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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다이제스트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박민규)

작성자글사람|작성시간13.02.05|조회수199 목록 댓글 0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박민규)

 다이제스트:  박소희


 나의 산수


 화성인들은 좋겠다. 너무 무더웠던 그해 여름, 여러 일터를 전전하면서 나는 그런 상념에 젖고는 했다. 덥지도 않고, 멀고 먼, 화성.

 주유소에선 시간당 천오백 원을, 편의점에선 천원을 받으면서 늘 불만이 가득했던 내게 코치 형이 찾아왔다. 지역 알바 정보를 한손에 쥔 형에게 나는 카프리썬 하나를 꺼내 건넸다. 알고나 드세요, 제 인생의 25분이랍니다. 시계를 쳐다보며 생각했다. “너 푸시업 잘하냐? 팔굽혀펴기 말이다.” 무조건 잘한다고 해야 일자리가 생긴다는 건 기본이므로, 나는 잘한다고 대답했다. 시간당 3천원이라는 이유로, 나는 그렇게 푸시맨이 되었다. 짧고 굵게 벌 수 있다. 그것이 나의 산수다. 세상엔 그런 산수를 하며 살아야 하는 사람이 있다, 있게 마련이다.

 아버진 내가 일만 한다 하면 늘 미안하단 소리를 했다. 나이 마흔다섯에 시간당 삼천오백 원, 그것이 아버지의 산수였다. 중학생 때 직장에 계신 아버지께 도시락을 갖다 주는 심부름을 갔을 때 아버지의 모습을 본 뒤로, 나는 말수가 줄어든 대신 열심히 알바를 하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뭐랄까, 을씨년스러운 낡은 사무실에서 꼬박꼬박 도시락만 먹어온 아버지의 가냘픈 표정을 본 순간 마음속에 ‘나의 산수’가 생겨났기 때문이었다.

 인간에겐 누구나 자신만의 산수가 있다. 물론 세상에 수학 정도가 필요한 인생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삶은 산수에서 끝장이다. 어쩌면 그날 나는 ‘아버지의 산수’를 목격했거나, 그 연산의 답을 보았거나, 혹 그것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날 이후 나는 ‘아버지 돈 좀 줘’와 같은 말을 두 번 다시 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누구나 자신의 산수를 가지고 살아가는 거겠지.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승객들은 모두 전철을 타야하고, 타지 않으면 늦는다, 전철엔 이미 탈 자리가 없다. 들어온 열차는 사람들을 토해냈고, 나는 무언가 물컹하거나 무언가 딱딱한 것들, 그러니까 열차에 타야만 하는 인류들을 마구 밀어 넣었다. 저 사람들을 사람이 아니라 화물로 생각하라는 코치 형의 조언을 듣는 사이, 두 번째 열차가 들어와 사람들을 쏟아냈다. 이건 마치, 전 인류가 아닌가. 나는 다시 사람들을 밀기 시작했다.

 물론 돈도 좋지만, 아침마다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목격하는 일이 점점 스트레스로 변해갔다. 유난히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이 무겁게 느껴지던 어느 아침, 여전히 열차가 들어오고 문이 열리고 누군가 사람들에 밀려 튕겨 나왔는데, 아버지였다. 신설역까지 가는 아버지를, 잘, 못 밀고, 그래도 좀 밀었는데, 잘, 안 들어가고, 열차의 문이 닫혔다. 어색한 표정으로 아버지는 어색해진 넥타이를 고쳐 매고 서계셨다. 눈을 못 마주치는 아버지와 나 사이에 우주의 고요, 같은 것이 고여드는 기분이었다. 또다시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이 부근의 어느 지붕   

   

  일을 끝내고, 코치 형과 나란히 역사 벤치에 앉아있다 보면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서 정말로, 지구가 돌고 있구나 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느낌이 좋아서 나는 자주 벤치에 몸을 뉘였다. 

  여름은 그렇게 지나갔다. 길고, 이상한 여름을 끝이 났지만 대신 길고, 이상한 가을이 시작되었고, 9월이 끝나갈 무렵 엄마가 쓰러졌다. 그 가을의 찬바람 속에서 나는 아버지를 밀고, 또 밀었다. 문득, 아침 바람 찬바람에 울고 가는 저, 기러기.

  “재미있는 얘기 하나 해줄까?” 코치 형이 불쑥 그런 말을 뱉었다. “본드는 한창 하던 때의 일이야. 여느 때처럼 끝까지 갔다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내가 지붕 위에 떠있는 거야. 나 지금 죽은 건가,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지. 그러곤 다시 정신이 들고 깨어났어. 그 일이 있고 나서, 본드도 끊고 나 완전히 딴사람이 돼버렸어. 혹 언제라도 이 부근의 어느 지붕에 떠있으면 어쩌나, 열심히 사는 거 외엔 달리 방법이 없는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고.” 그것은 재밌기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이상한 이야기였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금성인들은 좋겠다. 그해 겨울엔 혹한이 닥쳐, 나는 늘 그런 상념에 젖고는 했다. 긴긴 겨울, 여전히 나는 여러 일터를 전전했다. 그리고 그 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가 사라졌다. 어떤 조짐도, 어떤 짐작도 할 수 없이, 정말로 사라졌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그날 아침, 아버지는 ‘잠깐만, 다음 걸 타자’ 하고 몸을 한번 뺐고, 나는 힘드신가 보다, 라고 쉽게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열차에 태워 보냈다. 그것이,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나는 여전히 일을 했다, 해야만 했다. 어둠 속의 누군가에게 몸을 떠밀리는 기분이었다. 밀지 마, 그만 밀라니까. 왜 세상은 온통 푸시인가. 그리고 왜, 삶은, 세상은, 언제나 흔들리는가. 그렇게 흔들리던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끝내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봄이 얼마나 완연한 날이었을까. 일을 마친 나는 역사의 벤치에서 졸다가 잠을 자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눈을 떠 여느 때처럼 ‘얼음 없음’인 미란다 한잔을 마시고, 다릴 뻗고 고개를 젖혀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는데 건너편 플랫폼의 지붕 부근에 떠 있는 이상한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저것은 설마, 정말 한 마리의 기린이었다. 기린은 단정한 차림새의 양복을 입고, 플랫폼을 천천히 거닐고 있었다. 머리를 흔들며 걷던 기린이 벤치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앉았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 나는 기린이 아버지란 생각을 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런 확신이 들었다. 나는 기린에게 뛰어가, 주저주저 곁에 조심스레 앉았다. 기린은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는데, 나는 혼자 울고 있었다. 아버지. 기린의 무릎 위에 내 손을 올려놓았다. 손으로 밀어본 사람만이 기억하는 양복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져 왔다. 아버지, 아버지 맞죠? 무관심한 눈동자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기린은 자신의 앞발을 내 손 위에 포개더니, 천천히, 이렇게 얘기했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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