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빨개지는 아이>(장 자끄 쌍뻬)
다이제스트: 박소연
마르슬랭은 이상한 병에 걸렸다. 얼굴이 빨개지는 병.그 아이는 그래, 혹은 아니, 라는 말 한마디를 할 때에도 쉽게 얼굴이 빨개졌다. 물론 여러분은, 그 아이만 얼굴이 빨개지는 게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얼굴을 쉽게 붉힌다고 얘기할 것이다. 아이들이란 겁을 먹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대개 얼굴이 빨개지게 마련이라고, 그런데 마르슬랭에게 있어 심각한 문제는, 아무런 이유 없이 얼굴이 빨개진다는 것이었다.“내 얼굴이 빨개지고 있는 것 같아...”거울을 보고는“정말 빨갛네!”마르슬랭의 얼굴은 그가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주로 빨개졌다.반대로 당연히 얼굴을 붉혀야 할 순간에는 빨개지지 않았고…….왜 나는 얼굴이 빨개지는 걸까?그러나 마르슬랭이 사는 동네에는 요정이 없었다. 게다가 현대적인 대도시에는 많은 의사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그의 병을 치료해 줄 수 있을 만큼 솜씨가 뛰어나지 못했다.마르슬랭은 결국 계속 빨개지는 얼굴로 다녀야 했다.물론, 그가 정말 얼굴이 빨개져야 할 때를 빼놓고는…….조금씩 마르슬랭은 외톨이가 되어 갔다. 언젠가부터는 아이들이 자기의 얼굴 색깔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것이 점점 견디기 힘들어졌기 때문에 그는 혼자 놀기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마르슬랭은 바닷가에서 보내는 여름 바캉스 철을 항상 그리워했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 얼굴이 모두 함께 빨개졌고, 사람들은 빨개진 얼굴에 대해 만족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하지만 마르슬랭은 <그렇게까지> 불행하지는 않았고, 단지 자신이 어떻게, 언제 그리고 왜 얼굴이 빨개지는지를 궁금하게 여겼을 뿐이었다.어느 날, 마르슬랭은 계단에서 재채기 소리 비슷한 어떤 소리를 들었다.“에취”‘누가 감기에 걸렸나봐’하지만 곧 마르슬랭은 한 꼬마 남자 아이를 발견했다. 바로 그 아이가 그런 재채기 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너 감기 걸렸니 하고 마르슬랭이 물어보았다.“나? 아니. 왜?”그 아이의 이름은 르네 라토였고, 마르슬랭의 새 이웃이었다.꼬마 르네 라토는 아주 매력적인 아이였고, 우아한 바이올린 연주자였으며, 훌륭한 학생이었다. 그런데 르네는 갓난아이 때부터 아주 희한한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감기 기운이 전혀 없는데도 자꾸만 재채기를 하는 병이었다.르네는 마르슬랭에게, 이 귀찮은 재채기가 자기의 인생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얘기했다. 잔잔히 흐르는 강물과 새들의 부드러운 지저귐만이 그의 깊은 고통을 위로해 주곤 하였다. 아무도 그의 병을 치료하지 못했다. 요정도, 훌륭한 의사도. 하지만 르네는 <그렇게까지> 불행하지는 않았다. 단지 코가 근질거렸을 뿐이고, 그것이 그를 자꾸 신경 쓰이게 할 뿐이었다.그런데 그는 우연히 마르슬랭의 얼굴이 빨개진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그들은 오랫동안 얘기를 나누었다.“에취! 미안해..”“아니, 괜찮아! 난 네가 재채기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그날 밤 두 꼬마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서로 만나게 된 것을 아주 기뻐했다.그들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어 갔다. 그들은 함께 신나는 나날을 보냈다.학예회가 있던 그날, 아마도 이 세상에 마르슬랭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의 친구가 멋지게 바이올린을 연주한 후 정말로 좋은 반응을 얻었기 때문이다.르네는 마르슬랭이 부드러운 어조로 또박또박 훌륭하게 시를 읊어 내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기쁨을 느꼈다.그들은 정말로 좋은 친구였다. 그들은 짓궂은 장난을 하며 놀기도 했지만, 또 전혀 놀지 않고도, 전혀 말하지 않고도 같이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전혀 지루한 줄 몰랐기 때문이다.마르슬랭은 감기에 걸릴 때마다 그의 친구처럼 기침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흡족해 했다. 르네 역시 햇볕을 몹시 쬔 어느 날, 그의 친구가 가끔씩 그러는 것처럼 얼굴이 빨개져 버린 것에 아주 행복해 한 적이 있었다. 둘은 정말로 좋은 친구였다.그러나 (이 글자는 좀 더 까만색이다. 왜냐하면, 이어질 이야기들이 조금은 슬픈 것이기 때문이다.)어느 날, 마르슬랭은 할아버지 댁에서 지낸 후,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친구 르네의 집으로 뛰어 올라갔다. 르네 가족은 이사를 가고 없었다. 마르슬랭은 엉엉 울며 집에 왔다.“르네 라토가 떠났어요!”“르네가 너에게 편지와 자기 새 주소를 남겨 놓았단다.”그러나 여러분들은 부모들이란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부모들은 항상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고, 항상 시간에 쫓긴다.시간은 흘러갔고, 마르슬랭은 다른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마르슬랭은 르네 라토를 잊지 않았고, 자주 그를 생각했으며, 매번 그의 소식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 보여야지 하고 다짐했다. 하지만 어린 아이 시절엔 하루하루가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흘러가 버린다. 한 달 한 달도 마찬가지이고…….한 해 한 해도 마찬가지이다.마르슬랭은 나이를 먹어 갔다. 그는 여전히 얼굴을 붉혔다.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그는 항상 조금 얼굴이 새빨개진 채로 다녔다. 어느덧 어엿한 어른이 되었지만 변함이 없었다.그는 모든 사람들이 뛰어다니는 대도시에 살게 되었고, 그도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뛰어다녔다.어느 날 그는 비를 맞으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약속 시간 때문에 몹시 초조해 하고 있었는데, 감기에 걸린 불쌍한 한 남자가 끊임없이 기침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그 감기 환자를 쳐다보았다.그리고 (이 글자가 왜 분홍색으로 씌어졌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바로 라토였다.무척 노력해 보았지만, 두 친구가 느꼈던 기쁨을 여러분에게 설명하기란 내겐 도저히 역부족이다. 그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들은 멋진 하루를 보냈고 몇 가지 계획들도 세웠다.내가 여러분을 우울하게 만들 생각이었다면, 이제부터 여러분에게 이 두 친구가 자신들의 일에 떠밀려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려 했을 것이다. 사실, 삶이란 대개는 그런 식으로 지나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나고, 매우 기뻐하며, 몇 가지 계획들도 세운다. 그리고는, 다신 만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간이 없기 때문이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며,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이다. 혹은 다른 수많은 이유들로. 그러나 마르슬랭과 르네는 다시 만났다. 게다가 그들은 아주 자주 만났다.“무슨 일이죠? 내가 일하는 중인 건 알고 있죠?”“예 그럼요. 그런데 이분은 재채기하는 선생님이라서 지난번에 이분이 전화하시면 곧바로 바꿔달라고 하셨거든요”그들은 토요일과 일요일이 되면, 영원히 성공할 것 같지 않을(그리고 해롭지도 않을)사냥을 나갔다. 또 짓궂은 장난도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결코 지루해 하지 않았으니까.Copyrightⓒ 유용선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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