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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장기두다가 연상의 조카와 크게 싸운 일이 있다

작성자겜리뷰(예찬)|작성시간10.03.09|조회수420 목록 댓글 2

십대 후반 무렵의 일이다,
항상 반공일이 되면 동네에서 늘 맞아 주는 5촌 가량의 조카가 있었다.
그때만 해도 토요일을 어른들은 반 공휴일이란 뜻으로 반공일 이라 불렀는데 그것은 온전한 의미의 휴일이 아니라

학교나 직장에서 오전만 공부하고 일을 한 후 하교하거나 퇴근하기 때문에 붙은 말이었다.


 

 

 

우리 집은 고모부네와 이웃하여 살았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를 늦은 연세에 두었기 때문에 당연히 고모님은 할머니 이상 될 정도의 연령차가 있었다.
그런 탓에 고모님 댁에는 일찌감치 분가해 나간 손들이 자주 들락 거렸다.
고종사촌 형님과 누나들이었다. 하지만 말이 형님 누나였지 대부분 부모뻘 되는 연세였다.

그 가운데 고모의 큰 딸되는 큰누님의 아들중에 나와 꽤 친한 조카가 있었다. 나이가 나보다 두 살이 더 위였다.

그래도 항렬로 따지면 그의 어머니가 누님이 되니까 내가 삼촌이 되는 게 분명 맞다.

 

 

 

정확히 말하면 삼촌이 아니라 5촌 당숙뻘이 되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

고모님이 우리 아버지와는 형제가 아닌 남매지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냥 편하게 삼촌으로 많이 통했다.

그런데 문제는 조카가 나를 삼촌으로 받들어 주지 않고 그냥 친구처럼 이름을 마구 부르며 속칭 맞먹고 지낸다는 데 있었다.
나는 그게 어린 마음에도 '내가 분명히 저 엄마와 사촌 남매인데 짜식이 무식하구나! ' 하여 내심 불편했지만

그냥 탓하지 않고 두루뭉실하게 잘 어울렸다.

왜냐하면 그 조카가 그래도 붙임성이 있어 고모네 가족가운데에서는 가장 나를 따랐고 좋아해주었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남녀동등권의 문화가 완전히 자리잡은 시대이지만 그때만 해도 30년도 넘는 전(前)의 이야기이다.

어딘가 모르게 여자는 출가외인이라 하여 큰아버지나 작은 아버지보다는 왠지 멀게만 느껴지는게 사실이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나 또한 고모집에 가서 마음대로 밥 한 그릇 제대로 얻어먹지 못했으니까,

아마 고모가 못살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부자였기 때문에 오히려 더 인색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고모는 우리 집과는 비교가 되지않을 정도로 근방 일대에서 부자였다.

큼지막한 야산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논만 해도 스무마지기가 넘었으며 그 어두운 시절에도 금성전자(오늘날의 LG)에서 나온 20인치 대형 텔레비전이 있었다.

또 볏집으로 가마니 짜는 기계, 새끼꼬는 기계, 송풍 분무기(기계식)등, 농기계도 없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tv를 시청하기 위해, 동네아이들이 박스컵(70년대 박대통령 컵 쟁탈 아시아 축구대회) 쟁탈 축구경기라도 있을라치면

문전성시를 이룰 정도였다. 나도 물론 그틈에 섞여 시청을 하기는 했지만 항상 바늘방석 같았다.

고모네 집 식구들이 그리 따뜻한 인상을 풍기지 못해 그랬던 것 같았다.

차라리 남이라면 그러려니 하고 마음이나 편하지 어중간하게 친척이라고 하는게 기대심리가 있는 탓에 더 못 할 때가 많았다. 
                     
      

 

조카는 당시 체격도 좋은데다 태권도 같은 운동을 많이했다,

나 또한 그런 조카에게 지기 싫어 꾸준히 운동을 해 왔기에 둘 사이에는 은연중 경쟁심리같은 게 발동해 있었다.

내가 샌드백을 놓고 한창 발차기와 주먹으로 훅이나 어퍼컷을 날리고 있으면 조카녀석은 지나가다가 느닷없이 끼어들어

그 덩치에서 우러나온 파워로 멋지게 옆차기와 돌려차기를 한번 과시한 후 사라지곤 하였다.

당시 체중으로 보아 나는 60kg이 조금 넘었고 조카는 80kg 정도라고 볼수 있었으니

사실상 체급으로 보아 내가 대결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런 탓에 조카의 파워는 대단했다.

나는 그런 것을 안 탓에 섣불리 대련을 하지 않았고

적어도 힘겨루기같은 원초적인 일에는 조카에게 약점을 잡히지 않기 위해 무게를 주로 잡고 지내는 편이었다.
그러나 조카녀석은 조금 단순한 데가 있어서 한참 혈기 왕성한 때라

호시탐탐 명색이 윗사람인 나를 힘으로 제압해 보려는 불순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진달래가 지천으로 피어나는 토요일 오후였다.

학교에서 책가방을 들고  막 고모집을 지나오는데 바로 옆집 대문앞에 조카가 서 있다가 반갑게 부르며 끌고 들어 가는 것이었다.

옆집이란 고모부가 적음(분가)을 내준 막내 고종 형님의 집이었다. 장가를 든지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그래서 점심도 먹지않고 조카의 청에 못이겨 들어가 보니 막내 고종형님이 장기판을 차려놓고 있었다.
일찍부터 나와 조카는 장기도 곧잘 두곤 했는데

특히, 막내 고종 형님이 무엇보다 오목을 비롯하여 장기라든가 알까기에 특히 고수 급인데다

조카와 내가 장기를 두는 때이면 곧잘 곁에서 훈수두기를 좋아했다.

조카와 나는 쓸데없이 이런 분위기에 곧잘 넘어갔다. 장기대결에서도 마음에 잔뜩 기운이 발동하기 일쑤였다.

 

 

 

기분 나쁜 일은 조카가 항상 장기알의 붉은 말을 먼저 잽싸게 쥔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초(楚)나라인 녹색말을 내가 가지게 하고 상수나 고수급, 또는 연장자나 윗사람이 잡게 되는 한(漢)의 홍색 말을,

발칙하게도 조카녀석이 쥐고 게임에 임한다는 것에 있었다.

물론 이것은 막내 고종 형님이 분위기를 그렇게 만들어 간다는 데에 큰 책임이 있었다.

왜? 형님은 좀 경우가 어둡다고나 해야 할까, 사람사이의 예의나 경중을 구별하는데 있어 기본적으로 밝지가 못했다.

즉, 사리분별을 헤아리는 데 좀 무식(?)한데가 있었다.
아니면 그집 분위기가 워낙 물질적으로 풍족하다보니 이웃이나 다른 친척의 소중함을 모르고

자기네 족속(?)들만 끼리끼리뭉쳐 사는 습관이 체질적으로 무의식중에 배어 있어서 그런지도 몰랐다.

고종형님의 입장에서 볼 때에, 나와 경쟁상대에 있는 조카에게는 외삼촌이 되는 입장이었고 나에게는 외종사촌 형님이었다.

형국이 이리되니, 형님께서는 머릿 속에 모터(?)가 회전한다는게 고작 나는 4촌인데 비해, 조카는 3촌이 되는 터라

촌수로 따져서 자신과 조카녀석이 1촌이 더 가깝다는 것을 계산에 넣었다.

그래서 사사건건 장기를 둘때도 조카에게 유리하게 훈수를 해서 사람 열불나게 만들기 일쑤였고,

장기알을 선택할 때도 조카 나이가 나보다 두 살이나 많으니 그가 빨간 것을 잡고 두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형님은 아예 내가 조카보다 손윗 사람이라고 하는,

그러니까 수상(手上)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건지, 개념이 없어도 한참 없는 사람이었다.

 

 

 

평소 이런 행태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여 있던 판에

이날도 조카는 예전과 변함없이 콧노래를 부르며 예사 홍을 또 쥐고 대국에 임했다.

형님댁은 마루가 그다지 넓지 않았고 아담한 편이었다. 그래서 셋이서 옹기종기 바짝 다가 앉아 열심히 장기판을 들여다 보고 있는데 그날따라 내마음은 평정을 찾지 못하고 조금 기분이 언짢은 상태였다.
그렇지 않아도 주말이라 집에 가서 얼른 밥먹어야 하는데 배는 고파 오고,

조카녀석은 이름을 마구잡이로 부르며 ' 야, 장기둔 사람 어디갔나? 어디갔어? ' 하고 놀리지,

형님은 곁에서 꼭 조카에게 차례가 넘어갈때만 훈수를 두어서 도저히 승기를 잡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라,

훈수두는 사람과 상대방은 눈이 네 개이니 처음부터 장기판을 보는 레이더 망이 다른 것을

특별히 내가 고수가 아니고서야 유리하게 돌아갈 리는 만무했다.     
게다가 나는 말을 터놓고 지내는 조카녀석의 괘씸한 행태가 늘 잠재의식에 자리잡고 있어서

속으로 화도 나고 아까부터 형님의 일거수일투족이 거슬려 도저히 집중이 안되어서 장기는 패색이 짙어갔다.
그런데 조카는 아예 기고만장하여
" 야 임마! 빨리빨리 장기 안두고 머여?, 해넘어 가겄다! "
하질 않나
막내 고종 형님은 형님대로 원칙에도 없는 장기규정을 들먹이며 약을 올리는 것이었다.
" 민속장기 대회 전국 국수전 아나? 한수 둘 때 5분이 넘으면 바로 TKO패야 "
" 5분요? 첨들어 본데요? 장기가 무슨 TKO패가 있당가요. 기권이람 몰라도....... "
" 형님 말에 말대꾸는....... 그게 그거지 뭘, 장기판 그만 들다 보구라 "
속으로 부글부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판세를 보아하니 어차피 내 재주로는 이기기는 글렀다.

그만 포기할까 하다가 이게 왠걸 이게 바로 천우신조(?)의 기회인가 보다. 바로 빅장을 볼 수 있는 수가 생겼다.

아니 절호의 수가 보였다. 이걸 놓치면 난 바보다!
그래서 순간적으로 궁을 궁성 귀퉁이로 밀어 대며
" 빗장이야! "
하고 큰 소리로 장(將)을 불렀다. 빗장이라고 외쳤던 것은 빅장이란 바른 어법을 모르고 나온 무식의 소치였다.

이기는 장이 아니라 막연히 비기는 장이니 그런 뜻에서 대개 빗장이겠거니 하고 많이 통했다.
조카와 형님은 나의 기습적인 빅장보기에 그만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빅장을 못보게 하려면 다른 기물로 자신의 궁과 상대방 궁을 마주보지 못하게끔 사이에 놓아야 한다.

그런데 상황이 그렇지가 못했다. 그렇다고 궁을 옮기자니 나의 포(包)가 노리는 타살점에 노출되어 있었다.
" 야 언제 포가 거그 있었냐? 너 꼼수 쓴 거지 "
조카녀석이 반말에다 말투도 가관이었다. 근데 더 약이 오른 것 고종형님의 말이었다.
" 빗장은 비겁한 거야! 글고 아주 큰 대회라면 몰라도 이런 장기는 원래 빗장이나 빗수(빅수)보기는 없어야 돼, "
형님의 말에 엄청 화가 났지만 꾹참았다 대신 더욱 큰 소리로
" 아! 빨리 빗장 받아라니까, 빗장! 빗장이다아! "
하고 외쳤다. 조카는 약이 바짝 올라
" 야 빗장 없이 하자, 이게 무슨 장기냐? "
하고 형님도 덩달아
" 참장만 불러! 참장! 장기는 참장만 부르는게 진정한 시합이야! "
라며 한사코 빗장같은 룰은 없이하기로 하자는 것이었다.
할 수없이 그들의 억지에 눌려 나는 애써 비길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다음 수를 두게 되었다.

몇수 안가서 조카가 차(車)로 장을 불렀다.
"멍군이야! "

 

 

 

궁이 맨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저멀리 오른 쪽 변에서 졸 하나와 함께 외따로 떨어져 쓸모 없이 앉아 있는

포(包)를 끌어다 궁성 한 가운데 틀어박고 홧김에 구멍포를 세워버렸다.

사실 장기 두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구멍포는 함부로 세우는 것 아니다. 자칫하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건너갈 다리가 없으면 포는 아예 무용 지물이나 다름없이 된다.

오도가도 못하게 되어 궁의 활동까지도 제한 하는 수가 비일비재 하기 때문에 오히려 외통을 당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카가 양차(兩車) 공격을 해오며 장을 불렀다. 막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약이 바짝 올라  한 수 무르기를 청했으나 조카의 말이 걸작이었다.
" 일수 물퇴! "
무식한 녀석 일수물퇴라니.......
훈수 두는 형님의 말도 걸작이었다.
'일수 물퇴가 아니고 일수 불퇴지" 

 

 

 

나는 형님이 야속했을 뿐만 아니라 조카의 버릇없는 수작 때문에 마침내 치밀어 오르는 노기를 누르지 못했다.

홧김에 그동안 묻어두었던 말을 용기를 내어 말했다.
" 야! 너는 삼춘이 눈에 뵈지 않냐? "
" 장기두는 데 삼춘? 봐주라는 말이냐? "
" 이 자식이 점점....... "
나는 이제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시점에서 형님과 조카를 잡을 수 있는 방법은 조금 비겁하지만 녀석의 궁을 던져버리는 것이다.

즉, 판을 깨버리되 그냥 물러서는 것이 아니고 조카의 한(漢)나라 왕을 잡아 마당으로 팽개쳐 버리자!

이런 생각이 순간적으로 퍼뜩 드는 것이었다.

그러잖아도 내가 더 어른인데 건방지게 조카녀석이 홍(紅)을 늘 쥐고 대국을 해? 어디보자!
나는 다짜고짜 장기판에 위풍있게 놓여있는 녀석의 궁에 손을 가져다가 덮어쥐었다.
순간 조카의 얼굴이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감히 가장 높은 궁을 쥐고 어쩌려고? 하는 궁금증과 함께,

아마 다 이겨놓은 장기를 내가 파토(?)를 내려나부다! 하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조카뿐만 아니라 형님의 표정도 미묘하게 일그러진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의 반응을 느끼며 약 2, 3초의 여유를 부린채 궁을 잡고 있다가 냅다 들어가지고서는 마당으로 보란 듯이 던져 버렸다.
그러자 조카가 느닷 없이 장기판을 엎어 버리며 장기판을 재빠르게 접어가지고 나의 머리를 한번 크게 후려치는 것이었다.

대개의 장기판이 그렇듯이 장기판은 평판이 아닌 접판이었다.

조카의 성격이 다혈질이라는 것을 미쳐 감안 못했기에 내가 먼저 선방을 허용한 것이엇다.
이 나쁜 새끼!
나는 그렇게 욕을 하며 조카의 얼굴을 주먹으로 갈겼고 이내 둘은 마루에서 마당으로 미끄러져 내려와 엉겨 붙었다.

나도 당시에는 한 성격했던 때라 물러설 수 없었다. 형님이 곁에서 뜯어 말려도 소용 없었다.

서로 주먹질에 발차기에 나중에는 레슬링처럼 서로 메치기를 해가며 난타전을 벌였던 것이다.

비록 조카가 체격도 크고 나이도 많았으나 나 또한 삼촌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아픈지도 모르고 투지가 불타 올랐던 것이었다.

마침 시끌시끌한 소리에 담너머 고모부님이 고개를 내밀다가

우리가 싸우는 것을 보고 벽력같은 호통을 쳐댄 통에 싸움은 끝이 났고

조카는 형님집과 경계선으로 되어 있는 담을 넘어 고모네 집으로 슬며시 숨어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나는 조카녀석과 맞짱뜨기를 했다는 그자체만으도 억울하여 집으로 가면서

'동방예의지국에 삼촌도 몰라보는 인간이 있냐' 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고 나중에는 조카가 사과를 하러 왔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고모네 식구들이 보낸 모양이었다.
조카도 자존심이 있어서 사과를 하러와서도 미적미적했으며, 나 또한 화가 풀리질 않아 마지못해 그를 상대했다.             

 

 

 

 

그리고 세월이 30년 하고도 몇년의 세월이 더 흘렀다.

그 이후로 조카는 고모집에 놀러 오는 일이 차츰 뜸해지더니 종래 무소식이 되었다.

조카는 원래 소설 태백산맥의 고향, 벌교 바닷가에 살았다.

그런데 나중에는 부산으로 돈 벌러가서 그 곳에서  가정도 꾸리고 잘살고 있다는 말을 친척들의 전언(傳言)을 통해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번도 만나지는 못했다.
혹시 조카도 나를 통해 상처를 받은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리 자신이 항렬상 수하(手下)라지만 명색이 나보다 나이도 많고 높은 학교를 가지 않은 대신 사회 경험도 더 했는데,

혹시 내가 그의 섬세한 심리를 미처 헤아리지 못한 부분이 있지는 않았을까
이러저러한 생각을 많이 해본다.

그래도 우리 고모네 가족가운데 나와 가장 많이 부대끼며  놀아 주던 친척은 그 조카님이었는데,

이제 다시 그를 만나면 일일이 촌수 계산해가며 삼촌 조카 애써 따지지 않으리라! 조카님이라 부르리라!

진정한 마음의 교감은 수직관계의 서열에 있지는 않는 것을.      
        

 

 

 

조카와의 장기에 얽힌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는 것이 두서없이 길어 졌다.
기왕 장기 얘기를 했으니, 간단히 장기에 대해서 한번 되짚어 보는 것으로 마무리 하겠다.         


장기의 기원에 관해서는
고대 중국에서 발생했다는 설과
고대 인도의 차트탕기가 동양에 전파된 것이라는 두가지 설이 있다.

 

그러나 흔히 말하는 장기는 우리나라 고유의 민속장기를 가리킨다.
장기의 일종인 서양의 체스가 세계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반면
유독 동양3국만이 통일된 장기가 되어 있지 않고 각각 그나라의 국민성과 풍습에 따라 독특하게 발전해 왔다.

 

중국장기와 우리나라 장기는 상, 마, 궁의 행마법이 다소 다를 뿐, 큰 차이가 없이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장기는 많이 다른데
우선 피스(말)가 타일형태로 되어있고 선에 놓지 않고 칸에 두는것과
보(步)라고 하는 졸이 각각 8개씩 잇고 이외에도 여러 가지의 변화와 차이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본장기는 따로 '쇼기' 라 부른다.
일본에서 쇼기의 인기는 대단한데 쇼기를 가만히 보면 아시아와 차별을 두려는 경향이 강한 일본인의 특성을 엿볼 수 있다.
흡사 동양의 장기와 서양의 체스를 조합해서 만든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우리나라 민속장기는
일찍부터 협회가 조직되어 꾸준히 장기대회를 개최해오고 있으며
실력유무에 따라 단과 급이 주어지며 장기의 최고수는 국수(國手)라 칭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장기게임의 궁극적 목적은
적의 왕을 타살하는 게 아니고 포위하여 옴짝달짝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상의 이야기가 미약하나마 우리 장기의 전망을 위해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나 더, 얘기하자면 장기뿐만 아니라 모든 게임은 서로 즐겁게 노는데에 목적이 있다.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일화처럼 다투려거든,

애초에 게임을 하지않느니만 못하다. 그래서 옛 어른들 말씀중에, 

기박(바둑, 장기, 윷놀이) 두다가 싸우는 자들이야말로 가장 어리석다는 말을 한번쯤 새겨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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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샤아 | 작성시간 10.03.10 동갑인데 학교 일찍 들어간(일명 빠른 □□) 친척누나랑 장기 두면서 제가 계속 이겨서 그 누나가 계속 도전해서 귀찮아 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결국 그 날 보려고 했던 만화책을 못 봤네요. 적당히 져 줬어야 하는건데-_-;;
  • 작성자둥둥 | 작성시간 10.03.10 장기 좋아요 ! 동네장기 하수급이지만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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