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의 순도
< 질문 >
1. 수행하지 않는 사람들도 화가 날 때 “나 자금 화났어”. “뚜껑 열렸어”, “가슴이 벌렁거려”, 이렇게 말합니다. 알아차림과 어떻게 구별 할 수 있을까요?
2. 수행은 바라는 마음을 내려놓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자애 명상을 하면서 상대가 행복하길 바라는 것, 이건 어떻게 구별해야 합니까?
< 답변 >
1. 말을 할 때 말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 알아차림이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알아차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알아차림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말할 때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말한 경우는 알아차림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흥분한 상태에서 상대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알아차림에는 순도가 있습니다. 순도가 높은 알아차림은 이성적인 마음과 선한 마음의 상태에서 하는 것입니다.
말씀하신 “나 지금 화났어”, “뚜껑이 열렸어”, “가슴이 벌렁거려”라는 말은 다분히 위협적이군요. 그래서 “나 지금 기분이 이러니 당신 조심해!”라고 상대에게 겁을 주는 것 같은 내용이라서 알아차렸다고 할 수가 없군요.
2. 위빠사나 수행은 대상을 분리해서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바라거나 없애려고 하지 않는 수행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렸을 때만이 대상이 가지고 있는 무상, 고, 무아의 법을 보아 깨달음을 얻습니다.
자애관은 위빠사나 수행이 아니고 사마타 수행입니다. 사마타 수행은 다섯 가지 장애를 억누르기 위해서 하는 수행입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과 지향하는 것이 다릅니다. 수행은 사마타 수행을 하고 위빠사나 수행으로 넘어오는 경우도 있고 아니면 처음부터 위빠사나 수행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불교를 한마디로 요약해달라고 했을 때 “자애”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마타 수행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지혜”라고 말하는 사람은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사람입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필요한 것이지만 결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