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들>(편혜영)
다이제스트: 선다혜
여자의 것으로 보이는 시체 일부가 발견되었다고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아내가 실종된 지 한 달가량 지나서였다. 아내가 익사한 곳으로 추정되는 계곡이었다. 발견된 것은 오른쪽 다리였다. 그는 아내의 오른쪽 다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아내의 다리에는 아내가 혹처럼 여기는 섬유종이 달려 있었다. 그는 아내의 어느 쪽 다리에 섬유종이 있는지 몰랐다. 십년을 같이 산 아내의 몸뚱이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다니. 그는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당장 U시로 출발했다.담당형사가 자리를 비운 사이 그는 대기실에 놓인 의자에 앉아 눈을 붙일 요량이었다. 비에 젖은 신발을 끄는 그림자가 다가올수록 비릿한 날것의 냄새가 풍겼다. 검은 그림자를 계속 응시했다. 아내가 물에 젖은 오른쪽 다리만으로 힘겹게 걸어오고 있었다. 놀라서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 형사가 흔들어 깨웠다.다리는 사람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썩어 있었다. 저것은 누구의 다리일까. 그는 숯처럼 까맣게 다리를 매단,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자를 떠올렸다. 다리는 모든 여자의 다리일 수 있어도 아내의 다리일 리는 없었다. ‘아내가 아닙니다. ’그는 형사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오른쪽 다리는 계곡하류에서 낚시를 하던 사내에게 발견되었다. 형사는 그에게 아내가 다리 수술을 한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아니요, 없습니다.’ 대답을 하고 난 후에야 아이 때나 그를 만나기 전에 수술을 했었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아내가 실종된 것은 처음 낚시를 하러 간 날이었다. 아내는 유난히 이끼가 심한 바위 위에 섰다. 얼마 전 내린 폭우로 물이 전보다 두 배 이상 깊어진 것을 몰랐다. 물에 빠진 아내는 순식간에 휩쓸려 아래로 떠내려갔다. 아내의 실종으로 그는 경찰의 추궁에 아내를 계곡으로 떠밀지 않았다는 말을 계속 반복해야 했다. 형사는 아내가 실종된 것으로 결론지었다.건물은 이미 폐기물이나 다름없었다. 사십년이 지나는 동안 건물은 쇠락할 대로 쇠락했다. 처음의 징후는 회사에서 주상복합 건물을 짓는다는 것이 발표된 직후였다. 그와 아내는 건물의 일층에서 생선백반을 팔았다. 가게는 그와 아내가 십 년 동안 일군 유일한 생명체였다. 처음에 가게를 키운 것은 그들이었지만 나중에는 가게가 그들 부부를 키웠다.아내는 손님들에게 줄 생선조림이나 구이에서 눈알을 떼어 조림한 요리를 즐겼다.셔터를 올리고 가게 문을 열자 생선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는 냉동고에서 아내가 생선눈알만 담은 비닐봉지를 찾아내었다. 대부분 눈자위가 썩어 문드러져 있었다. 그는 그나마 형체가 온전한 것을 골라 입에 넣었다. 그는 그제서야 울음이 터져 나왔다. 아내가 죽은 게 틀림없다는 확신이 갑자기 닥쳐왔다.U시 경찰서에서 왼쪽팔과 손을 찾았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아내의 얼굴에서 차갑고 무뚝뚝해 보이던 입매만 떠올랐다. 그러니 왼쪽 손을 기억하는 것이 쉬울 리 없었다. 그 때 아내가 끼고 늘 끼고 있던 반지가 떠올랐다. 사체의 손가락이 온전히 남아 아내의 반지가 끼어져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칼을 잘 쓰던 아내였지만 종종 손목을 베었다. 발견되었다는 왼쪽 손목에 날카로운 것으로 찔린 흉터가 있다면 아내인 것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아내의 몸의 특징을 찾아냈다는 데에서 희열을 느꼈다. 아내가 다시 나타난다면 몸 구석구석을 정밀하게 들여다보리라고 마음먹었다. 그런 후라면 아내가 사지가 찢긴 채로 죽음을 맞더래도 아내인 것과 아내가 아닌 것을 분명히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형사는 먼저 사과부터 했다. 그는 이번에 발견된 팔목이 아내의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삼켜 넣으며 아내의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형사는 고개를 주억거렸다.익사체가 발견되면 그는 다시 U시에 와야 할 것이다. 그는 형사의 말을 듣는 내내 아내의 손에 대해 생각했다. 경찰에서 본 것은 단지 썩은 사체의 일부였다.전기가 끊긴 가게는 어두웠다. 그는 냉동고에서 눈알을 꺼냈다. 썩은 것을 볼 때마다 물 아래서 썩어갈 아내의 몸이 떠올렸다. 그 때 주방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검은 그림자가, 아내가 너덜너덜해지고 시커멓게 죽은 왼손으로 생선을 다듬고 있었다. 아내는 생선 눈알을 입에 넣은 채 그를 힐끗 쳐다보고 시야 너머로 서라졌다. 그는 아내의 칼을 챙기고 도마 위에 놓인 썩은 눈알을 골라 입에 넣었다.아내의 두상을 찾았다는 전화가 왔을 때 그의 가슴은 세차게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아내의 두상이 발견되었다. 형사는 아내의 두상이 형편없이 망가졌다는 것을 길게 돌려 말했다. 그는 곧 내려가 보겠다고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경찰서로 가기 전에 아내가 떨어져 죽은 계곡으로 차를 몰았다. 아내와 함께 갔던 곳은 어딜까. 정확한 위치는 기억나지 않았다.그는 낚시꾼들을 향해 좀 더 다가갔다. 낚시꾼들은 계속 무엇인가를 건져 올리고 있었다. 한 사내가 건져 올린 것은 팔이었다. 그 옆에 사내는 엉덩이를 건져 올렸다. 여러 명이 힘겹게 끌어 올린 것은 거대하게 부푼 몸통이었다.그는 발을 헛디디면서 계곡 아래로 떨어질 뻔한 것을 고목의 밑동을 잡아 간신히 버텼다. 미끄덩거리는 덩어리가 머리에 닿자 그것들을 떼어내려고 손사래를 치다 계곡 아래로 떨어졌다. 그는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여기저기 내걸린 낚싯줄을 붙잡았다. 그를 향해 내던진 낚싯바늘이 머리통 한가운데 걸렸다. 찌가 올려지면서 살갗이 조금씩 벗겨졌다. 그는 서서히 위쪽으로 끌어 당겨졌다. 그는 낚시꾼들이 건져 올린 다른 몸통과 마찬가지로 큰 어망 속에 담겼다. 그는 상처 난 몸을 땅에 댄 채로 누워 밤의 계곡소리를 들었다. 윙윙거리며 소용돌이치는 것이 아내의 흐느낌처럼 들렸다.그의 몸 위로 구더기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그는 깜깜한 밤의 계곡에 매장되었다.Copyrightⓒ 유용선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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