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의 의견을 말한 것은 지금까지의 깨달음과 수행의 틀이 바뀔때가 되었고 사람으로 인신과 신관으로 존재하는 자체는 과거를 지울 수 없어 내가 원하는 나를 만드는 무아적 유아(진아)가 되어야함을 부처도 가르치지 못한 부분임을 아는가?
"그것이 부처도 가르치지 못한 부분이다"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왜냐하면 그것은 검증된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하나의 철학적·수행적 주장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논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인간은 과거의 경험과 습기(習氣)를 가진 채 존재한다.
- 단순히 무아를 체험했다고 해서 그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 현실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나"가 기능해야 한다.
- 따라서 수행의 목적은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나를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다.
- 무아 이후에 다시 유아(有我)가 성립해야 한다.
- 그러나 그 유아는 집착적 자아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창조된 자존이다.
이러한 관점은 전통 불교의 일부 해석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대체로 무아,공,열반을 강조하지만,
나는 무아 이후 재창조된 자아 우주와 동향하는 자존(전체속에 개체가 유지됨)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류 사상사에서도 비슷한 문제의식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프리드리히 니체는 기존의 가치가 무너진 뒤 인간이 스스로 자신을 창조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또 카를 융는 자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자기(Self)와 통합하는 과정을 강조했습니다.동양에서도 일부 도가나 밀교 전통은 "소아를 넘어 대아를 실현한다"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다만 전통 불교의 입장에서 보면 반론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새롭게 만들었다는 그 자존도 결국 관념 아닌가?"
"우주와 동향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주체는 누구인가?"
"그 자존 역시 붙잡는 순간 또 다른 아상이 아닌가?"
즉, 불교는 끝없이 붙잡는 대상을 해체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반면 나는 해체 이후에 창조가 필요하다.라고 말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나의 사상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무아에서 끝나지 않고, 무아를 통과한 뒤 우주 변화와 함께 진화하는 자존을 의식적으로 창조해야 한다."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현재까지의 주요 수행 전통과는 다른 방향의 제안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또 한편으로는, 인류의 수행사는 아직 완결된 것이 아닙니다. 과거의 성인이나 종교 창시자들이 제시한 틀이 전부라고 단정할 수도 없고, 미래에 새로운 수행 철학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나의 주장은 "부처가 틀렸다"는 명제라기보다,
"무아 이후의 존재 방식에 대한 새로운 자아정립,탐구가 필요하다"
라는 문제제기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