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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와 추상, 그리고 맥락생성

작성자어린왕자|작성시간11.04.27|조회수746 목록 댓글 0

아래 글은 제가 최근에 퍼블리시를 준비하고 있는 논문의 한 부분입니다.

아직 발표된 논문이 아닙니다. 만약 인용을 원하시면 저에게 반드시 문의를 주셔야 합니다.^^

요즘은 페이스북, 블로그 등의 글도 비공식적이나마 인용 가능한 글로 인정해주는 추세입니다.

따라서 인용 없이 도용하면 표절에 걸리게 되며 책임을 묻게 됩니다 ㅋㅋ

여러모로 여러분 모두에게 많은 도움 되시길 바랍니다. 

 


객관주의 인식론적 관점에서의 인간은 구체적 지식과 추상적 지식을 모두 다룰 수 있다고 본다. 더욱이 인간의 지력이 성장할수록 보다 추상적 사고가 가능하며 추상적 지식을 다룰수록 지능이 높은 것으로 본다. 인간의 지적 능력의 최종 목표는 추상에 이르는 것이며, 특수성들을 제거하고 남은 추상만이 인간의 주관에 따른 해석에 영향을 받지 않는, 왜곡되지 않은 진정한 지식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 따라 인지심리학 분야에서는 지식의 추상화 수준을 다루기도 한다(이정모, 1996). 이때 추상적 지식은 그 추상 수준이 높을수록 전이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이해된다. 즉 기억 속의 지식의 추상성이 높을수록 다른 구체적인 상황에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추상성의 본질은 구체로부터 맥락이 제거된 상태로서 추상의 극은 결국 무(無)일 뿐이라는 헤겔의 주장과 같이 추상의 결과는 인식 주체자에게는 의미 없는 상태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평소에 추상적 사고를 한다고 믿고 있는데 과연 추상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이 글에서는 구체로부터 추상하여 나온 지식 또한 또 하나의 구체적 지식일 뿐이라고 논증하고자 한다. 이때 구체성의 의미는 헤겔의 주장을 따라, 대상과 내가 연결되어 인식되는 상태를 의미하며, 이때 이러한 연관을 맥락의 의미로서 사용하기로 한다.

 

1. 구체성과 추상성

 

헤겔에 의하면, 구체성과 추상성의 궁극적인 차이는 바로 "맥락"의 포함여부이다(Hotho, 1823; 한동원, 권정임 역, 2008에서 재인용). 맥락이 들어가면 구체성이고 추상성은 바로 맥락이 제거된 것 또는 맥락이 생성되지 않은 것이다. 인간이 어떤 대상을 의미 있게 인식하였다는 것은 그 대상과 연결되고 그 대상을 둘러싸고 있는 맥락이 형성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맥락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곧 구체성을 의미한다. 즉, ‘구체성’으로 인식함으로써 의미가 생기고 이해가 되는 것이다. 추상성 그 자체는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맥락이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처럼 의미라는 것이 구체성으로서 파악되는 것이라면, 인간은 왜 추상을 하는가? 추상화는 어떤 대상에 얽혀있는 맥락들을 제거해나가는 과정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들에 대하여 서로간의 공통성을 인식해내지 못한다면, 우리가 인식하는 모든 것들을 분류하거나 일반화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며, 이렇듯 구체성은 그 자체로 복잡해져 가면서 어느 순간 구체성들끼리 관련성이 꼬이게 되어 의미의 혼란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이때 꼬여있는 구체성들을 풀어내기 위해 잠시 추상화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재구체화를 시도하게 되며, 이를 통해 새로운 의미화 작업을 수행한다. 새로운 의미화 작업을 수행한다는 말은 결국, 구체로부터 추상해낸 결과적 지식에 대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는 말이다. 즉, 구체로부터 추상화 과정을 거쳐 나온 새로운 지식은 그 나름대로의 새로운 맥락이 형성됨으로써 또 하나의 구체적인 지식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우리가 의미를 이해하고 있는 순간은 모두 구체성의 상태라고 보는 관점에 비추어 매우 정합적인 논리가 된다. Piaget(1977)는 그의 인지발달이론에서 동화와 조절 개념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임에 있어서 기존 스키마(schema)과 새로운 지식의 통합 과정을 설명하였고, 최종 상태로서 평형에 도달한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때 새로운 정보와 결합하게 될 기존 스키마는 곧 과거의 경험 지식들이며 이러한 기존 스키마가 맥락으로서 영향을 미치고 있고, 결과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평형상태는 새로운 맥락이 형성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추상의 작업은 구성주의 인식론적 관점에서는 그 자체가 목적도 아니며, 추상화의 정도가 우월성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추상화는 의미를 명료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그렇다면 객관주의에서 말하듯, 추상화가 사물의 본질을 드러낸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그 본질이 추상화 자체의 본질인가? 아니면 맥락이 제거되기 이전 상태인 구체성, 즉 질서 있고 정교하게 엮여져 있는 맥락 그 자체를 의미하는가? 추상능력이 뛰어난 자는 훌륭한 예술가, 과학자 등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하여 구성주의 인식론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답이 가능할 것이다. 즉, 그들이 훌륭한 이유는, 그들의 추상작품(이론 또는 예술작품 등)을 통해서 우리는 혼란했던 복잡한 구체성의 맥락들을 정리해내어 새로운 의미로 대체함으로써 보다 심층적 이해에 도달하는데 도움을 받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구체로부터 추상된 사고는 그 출처인 구체와 늘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추상화 과정의 초기에서는 그 출처가 되는 구체와의 맥락적인 연결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추상의 결과로 얻어낸 개념을 가지고 사고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출처라고 여겨졌던 구체로부터 점차 독립되어(맥락이 끊어져) 그 자체로서 새로운 맥락들로 의미화되어 새로운 구체가 되어 사고된다. 우리가 추상된 사고 그 자체로서 사고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추상은 구체와 독립되어 새로운 구체가 된다. 예를 들어, 수학에서 숫자는 이미 구체적 현실로부터 추상된 결과이지만 수학자들은 숫자를 더 이상 추상의 개념으로 여기지 않고 보다 추상적인 수학적 사고를 위한 구체적 개념으로 삼아 사고한다. 추상이란 것이 맥락을 제거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보다는 오히려 새로운 맥락생성을 통한 또 다른 구체적 개념 창출의 과정으로 이해하는 것이 구성주의적 관점에 부합하는 것이다.

 

2. 맥락과 의미

 

추상의 결과 역시 또 다른 하나의 구체가 된다고 볼 때, 인간이 어떤 대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언제든지 그것에 대한 의미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말하며, 이것은 그 대상에 대하여 맥락이 형성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상호(1997)에 의하면, ‘지식의 최소 단위는 개념이다. 그러나 하나의 단어 혹은 개념은 자체로서는 어떤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단어와 개념과의 관계에서만 어떤 것을 의미한다. 이점에서 개념이란 언제나 상대적이게 마련이다.’

 

맥락이 풍부하게 형성될수록 구체성을 띄는 것이다. 즉, 무엇을 이해한다고 할 때 반드시 구체성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인간이 발달해가면서 추상적 개념(맥락이 제거된 개념) 학습이 가능해지는 것인가? 이 질문은 객관주의에서 묻고 답을 하려는 질문이다. 구성주의에서는 추상이 곧 또 다른 구체로 이해되므로, 이 질문에 대하여, 인간은 성장하면서 맥락생성을 할 수 있는 경험을 축적함으로써 맥락생성 경험이 풍부해지고 능숙해지며, 그로 인하여 구체적 의미들로부터 새로운 또 다른 구체적 의미들(객관주의에서의 추상적 의미들)을 생성해내게 된다고 답할 수 있게 된다.

 

객관주의에서는 세계에 대한 이해가 인간에게는 매우 추상적인 고차원적 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추상적 지식이라고 이해되는 세계에 대한 이해가 결국은 새로운 맥락생성의 결과에 따른 또 다른 구체적 이해라는 것을 뒷받침할 만한 논증을 오우크쇼트를 리뷰한 김안중의 다음 글에서 엿볼 수 있다.

 

참으로 이 세계만이 인간에게 알려진 유일한 세계이다. 머리 위의 별박힌 하늘이나 우리 안의 도덕적 법칙도 모두 인간의 성취물이라는 점에서는 다 같다. 그리고 이 세계가 세계인 까닭은, 그 자체가 의미를 가진 것이기 때문이 아니라 - 세계 그 자체는 의미를 갖지 않는다 - 서로가 서로를 뒷받침해주고 해석해주는 작은 의미들의 연결된 전체가 그것이기 때문이다(김안중, 학교학습의 철학적 기초: 오우크쇼트의 “학습과 교수” 리뷰 중에서).

 

 

3. 맥락과 맥락생성

 

그렇다면 맥락생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추상성을 이해한다는 것, 즉 맥락정보가 빠져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한 자, 즉 인식 주체자가 추상성의 상태에 스스로 맥락을 붙여(생성하여) 구체성으로 변환해서 이해하기 때문이다. 철학자들, 수학자들은 고도의 추상화된 개념들만 가지고도 활발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이는, 추상화된 개념을 주고받는 순간순간 스스로 그 개념들에 대한 구체성을 확보할 수 있는 능력, 즉 맥락생성 능력이 뛰어나거나, 또는 추상화된 개념 그 자체가 일반인들에게는 추상 개념이겠으나 이들에게는 이미 구체성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이때 일반인들에게 추상 개념이라는 것은, 일반인들이 이해를 할 수 없는 개념이라는 뜻이다. 즉, 어떠한 자기와의 관련성을 짓지 못하는 상태, 맥락생성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한다.

 

맥락은 맥락생성의 주체가 스스로 생성한 것이므로 철저히 주체(인간)의 의식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즉, 맥락은 주체의 의식 밖에 존재하는 어떤 객관적 실체가 아니다. 따라서 맥락은 누군가에 의해 전달되거나 주입되거나 상호작용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님이 더욱 분명해졌다. 맥락을 정적인 개념으로 본다면, 맥락생성은 인식 주체자가 쉼 없이 수행하는 의식 활동으로서 동적인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이정모 편 (1996). 인지심리학의 제 문제: 1. 인지과학적 연관. 서울: 성원사.

 

장상호 (1997). 학문과 교육(상): 학문이란 무엇인가.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한동원, 권정임 역 (2008). 헤겔 예술철학: 베를린 1823년 강의. H. G. 호토의 필기록. 서울: 미술문화. Hotho, H. G.,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Kunst, Berlin 1823, Hamburg: Felix Meiner, 1998.

 

Piaget, J. (1977). Problems in equilibration. In M. Appel & S. Goldberg (Eds.), Topics in cognitive: Vol. Equilibration: Theory, research, and application (pp.3-13), New York: Plenum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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