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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다이제스트

<굽이치는 강가에서>(온다 리쿠)

작성자글사람|작성시간13.02.11|조회수40 목록 댓글 0

<굽이치는 강가에서>(온다 리쿠)

 다이제스트:  유다은

 
  짧은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겠다. 아무도 모르는 그 이야기를, 지금 너한테만.

  제1장 개망초 - 마리코

  가스미와 요시노, 두 선배에게 야외음악당에 쓸 배경을 그리기 위해 합숙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고 무척 흥분했던 일을 기억한다. 그 날이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결국 이 집, 오래 전 이 집에 살던 사람이 죽고 같은 날 음악당에서 여자아이가 죽고, 십여 년 넘게 비어 있었던 집에 오고야 말았다. 얼마 되지 않아 요시노 선배가 왔고 곧 가스미 선배도 왔다.
  케이크를 먹고, 배경을 그리고, 수다를 떨며 나는 행복했다.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다음날, 쓰키히코와 아키오미. 두 소년이 왔다. 내가 독차지하고 있었는데. 밤늦게 가스미 선배가 체스를 하자고 해서 교본을 찾으러 가스미 선배의 방으로 갔다. 아키오미가 쫓아 와선 마당으로 나가자고 했다. 
  가즈코도 네가 좋은 거야, 그러니 초대했겠지. 가스미야. 아니 가즈코야. 넌 여러 가지를 잊고 있어. 음악당에서 떨어져 죽은 여자아이라던가. 가즈코는 네가 기억하길 기다리는 거야. 무슨 기억을? 아키오미가 웃었다. 네가 우리 누나를 죽인 일 말이야.

  제2장 켄타우로스 - 요시노

  하루사이에 마리코는 상처 입었다. 원인은 곧바로 알 수 있었다. 아키오미 때문이다. 그 상처 때문에 마리코는 열병이 나고 말았다. 식욕이 없다고 해서 약을 먹게 한 다음 재웠다. 밥을 먹고 느닷없이 가스미가 포도주를 들고 나왔기에 아키오미가 건배를 했다. 이제는 없어진 것을 위해. 뭐가 없어졌지? 아, 개다. 이름이 아마 켄타. 켄타우로스. 작은 방울을 달고 있던 개, 무서운 개, 새까만 개, 무거운 개. 어떻게 나는 그 개가 무겁다는 걸 알고 있지? 음악당 지붕 위에서 누나가 사다리를 타고 내려오려고 했어. 아키오미가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다리가 쓰러졌어, 누나도 같이. 내가 죽였다는 말이잖아. 마리코였다. 
  미안해요. 엿들을 생각 없었어요. 마오코에게 전화하고 오는 길이에요. 나, 누워있는 동안 어렴풋이 기억났어요. 그네를 타는데 방울 소리가 들렸어요. 개가 보고 싶었어요. 숲 안으로 들어갔어요. 뭔가 발견하고 잡아당겼어요. 누가 떨어졌어요! 내가 죽인 거예요. 미안해요. 마리코는 가스미의 팔 안에서 몸부림 쳤다. 아냐, 네 탓이 아냐. 내가 알아, 알고 있다니까. 가스미가 신음하듯 말했다. 그날 밤, 두 사람은 같은 방에서 잤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나는 모른다. 다음 날 마리코와 가스미가 마오코의 마중을 나가겠다고 했다. 
  요시노. 가스미가 나를 불렀다. 사랑해, 너뿐이야. 멋쩍게 웃고 가스미는 달려 나갔다. 둘은 한참이고 돌아오지 않았다. 벨을 울린 것은 마오코였다. 사고, 사고가 났어요. 삼중추돌이었대요. 마리코는 지금 수술하고 있어요. 가스미는? 요시노, 사랑해. 가스미 선배는.. 너뿐이야. 병원으로 실려 가던 중에 죽었어요.

  제3장 사라반드 - 마오코

  마리코는 무사했다. 가스미 선배의 장례식이 끝나고 요시노 선배와 유품을 챙기러 갔다. 학교에서 끝내 울부짖고야 마는 요시노 선배를 보며, 나는 결심했다. 마리코 대신, 이야기를 듣겠다고. 이 사람 옆에 있겠다고. 완성된 배경을 들고 야외 음악당에 갔다. 무대는 갖춰졌다. 
  요시노 선배와 쓰키히코가 무대 양 끝에 섰다. 가스미의 이야기, 어쩌면 상상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이야기, 하지만 진실의 조각들이 보여준 유일한 이야기, 아빠를 사랑했던 가스미가 부정한 어머니를 처벌한 이야기, 그 도구였던 개를 가스미와 요시노가 묻었던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나는 지켜보았다. 제 3자로서, 유일한 외부인으로서 모든 것을 보았다.
  그렇게, 우리의 여름은 끝났다.

  제4장 자장가 - 가스미

  어젯밤, 마리코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그렇다. 엄마의 목소리를, 그네 옆에서 그 목소리를 듣고 내가 했던 모든 일을, 엄마의 자살을 도운 일을 털어놓았다. 나는 엄마를 쏙 빼닮았고, 엄마가 왜 죽고자 하는지 알았다. 엄마는 사랑하는 아빠를 망치기 위해 죽고 싶어 했다. 나는 아빠를 좋아했지만 그보다 엄마를 더 좋아했기 때문에 엄마가 부탁한 일을 모두 해냈다. 엄마가 마신 포도주 병을 버리고, 요시노와 함께 켄타도 묻었다. 그리고 엄마는 죽었다. 
  눈부신 햇살에 눈이 번쩍 떠졌다. 왠지 용기가 불끈 솟았다. 오늘은 오래도록 벼려왔던 말을 요시노에게 꼭 하리라. 널 사랑한다고 항상 옆에 있어줘서 내내 고마웠다고. 그리고 나는 이 여름의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고, 언젠가 먼 훗날에 누군가에게 살짝 얘기해주고야 말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를 지금 너한테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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