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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다이제스트

<가짜>(로맹 가리)

작성자글사람|작성시간13.02.11|조회수98 목록 댓글 0

<가짜>(로맹 가리)

  -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中

 다이제스트:  이은실

 
 어렵게 손에 넣은 렘브란트의 그림이 걸려있는 S의 서재에 바레타가 찾아왔다. 살집이 있고 체격이 좋은 사내였다.  S가 말했다. “당신의 반 고흐 그림은 가짜요.”
  “이보시오. 당신의 영향력은 막강하오. 재정적 영향력까지 과시하고 있지 않소. 그런 사람이 그 그림에 대해 온갖 증거로 가짜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당혹스러운지 아시오? 이번 사건에서 맞서지 말아 주시오. 난 그 그림에 대해 삼십만 달러나 지불했소.”
  “이보시오. 내가 그 그림을 사지 않아서 전문가들의 의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대신 내가 사지 않아서 당신의 손에 들어가지 않았소? 뭐가 문제라는 거요?”  S가 말했다.
  “당신이 압력을 가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바레타가 애원이라 할 만한 눈빛으로 S를 바라보았다.
  “이보시오. 이건 작품의 진위에 관한 거요. 세상은 속고 속이는 것이 기승을 부리지. 하지만 나에게 작품의 진위는 그 모든 것을 넘어서는 숭고한 종교 같은 거요. 난 타협할 수 없소. 반 고흐가 생전에도 배반당한 천재였단 사실을 당신도 알지 않소. 사후에라도 난 그를 배신으로부터 지켜낼 거요.” S가 말했다
  “말 다했소?” 바레타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런 당혹감을 내가 모르는 바 아니오. 하지만 그건 분명 가짜이니 당신의 높은 평판을 위해서라도 태워버리는 게 낫소.”
  S로서는 이 남자에게 동정심이 가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작품에 진위에 관한 문제였다. 작품의 진위를 가리려는 이런 욕구가 언제 어디서부터 기인했는지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는 자신의 부와 권력의 덕을 보는 주위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이 항구에서 도색 엽서나 팔던 부랑자가 출세했다고 말하는 쑥덕거림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출신을 잊으려고 진품을 구입한다고 수군댄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의 상선은 그리스인들의 상선들만큼이나 막강했다. 그런 그가 융숭하게 대접할 때면 그의 취향을 잘 알고 있는 명사들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명사들은 그가 제공하는 사치를 이용하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 가짜 친구들 가운데에서 그가 찾은 진품들이 그는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가짜 반 고흐 그림을 소장한 바레타에게 원한이 있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바레타는 그가 좋아하는 타입의 사람이었다. 자신의 가난의 흔적들을 진품으로 가리고 싶어 하는 그런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작품은 가짜가 확실했다. 
  “친애하는 선생, 팔켄하이머의 감정보고서가 내 책상에 있소. 당신이나 나나... 경제력이 넉넉하다고 다가 아니잖소. 우리 다 예술품에 대해 경의를 표해야 한다고 생각하오. 나에겐 그런 사기조작에 공모할 의사가 없으니 그렇게 알고 계시길 바라겠소.”
  “반드시 복수하겠소. 치사한 짓거리는 항구에서만 하는 게 아니란 걸 알게 될 거요.”
 바레타가 서재를 나갔다. S는 그가 자신에게 타격을 입힐 거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막강한 해운제국의 주인인 그를 누구도 위협할 수는 없었지만 바레타와의 대화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주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실에 있는 아내에게 다가갔다. 알피에라의 손을 잡을 때면 그는 언어로 굳이 표현하자면 ‘확실성’이라 불리는 어떤 것을 느꼈다. 
 “이제 나오시네요.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의상실과 해군박물관에 다녀왔어요. 무척 지루했어요.”
 그의 장인장모가 이탈리아에서 그녀를 보러 석 달 간 와 있는 중이었다. 
  그는 이년 전 레바논 대사관에서 아내를 만났다. 그녀의 등장은 사교계의 일대 파란을 일으켰었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자연이 빚어낸 완벽한 생명체 같았다. 눈과 입술은 빛나는 머리채 아래 조화로웠고, 섬세한 코는 경쾌한 터치를 부여함으로써 완벽한 차가움으로부터 그 얼굴을 구해주고 있었다. 알피에라는 보는 모든 이들은 한결같이 걸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다. 남자들의 열띤 시선과 찬사에 늘 당황했다. 그건 그녀를 돌본 수녀들의 책임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었다. 
  S는 알피에라보다 스물두 살 연상이었다. 하지만 이탈리아 남부의 평범한 공작인 알피에라의 부모는 나이차를 문제 삼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수줍은 많은 알피에라의 성격과 S의 강한 남성적 기질은 훌륭한 결합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알피에라와 만난 지 3주만에 결혼한 후 S는 일과 친구들과 그림을 소홀히 할 만큼 알피에라에게 푹 빠지게 되었다. 아무도 그 사내가 그토록 헌신적이고 얌전해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행복감으로 인해 그림들조차도 S를 알피에라에게서 빠져나오게 하지 못했다. 
  “당신 걱정이 있어 보여요.”
  “바로 잡을 일이 있다오. 위조된 작품에 대한 나의 공모를 얻어내려 하고 있소. 하지만 타협할 수 없는 원칙의 문제지.”
  “너무 가혹하게 대하시지 않는 게...” 그녀는 동요한 듯하기도 하고 서글픈 듯하기도 한 표정으로 그의 팔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으며 말했다.
   반 고흐 그림이 가짜라는 감정서가 언론에 개제되며 사건이 마무리 된 한 달 후 어느 날 S는 아무런 설명도 없는 사진을 받았다. 매부리코가 유달리 거슬리는 어린 소녀의 사진이었다. 휴지통에 버리고 곧 잊었지만 그 거슬리는 매부리코 소녀의 사진이 일주일동안 내내 배달되었다. “당신이 소장한 걸작은 가짜요.”라는 말도 함께. 자신의 수집품과 무슨 연관이 있을지 내내 생각하다가 소녀 사진의 두 눈과 입술 선에서 잠깐 시선이 멈추어 섰다. 순간적인 의혹과 함께. 
  그날 장인 장모와 알피에라와 함께 저녁식사를 할 때 그는 그 사진을 꺼냈다. 
  “여보 이것 좀 봐요. 아침에 우편으로 온 거요. 코가 너무 흉하지 않소?”
  알피에라의 얼굴이 갑자기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그의 장인은 하마터면 숨이 막힐 뻔했다. 장인의 콧수염이 날카롭게 곤두섰다. 장모는 포크를 든 채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S는 순간 장모의 코가 사진의 그것과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다행스럽게도 사랑스러운 그녀의 이목구비는 장모와 닮은 구석이 없었다. S는 떨고 있는 알피에라의 손을 쥐었다. 
 “왜 그러오, 여보?”
 “내가 숨이 막힐 뻔했다네. 그뿐이야.” 공작이 옆에서 거들며 말했다. 
 알피에라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애원의 눈빛을 담아 남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보, 난 알 수가 없소. 이 우스꽝스러운 사진이 왜......”
 우스꽝스럽다는 말에 알피에라는 온몸이 굳었다. 갑자기 그녀가 그의 품을 벗어나 달아나버렸다.
  방에 들어가 버린 알피에라가 흐느껴 우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리고 비서가 바레타 씨가 통화하고 싶다고 말을 전했다. 그는 내키지 않았지만 서재로 가 수화기를 받아 들었다.
 “무슨 일이오?”
 “당신 아내의 사진을 받으셨겠지? 팔레르모 수녀원에서 찍은 단체사진에서 그녀의 얼굴만 확대한 거지. 구하기 힘들었소. 그녀의 코는 열여섯 살 때 외과의사가 새로 만든 거요. 내 그림이 가짜라고 했소만, 당신의 걸작도 가짜 아니오?”
 야비한 웃음소리와 함께 그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책상 앞에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는 빈털터리 시칠리아 부부에게 농락당한 것이었다. 알피에라.. 그가 완벽하게 신뢰했던 사람이 사기의 도구이자 공범이었다는 사실에 그는 입술이 떨려왔다. 어느새 알피에라가 그의 앞에 와 있었다. 자신이 알던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 위에 흉한 매부리코가 겹쳐졌다. 
 “오 제발 절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요.....”
 가혹하고 가차 없는 무엇인가가 그의 마음속에 일었다. “진정합시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녀의 가짜 얼굴로 인해 이혼했다는 사실은 법정과 언론의 빈축을 샀다. 예심에서 기각된 이혼소송을 알피에라와 은밀하게 거래해 해결하고 나서야 그는 진품만을 원하는 그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었다. 현재 그는 거의 은둔생활을 하면서 수집품들에만 헌신하고 있다. 최근 경매에서 그는 라파엘로의 <푸른마돈나>를 손에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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