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문답-103
5, 몸을 계속해서 알아차리면 수행하기 좋은 상태가 됩니다 6. 층간 소음은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7. 나중에 생긴 마음이 먼저 있는 마음을 봅니다 5. 몸을 계속해서 알아차리면 수행하기 좋은 상태가 됩니다
< 질문 > 경행을 하루 중 여러 번 해도 괜찮은지요. 그리고 법사님의 책 ‘바라는 것이 없으면 괴로울 일이 없다’에서 감각적 쾌락의 재미가 아닌 집중에 의한 고요한 재미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위해서는 일정한 기간 동안 몸을 만드는 인내가 필요하다, 라고 하셨는데 몸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궁급합니다. < 답변 > 경행은 정진력을 증진시키기 때문에 수행에서 빠질 수 없는 노력의 하나입니다. 경행을 통해서 생긴 노력의 힘으로 좌선이나 일상의 알아차림을 더 충실하게 할 수 있습니다. 경행은 한정된 공간을 왕복으로 걸으면서 알아차리는 방법이 있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걷는 모든 동작을 알아차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 경행과 좌선을 적절한 비율로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다만 경행이 좋다고 해서 계속 경행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경행을 집착하는 것입니다. 수행은 잘 안 되는 것도 계속해서 해야 합니다. 좋아하는 것만 하면 탐욕이고 싫어서 안 하면 성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리석음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몸을 대상으로 알아차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행은 전에 해보지 않은 것이라서 여러 가지 장애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특히 몸을 움직이지 않고 앉아서 좌선을 할 때는 통증이 나타납니다. 이때 이런 현상을 계속해서 알아차리면 어느 단계에 가서 통증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통증도 사라지고 몸이 수행을 하기가 좋은 상태가 됩니다. 수행자는 이때까지 인내하면 계속해서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몸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6. 층간 소음은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 질문 > 진지한 수행 질문으로 가득한 이곳에 부끄러운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제가 사는 곳은 아파트인데요, 윗집에서 날마다 계속 쿵쿵거립니다. 그때마다 제 마음도 쿵쿵거려 너무 힘듭니다. 제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 답변 > 요즈음 층간 소음이 사회적 문제인데 얼마나 힘드십니까? 사는 것이 모두 수행과 연관되어 있으므로 꼭 필요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소리가 들릴 때는 소리를 내는 윗집을 생각하지 말고 소리를 대상으로 알아차리십시오. 그리고 가슴으로 와서 쿵쿵 거리는 느낌을 지속적으로 알아차리십시오. 이때 쿵쿵 거리는 느낌을 싫어하거나 없애려고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지켜보십시오. 마음이 소리를 내는 윗집으로 가거나 소리 쪽으로 가면 계속 불쾌한 반응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알아차려도 싫어하는 마음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런 소리가 들리면 즉시 싫어하는 마음으로 반응하기 때문에 괴롭습니다. 그러나 소리를 알아차린 뒤에 가슴에서 반응한 느낌을 알아차리면 단지 소리에 불과하여 괴롭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소리를 이해하는 관용이 필요합니다. 불가피한 것은 수용해야 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불가피한 괴로움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므로 이런 괴로움을 모두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어쩌면 나도 소리를 내서 아랫집을 괴롭힐 수도 있습니다. 소리가 지나치게 크게 들릴 경우에는 내 아이가 뛰면서 노는 소리로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관용이 생깁니다.
7. 나중에 생긴 마음이 먼저 있는 마음을 봅니다 < 질문 > 내 마음을 내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조건에 의해서 일어남을 여러 번 알아차렸습니다. 그렇다면 내 마음이라 할 것 없이 그냥 마음이라 해야 옳겠지만, 아직 자연스럽게 인정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의문이 한 가지 들었습니다.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보는 또 하나의 마음이 분명히 있는데, 이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는 마음을 보는 또 하나의 마음, 이것이 무엇입니까? < 답변 > 존재하는 것의 특성인 무상, 고, 무아 중에서 무아를 알기가 가장 어렵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무상의 진리를 안 뒤에 괴로움을 진리를 알고 다음에 무아의 진리를 아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먼저 무상을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속적으로 알아차려서 집중을 해야 합니다. 이때 찰나집중을 해야 무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수행자가 생각으로 아는 무아가 아니고 수행을 통해서 무아의 지혜가 나면 수다원의 도과에 가까이 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아의 지혜를 알기도 어렵지만 얼마간 알았다고 해도 인정하기가 어렵습니다. 인류는 너무나 오랜 기간 동안 자아를 강화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이것이 아닌 무아의 정신세계가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깨달음이 어렵고 열반이 어려운 것입니다. 무아를 완전하게 알면 마음이 매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연속적 현상밖에 없다고 압니다. 그러므로 마음은 있지만 이것을 지배하거나 소유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은 대상을 아는 기능을 하며 이런 마음은 하나입니다. 그리고 보고 있는 것을 또 보는 마음은 나중에 생긴 마음이 먼저 있는 마음을 본 것입니다. 이렇게 알아야 마음이 찰나생 찰나멸 한다고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찰나생 찰나멸이 바로 무상이고 이런 마음이 바로 무아입니다. 사마타 수행을 하거나 관념적인 생각을 가지고 보면 아는 마음에 이것을 보는 어떤 또 다른 마음이 있는 줄 압니다. 이런 생각은 구할 수 없는 답을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음은 대상을 아는 기능밖에 하지 못합니다. 이 마음이 매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면서 연속된다고 확실하게 알면 보고 있는 마음 외에 또 다른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나중에 생긴 마음이 먼저 있는 마음을 본 것으로 바르게 알아 의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한국 명상원에서 수행을 지도할 때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알아차리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현재 일하고 있는 마음을 알아차리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보고 있는 마음을 또 보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일하고 있는 마음을 또 보기 위해서 마음을 새로 내야 합니다. 이것이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이렇게 수행을 하면 보고 있는 것을 또 보는 마음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고 새로 일어난 마음이 보는 것이라고 알 수 있습니다. 실재를 보는 수행이 아니고 관념적인 수행을 했을 때는 주인공이 있다는 전제하에 보기 때문에 다른 마음이 있는 것 같은 의문을 갖습니다. 그러나 이런 의문은 결코 답을 구할 수 없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바르게 위빠사나 수행을 하면 무아의 지혜가 나서 이런 의문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저의 스승이신 쉐우민의 우꼬살라 사야도께서는 생존시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생긴 마음이 먼저 있는 마음을 보아라'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때 마음에 대한 분명한 견해가 생겼습니다. 스승의 이런 말씀에 저는 다시 '나중에 생긴 마음이 먼저 있는 마음을 어떻게 봅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랬더니 스승께서는 '마음을 새로 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마음이 무엇인지를 드러내는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함축된 대화가 무아에 대한 가장 확고한 이론적 배경을 설명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