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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다이제스트

<참 쉽게 배우는 글짓기 교실>(김언수)

작성자유용선|작성시간14.05.10|조회수436 목록 댓글 0

<참 쉽게 배우는 글짓기 교실>(김언수)


 다이제스트:  이송은

 
  평범한 금요일 저녁이었다. 퇴근을 했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막 주차하려는 중이었다. 그때 낡은 중형차 한 대가 후진을 하면서 내 차를 받았다. “죄송합니다.” 차에서 내린 사내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양복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전기충격기였다. 웬 전기충격기? 하는 순간, 눈앞에서 뭔가 번쩍했다. 
  깨어나 보니 나는 구겨진 옷가지마냥 자동차 트렁크 속에 처박혀 있는 것이다. 납치인가? 나 같은 사람을 납치해서 뭣에 쓰려고?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친 듯이 오줌이 마렵다는 것이다. 그냥 바지에 오줌을 쌀까? 생각도 해봤다. 그래도 그건 아니다. 용기를 내자. 나는 발을 들어 트렁크를 차기 시작했다. 차가 멈춰 섰다. 트렁크 문이 열린다. 검은 양복이 나를 노려본다. 내가 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검은 양복이 주머니에서 전기충격기를 꺼냈다. “아! 이 새끼 존나게 시끄럽네.” 검은 양복이 내 목에 전기충격기를 갖다 댔다. 번쩍!

  눈을 떴을 때 나는 결국 바지에 오줌을 지린 채로 치과 수술용 의자 같은 곳에 묶여 있었다. 카키색 양복이 나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대체 나를 여기 왜 끌고 온 겁니까?”
  카키색 양복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 같은 사람을 왜 잡아왔을까? 내가 왜 여기에 끌려와 있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했다. 이런저런 생각 끝에 나는 결국 기관에서 사람을 잘못 체포해온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나, 송정오란 사람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소? 난 당신들이 찾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니까. 빨리 신원이나 확인하고 그냥 집에나 가게 해주시오.”
 카키색 양복이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이름 송정오, 나이 32세, 복숭아 알레르기. 너희 아버지 송만길은 1997년까지 열한 명의 탈북자들을 암살했지. 그리고 송정오 너는 지난 3월 7일. 워커힐 호텔 4903호 복도 앞에서 소음기를 단 토카레프, 일명 떼떼 권총으로 김석산을 암살했고.”
  “헛! 김석산이 누군데요?”
  “전 노동당 상무위원.”
  노동당, 암살, 토카레프……나는 갑자기 피식 웃음이 튀어나왔다.
  “하하. 선생님들이 뭘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으신 것 같은데요. 소음기 장착 토, 토카레? 이거 거의 명작 동화네요. 명작 동화. 하하……”
  검은 양복이 안 되겠다는 듯이 고개를 살짝 저었다.
  “어이, 김과장. 장비 준비해.”
  검은 양복이 치과 수술용 의자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 옆에 있는 전자장비에 전원을 넣었다. 나는 문득 겁이 났다. 지금 분위기로 봐서는 고문이라도 시작될 분위기였다. 이 사람들은 나를 간첩으로 착각하고 있다. 지금 당장 무슨 변명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너무나 공포에 질려 있어 머릿속에서 아무런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준비 다 되었습니다, 부장님.”
  카키색 양복이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마치 텔레비전을 켜듯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순간 손가락에서 무언가 지나갔다. 극심한 고통에 소리도 지를 수 없었다. 마치 수천 개의 면도날들이 미친 듯이 날뛰며 장기들을 잘라내는 것 같았다. 내가 사지를 비틀며 경련을 하는 동안 검은 양복과 카키색 양복은 설렁탕을 시켜서 점심을 먹었고, 담배를 피우기도 하고, 여직원과 농담을 하기도 했다. 열시간만에 장비가 멈췄을 때 카키색 양복이 다가와서 말했다.
  “넌 살인범이지?”
  “네, 저는 살인범입니다.”
  내가 울면서 말했다.
  “넌 간첩이지?”
  “네, 저는 간첩입니다.”
  검은 양복이 장비에서 나를 풀어주었다.
  “그럼 이제부터 진술서를 쓰게나. 자네는 여기에 나와 있는 기사와 자료들을 보고 모든 의혹들을 말끔하게 풀어줄 수 있는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진술서를 써야 한단 말이야. 알겠나?”
  나는 다시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열두 시간 후에 오겠네.”

 도대체 진술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세 시간도 넘게 방 안을 어슬렁거리기만 했다. 나는 북한 공작원이다. 나는 암살범 송정오다. 나는 암살 전문 공작원이다. 그렇게 세 시간을 중얼거리다가 다시 책상에 앉았다. 머릿속에 떠올렸던 암시들을 생각하며 펜을 잡고 진술서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암살범이다……

 “이 개새끼야.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야. 김과장, 이 새끼는 말로 해서는 안 되는 놈이야. 장비에 집어넣고 열두 시간쯤 돌려.”
 나는 너무나 공포에 질려서 바지에 오줌을 지렸다.
 “잘 쓸게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세요. 정말이에요. 제발 장비에만 넣지 말아주세요.”
 나는 눈물 콧물까지 흘려가며 사정을 했다. 그러자 카키색 양복이 슬쩍 웃었다.
 “좋아. 그럼 한 번 더 기회를 주지. 명심해, 암살범처럼 거칠게 써, 거칠게!”
 나는 “예” 하고 잘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다시 책상에 앉았다. 그리고 글을 쓰기 위해 다시 방 안을 어슬렁거렸다. 나는 거칠다. 나는 암살 전문 공작원 송정오다……

 그 후로 몇 달인지 모르는 동안 카키색 양복은 매일 열두 시간에 한 번씩 들어왔다. 좋은 시절도 있었고 나쁜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대체로 카키색 양복은 나의 진술서를 보고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날마다 진술서 속의 이야기들을 상상하고 느끼고 호흡했다. 그러자 진술서의 세계가 점점 좋아졌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더 이상 나에게 암살범이라는 가짜 암시를 주지 않아도 되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 나는 검은 양복 사내를 처음 만났던 지하주차장 바닥에 누워 있었다. 가죽 잠바를 입은 두 명의 사내가 나에게 걸어와 물었다. “송정오 씨입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른쪽에 서 있던 가죽 잠바가 다짜고짜 내 팔을 뒤로 꺾고 수갑을 채우며 “당신을 김석산 살인 혐의로 체포한다”고 말했다. 가죽 잠바들은 나를 탁자가 있는 방으로 데려다주었다. 
 잠시 후 금테 안경을 낀 사내가 노트북을 들고 와서 내 앞에 앉았다.
 “이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금테 안경은 머리를 박박 긁고는 “이거 오늘밤 안에 진술서 쓰기는 글렀네.”하고 투덜거렸다. 그때 갑자기 전등에 불이 들어오듯 내 눈이 번쩍 뜨였다.
 “지금 진술서를 쓰려고 하는 건가요? 그건 제가 써야 해요. 아무렇게나 쓰면 안 되거든요. 노트북만 주세요.”
 나는 노트북을 내 앞으로 끌고 와서 진술서를 쓰기 시작했다. 나는 두 시간도 걸리지 않아서 진술서를 다 썼다. 진술서를 다시 읽어보고 ‘이것은 내가 쓴 진술서 중에서 최고군!’하고 생각했다. 가장 늙어 보이는 수사관이 “범인이 맞는 것 같기는 한데, 어쩐지 좀 꺼림칙하군.” 했다. 나는 ‘꺼림칙하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가 부족한가요? 부족한 부분을 일러주고 자료집만 주세요. 제발 장비에만 올리지 말아요. 더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써드릴 수 있어요. 정말이에요. 자료집만 주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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