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김애란)
다이제스트: 배진희
그녀는 벌써 몇 번째 뒤척였다. 자세를 바꿀 때마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골몰하게 생각한다. 그중 그녀가 가장 많이 하는 것은 ‘더 이상 생각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몸을 바싹 웅크린다. 온갖 상념들로부터 자신을 지키려는 한 마리 공벌레 같다. 그녀는 자신이 빨리 잠들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가 잠 못 드는 사소한 이유들에 불과하다.그녀는 불면의 가장 큰 이유가 자신의 성격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녀는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고, 지적인 동시에 겸손하며, 사려 깊은 동시에 냉철하고, 일도 잘하지만 옷도 잘 입는 사람이고 싶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항상 거절을 두려워하며 오해에 쩔쩔맸다. 그녀를 괴롭게 하는 것은 자신의 그런 점을 누군가 알아차렸으며, 속으로 경멸하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변명만 하고 사는 인간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오해를 견디고 사는 일이란 얼마나 더 외로워야만 가능한 것인지. 그녀는 그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다.그녀는 언제부터 잠을 못 이뤘던가 생각해 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어렸을 때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잘 자는 볼 빨간 아이였다는 것만 생각날 뿐이었다. 그녀가 가장 많이 중얼거리는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는 오늘도 반복됐고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변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는 것을 슬퍼했다.그녀가 아슬아슬하게 램수면 상태로 진입하기 직전, 어디선가 펑! 하는 소리가 들렸다. 텔레비전에서 자동차 추격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그제야 그 방에 아버지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버럭 짜증이 났으나 어쩔 도리가 있을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그녀의 아버지는 며칠 전 그녀 앞에 나타났다. “왜요?” 아버지는 까만 귤 봉지를 내밀며 말했다. “너 이거 좋아하지?” 한참 후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며칠만 있자" 그녀는 마음속으로 안 된다고 끊임없이 외쳐댔으나 결국 “그러세요” 라고 대답했다. 그 후 아버지는 그녀의 방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새벽마다 펑, 펑, 폭죽처럼 터지는 텔레비전 소리에 간신히 들곤 하던 잠을 더욱 설치게 되었다. 아버지가 텔레비전에 중독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매일 밤 집에 돌아와 방바닥으로부터 반쯤 솟아오른 아버지의 상반신을 봤다. 이불에 감춰진 아버지의 하반신이 저 밑 콘크리트 속으로 한없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매초 삼백만 개의 점이 쏟아지는 화면은 주시하면서, 딸이 잠 못 드는 단 한 가지 사실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아버지. 그녀는 불을 끈 뒤 작은 요로 들어가 아버지로부터 등을 돌리고 누웠다.자식을 말려 죽일 셈인가. 몇 년 만에 불쑥 찾아와 놓고 꼭 자식이 잠 못 드는 수만 가지 이유에 다른 이유 하나를 추가해야만 한단 말인가. 일주일 동안 거의 자지 못했다. 그녀는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그녀를 잠 못 들게 하는 것이 아버지가 보는 텔레비전인지 텔레비전을 보는 아버지인지 알 수 없었다.그녀는 오직 텔레비전만 없어진다면 아주 달고 깊은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날, 아버지가 화장실에 간 사이 텔레비전 유선을 싹둑 잘라버렸다. 그것은 과거, 아버지가 그들 가족과의 관계를 끊었던 것처럼 잘 잘라졌다.달콤한 잠을 기대했던 밤에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짜증이 났다. 그녀는 뒤척이며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는 주문을 외웠다.불 꺼진 텔레비전 위에 만 원짜리 열장을 두고 나왔다. 두고 온 돈을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반지하로 통하는 계단을 내려간다. 언제나 그 정도의 습도와 온도 모두 그대로였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그녀가 상상하던 아버지의 하반신이 그녀가 없는 사이 그곳에서 뿌리째 걸어 나갔다는 것뿐이었다.그녀는 온전한 자신의 방에서 다시 잠을 청할 수 있게 되었다. 1부터 세다 87에서 그만두고 옆으로 자세를 틀었다. 그녀의 머릿속에 또 무언가가 떠오른다. 옛날 남자친구는 그녀의 다리가 발목만 얇다 하여 ‘닭다리’라고 놀렸다. 닭고기 생각이 난다. 자신은 닭의 목부분을 가장 좋아했다. 어릴 때, 아버지는 어디서 구해왔는지 닭 모가지만 열 개가 넘게 담긴 상자를 내밀고 술냄새를 풍기며 곯아떨어지곤 했는데... 그녀는 아버지라는 잡념에 덜미를 잡힌 채 허둥댔다. 혹시 그 돈의 의미를 ‘차비’로 안 건 아닐까? 유선을 끊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가달라는 정중한 표현이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그녀는 덜컥 걱정이 됐다. 아니 그것은 걱정보다 억울함이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오해를 못 견디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꿈을 꾸었다. 장소는 눈이 함박 쌓인 동네 놀이터. 다섯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와 젊은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버지는 숟가락처럼 생긴 아주 커다란 플라스틱 삽 머리 부분에 아이를 번쩍 들어 앉혔다. 아버지는 삽의 손잡이를 잡고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아이의 얼굴 모두 바알갛게 상기돼 있었고, 아버지의 하반신은 몹시 싱싱하고 단단해 보였다. 삽 속에는 어느새 그녀가 앉아 있었다. 하나 이상한 것은 꿈은 겨울이고, 움직이는 것은 아버지였는데 아버지가 그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 힘들게 움직일수록 많은 땀을 흘리는 것은 그녀라는 사실이다.그녀는 자신의 땀이 식을 때 즈음 그 차가움에 놀라 스스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매우 아득한 꿈이므로 그녀는 그 꿈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잠 못 드는 수만 가지 이유 중 진짜 이유가 뭘까 고민할 것이다. 그런 뒤 그녀는 서럽게 울지도 모르고 어쩌면 한 번 더 자세를 틀며 “진짜 이유 같은 건 없어”라고 중얼거릴지도 모른다.Copyrightⓒ 유용선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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