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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의 요양원은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으로 판단하십시오

작성자환공(桓公)|작성시간21.02.13|조회수186 목록 댓글 0

 

 

 

 

부모님의 요양원은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으로 판단하십시오

 

 

 

< 질문 >

 

수행에 관한 질문이 아닌 것 같아 질문 드리기를 고민했지만, 상좌불교적 조언을 얻고자 개인사이지만 글을 남깁니다.

 

저는 삼십대 초중반 여성이고, 저에겐 치매와 반신을 쓰지 못하는 어머님이 계십니다. 엄마를 15년간 모시다가 언니는 7년 전 시집을 갔고 둘이 남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오랫동안 재택 일을 하다가 이제는 출퇴근 근무를 하게 되었고 엄마를 예전처럼 세끼 다 챙겨드리지 못하고 간식을 해놓은 채 회사에 나오는 일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요양원에 모시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것이 죄가 될까 무척 두렵습니다. 엄마가 무척이나 요양원에 가시는 것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더욱 죄책감이 큽니다.

 

재택 일을 구해서 다시 하루 종일 모실 수 있는 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늙은 노모가 싫다는데 요양원에 강제로 모시는 것이 어떤 계를 범하는 일인지 조언 얻고 싶습니다.

 

아픈 사람을 버리는 것이 둑까따라는 계를 범하는 것이라고 본 적이 있는데 해당이 되는지, 불선업에 해당되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 답변 >

 

저는 상좌불교의 입장을 대변해서 말할 수 없습니다. 제가 상좌불교의 가르침을 완전하게 아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대표성을 가지고 말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특히 이런 가족 간의 문제는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답이 없습니다. 오직 개인의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합리적인 판단을 해서 일을 처리한 뒤에 후회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해야 합니다.

 

어머님의 요양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십시오.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면 감성이 아닌 이성의 입장에서 냉철하게 판단하게 됩니다. 감성과 이성이 갈림 길에서는 두 가지가 다 작용하여 어떤 결정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감성적인 입장에서 판단한다면 어머님을 요양원에 보내는 것이 용납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성적인 입장에서 판단한다면 어머님이 요양원에 가시는 것이 서로에게 이익이 된다는 판단을 할 것입니다.

 

이때의 감성과 이성에서 어떤 것이 옳다는 것은 없습니다. 나는 이성적인 판단이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다면 감성의 판단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객관적 입장에서 이성적인 판단이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대로 따르면 됩니다. 이렇게 분명한 확신이 서서 행동할 때 후회하지 않습니다.

 

수행자의 알아차림은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합니다. 이러한 이성적인 판단이 완전한 것을 아닐지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 선택한 뒤에 후회해서는 안 됩니다. 하지만 부모님에 관한 문제는 이성을 뛰어넘는 본성의 문제가 있으므로 모든 것을 희생해서 봉사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선택은 누구도 권할 수 없는 오직 자신의 판단에 따른 선택만 있습니다.

 

두 번째로 분명한 앎을 하십시오. 분명한 앎은 지혜로 보는 것입니다. 분명한 앎의 첫째는 무엇이 서로에게 이익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돌보는 것은 바라밀 공덕을 쌓는 일이라서 매우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돌보면서 화를 내고 감당할 수 없어 괴롭게 산다면 이것도 서로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윤리적으로 보면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것까지 감당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행히 치매환자를 볼보는 요양원이 있다면 이런 혜택을 누리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다고 부모를 버린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부모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앎의 둘째는 시기와 상황을 고려하는 것입니다.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명확하게 고려해서 합당한 결정을 하십시오. 경제적 능력이 있어서 집에 간병인 두고 돌볼 수 있다면 집에 계서도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요양원에 모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하지만 도저히 마음이 허락되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집에 모시고 계십시오. 이러한 선택은 누구의 판단에 의지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누구와 상의해서 결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분명한 앎의 셋째는 이 문제로 계속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결정도 완전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합리적인 판단을 해서 결정을 한 뒤에 거기에 따른 효도를 하면 됩니다. 다만 집에 모시는 것만 효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양로원에 모시는 것도 훌륭한 효도입니다. 모든 일은 자기 능력이 있습니다. 능력을 벗어난 일은 괴로움이 되어 오히려 불효를 저지르게 됩니다. 부모님을 모셔야 된다는 죄책감에 혼자 집에 방치하는 것이 더 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분명한 앎은 넷째는 이 문제를 어리석지 않게 처리하는 것입니다. 현재 따님의 고민은 요양원에 모시고 싶은데 정에 끌려 윤리적으로 망설여질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핵심입니다. 여기에는 누구의 조언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자신의 판단에 따른 현명한 결정만 필요합니다. 두 가지가 모두 윤리적 가치관에 결코 어긋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는 자식에게 괴로움을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부모는 이런 일로 자식이 괴로움을 겪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현재 치매라서 현명하게 판단하지 못해 요양원에 가기 싫어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머님의 정신이 맑으시다면 요양원에 가는 것을 차선책으로 선택하는 것이 자식에게 도움을 주는 일이라고 판단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돌보는 일을 요양원과 따님이 나누어서 할 수 있다면 오히려 부모님을 돕는 것입니다. 다만 경제적 부담이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경제적인 부담만 가능하다면 서로를 위해 현명한 판단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상은 단지 저의 견해일 뿐입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효심은 버리지 말고 계속 돌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저는 감성보다 이성적인 판단이 서로에게 유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서로 좋아야 효도도 계속할 수 있습니다. 복잡한 일일수록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으로 간단하고 명쾌하게 처리해야 합니다. 붓다께서는 항상 모든 일에 알아차림과 분명한 앎을 할 것을 권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는 모든 수행자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가장 훌륭한 길잡이입니다. 가장 합리적인 생각은 형편대로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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