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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다이제스트

<러브 미 텐더>(에쿠니 가오리)

작성자장용현|작성시간14.08.18|조회수216 목록 댓글 0

<러브 미 텐더>(에쿠니 가오리)

 다이제스트:  장용현

 

내가 놀란 건, 부모님이 이혼할지도 모른다는 것 때문이 아니다. 그것 때문이 아니라 내게 엄마가 한 이야기즉 엄마의 병이 그렇게까지 깊어졌다는 데에, 놀랐다.

"위혼한대도 위자료 따윈 필요 없어. 너도 알다시피 난 좋은 아내가 아니었잖니."

 "바보 같은 소리하지 마. 위자료 한 푼 없이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 사람이랑 살 거야매일 밤 전화해주는 거 보면, 나한테 푹 빠졌나봐."

 "……그 사람? 엄마, 괜찮은 거야?"

 엄마는 건조한 목소리로 괜찮다고 말했다.

 "그 사람이라면?"

 남편의 반응이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편은 진지한 얼굴로,

  "병원에 한번 모시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라고 신문을 펼친 채 말했다. 남편과 아들을 보내고, 2층 책장에서 [가정의학]서적을 빼냈다. '노인성 치매-뇌의 노년성 변화로 인해 노인에게 발생하는 일종의 정신병. 기억이 감퇴하고 성격도 변화한다'

 암단한 기분이었다. 엄마는, -이건 우리가 엘비스 프레슬리를 부르는 별명이다.-을 열렬히 사모하고 있다. 팬이나 오빠 부대 정도가 아니다. 엘피 플레이어에선 엘의 달콤한 목소리가 흘러 나오고, 집안은 엘의 사진으로 꽉 차있다. 늦게 배운-30살부터였다-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지만, 엄마의 경우는 좀 심하다아빠는 앞치마가 잘 어울리는 현모양처라고 결혼을 했을 것이다그런데 어느날 머리를 볶고, 댄스홀에 나서는 엄마를 보며, 아빤 앨비스를 꽤 원망하셨으리라.

 엘이 사망하던 무렵인 19778월은, 우리 가족에겐 하루하루가 공포의 나날이었다. 엄마는 곧 죽을 것처럼 울다가 돌연듯 '성묘'란 이름 아래, 미국행에 올랐다. 그렇다 보니, 이혼의 위기는 두 분 사이의 역사 자체였다. 그러나 갈라서네 마네 난리를 치면서도, 나를 포함한 친척들은 마음 졸이며 걱정하다가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되었다.

 몇년 새 엄마의 병은 부쩍 악화되었다. '엘비스가 꿈에 나타났어, 장지문에 엘비스가 비쳤어, 자고 있노라면 엘비스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줘"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지만, 어제의 엄마는 너무 심했다.

 개 사료 캔을 따 구룻애 옮겨주고 나서, 문단속을 하고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뭐가, 위자료는 필요 없다, ."

엄마는 여느 때처럼 아주 멀쩡했다절대 치매 환자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애가 탔다.

 "음악 좀 꺼요. 할 얘기가 있으니까."

 나도 모르게 성을 내며 엘피 플레이어를 멈췄다.

"엄마, 그 사람한테 전화가 오다니 사실이예요?"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는 싱긋 웃었다.

 "엄마, 엘비스 프레슬리는 이미 오래전에 죽었어요."

 엄마 말에 의하면, 전화는 매일 밤 열 두시 정각에 걸려온단다. 엄마가 전화를 받으면, 엘은 우선 사랑의 언어를 속삭인다고-일본어로- 그리고, 앨은 어김없이 노래를 부른다.

 "러브 미 텐더."

 엄마는 황홀한 듯 예의 명곡을 흥얼거렸다.

 "늘 그 곡이야?"

 "그래, 가끔은 다른 노래도 듣고 싶지만, , 애창곡이니."

 장난 전화 아냐?"

 엄마가 날 노려봤다.

 "아냐. 수화기를 타고 전해지는 걸. 그의 사랑이."

 나는 한숨을 휴, 하고 내쉬었다.

 "아버지는?"

 "슬롯머신 가게에 가 있겠지."

 아버지가 돌아오시길 기다리다가 우리는 오랜만에 셋이서 점심을 먹었다. 늦게 있다 가른 아버지의 말씀에, 그러지도 못하겠다고 말했지만 아버진

 "수선 피울 거 없다. 어제 오늘 시작된 일도 아니고."

 라고 죽을 마셔가며 말했다.

 "나쁠 것 없잖냐, 전화로 혼자 노는 정도야."

 정말이지-.

 밥을 입안에 밀어 넣고, 아버지의 대범한 얼굴을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아버진 늘 이런 식이다. 이게 다, 아버지가 너무 물러터진 탓이다. 엄마가 열 두시까지 기다려서 그 사람 목소릴 들어보라는 말에, 남편의 직장에 전화를 걸어 좀 늦는다고 전했다.

 "시시해. 나 먼저 잔다."

 아버지가 낡은 잠옷을 질질 끌다시피 하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이제 알겠죠? 엄마의 환상이라구요."

 엄마는 차분한 기색이었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겠지. 그나저나 너, 얼른 돌아가야지. 신랑한테 미안하잖아."

 나는 그 이상 엄마와 실랑이할 기색도 없이, 비슬비슬 차에 올랐다. 큰길에 나섰을 즈음,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공중전화 박스에서 아버지가 어딘가에 전화를 하고 계셨다, 커다란 라디오 카세트를 안고서-.

 "세상에나."

 핸들을 쥔 손끝 힘이 빠져나갔다.

 “장난이시겠지.”

 아버지는 매일 밤 저렇게,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러브 미 텐더를 흘려보내는 걸까? 기가 막히다 못해, 화까지 났다. 뭐가 엘의 사랑인지.

 "뭐야, 도대체."

 어서 돌아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한테 노부부의 2인 놀이를 얼른 보고해야지. 남편은 뭐라고 말할까?

 키득키득 웃으며, 심야의 도로를 달렸다. 남편과, 아들과, 애견이 기다리는, 우리 집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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