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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공부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 9 ~ 17장 - 해석(解釋)

작성자환공(桓公)|작성시간18.04.25|조회수459 목록 댓글 0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 9 ~ 17장 - 해석(解釋)

 

 

 

 

 

 

 

 

<해서는 북위해서, 초서는 손과정 서보의 서풍(書風)으로 썼다. 字의 크기는 약 1.8Cm이고 7호(毫) 겸호면상필(兼毫面相筆)을 사용했다.> 

 


 

논어(論語) 필사(筆寫) / 해석(解釋)

 

論語集註大全

논어집주대전​

 論語 :

공자(孔子)가 제자들이나 당시 사람들과 논란(論難: 어떤 문제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져 논하는 것) 하고 힐문(詰問: 잘못된 것을 따져 물음) 한 말을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다.

 集註 :

주자(朱子)가 서술한 주()를 명칭하는 것으로 송유십일가(宋儒十一家)의 주석(註釋)에서 좋은 점을 초출(抄出) 하고 논어 주소본(註疏本)에서 주()를 모아 자신의 학설을 덧붙여서 집주(集註)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大全 :

명() 나라 성조(成祖)가 영락 년(永樂年) 중에 주자(朱子)의 집주(集註)를 근간(根幹)으로 하여 국가에서 발간을 한 영락대전본(永樂大全本)이다. 이 영락대전본은 명나라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교과서로 채택했다.

  • 논어(論語)는 맹자(孟子)와 마찬가지로 편명(篇名)에는 뜻이 없다. 옛날 죽간을 말아놨을 때 제일 첫 번째 나온 글자 「子曰은 자주 나오므로 편명(篇名)으로 삼지 않고」그다음의 두 글자 또는 세 글자를 편명으로 삼았다. (그러나 學 자를 제일 먼저 둔 것은 공자가 배움을 먼저 거론한 뜻이 있다고 본다.) ​

2, 爲政篇(위정편)  9 ~ 17章 
 

二十四章

모두 24장이다.

 

[九章]

子曰 吾與回 言 終日 不違如愚러니 退而 省其私한대 亦足以發하나니 回也不愚로다

자왈 오여회 언 종일 불위여우러니 퇴이 성기사한대 역족이발하나니 회야불우로다

공자가 말씀하시길 내가 안회와 말을 종일토록 하였는데 불위(어기지 않음: 뜻이 어긋나거나 묻지 않음) 하여서 어리석은 것 같았는데 물러나서 사(私: 붕우들과 토론하는 것)를 살펴보니 또한 내가 말한 이치를 충분히 발명(發明)시키고 있었다. 안회(顔回)는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다.

  • 顔回 : 공자의 제자로 字는 자연(子淵)이고 노(魯) 나라 사람이다. 공자보다 30세가 적고, 29살에 이미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고 한다. 물이 도는 게 회(回)인데 깊은 못이라야 물이 돌게 됨으로 자(字)가 연(淵)이다. 
  • 池는 흘러내리는 물을 막은 못. 塘은 집안의 작은 연못. 湖는 池가 큰 것. 淵은 깊이가 깊은 못. 澤은 넓이가 넓은 못이다. 塘에 蓮을 심은 것을 연당(蓮塘)인데 우리말로 풀면 “연못”이다. 요즘은 못에 연을 심지 않아도 연못이라고 한다.
  • 省其私 : 사생활을 살핀 것이 아니고 제자들끼리 토론하는 것을 살핀 것이다. 스승과 제자가 지리 문답을 하는 것을 『공(公)』이라 하고, 물러나 제자들끼리 토론하는 것을 『사(私)』라고 한다.
  1. 回 : 공자의 제자이니 성은“안”이요 자는“자연”이다[孔子弟子 姓顔 字子淵].
  2. 不違 : 사제(師弟) 간의 생각이 서로 어긋나지 않아서 듣고서 받아들이는 것만이 있고, 묻거나 힐난(詰難:반박) 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意不相背 有聽受而無問難也]
  3. 私 : 나아가 한가롭게 있는 것(붕우들과 강명(講明) 하고 있는)이고, <스승에게>나아가 뵙고 질문하는 때가 아닌 것을 말한다 [謂燕居獨處 非進見請問之時]
  4. 연거독처(燕居獨處)는 일반적으로 한가롭게 홀로 있는 것을 말하는데, 정현(鄭玄)은조회에 물러나서 있는 것이 연거(退朝而處燕居)」라고 주(註)를 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물러나 홀로 있는 것을 연거(燕居)라고 한다.
  5. 發 : 소언지리(공자가 말씀해 주신 이치)를 발명시키는 것을 이른다[謂發明所言之理].

愚 聞師호니顔子 深潛 純粹하여 其於聖人 體段已具하니 其聞夫子之言 默識心融하여 觸處洞然하여 自有條理. 故 終日言 但見 其 不違 如愚人而已로되 及 退 省其私한대 則見其日用動靜語默之間 皆 足以發明夫子之道하여 坦然由之而無疑하니 然後 知其不愚也.

나는(朱子) 그것(이내용을) 선생님에게 들었으니 말씀하시기를 안자(顔子)는 신잠 순수(深潛純粹: 덕성이 깊고 커서 깊이 잠겨있고 기질이 밝고 깨끗하며 순수함) 하여 그가 성인의 모습은 이미 구비하였으니 그가 공자의 말씀을 들었어 때에 묵지(默識: 말하지 않아도 이해함) 하고 심융(心融: 마음으로 이해함) 하여서 촉처(觸處: 자신의 모이 이르는 곳)마다 통연(洞然: 환하게 관통함) 해서 저절로 조리(條理)가있었다. 그러므로 종일토록 말을 하였는데 단지 그가 어기지 않아서 어리석은 사람처럼 보였을 뿐, <그가>물러남에 미치어서 사사로이 강명(講明) 하는 것을 살펴보면 일상생활의 모든 행동거지가 모두 공자의 도()를 충분하게 발명시켜 탄연(坦然: 거침없이 실천해 나감) 해 나감에 의심이 없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된 뒤에야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안 것이다.

  • 주자의 스승 : 연평(延平) 이통(李侗)이다. 정자(程子)의 제자가 양시(楊時)이고, 양시의 제자가 나종언(羅從彦)이고, 나종언의 제자가 이통(李侗)이다.  주자는 가끔씩 자기 스승을 이야기하지만 정자와 자신을 거론해서 “정주학(程朱學)”이라고 한다. 이것은 맹자(孟子)가 항상 공자(孔子)를 칭(稱) 하지만 가끔씩 자기의 스승인 자사(子思)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十章]

子曰 視其所以하며 觀其所由하며 察其所安이면 人焉廋哉리오 人焉廋哉리오

자왈 시기소이하며 관기소유하며 찰기소안이면 인언소재리오 인언소재리오

공자가 말씀하시길 그가 행하는 바를 주시할 것이며, 그가 행하게 된 동기(動機)를 살펴볼 것이며, 그가 마음에서 즐기는 것을 세심하게(더욱더) 살펴본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숨길 수 있겠는가! 사람들이 어떻게 숨길 수 있겠는가!

  • 관인법(觀人法: 사람을 보는 법)이다.
  • 以 : 爲(행하다)의 뜻이다.
  • 視 : 내가 의식을 가지고 보는 것. ※ 춘추(春秋) 곡양전(穀梁傳)에 「常事曰視: 일상적일 일을 보는 것」라고 하였는데 일상적인 일을 보는 것은 의식을 가지고 보는 것이다. 대학(大學)에서는「心不在焉 視而不見也 : 마음을 그곳에 두지 않으면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라고 했다.
  • 觀 : 범상치 않게 보는 것. 觀은 視보다 더 상세하게 보는 것「非常曰觀 觀詳於視」역경(易經)에 「仰以觀於天文 俯以察於地理 : 우러러 하늘의 천문을 살펴보고, 구부려 땅의 이치를 세심하게 살펴본다.」
  • 察 : 觀보다 세밀하게 하는 것[察密於觀]. 觀은 소종래(所從來: 지내온 내력)이고, 察은 소이연(所以然: 그렇게 된 까닭)이다.
  • 由 : 소종래(所從來: 지내온 내력)를 말함.
  1. 以 : 행하는 것이다. 선은 행하는 사람은 군자가 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은 소인이 된다[爲也 爲善者爲君子 爲惡者爲小人].
  2. 觀 : 視에 비교하여 상세한 것이다[比視爲詳矣].
  3. 由 : 소종래(所從來: 지내온 내력)이다[從也]. 행하는 일은 비록 선하지만 마음의 동기가 선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군자가 될 수 없다[事雖爲善 而意之所從來者 有未善焉 則亦不得爲君子矣].
  4. 察 : 다 더욱더 상세한 것이다[則又加詳矣].
  5. 安 : 즐기는 것이다[所樂也].
  6. 焉 : “어찌”이다[何也].
  7. 廋 : 숨기는 것이다[匿也]. <人焉廋哉를> 거듭 말씀하여서 깊이 밝혀 주신 것이다[重言以深明之].

程子曰 在己者 能 知言窮理 則能 以此 察人 如 聖人也.

정자(明道)가 말하기를 자신에게 있는 것(視, 觀, 察)을 가지고서 <그 사람의> 말을 알고, 이치를 궁구(窮究) 할 수 있으면 이것(以:행하는 것, 由:일의 동기, 安:즐거는 것)을 가지고 사람을 살펴보는 것을 성인(聖人)처럼 할 수 있게 된다.

 

[十一章]

子曰 溫故而知新이면 可以爲師矣니라

자왈 온고이지신이면 가이위사의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길를 예전에 배워서 알았던 것을 되풀이하여 거듭 익혀서 새로운 이치를 안다면(깨우친다면) 스승이 될 수 있다.〈朱子 註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옛 것을 익히고 새로운 것(문물)을 안다면 스승이 될 수 있다. <古 註>

  • 溫 : 익힌다는 뜻이다. 조리를 해놓고 다시 데우는 것을 온(溫)이라고 한다​. 學而時習之의 습(習:익힐 습)과 같은 뜻이다.
  • 논형(論衡)에 「知古不知今 謂之陸沈: 옛 것을 알고 지금의 것을 알지 못하면 육침(어리석어면 서 고집불통)이라고 말하고」「知今不知古 謂之盲瞽: 지금의 것을 알고 옛 것을 알지 못하면 맹고(사리에 어두움)라고 말한다」라고 했다.
  1. 溫 : 실마리를 찾는 것(사리를 궁구 하는 것)이다[尋繹也]
  2. 故 : 예전에 들어서 안 것이고[舊所聞],  聞見의 속에는 “알다”의 뜻이 있는데 옛 것은 들어서 알고, 지금의 것은 보아서 안다. 
  3. 新 : 지금의 것을 깨우친 것이다[今所得].

言 學 能 時習舊聞하여 而每有新得이면 則所學在我하여 而其應不窮이라 故 可以爲人師 若夫 記問之學 則無得於心하여 而所知有限이라 故 學記 譏其不足以爲人師하니 正 與此意 互 相發也.

유자(儒者: 유학을 하는 사람)가 학문을 하는 것은 능히 예전에 알았던 것을 항상 되풀이하여 익혀서 언제나 새롭게 깨우치는 것이 있다면 배운 것이 나에게 있어서 기응(其應: 새로운 것을 깨우치는 효응(效應))이 끝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스승이 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기문지학(記問之鶴: 질문에 대비해서 하는 학문)은 마음속에서 깨우친 것이 없어서 아는 것이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예기(禮記) 학기(學記)에서 그것(기문지학을 하는 사람)은 스승이 될 수 없다고 꾸짖었으니 바로 이장의 뜻과 상호(相互) 발명시켜주는 것이다.

  • 學 : 유자(儒者: 유학을 하는 사람)가 학문을 하는 것을 말함.
  • 每 : 언제나
  • 若夫 : 문장의 단락을 바꿔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 記問之鶴 : 질문에 대비해서 하는 학문. 「口耳之學: 남의 말을 듣고서 입으로 바로 나오는 학문」에 가깝다.

 

[十二章]

子曰 君子 不器니라

자왈 군자 불기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기물(器物)처럼 용도가 국한(局限) 되지 않는다.

  • 不器 : 不은 동사 부정이므로 ​“그릇을 하지 않는다”이다. 非器는 명사 부정이므로“그릇이 아니다”이다.
  • 器 : 그릇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고 器物 ​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는데 여시서는 기물(器物)을 뜻한다.
  • 君子 : 재주와 덕이 출중함(才德出衆) 을 賢 이라고 하는데 賢子가 바로 君子이다.
  • 君子不器 :  예기(禮記) 학기(學記)에 大德不官 大道不器 大信不約 大時不齊: 큰 덕(성인의 덕)을 지닌 사람은 한가지 관직에 국한되지 않으며 큰도(성인의 도)를 지닌 사람은 한가지 기물을 쓰임에 국한되지 않는다. 큰 믿음은 약조를 하지 않고 큰 때(天時)도 生과 殺이 같지 않다.
  1. 器 : 각가 그 용도에는 알맞으나 서로 통용되지 못한다[各適其用而不能相通] 不能은 “할 수 없다. 잘하지 못한다. 하지 못한다”의 뜻이다.

成德之士 體 無不具 故 用 無不周하고 非特 爲 一才一藝而已니라.

덕을 완성한 사람은 본체에 구비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므로 쓰임에 두루 적용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단지 한가지 재능(才能)이나 한가지 기예(技藝)를 행할 분만이 아닌 것이다.

 

[十三章]

子貢 問 君子한대 子曰 先行其言이요 而後從之니라

자공 문 군자한대 자왈 선행기언이요 이후종지니라

자공이 군자에 대해서 물었는데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자신()이 말할 것을 먼저 실천하고, 이후에 <말이> 뒤따르게 할 것이다.

周氏曰 先行其言者 行之於未言之前이요 而後從之 言之於旣行之後

주 씨(周孚先)가 말하길 자신이 말할 것을 먼저 실천하는 것은 아직 말하기 전에 실천해 나가는 것이고 그 이후에 말이 뒤따르게 한다는 것은 이미 실천하고 난 뒤에 말을 하는 것이다.

  • 未言之前  : “아직 ~~아니하다” 이기 때문에 未가 오면 前은 따라오게 된다. 未言之前과 旣言之後가 짝이 된다. 未는 미래사(未來事) 이기 때문에 前과 짝이 되고, 旣는 과거사(過去事) 이기 때문에 後와 짝이 된다. (旣言 만 쓰도 “말하고 난 뒤”에로 해석한다.)


范氏曰 子貢之患 非言之艱이요​ 而行之艱이라 故 告之以此하시니라.

범 씨(范祖禹)가 말하길 자공의 근심은 말하는 것이 어렵지 아니하였고 실천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므로 이것(先行其言 而後從之)을 가지고 말씀해 주었다.

  • 患 : 患은 어떠한 일에 걱정하는 것이고, 憂는 항상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근심이다.
  • 사서 반신록(四書 反身錄)에「​실천을 먼저 하고 말을 뒤따르게 한다면 군자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말은 능통하지만 실천이 미치지 못한다면 소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知得先行後言是君子 知能言而不逮爲小人矣)」라는 말이 있는데 “先行其言 而後從之”에서 나온 말이다.

 

[十四章]

子曰 君子 周而不比하고 小人 比而不周니라

자왈 군자 주이불비하고 소인 비이불주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군자는 보편적으로 사랑을 하되 치우치게 사랑하지 않고, 소인은 치우치게 사랑은 하되 보편적으로 사랑은 하지 않는다.

  • 君子 : 여기서 의 군자는 성덕지군자(成德之君子: 덕을 완성한 군자)이기도 하지만 대상지군자(對象誌君子: 남의 윗자리에 있는 군자)이다.
  • 周와 比 : 사랑한다는 뜻이다. 周는 보편적인 사랑이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 것이 없다(無所不愛).​ 比는 어느 한쪽에 치우친 사랑이다.
  1. 周 : 보편적으로 사랑하는 마음이다[普徧也 →普偏之愛]. 논어의 주석(註錫)에는 주자(朱子)가 공통적으로 된 글자들을 많이 생략하므로 보편적이다”라고 해석하면 안 된다.
  2. 比 : 치우쳐서 사랑하는 마음이니 [偏黨也 → 偏黨之愛]  모든 사람들과 친후(친하여 정이 두터움) 하게 한다는 뜻이다. 다만 주()는 똑같이 사랑하는 것이고, 비()는 개인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皆與人親厚之意 但周公而比私爾]​.

君子小人 所爲不同 如 陰陽晝夜하여 每每相反이라 然 究其所以分이면 則在 公私之際 毫釐之差耳 故 聖人 於 周比和同 驕泰之屬 常對擧 而互 言之하시 欲 學者 察乎兩間 而審其取舍之幾也.

군자와 소인이 행위가 같지 않은 것은 음양(陰陽)이나 주야(晝夜)와 같아서 언제나 서로 반대가 된다. 군자와 소인이 나뉘게 되는 까닭을 살펴보면 나눠지는 분기점()에서는 털끝만 한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성인(孔子)께서는 周와 比(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 和와 同(자로 편: 君子和合不同 小人同而不和) 驕와 泰(자로 편: 君子泰而不驕 小人驕而不泰) 같은 따위에 대해 언제나 상대적으로 거론해서 서로의 결과를 말씀해 주시니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나뉘는 사이(분기점)를 살펴보게 하여서 취사(取捨: 취하고 버림)의 기미(幾微: 일이 일어나기 전)를 알게 하고자 한 것이다.

  • 陰陽晝夜 : 양주(陽晝)는 군자에 속하고, 음야(陰夜)는 소인에 속한다.
  • 欲 : ~~으로 하여금. ~~하고자 한다. 欲은 항상 使와 짝을 이루는데 欲 자나 使 자 중에 한자를 생략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 舍 : 捨(버릴 사)이다.
  • 審 : 알게 하다의 뜻이다. 察審: 살펴서 알게 하다.

 

[十五章]

子曰 學而不思則 罔하고 思而不學則 殆니라

자왈 학이불사즉 망하고 사이불학즉 태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길 그 일을 배우 고서 그 이치(理致)를 생각하지 않으면 터득(攄得)하는 것이 없고, 그 이치를 생각만 하고서 그 일을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게 된다.

  • 學而 : 그 일을 배우 고서(學其事而)이다.
  • 不思 : 그 일의 이치를 생각하지 않으면(不事其事之理)이다.
  • 罔 : 터득하는 것이 없고(則不得)이다.
  • 思而 : 그 일의 이치만 생각하고서 (只思其事之理)이다.
  • 不學 : 그 일을 배우지 않으면(不學其事則)이다.
  • 殆 : 위태(危殆) 하게 된다.

 논어 주자(朱子) 주(註)의 특징은 본문과 주를 연결을 잘 시키는 것이다. ​ 아래의 문장에서도 본문과 연결을 시키는데 不求諸心 앞에『學而』두 글자를 생략하고, 不習其事 앞에『思而』두 글자를 생략해서 연결했다. 

不求諸心 昏而無得이요 不習其事 危而不安이라.

<學而 : 그 일을 배웠으나> 마음에서 이치를 찼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치에>어두워서 터득하는 것이 없고, <思而 : 그 이치를 생각하였으나> 그 일을 익히지 않았기 때문에 위험해져서 편하지 못하게 된다.

程子曰 博學 審問 愼思 明辨 篤行 五者 廢其一이면 非學也니라.

정자(伊川)가 말하길 박학(博學:널리 배워 나감), 심문(審問: 상세하게 질문 함), 신사(愼思: 신중하게 생각함) 명변(明辨: 분명하게 변별함), 독행(篤行: 독실하게 실천함) 이 다섯 가지 중에서 한 가지라도 폐지한다면 학문이 아니다.

  • 중용(中庸)에「진실한 것은 하늘의 도이고, 진실하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誠者天之道 誠之者人之道也]. 진실하려고 하는 사람은 선(善)을 선택해서 굳게 지켜나가야 된다[擇善而固執之]. 그렇게 하려면 널리 배워 나가야 하고[博學之] 상세하게 질문해야 하고[審問之]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고[愼思之] 분명하게 변별해야 하고[明辨之] 독실하게 실천해 나가야 한다[篤行之].」를 말한 것이다. <博學 審問 愼思 明辨은 擇善에 속하며 知이고, 篤行은 固執에 속하며 行이다.>

 

[十六章]

子曰 攻乎異端이면 斯害也已니라

자왈 공호이단이면 사해야이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이단을 전공(專攻) 하면 해가 될 뿐이다.  해가 되는 것이 심하다<斯害也已矣>.

  • 斯害也已 : 황본(皇本)이나​ 고본(古本), 단본(唐本) 논어(論語)에는「斯害也已矣: 해가 되는 것이 심하다」로 되어 있다.
  • 異端 : 이단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데 공자가 지칭한 이단이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확실하지 않고, 노담(老聃)은 이단으로 보지 않았고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을 이단으로 본 것이다.
  • 斯 : 則(곧 즉)의 뜻이다.

范氏曰 攻 專治也 故 治 木石金玉之工曰攻이라 異端 非 聖人之道而別爲一端이니 如 楊墨是也 其率天下하여 至於 無父 無君하니 專治而 欲 精之 爲 害 甚矣.

범 씨(范祖禹)가 말하기를 공은 전공하여 다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목석과 금옥을 다루는 공인을 공이라고 한다. 이단은 성인의 도가 아닌 별도의 한가지 방도()이니 양주와 묵적 같은 것이 이러하다. 그들(양주와 묵적)이 천하 사람들을 인도하여 부모를 무시하고 임금을 무시데에 이르게 되었으니 전공하여서 정미하게 탐구하고자 한다면 해가 되는 것이 심하다.

  • 楊朱 : 爲我(나만 잘하면 됨) 주장 → 義而不義(의 인듯하지만 의가 아님) → 無君(임금을 무시함)
  • 墨翟 : 兼愛(모두를 사랑함) 주장 → 仁而不仁(인 인듯하지만 인이 아님) → 無父 ​(부모를 무시함)

程子曰 佛氏之言​ 比之楊墨하면 尤 爲 近理하니 所以其害 爲 尤甚이라 學者 當 如 淫聲美色하여 而遠之 不爾 則駸駸然 入於其中矣.

정자(明道)가​ 말하길 불교에서 주장하는 학설들은 양주(楊朱)와 묵적(墨翟)의 학설을 비교하면 더욱 이치에 가까우니 그 해가 더욱 심하게 되는 이유이다. 배우는 사람들은 마땅히 음성(淫聲 : 정도를 벗어난 음악)이나 미색(美色: 아름다운 이성)과 같이 여겨서 멀리해야 된다.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속(淫聲과 美色)에 빠져들게 된다.

  • 佛氏 : 불교에서 주장하는 학설. 주장하는 학설을 이야기할 때 “氏”라고 한다. 佛者는 불교를 신봉하는 사람들. 佛氏는 불교에서 주장하는 학설.
  • 不爾 : 이와 같이 하지 않으면. 爾 한자만 있어도 如此(이와 같이)의 뜻이 된다.

[十七章]

子曰 由 誨 女 知之乎인저 知之爲知之요 不知爲不知 是知也니라。

자왈 유 회 여 지지호인저 지지위지지요 불지위불지 시지야니라

​공자가 말씀하시길 유야 너()에게 아는 것에 대해서 가르쳐 주겠다. 알면 안다고 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아는 방법이다. 

  • 女 : 汝(너 여)를 줄여서 쓴것이다. 汎을 凡으로 쓴것과 같다.
  • 知之爲知之 : 之는 모두 허사(虛辭)이다.
  • 논어 전편(論語全篇)에서 공자가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은 그 사람에게 절실한 것을 깨우쳐 주기 위한 것이다. 이 장(章)의 말은 아마도 공자와 자로가 처음 만났을 때 자로와 학문 대결을 하고 나서 자로의 부족한 점을 이야기 한듯하다.
  • 순자(荀子)에「알면은 안다고 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하는 것이 말하는데 요점이 되고, 할 수 있어면할 수 있다고 하고, 할 수 없어면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실천하는데  지극해진다[君子 知之曰知之 不知曰不之 言之要 能之曰能之 不能曰不能 行之至]」라는 말이 있는데 논어의 이 말을 인용한 것이다.
  1. 由​ : 공자의 제자이고 성은 “중”, 자는“자로”이다[孔子弟子 姓仲 字子路]. 는 계로(季路)인데 子 자를 붙인 것은, 남자의 美稱으로 붙이고 학문이 높은 사람을 존중해서 붙이는 것인데 季路를 높여서 子路라고 한 것이다. 공자보다 8살이 적고 공자에게 바른 소리도 많이 하고 공자가 마음 놓고 야단칠 수 있는 대상이 자로이다.

子路好勇하니 蓋 有 强其所不知 以爲知者 故 夫子告之曰 我 敎 女 以 知之之道乎인저 但 所知者 則以爲知하고 所不知者 則以爲不知 如此則 雖 或 不能盡知라도 而無 自欺之蔽 亦 不害其爲知矣 況 由此而求之 又 有 可知之理乎.

자로는 용기를 좋아하였으니 아마도 그는 알지 못하는 것을 억지를 부려서 안다고 말한 것이 있는 듯 하다. 그러므로 공자가 말씀해 주시기를 내가 너에게 아는 방도를 가르쳐 주겠다. 다만 아는 것 이면 안다고 하고 알지 못하는 것은 알지 못한다고 할 것이니 이와 같이 하면 비록 혹여 모든 것을 알지 못할지라도 자신을 속이는 폐단이 없을 것이며 또한 알게 되는 데에 해롭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이로 말미암아서 추구해 나간다면 더욱 알 수 있는 이치가 있는 것이다.


 

※ 출처 : 권경상 선생의 강의내용을 요약 정리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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