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김영하)
다이제스트: 김미정
당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내는 이 편지를 쓰는 동안 저는 <라보엠>을 듣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추운 파리의 다락방에서 로돌포가 폐병에 걸린 미미의 손을 잡으며 부르는 곡. <그대의 찬 손>. 아마 당신은 기억할 수 없으실 테지만 우리가 처음 만난, 한강변이 내려다보이던 그 카페에서도 틀어주었던 바로 그 곡입니다.자유. 당신은 자유, 하면 무슨 말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반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비누질을 할 때, 반지 사이에 비누가 끼기도 하고 얼굴을 부비거나 할 때 작은 생채기를 내기도 했지만 저는 점차 그 반지에 익숙해졌더랬습니다. 그렇게 제가 완전히 그 반지에 익숙해질 무렵이 되자 그 사람은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때야 저는 왼손 약지를 압박하는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불안감을 아세요? 반지가 영원히 빠지지 않을 거라는. 별의별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반지는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느라 손가락은 더 부어만 갔을 뿐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어느덧 그 반지에 길들어갔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그 조그만 반지에 갇혀있었던 거지요.
어느새 <그대의 찬 손>이 끝났네요. 로돌포가 미미를 버리고 거리를 헤매고 있는 참인가 봐요.
그날 당신은 그 카페에 먼저 나와 있었습니다. 제가 들어서서 당신에게 인사를 건네자 앉은자리에서 손만 불쑥 내밀어 악수를 청해왔었지요.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먼저 차가운 물에 손을 담갔다가 뜨거운 물로 갑자기 옮겨가면 그 뜨거운 물이 순간적으로 차갑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악수를 나누던 당신의 손에서 저는 그런 혼란을 감촉했습니다.
손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손을 성형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손에는 옹이가 박입니다. 손에 굳은살이 박이지 않은 사람을 쏘아 죽였다는 폴 포트가 기억납니다. 손에 대한 제 믿음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일러주는 게지요.
그날 저는 당신의 집으로 갔습니다. 당신의 컴퓨터 옆 카피홀더에 꽂혀 있던 한 장의 복사물. 그 카피홀더에는 당신의 오른손이 복사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당신께 졸랐습니다. 그 복사물을 탐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제 방에 잘 걸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걸어놓은 당신, 이라는 사람에게 저는 난생처음으로 위안다운 위안을 받으리라는 예감을 느꼈습니다.
눈, 저는 눈을 믿지 않습니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기보다는 스크린입니다.
그 사람의 손을 기억합니다. 저는 그 사람에게 그 기쁨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새벽마다 경험하는 음의 잔치에 대해,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몰입에 대해 말이지요. 그러자 그 사람이 제 연주를 듣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열정>을 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날 오후, 저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 곡을 밤늦게까지 연습했습니다. 오로지 저만을 위해 지내왔던 연습실의 일상이 갑자기 그 사람을 위한 시간으로 변모된 거예요.
며칠 후, 그 사람은 연습실에 따라왔습니다. 그이는 제 등 뒤에 바싹 붙어 서서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눈을 반쯤 감은 채 그이의 시선을 즐기고 있었구요. 그런데 그때 그의 손이 제 목덜미에 와 닿는 것이었어요. 저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그는 저를 연주했어요. 전 음악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알았어요. 화가 났습니다. 연주를 제대로 끝마치지 못했다는 것에 대해서.
그 사람이 말합니다. 내 눈을 봐. 그건 모두 헛소문이야. 나를 믿어. 그때의 저는 그이의 눈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믿었습니다. 이제 저는 자신의 눈을 보라는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습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제 친구도 그 사람을 위해 어떤 곡인가를 연주했음을, 그리고 그에게 연주당했음을.
저는 요사이 조각을 배우고 있습니다. 놀라셨군요. 그래요. ‘그 사건’ 이후로 시작한 일입니다. 이상적 현실도 현실적 이상도 아닌, 그 둘 사이를 진동하는 손을 만들고 싶습니다. 당신의 손에서 제가 느꼈던 혼란스러운 기분, 연습실에서 그 사람의 손이 제게 불러일으켰던 돌개바람 따위.
이제 <라보엠>을 그만 들어야겠습니다. 이 편지를 쓰는 동안 벌써 다섯 번은 더 들은 것 같아요. 폐병쟁이 미미는 이미 여러 번 죽었고 로돌포가 그때마다 울부짖는 것도 듣기 괴롭습니다.
이제 당신이 늘 궁금해 하시던 ‘그 사건’에 대해 이야기해야할 차례인 것 같아요. 그때는 당신이 결혼하기 전이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공연하던 대학로의 소극장으로 갔습니다. 세 달간이나 장기 공연을 하던 그 어둡고 습기 찬 소극장에 저는 여러 번 갔었습니다.
<너희들의 제국>.
당신의 그 연극이 막을 내리던 날, 비로소 당신의 남편이 될 사람을 만나고야 말았습니다. 저는 그때 연습실에서 저를 연주하던 그 선배를 생각했습니다. 대학교 삼학년 때부터 머리를 기르기 시작하더니 졸업하자마자 항공사 승무원과 결혼해버린 그 여자를 생각했습니다. 언젠가 우연히 백화점에서 쇼핑백을 가득 끌어안고 나오는 그 선배를 만나서 차를 마신 적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언제나 해외에 있어. 그게 편해. 그런데 당신의 결혼 소식은 그보다 더 아팠습니다. 이상하죠? 당신은 한 번도 그 선배처럼 세상의 끝과 바닥을 보여준 적이 없었는데.
그날 뒤풀이에서 돌아와 여러 사람의 손을 생각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둘러보고 나서야 저는 난생처음 제 손을 골똘히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낯설 수가! 저는 그동안 한 번도 제 손을 정면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예요.
그제야 십 년 동안 제 왼손 약지를 멍들이며 조여 왔던 그 반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반지는 기생충이고 저는 숙주가 된 느낌. 망치를 꺼내고 그것을 조심스럽게 들어보았습니다. 그러고는 망치로 제 왼손을 내리쳤습니다. 왼손 약지가 뭉그러지면서 살갗 밖으로 허연 뼈가 드러났습니다. 그제야 고통이 현실감과 그에 합당한 부피를 가지고 퍼져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프면서도 어쩐지 시원한.
이게 전부입니다. 너무 싱겁나요? 저는 두 손가락이 뭉그러진 제 왼손을 조각할 거예요. 그 속에는 제가 그동안 탐해왔던 모든 손들의 그림자가 깃들어 있을 거라고 믿어요.
아, 석고가 적당히 굳었군요. 다시 일을 시작해야 할 시간입니다. 부디, 건강하세요,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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