕산지역에서 최초로 박해가 시작한 것은 정사박해이다.
정사박해는 충청도 관찰사인 한용화(韓用和,1732~1799)가 1797년에 충청도 남부에서 일으킨 박해사건으로 이 박해 시기에는 ‘하느님의 종’ 정산필 베드로26), 인언민 마르티노27)가 순교한다.
2) 신유박해(辛西泊害, 1801년)
곧이어 신유박해(1801년) 시기에는 이보현 프란치스코(1798년 12월 25일)했) 김사집 프란치스코(1801년). 윤 바오로(1801년)가 순교하였다. 공주에서는 이름 미상의 여교우 골롬바가 순교하여 총 4명이 순교하였다.
3) 정축박해(丁표迫害, 1817년)
덕산지역의 3번째 박해는 1817년(정축년)에 일어나고, 해미에서 덕산 출신 민(閉) 첨지 베드로와 손(孫) 첨지 요셉이 순교한다.
대구 감영에서는 덕산 별암리 출신 ‘하느님의 종’ 고성대 베드로와 고성운 요셉 형제가 순교하고, 덕산 몽곡리 출신 ‘하느님의 종’ 이시임 안나가 순교한다.
4) 기해박해(己安迫害, 1839년)
덕산지역의 기해박해 시기에 유(柳) 바오로가 홍주 옥에서 순교한다.
5) 병인박해(芮宣迫害, 1866〜1868년)
병인박해 시기에 덕산 출신 순교자는 해미에서 11명,홍주 진영에서 58명이 순교하고,충청 감영에서 15명,총 84명이 순교한다.
이는 신리의 손자선 토마스의 집에서 거주한 다블뤼 주교의 21년(1845~1866년)의 전교 활동 영향으로 여겨진다. 신리는 덕산의 비방곶면으로 덕산 월경지 지역이다.
덕산성지 순교지 심포지엄 자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