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응지물은 몸의 느낌입니다.
< 질문 >
애응지물 때문에 너무 괴롭습니다.
2년 전 친구와 대화 중 우연히 가슴에 뭔가가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그 후 그 느낌이 가끔씩 생기면 너무 괴로워 아무것도 하기 힘든 상황에 처해버리곤 했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해결하고 싶어 공부를 하다가 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연기법에 의하면 조건이 사라지면 고통도 사라져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대화 중에 질문에 대한 답을 못 듣거나 간혹 이해했으나 "네" 나 "아니오" 처럼 명확하게 대답을 해주지 않으면 가슴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면서 너무 괴로워집니다. 집착을 하기 싫어도 이 신체적인 반응 때문에 갈애가 생기고 집착하게 됩니다.
생각을 멈춰도 느낌이 사라지지 않으니 정말 너무 고통스럽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제 마음 정말 왜 이러는 걸까요? 그리고 고통스러운 느낌을 어떻게 적응적으로 제거할 수 있을까요?
< 답변 >
애응지물(礙膺之物)은 화두수행을 하는 중국 선사들의 말로 가슴속의 응어리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있는 것을 비우려 할지언정, 오직 없는 것을 채우려하지 말라(但願空諸所有 切勿實諸所無)”라는 게송을 들으니 가슴속 응어리가 사라졌다고 할 때 가슴속 응어리가 바로 애응지물입니다. 무슨 말을 듣거나 깨닫고 가슴속 응어리가 사라졌다는 것은 중국에서 시작된 화두수행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수행을 하지 않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몸과 마음을 네 가지로 나누면 몸, 느낌, 마음, 법입니다. 이것을 사념처라고 하는데 모두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가슴속 응어리는 단지 몸의 느낌입니다. 몸의 느낌이 있을 때는 단지 몸의 느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가슴속의 응어리가 있을 때 응어리를 없애려고 하지 않고 단순하게 하나의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없애려고 하는 것이 탐욕과 성냄이라서 아무리 없애려고 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대상으로 알아차릴 때만이 고요함으로 인해서 생긴 지혜가 나서 느낌이 소멸합니다.
가슴의 느낌은 원인이 있어서 생긴 결과입니다. 이때의 원인이 마음입니다. 그래서 마음을 원인으로 가슴의 응어리라는 결과가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가슴에 느낌이 있을 때는 느낌을 일으키게 한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리십시오. 그런 뒤에 이 마음으로 인해서 생긴 가슴의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거친 느낌, 중간 느낌, 미세한 느낌이 될 때까지 계속 알아차려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수행자들이 괴로운 느낌을 없애려고만 하지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느낌이 고통스럽다고 피하지 말고 하나의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알아차려서 고요해지면 그 자리에 호흡이나 맥박이 나타납니다. 가슴의 느낌이 고요한 상태에 이르면 느낌을 일으킨 보이지 않는 마음이 진정됩니다.
사실은 가슴의 느낌이 문제가 아니라 느낌을 일으킨 마음이 문제라고 알아야 합니다. 마음은 비 물질이라서 보이지 않지만 나를 지배하는 강력한 요소입니다. 이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 근본적인 치유입니다. 가슴의 느낌을 일으킨 마음은 잠재의식이며 과보심입니다. 인간이 과보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보심으로 산다고 할 때 과거의 행위를 원인으로 해서 생긴 결과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이미 지나간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현재를 알아차려야 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가슴의 느낌이 사라지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느낌은 사라질만한 조건이 성숙되었을 때 사라집니다. 느낌이 사라지지 않아 괴로울 때는 먼저 괴로운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다시 느낌을 알아차리십시오. 이 느낌을 걱정하거나 싫어하거나 없애려고 하는 것으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습니다.
대화를 하는 중에 ‘네’ ‘아니요’가 아니면 명확하지 않아 가슴에 느낌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명확하기를 바라는 내 마음이 가슴의 느낌을 일으킨 것입니다. 모든 일에 명확하기를 바라는 것은 성격입니다. 이러한 성격이 가슴의 느낌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니 이 마음을 그대로 두고 어떻게 가슴의 느낌을 해결할 수 있겠습니까?
가슴의 느낌을 제거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십시오. 하나의 현상으로 분리해서 알아차리는 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이것이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역대의 모든 붓다나 아라한이나 모든 성자가 이 방법으로 괴로움에서 벗어났습니다. 마음과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행은 혼자서 하기 어렵습니다. 명상원에 오셔서 약간이라도 수행을 배우면 혼자서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