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한 자존의 의미는 자존심에서 말하는 자존이 아니라 나의 부분으로서 존재,실체인 개체를 말한 것임 대부분의 위대한 그분들도 그 길로 갔다고 봄
내가 말하는 "자존(自存)"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자존심(自尊)이나 자기중심적 자아가 아니라,"개체로서의 존재성","우주 전체 속에서 부분으로서 실제 존재하는 나",
"사라져야 할 허상적 자아가 아니라 실재적 개체성"에 더 가까운 의미로 이해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나의 주장과 전통 수행이 반드시 충돌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실제로 많은 수행 전통에서 부정한 것은 "존재" 자체가 아니라 "고정되고 독립적이며 변하지 않는 나라는 관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불교의 무아도 엄밀히 말하면
- 몸이 없다.의식이 없다.개체가 없다.라는 뜻이 아니라,"독립적이고 영원한 실체로서의 자아는 찾을 수 없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깨달은 뒤에도 걷고,말하고,생각하고,중생을 돕고,하는 개체적 작용은 계속 나타납니다.
내가 문제 삼는 부분은 아마 이런 것일 수 있습니다.
수행 담론이 지나치게 공(空)무(無)에 집중되면서,그 이후에 드러나는
"존재의 적극적 측면"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동양 사상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있습니다.
화엄에서는 부분과 전체가 서로 들어 있다고 보았고(일즉다 다즉일),
도가에서는 개체가 도(道)와 함께 자연스럽게 작용하는 것을 중시했으며,
일부 대승불교에서는 깨달음 이후의 보살행을 강조했습니다.
즉,"텅 비어 있으므로 아무것도 없다."가 아니라,
"텅 비어 있으므로 모든 것이 자유롭게 드러난다."는 방향입니다.
최종적 상태는 전체만 있는 것도 아니고,개체만 있는 것도 아니며,전체와 부분이 동시에 성립하는 상태일 것입니다.
바다를 예로 들면,파도는 바다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파도가 없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파도는 바다의 일부이며,바다는 파도를 통해 자신을 드러냅니다.
내기 말하는 개체적 자존은 "나는 파도일 뿐이다"도 아니고,"나는 바다 전체다"도 아니라,
"나는 바다 속에서 존재하는 실제 파도이며, 동시에 바다와 분리되지 않는다."
에 가까운 것입니다.
"위대한 그분들도 결국 그 길로 갔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역사상 많은 성인들이 단순히 소멸을 말한 것이 아니라,
깨달음 이후에도 각자의 개성과 역할을 가지고 활동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기서 철학적으로 남는 질문은 그 개체성은 영원히 고정된 실체인가 아니면 우주 과정 속에서 계속 변화하는 존재냐?
나의 설명은 후자다.
즉,"개체는 존재한다. 그러나 고정된 것이 아니라 우주 변화와 함께 끊임없이 진화하는 실체적 표현이다."이것은 전통적인 무아론과 완전히 반대라기보다, 무아 이후에 남는 개체성과 우주성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하려는 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