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니?”의 답변으로 보는 나의 구원
사 26:3
(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
“잘 지내?”라는 말은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하는 인사말 중의 하나입니다.
이 인사는 상대가 그동안 평안하고 무탈하게 잘 살고 있었는지의 여부를 묻는 내용으로서
실제로 잘 지냈는지를 궁금해서 묻는다기보다
“언제 밥 한번 같이 먹자.”라며 대화를 마무리하는 말과 비슷하게
의례적으로 하는 말, 혹은 대화의 시작 용도로 쓰이고 있습니다.
물론 친밀한 사이에서는 잘 지냈는지를 묻는 상대방의 말에
그동안 자신에게 무슨 일들이 있었고, 지금은 어떻다는 대답을 함으로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때 나누는 대화를 살펴보면
대부분 사람들이 말하는 ‘잘 지냄’의 기준은
주로 건강이나 가족들의 무탈함, 문제없는 경제활동과 투자 성공,
혼인, 출산, 취업, 승진 같은 집안의 경사 등입니다.
자신과 가족의 건강에 문제가 생겼거나, 힘든 일이 있었거나,
경제활동에 차질이 생기는 등의 일로 우울하게 지내고 있으면
그 사람은 잘 지내지 못했다고 대답할 것이고,
반대로 기분 좋은 일들이 있으면 잘 지냈다고 대답할 것입니다.
즉 “잘 지냈어?”라는 질문과 그 말에 답변하는 모든 내용들은
철저히 육신적인 것들로 기준을 삼아 오고 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은 ‘잘 지낸다.’의 의미에 대해
“요즘 나에게 나쁜 일들은 거의 없고, 좋은 일들이 많아서 기분이 좋아.“라고 정의를 내렸으며,
모두가 이에 동의하며, 통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진리를 향해 나아가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잘 지냄’과 ‘잘 지내지 못함’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야 하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마저 “잘 지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내용과 똑같은 대답을 떠올린다면
우리는 이 부분에 대하여 다시 새롭게 정의를 내리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몇 년 전, 저는 죽마고우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을 받았습니다.
“잘 지내?”라는 친구의 말에 저는 “요새 잘 지내지 못하고 있어.”라고 대답했었습니다.
당시의 저에겐 힘겨운 고난들이 중첩되어 마치 바닥을 치는 듯한 삶을 살고 있었기에
잘 지내느냐는 말에 잘 지낸다고 대답하질 못했습니다.
“나를 구원으로 이끌어주시는 하나님의 교육과정, 그 은혜 아래에서
영적으로 성장하면서 잘 지내고 있어.”라고 대답했어야 마땅한데
너무나도 괴로운 일들을 겪으며 힘들어하고 있었기에
차마 입에서 그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부끄럽게도 철저히 육신적인 대답이었습니다.
또한 그 친구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자기 인생의 가장 큰 목적은 서울 강남에 건물을 가진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늘 강조하던 친구였으며,
또한 제가 목사로서 순종하며 살아가는 이 삶을 가난하다고 비난한 적도 있었으므로
제가 여러 가지 고난들을 겪으면서 성장하고 있는 일들이
‘잘 지내는 복된 삶’이라는 말을 해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을 것이기에
선뜻 마음의 진심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가진 가치관과 입에서 나오는 말이 다르다고 지적해주셨고,
저는 사람의 ‘잘 지냄’이란 과연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본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하여 올바르게 정립할 수 있습니다.
요 14:27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사 9:6-7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사 53:5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욥 22:21
(21)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의 구원에 모든 관심을 갖고 계신 하나님께서 생각하시는 ‘잘 지냄(평안)’,
그리고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가장 사랑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해야 하는 ‘잘 지냄(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않습니다.
즉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돈과 건강과 성공과 가정의 화목에서 오는 평안함과 안전’이 아니라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와주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구원의 기쁨에서 오는 진정한 평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화평에서 오는 그 압도적인 안정감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확신해야 하는 ‘잘 지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인이
오늘날 죄와 관련 없이 하나님과 화평한 상태로
그 분의 의도하심 아래에서 영적으로 점차 성장하고 있다면
현재 육신적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있든지 관계없이
잘 지내고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통해서,
즉 예수님의 존함을 말하며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돌이켜 회개함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해지면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복이 임하게 됩니다.
이 복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결코 이해할 수가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참된 복’으로서
이 과정에는 영적성장이 반드시 필요하고,
구원에 합당한 영적성장을 이루기 위해선
고난을 통한 자기를 부인함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들이
필연적으로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 가운데에는 반드시 고난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모든 과정 가운데, 심지어 지나치다고 느껴질 만큼 힘든 고난 중에 있을 때에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해주신 생명의 부활, 그 언약을 의심 없이 믿고 있기에
마음 중심에서는 기쁨을 잃지 않고 평안할 수 있는 모습,
세상 사람들이 보기엔 기묘하게 보일 만큼
힘든 와중에도 웃고 있는 그 모습을 보이면서
“응, 나 잘 지내고 있어.”라고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확고한 가치관.
이것이 바로 진정한 평안으로서
우리의 평생에 필히 얻어야 할 보물과도 같은 진리입니다.
골 1:20
(20)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엡 2:14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셨습니다.
죄를 통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관계를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청산하고,
이제는 하나님과 화목해진 것이야말로 인간의 진정한 ‘잘 지냄’인 것입니다.
이처럼 저와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면서 구원의 길을 걷고 있는 제자들이기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잘 지냄’과
‘우리가 생각하는 잘 지냄’이 확연하게 달라야만 합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올바르게 이 부분에 대해 다시 정립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데리러 와주시는 그 날까지
‘잘 지내며 살아가야’ 합니다.
히 12:14
(14)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딤후 2:22
(22)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함을 이루었으면
다음으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라야 합니다.
말씀에 기록된바,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자신은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과 화목하여 친밀하다고 말하면서도
주변 사람들과 화평을 이루기를 힘쓰지 않고,
또한 하나님을 닮은 거룩함을 닮아가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은 채
그저 육신과 안목의 정욕을 따라 ‘먹이활동을 하는 동물’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간다면
그 사람이 말하는 하나님과의 화목은 거짓입니다.
벧전 1:15-16
(15)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16)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롬 8:6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벧전 3:11
(11)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했고,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었으니까 이제 됐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저 불신자들이 어떻게 되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라면서 내 감정을 계속 상하게만 하는 저들하고 내가 왜 화평해야 해?
내 믿음 지키는 것도 힘든 세상에서 내가 저 사람들까지 다 챙겨야 해?‘
이런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마음과 합해질 수도 없고, 자기를 부인할 수도 없으며,
자기의 십자가를 질 수도 없고, 예수님의 사랑을 닮아갈 수도 없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따라갈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잘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로부터 복만 열심히 챙기는 모습으로
‘한 명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시는 예수님’과는 다른 목적을 가진 채
오로지 이기적으로 자신만을 사랑하는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예수님을 따르는 모습으로 잘 지내기 위해선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 분과 같아진 마음을 품기 위해 순종으로 애써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그대로 닮아가며, 날로 성장해가는 자가 되는 것은
역시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도저히 되지 않는 마음을 억지로 “원칙적으로 이렇게 해야 돼. 저렇게 해야 돼”한다고 해도
안 되는 것은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 곧 고난입니다.
마음이 찢어지고, 깨져 나가며, 몸과 마음이 아프고,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쪼들리는 힘든 일들도 겪어보고,
그 모든 일들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하심과 자신의 진짜 모습을 깨달아
순종함으로 자기를 부인하여 마땅히 내려놓을 것들을 내려놓으며,
스스로를 면밀히 점검하며 돌아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참사랑을 이루는 그 마음에까지 도달할 때에
우리는 예수님을 점점 닮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에게 힘든 일이 하나도 없고,
주변 사람들도 모두 잘 해주며, 칭찬만 받는 인생을 산다면
그 사람은 어린 시절의 해맑기만 한 모습 그대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도 부족하고, 깊은 생각을 할 수 없는 모습 그대로
‘이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하면서 살아가다가
조금만 힘든 일을 만나게 된다면 포기하거나 도망치게 될 것입니다.
평생 그 모습 그대로 머물러 있다면 그 사람은 고난을 통해 자기를 부인할 수 없고,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없으며, 영적으로 성장할 수도 없기에
결국 예수님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 어리석었던 사람이 바로 접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고, 무술이나 운동도 잘해서
학창시절 내내 매년 반장이나 전교 부회장을 했고,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 성인과 같은 키였기에 친구들로부터 인기도 많아서
저와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남학생들이 주변에 가득했으며,
여학생들로부터 편지와 선물을 받는 일은 매일의 일상이었습니다.
선생님들도 늘 칭찬만 하시며, 불량학생들이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제가 잘 선도해주면 좋겠다고 부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자연스럽게 학교 일진 무리들을 제 아래에 두는 위치에 있었기에
불량학생들도 제게 머리를 조아렸고, 제 앞에서는 나쁜 짓을 못했습니다.
심지어 주변 고등학교 학생들도 제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11살 때부터 가장 친하게 붙어 지냈던 제 죽마고우와 그 친구를 따르던 일진무리들은
90년대 중반, 학교폭력근절 캠페인 때 경찰서에 끌려갔습니다.
저는 학생들을 지켜주는 위치에 있었기에 당연히 끌려가지 않았지만
일진무리들이 다른 학교 학생들의 돈과 손목시계와 신발 등을 빼앗으며
폭행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그 때 제 죽마고우가 자신이 리더니까 책임을 지겠다며 혼자서 혐의를 다 뒤집어썼습니다.
그 친구들은 지금 수도권 일대에서 조직을 운영하며 유흥업소들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부디 어둠의 길에서 벗어나 손을 씻고,
예수님을 믿으며 구원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면서 중보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저는 중학교 3학년 때 지갑을 어디다 흘려서 잃어버린 일이 있었는데
제 지갑을 훔쳐간 놈들을 찾기 위해
동네의 불량학생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는 곳에 혼자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오토바이에 걸터앉아서 담배를 피우는 불량한 공업고등학교 학생들과
학교를 그만둔 형들을 향해 씩씩대며
“야! 너네가 내 지갑 훔쳐갔지!? 아니야? 아니라고? 확실해?
혹시 내 지갑 훔쳐간 새끼 찾으면 나한테 꼭 얘기해라!”라고
반말로 큰 소리를 친 적이 있을 정도로 저는 무서울 것이 없었습니다.
(믿기 힘든 만화 같은 얘기지만 모두 사실입니다.
이런 내용의 거짓을 말할 필요도 없고, 설교에 감히 거짓말을 쓰는 두려운 짓은 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반장, 전교 부회장을 하며 장학금을 받았고,
대학교는 지원자 약 3600명(45:1) 중 수석으로 입학하여 올A의 성적으로 과탑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연극영화과 교수진은 저를 학교의 대표배우로 키우자며 결의했었기에
학교 여자선배들이 (영화제작실습 때) 외제차를 끌고 와 저를 현장에 데려다주거나
매일 점심을 사주는 등 많이 예뻐해 주었습니다.
(이 내용은 자랑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는 자랑은 육신적으로 잘 되고 나서 하는 것이지
모든 기회를 스스로 다 버리고 비루하게 된 사람이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힘든 마음이 될 일이 없고, 가정도 화목하며,
교회에서도, 학교에서도 늘 칭찬과 사랑만 받던 제가
입대하여 최전방에 위치한 부대에 배치 받은 후로는 힘든 일들을 맞이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명 연예인이었던 여자 친구는 이유도 모르게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고,
부대 내에 저를 시기, 질투하는 선임들에 의해
심한 구타와 잘못 없이 억울한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그렇게 괴로운 날들이 매일 이어지자 저는 멍한 눈으로 먼 숲을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이젠 나를 돌봐주시지 않는구나. 버리셨나보다. 그만 살고 싶다.’하는
철저히 육신적인 미련한 생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주일날 부대 내에 있는 교회에 가서도 표정을 잃은 모습으로 앉아만 있다가 왔습니다.
모두가 기뻐하는 전역 날에도 저는 웃음을 잃은 채
동기들과의 마지막 식사도 거절하고 무표정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제 마음은 어디가 깨져 나간 기분, 너덜너덜해진 느낌이었고,
자신감을 잃었으며, 밝고 명랑했던 모습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지만
마치 두꺼운 알을 간신히 깨고 나온 어린 새처럼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했으며, 깊은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 숨겨진 의도,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서도
여러 각도에서 살피기 시작했고,
힘들고 귀찮은 일을 만났을 때 그저 피하고만 싶어 하던 모습을 버리고,
그 사건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로 힘든 일들을 통해 마음이 성장한 것입니다.
얼마 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10년 넘게 품었던 영화감독, 배우의 오랜 꿈을 버리고
신학교에 입학하여 평일, 주말 할 것 없이 정말 열심히
신학공부와 원어연구와 기도에만 집중하던 시간들,
전도사가 되어 월 80을 받으며
두 얼굴의 위선자였던 어떤 목사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던 시간들,
목사가 되었지만 예배당 없이 극도로 가난하게 지내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온갖 무시와 천대와 조롱을 당하던 세월들,
군대에서 다친 허리의 상태가 심각해져서
소변까지 누워서 봐야 했던 절망스러운 시간들,
차마 여러분들에게 다 말할 수가 없는 충격적인 일들,
인간혐오가 생길만큼 구역질나는 교만하고 위선적인
가짜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억울하게 당한 일들,
목회 16년차인 지금도 여전히 예배당 없이 가난 가운데서
어쩔 수 없이 2~4년마다 쫓기듯 이사를 다니며 겪고 있는 힘든 일들...
이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 겪으면서 인내하며 저를 부인하고,
제게 주어진 십자가를 짊어지면서 제 자리를 지키며,
하나님의 커리큘럼을 따라 영적으로 성장해가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군 입대 전의 모습 그대로 평생을 살았다면
저는 여전히 머릿속이 꽃밭인 사람,
이 세상은 그저 아름답기만 하고, 나에게는 모두가 친절하다며
즐거운 일만 하고 싶어 하면서 깊은 생각은 절대로 할 수 없는 사람,
자신의 영적문제들을 직시할 수 없는 사람, 다른 사람의 마음도 살필 수 없는 이기적인 사람,
힘든 일을 만나도 그것을 성장의 기회로 삼지 못한 채 그저 회피하려고만 하는 사람,
기분 좋으면 웃고, 기분 나쁘면 화내는
마치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원초적인 사람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20여 년 전부터 지금까지 제가 겪어오고 있는 힘든 일들은 전부
어리석었고 생각도 짧은 저를 변화, 성장, 성숙 시켜주시기 위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모습으로 만들어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큰 복이었음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사람 중의 한 명입니다.
그러므로 제 유일한 자랑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신다는 말씀을 우리가 늘 기억하면서
저와 여러분들을 구원으로 인도해주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하심을 알아 가십시다.
히 12:6-11
(6)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10)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정리하면, 인생에서 복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주어진 고난들을 회피하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 안에서 통과하며 영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고,
또한 ‘잘 지낸다.’는 것은 기복주의자들이 추구하는 것,
즉 ‘육신적으로 즐거운 일들이 가득하다.’는 의미가 전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회개와 돌이킴으로서 하나님과 화평해지고,
이어서 구원에 합당한 예복을 준비하는 과정의 길을 걷는
‘십자가 고난을 통한 그리스도인의 성장 인생’이라고 확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잠 1:33
(33) 오직 내 말을 듣는 자는 평안히 살며 재앙의 두려움이 없이 안전하리라
요 14:15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6:33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마다 마음에 깊이 새기며,
그 말씀을 따라 자발적으로 복종하여 행하기를 힘쓰는 사람,
즉 하나님만을 경외하며,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환경 가운데에서도 진정한 평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목적이 이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누구에게든 “나 잘 지내고 있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지독히 가난하고, 심지어 병상에 누워서도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생명의 부활에 이어질
천국에서의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진심으로 믿고 있기에
어떤 환난 앞에서도, 지독한 고난 가운데서도, 그 어떤 상황과 환경에서도
공포의 두려움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시 25:12-13
(12)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13)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시 119:165
(165)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육신적인 것들만을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과
교회에 출석은 하고 있지만 기복주의를 따르는 거짓 그리스도인들과는 확연히 구별되어
하나님만을 진심으로 경외하고,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될 천국에서의 진짜 인생을
지금 바라보고 있는 참된 그리스도인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고 계신(허용하신) 모든 일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하나님의 복‘이라는 사실을 진심으로 깨달았기에
나를 사랑해주고 계신 하나님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나의 구원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속마음과 의도를 파악한 지혜로운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고난 중에 있을지라도 “난 잘 지내고 있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보며 “정신승리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 되면,
하나님께서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시는 영광의 그 날이 이르면
하찮은 정신승리가 아니었으며,
‘영원한 미래를 미리 바라볼 줄 아는 지혜를 가진 자들’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었다는 사실이 모두의 앞에서 밝혀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사는 존재가 아니라
이 땅에선 나그네처럼 아주 잠깐 머물다가
사랑하는 하나님과 천국에서 영원한 진짜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지금 준비하고 있는 존재임을 항상 잊지 마십시다.
시 29:11
(11)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 진리의성령교회 가족 여러분
모든 사람들이 힘든 일을 겪는 걸 너무나도 싫어합니다.
골치 아프고, 괴로운 일들을 만났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웃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도 고난과 관련된 설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맞는 얘기인 건 알지만 나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으면’하면서
자신의 기분을 좋게 해줄 ‘복을 강조하는 교회’로 대부분 몰립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복, 진정한 평안, 생명으로 이어질 참된 진리를 말할 때에
고난을 빼놓고선 절대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랑하시는 자녀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셔서 영원한 가족으로 삼으시기 위해
반드시 고난을 통해 영적으로 성장시켜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없이는 구원도 없습니다.
성경말씀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배들 중에도
평생 아무 고난 없이 머릿속이 꽃밭인 채로 하나님의 인정하심을 얻은 자는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다.
구원 받을 그리스도인이 필연적으로 겪어야만 하는 고난이라면
피하려고 발버둥만 치다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지 못한 채
성장 없이 정체되는 어리석은 모습을 과감히 버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의도하심을 깨달아
고난을 대할 때에 담대히 맞서서 하나님 안에서 지혜롭게 통과하며, 성장해야
비슷한 일을 계속 겪는 것을 막을 수 있고,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우리가 잘 준비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어떤 상황과 환경 가운데서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의도하심을 알기에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으며, 오로지 신뢰만 하는 믿음으로
항상 하나님과 화평함 가운데 거하기를 힘쓰면서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아 영적으로 점점 성장하는 일들을
하나님 안에서 잘 통과함으로
심판대 앞에 담대히 설 준비를 하고 있는 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놀라운 힘을 얻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과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영혼을 안전하게 보호받으며, 구원으로 향하는 지금의 이 여정을 잘 마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잘 지내다가’ 인류의 마지막 날이 이르면
우리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하나님께 칭찬을 받고,
하나님께서 상으로 내리시는 생명나무 열매를 받아서 먹은 후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롭고, 영원한 진짜 인생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 날을 바라보며 오늘을 살아가십시다.
세상의 온갖 반짝 거리는 것들이 우리를 현혹하거나 외롭게 만든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를 세상 사람들이 불쌍하게 여기거나 조롱한다 해도
우리는 그저 예수님의 공로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한 상태로 복을 받아
영적으로 성장하며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이 길에서 벗어나지 말고 부디 끝까지 나아가십시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크게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대충 적당히 남들과 비슷하게, 이렇게 교회에 잘 다니면 천국에 가겠지.
설마 내가 지옥에 가진 않겠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신 것처럼
천국에 들어갈 자는 극소수일 것입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예수님의 이 말씀들을 묵상하면서도 ‘이게 내 얘기는 아니겠지...
지금처럼 적당히 신앙생활 해도 괜찮겠지...‘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별로 다를 바 없이 살아가다가
마지막 그 날이 이르면 땅을 치고, 이를 갈면서 누군가를 원망하는 모습으로
영원한 지옥에 멸해질 자들이 정말로 많을 것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기독교인들마저 그렇게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고,
반대로 인생의 모든 부분에서 오로지 사랑하는 예수님을 닮기 위해
자기를 부인하며 발버둥 쳤던 극소수의 기독교인들,
말과 행위만이 아니라 마음의 중심부터 변화되어 예수님의 사랑을 정말로 품은 자들만
하나님 앞에서 칭찬과 인정하심을 받으며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 장면은 곧 모두가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우리는 두렵고 떨림으로 매일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십시다.
매일, 매일 하나님 앞에 나아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하나님과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화평한 상태인지를 살피고,
만약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나는 오늘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생각해보면서
안전하게 이 구원의 길을 걸어 나아가십시다.
이 힘들고 험한 세상 속에서도 죄와 싸워 이기기를 힘쓰며,
자기를 부인하면서 마음을 비우고, 다 내려놓으면서
사랑하는 예수님을 닮아가기를 힘쓰시는,
하나님 안에서 항상 잘 지내시는,
그렇게 천국을 향해 나아가시는 여러분들을 응원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저와 여러분들이 마음에 깊이 새기고 즉시 각자 자신의 삶에 적용함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잘 지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새롭게 정립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 안에서 항상 잘 지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어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온 세상에 울려 퍼질 그 날을 사모하고 기다리면서
남은 시간 동안 매일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롬 5:1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시 4:8
(8)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사 54:13-15
(13) 네 모든 자녀는 여호와의 교훈을 받을 것이니
네 자녀에게는 큰 평안이 있을 것이며
(14) 너는 공의로 설 것이며 학대가 네게서 멀어질 것인즉
네가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며 공포도 네게 가까이하지 못할 것이라
(15) 보라 그들이 분쟁을 일으킬지라도 나로 말미암지 아니한 것이니
누구든지 너와 분쟁을 일으키는 자는 너로 말미암아 패망하리라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진리의성령교회 윤경훈 목사 올림
진리의성령교회 2026.06.21. 주일설교
감사와 다짐의 노래
168장 하나님의 나팔소리
1.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진동 할 때에 예수 영광중에 구름 타시고
천사들을 세계만국 모든 곳에 보내어 구원 얻은 성도들을 모으리
2. 무덤 속에 잠자던 자 그때 다시 일어나 영화로운 부활승리 얻으리
주의 택한 모든 성도 구름 타고 올라가 공중에서 주의 얼굴 뵈오리
3. 주님 다시 오실날을 우리 알수 없으니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서
기쁨으로 보좌 앞에 우리 나가서도록 그때까지 참고 기다리겠네
[후렴]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하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