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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는 행복이다 651

작성자마리노|작성시간26.06.22|조회수51 목록 댓글 0

 

저에게는 너무나 신비한 당신의 예지

너무 높아 저로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

(시편139,6).

 

                                                               (양근 성지   6/21)

 

시인은 하느님께서 알고 계심에 대하여 감탄하고 경탄한다.경탄은 감사와 은혜로움을 느끼는 사랑의 표현이지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다.하느님은 시인의 이해 차원을 훨씬 넘어서서 알고 계신다.“예지는 하느님께서 멀리서도,가까이서도,말과 행동,생각과 동기까지 다 아신다는 사실을 말한다.“너무 높아라는 것은접근할 수 없다라는 뜻으로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거리를 의미한다.대 바실리우스에 따르면,‘우리는 우리의 신체 구조의 신기한 본질과 기능을 관찰함으로써 하느님 지혜의 깊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비록 사람들은 주위의 세상보다 자신을 아는 것이 더 어렵지만,우리 본성의 구조보다 하느님의 위대하심을 이해하는 데 더 좋은 자원은 없다.하느님은 참으로 무한하시고 불가해하시며 편재하신다(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하느님은 편재하시므로 우리는 그분에게서 우리의 죄를 숨길 수 없으며,따라서 그분 앞에서 죄짓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한다(베드로 크리솔로구스).

 

 

시편 139편의 전체적 의미:139편은 하느님에 대한 지식을 가르친다.특히 성경의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해주며,하느님과 인간의 거리감과 친밀함을 잘 표현해 준다.이 시편에 나타나는 하느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고(전지성),어느 곳에나 계시며(편재성),인간을 오묘하게 지으신(창조성)분이다. 시인은 자신의 체험을 통해 하느님의 전지하심과 편재하심과 전능하심을 깨닫게 된다.그는 인간의 이해를 능가하시는 하느님의 무한한 지식에 대해 놀란다.그 때문에 그는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철저한 조사와 올바른 길을 따를 수 있는 안내를 간청한다.원수들 때문에 고통받는 시인은 전능하시고 편재하시는 재판관이신 하느님께 나아가 자신의 무죄함을 주장한다.그는 하느님께서 자신을 알고 계시며,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며,자신의 가장 깊은 곳까지 아신다고 확신한다.

알다라는 낱말이 일곱 번 나오는 것은 하느님께서 무엇이나 다 아심을 강조한다.’과 관련된 유사어들은 인간의 마음을 평가하시는 하느님의 심판 행위를 묘사한다.또한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의 표상들이 많이 나온다.이를테면저를 에워싸다’,‘당신 손을 저에게 얹다’,‘당신은 거기에 계신다’,‘당신 손이 저를 이끄신다’,‘당신 손이 저를 붙잡으신다’,‘어둠도 당신께는 빛과 같다’,‘당신은 제 어머니 배속에서 저를 엮으셨다’,‘당신의 눈이 형성되지도 않은 제 물질을 보셨다’,‘당신의 책등이 주님의 현존 체험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영성적인 면에서 볼 때, 이 시편은 하느님과의 깊은 친밀감을 보여주면서 독자에게 영적인 고독에서 벗어나 따스한 위로를 느끼게 하며,하느님과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게 해준다. 우리를 존재케 하신 전지하시고 편재하시며 전능하신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신다.모든 것을 아시고 어디에나 계시는 주님은 우리와 동행해 주시어 한순간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는 분이다.

(거룩한 독서를 위한 구약성경 주해23-3 시편90-150/전봉순 /바오로딸)

 

(양평 용문사 6/20)

5.

 창세기에 따르면 인간은 하느님의 금령을 어기고 뱀의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손을 댄다. 이로써 인간은 자신의 유일한 주님이신 하느님께 도전하고 피조물의 한계를 잊는 불순종으로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된다.이것이 원죄이다. 교리서는 원죄를 이렇게 설명한다.“아담과 하와가 유혹자에게 굴복함으로써 지은 죄는 개인의 죄이지만, 그 죄는 타락한 상태로 전달될 인간 본성에 영향을 미쳤다.이 죄는 인간 번식을 통하여, 곧 원초의 거룩함과 의로움을 상실한 인간 본성의 전달을 통하여 모든 인류에게 전해질 것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404).

죄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을 침해하여 개인과 사회에 일어나는 분열의 뿌리이며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에 있는 상처이다.죄는 또한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행위이다.따라서 죄의 결과로 인간은 하느님뿐 아니라 자기와 다른 사람들,그리고 주변 세계와 멀어지게 된다. 인간이 하느님한테서 단절되면 반드시 형제들과 분열하며,결국 인간 가족의 붕괴를 가져온다.따라서 모든 죄는 개인의 것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점에서 모든 죄는 동시에 사회에 관련이 된다.

 사회에 짓는 죄들은 인간관계에 합당한 정의를 거슬러서 자기 이웃에게 공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도 한다. 태아의 생명을 포함한 생명권에서 시작하여 인권을 침해하는 모든 범죄,개인의 육체의 온전함을 해치는 모든 죄,다른 사람의 자유,특별히 신앙의 자유를 침해하는 죄,이웃의 존엄과 명예를 손상시키는 죄,공동선의 요구를 짓밟는 모든 죄가 사회에 짓는 죄이다.

 

 

(용문사 6/20)

 

 

 죄의 결과로 계속 이어지는 죄의 구조는 개인의 죄안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개인들의 실제 범죄 행위로 이어지고 점점 확산된다.죄의 구조는 개인의 행위를 초월하여 인류의 발전 과정에 개입하여 그 과정을 지연시키는 장애물이 된다.요한 바오로 2세의사회적 관심에 따르면 하느님의 뜻과 상반하고 이웃의 선익을 위배하는 행동과 태도를,또 그러한 행동들에서 비롯하는 죄의 구조들은 오늘날 두 가지 범주로 나타난다.하나는 무슨 수를 다해서라도 이익을 얻고자 하는 강렬한 욕망이며,다른 하나는 자신의 의지를 남에게 부과하려는 권력에 대한 욕망이다.

 우리는 원죄 교리를 통해 누구나 죄의 구조 구조 속에서 죄인임을 인정하면서도,죄와 죽음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행위로 구원을 향한 희망 안에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그리스도를 통하여 인간의 존재 깊은 곳에서 하느님과 이루기를 바라는 친교를 회복할 수 있다.“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가톨릭 사회 교리 주제편49-51쪽 발췌)/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걷기가 인생을 바꾼다.

걷기는 치매,혈관 질환을 예방한다.

 

7천보를 걸으면 치매 리스크 38% 감소는 왜 일까?

고령자의 큰 관심사인 치매리스크가 ‘38% 감소한다는 말을 들으면당장 이라도 걷기운동을 시작해야 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까?

(문예춘추 20266월호 258쪽 발췌 번역)

 

 

 

 

봄 날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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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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