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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다이제스트

<비치보이스>(박민규)

작성자글사람|작성시간13.02.05|조회수171 목록 댓글 0

<비치보이스>(박민규)

 다이제스트:  

 

  다큐멘터리하곤 완전 다르네, 재이가 중얼거렸다. 그러게, 에릭도 고개를 끄덕였다. 서핑 같은 건 꿈도 꾸지 말아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다를 본 우리의 소감이다. 터벅터벅,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에릭의 소형차로 들어갔다. 그림자까지 따라 탄 듯 비좁은 느낌이었다. 

  니들이 크라잉넛이냐? 소릴 들을 때만 해도, 실은 누구도 바다 같은 데 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한동안 그 소리에 시달렸는데, 이유는 우리 넷이 한날한시에 영장을 받아서였다. 나는 확, 짜증이 일었다. 세상이란 게 그렇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누가 어쩐다 소리만 들으면 브러브러브러브러. 

  뭔가 하자는 생각이, 그래서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입대하기 전에 꼭 해보자- 의논 끝에 결정된 것은 먼저 <아보가드로 습격>이었다. 아보가드로는 고등학교 때의 선생인데, 아무튼 죽일 놈이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골목 끝에서 아보가드로의 냄새가 느껴졌다. 위선과 부패, 교만과 교홀, 비굴과 비리가 뒤섞인 지옥의 향. 니…들은, 하고 아보가드로가 흠칫했다. 그리고 놈은 뜻밖에도 뒷짐을 지더니 고압적인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 취직 준비는 잘들 하고 있냐? 그건… 아니고, 갑자기 재이가 고갤 숙였다. 이상하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었다. 

  아보가드로를 따라 결국 놈의 집까지 따라갔다. 함께 밥을 먹고, 초등학교 2학년 딸내미의 숙제를 열심히 도와주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하는 우리를 향해 아보가드로는 수제자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알겠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일에 대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사람을 때리는 건 힘든 일이다. 

  나는 힘든 게 싫다. 

  바다에 가자는 생각을 한 것은, 어학스쿨에서 그날따라 교재로 채택된 비치보이스의 노래, 서핑 유에스에이 때문이었다. 바로 이거야. 입대를 하기 전에 바다를 보고 오자. 바다란 것은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세계가 아닌가. 바다는 처음이었다. 처음엔 그럴 리가, 싶었지만- 곧 그럴 수밖에, 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나온 학원과 방학과 학원과 방학과 학원과 방학을 떠올리면 언제나 함께 학원을 다니던 친구들이 있었다. 

  그리고 바다를 본 것이었다. 대… 실망이다. 다큐멘터리와도 완전 다른 느낌에 그만 힘이 쑥 빠져버렸다. 경쟁률이 사만삼천 대 일 정도는 되겠는걸. 이렇게 인간이 많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힘들었다. 그래서 숙소를 잡는 데, 말도 안 되는 요금을 불렀는데 힘들어 포기, 된통 바가지를 쓰고. 아무튼 우리는 다시 해변으로 나갔다. 콰―. 파도가 밀려왔다. 그래도 바다다, 그래도 바다다. 바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우리는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힘차게 팔을 뻗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힘들었다.

  쉬자. 나는 둥실, 몸을 띄웠다. 하늘이 보였다. 호흡을 하고, 나는 잠수를 했다. 학교와 학원, 입시와 입학의 지난날들이 몇 장의 스틸로 머릿속에 떠올랐다. 힘들었다, 힘들었다니까. 그렇게 엉엉 울고만 싶었다. 후련했다. 그리고 파,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물속에서 숨을 참기란, 힘들다. 나는 힘든 게 싫다.

  무섭지 않냐? 에릭이 속삭였다. 뭐가? 군대 가는 거 말이야. 왜? 그냥…. 근데 유럽인들도 군대 가냐? 글쎄… 안 가지 않을까? 안 가, 거의 우리만 가는 거야. 이상하게도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란히 부표가 있는 곳까지 헤엄쳤다.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지? 金이 중얼거렸다. 돌아보니 해변을 메우고 있던 인파가 집단으로 도망치는 물결을, 우리는 볼 수 있었다. 결국 가위바위보를 한 끝에 에릭이 해안을 다녀왔다. 하아, 하아, 몇 번이나 숨을 고른 에릭이 새파란 입술을 떨며 얘기했다. 

  전쟁이 났대.

  우리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디랑? 몰라, 일단 피하란 얘기밖에 못 들었어. 아무튼 빨리 돌아가자. 땀과 눈물이 섞인 얼굴로 에릭이 소리쳤다. 아아 귀찮아… 고개를 숙인 채 재이가 중얼거렸다. 정말 짜증이라니까. 불쾌한 낯으로 金도 침을 뱉었다. 그리고 재이가 바다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어쩌려고? 에릭이 소리쳤다.

  몰라, 고등어라도 되겠지 뭐.

  고개를 돌려 재이가 대답했다. 나와 金도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별다른 힘도 들지 않고, 해서 나는 그 느낌이 좋은 것이었다. 우리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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