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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공부

논어 - 공야장편(公冶長篇) 1 ~ 5장 해석

작성자환공(桓公)|작성시간18.05.07|조회수668 목록 댓글 0

논어 - 공야장편(公冶長篇) 1 ~ 5장 해석

 

 

 

 

 

 

<해서는 북위해서, 초서는 손과정의 서풍(書風)으로 썼다. 字의 크기는 약 1.8Cm이고 7호(毫) 겸호면상필(兼毫面相筆)을 사용했다.> 

 


논어(論語) 필사(筆寫) / 해석(解釋)

 

論語集註大全

논어집주대전

 論語 :

공자(孔子)가 제자들이나 당시 사람들과 논란(論難: 어떤 문제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따져 논하는 것) 하고 힐문(詰問: 잘못된 것을 따져 물음) 한 말을 제자들이 기록한 것이다.

 集註 :

주자(朱子)가 서술한 주()를 명칭하는 것으로 송유십일가(宋儒十一家)의 주석(註釋)에서 좋은 점을 초출(抄出) 하고 논어 주소본(註疏本)에서 주()를 모아 자신의 학설을 덧붙여서 집주(集註)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大全 :

명() 나라 성조(成祖)가 영락 년(永樂年) 중에 주자(朱子)의 집주(集註)를 근간(根幹)으로 하여 국가에서 발간을 한 영락대전본(永樂大全本)이다. 이 영락대전본은 명나라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에서도 교과서로 채택했다.

  • 논어(論語)는 맹자(孟子)와 마찬가지로 편명(篇名)에는 뜻이 없다. 옛날 죽간을 말아놨을 때 제일 첫 번째 나온 글자 「子曰은 자주 나오므로 편명(篇名)으로 삼지 않고」그다음의 두 글자 또는 세 글자를 편명으로 삼았다. (그러나 學 자를 제일 먼저 둔 것은 공자가 배움을 먼저 거론한 뜻이 있다고 본다.) ​


 

5, 公冶長篇(공야장편) 1~ 5장(章) 

此篇 皆 論 古今人物賢否得失하니 蓋 格物窮理之一端也 凡 二十七章이라. 胡氏以爲 疑 多子貢之徒所記云이라.
이 편은 모두 옛날과 지금의 인물에 대한 현부(그 사람이 현명함과 현명하지 않음)와 득실(잘함과 못함)을 논평하였으니 격물 궁리(사물의 이치를 궁구함) 하는 한가지 일이다. 모두 27장이다. 호 씨(胡寅)는 아마도 대부분 자공의 문도(門徒)가 기록한 것인듯하다.라고 말하였다.
공야장(公冶長) 이하는 당시 사람들에 대한 논평이고, 공문자(孔文子) 이하는 고인(古人)에 대한 논평이다.
格物窮理의 격(格)은 궁구(窮究)의 뜻이 있고, 물(物)은 사물의 이치(理致)를 말하므로 격물(사물의 이치를 궁 구함)과 궁리(이치를 궁 구함)는 같은 말인데 겹쳐서 나온다. 아마도 주자가 주를 달고 수정을 할 때 미쳐 못한 것으로 보인다. 

 


[一章]
子謂公冶長하사되 可妻也 雖在縲이나 非其罪也라하시고 以其子 妻之하시다
자위공야장하사되 가처야 수재누설지중이나 비기죄야라하시고 이기자 처지하시다
공자가 공야장을 평론하시기를 “아내 삼아 줄만하다(사위 삼을만하다). 비록 누설(감옥)에 있었으나 그의 죄가 아니다.”라고 하시고, 당신(공자)의 딸을 아내 삼아 주었다.
子謂南容하사되 邦有道 不廢하고 邦無道 免於刑戮이라하시고 以其兄之子 妻之하시다
자위남용하사되 방유도 불폐하고 방무도 면어형륙이라하시고 이기형지자 처지하시다
공자께서 남용을 평론하시기를 “나라에 도가 있을 때에는 버림을 받지 않을 것이며, 나라에 도가 없을 때에는 형륙(형벌에 따라 죽임)을 면할 것이다.”라고 하시고 그(공자) 형의 딸을 아내 삼아 주었다. ​
「子謂公冶長」이라고 쓴 것은 공자가 공야장이 없는데 공야장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이고, 「謂公冶長」이렇게 曰 자가 들어가면 공자가 공야장을 앞에 두고 “공야장에게 일러 말씀하시기를.”이 된다.
: 평성(平聲)이 되면 “아내 처”이지만 거성(去聲)이 될 경우에는 “아내 삼아줄 처”가 된다.
: 평론하다의 뜻이다.
縲絏 : 죄인을 옥중에 매어 둠.
: 장소를 지칭하기 때문에 해석하지 않는다. 「上中下」는 장소를 지칭할 때 많이 쓰인다.
非其罪也 : 그의 죄가 아니다.라는 것은 무고(誣告)를 당했거나 누명(陋名)을 쓴 경우를 말한다.
: 자식을 뜻하므로 女도 포함되어 있다.
不廢 : 버림을 받지 않음.

 

  • 公冶長 孔子弟子. : 공야장은 공자의 제자이다. 사기 제자전(弟子傳)에는 제(齊) 나라 사람으로 되어있고, 논어집해(集解)와 공자가어(家語)에는 노(魯) 나라 사람으로 되어 있다. 
  • 爲之妻也. : 처(아내 삼아줌)는 그의 아내가 되는 것이다.
  • 黑索也 : 루는 흑삭(검은 밧줄)이다.
  • 攣也 古者獄中 以黑索拘攣罪人이라. : 설은 묶는 것이니 옛날 감옥에서 검은 밧줄로써 죄인을 묶어놓았다.
長之爲人 無所考 而夫子稱其可妻하시니 其 必 有以取之矣리라. 又言 其人 雖 嘗 陷於縲絏之中이나 而非其罪 則固無害於可妻也. 夫 有罪無罪 在我而已 豈以自外至者 爲榮辱哉리오.
공야장의 사람됨은 참고할 곳이 없으니 부자(공자)께서 그를 아내 삼아 줄만하다고 칭찬하였으니 아마도 필경 <공야장에게서> 취할 것이 있은 듯하다. 또 말씀하시기를 “그 사람이 비록 일찍이 누설(감옥) 속에 빠진 적이 있었으나 그의 죄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였으니 진실로 아내 삼아 줄만한 데에 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죄가 있고 죄가 없는 것은 나에게 달려있을 뿐이니 어찌 밖으로부터 이른 것을 가지고서 영욕(榮譽와 汚辱)으로 삼겠는가. 
  1. : 노끈을 말할 때는 “삭”으로 읽는다.
  2. 有以 : 할 수 있다. 할 것이 있다. 방법이 있다.
  3. : “일찍 상”은 과거사(過去辭)이다.

 

  • 南容 孔子弟子 居南宮하고 又 名适이며 子容이며 敬叔이니 孟懿子之兄也. : 남용은 공자 제자이니 남궁에 살았고 이름은 “도”이다. 또 한 이름은 “괄”이며 자는 “자용”이고 휘호는 “경숙”이니 맹의자의 형이다.
  • 不廢 言必見用也 以其謹於言行이라 : 불폐는 반드시 등용(登用)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以 其 謹於言行 故 能見用於治朝하고 免禍於亂世也 事 又見 第十一篇이라.
그(남용)는 언행을 조심하였기 때문에 치조(治世之朝: 치도가 있는 조정)에서는 등용을 받고, 난세(亂世之朝: 난세의 조정)에서는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이 일은 또 11편에 보인다.
  1. : 평성이면 “다스리다”이고 거성일 때는 “治世(세상을 잘 다스림)”를 말한다 된다.

 

⊙ 或曰 公冶長之賢 不及南容이라 故 聖人 以其子妻長하고 而以兄子妻容하니 蓋 厚於兄而薄於己也.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공야장의 인품은 남용에게 미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성인께서 당신의 달을 공야장에게 아내 삼아주었고, 형의 달을 남용에게 아내 삼아 주었으니 아마도 형에게는 후덕하게 하고, 자신에게는 야박하게 대한듯하다.
程子曰 此 以己之私心으로 窺 聖人也. 凡人 避嫌者 皆 內 不足也. 聖人 自 至公하니 何 避嫌之有리오 況 嫁女 必量其才而求配 尤 不當有所避也.
정자(伊川)가 말하기를 이 말은 자신의 사사로운 마음으로써 성인의 마음을 엿본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혐의(嫌疑)을 피하는 것은 모두 내면에 덕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성인은 본래 지극히 공정한 분이니 어찌 혐의를 피할 것이 있겠는가. 하물며 딸을 시집보내는 것은 반드시 딸의 재덕(才德)을 헤아려서 배필을 찾아야 하니 더욱이 <혐의를> 피하는 바가 있어서는 옳지 못하다.
若 孔子之事 則其年之長幼 時之先後 皆 不可知어니와 惟 以爲避嫌 則大不可. 避嫌之事 賢者且不爲 況 聖人乎. 
공자의 일과 같은 경우는 그(딸과 조카)의 나이가 많고 적은지 와 때(혼인한 때)의 먼저와 나중을 모두 알 수 없거니와 그것이 혐의를 피해서 하였다면 이것은 매우 옳지 못한 것이다. 혐의를 피하는 일은 현자도 하지 않는 일인데 하물며 성인이겠느냐?
  1. 或曰 : 대개 그 당시에 이름을 쓰면 피해가 갔을 때 或曰이라고 쓰고, 또 내가 문답을 설정할 때 或曰이라고 쓰는데 여기서는 정이천(程伊川)이 문답을 설정한 것이다.
  2. : 賢은 일반적인 훈고(訓誥)는 재덕(才德)이 출중한 것인데, 여기서는 현부(賢否: 현명함과 그렇지 못함)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품으로 해석한다.
  3. : “본디”의 뜻이다.

 

​[二章]
子謂子賤하사되 君子哉 若人이여 魯無君子者 斯焉取斯리오
자위자천하사되 군자재 약인이여 노무군자자 사언취사리오
공자께서 자천을 평론하시기를​ 군자로구나 이 사람이여, 노나라에 군자가 없다면 이 사람이 어느 곳에서 이러한 군자의 덕을 취하였겠는가?
공자가 형의 아들인 공멸(孔蔑)에게 벼슬을 하고 나서 얻은 게 무엇이며 잃은 게 무엇이냐?라고 질문하니 공멸이 대답하기를 “얻은 건 없고 잃은 게 세 가지입니다.”라고 했고, 자천(子賤)에게 똑같은 내용을 질문하니 “얻은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학문을 한 것을 지금 시행하니 배운 것이 더욱 분명해지고, 둘째 받은 봉록(俸祿)을 이웃 친척들과 나누니 친척들과 더욱 친밀하게 되고, 셋째 공사(公事)로써 죽은 사람과 병이든 사람을 위로하니 붕우들과 더욱 가깝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벼슬하면서 얻은데 세 가지입니다.”라고 하니 공자의 대답이 이장의 내용이다.
  1. 斯焉取斯 : 앞의 斯는 子賤, 뒤에 斯는 군자의 덕을 말한다. 『= 此人(자천). = 何所(어느 곳). = 취하다. = 此德(君子之德)』


  • 子賤 孔子弟子 姓宓이요 名不齊. : 자천은 공자의 제자이니 성은“복”이고 이름은 “불제”이다.
  • 上斯斯 此人이요 下斯斯 此德이라. : 위에 있는 사의 사자는 이 사람을 말하고 아래 있는 사의 사자는 군자의 말한다. 
子賤 蓋 能 尊賢取友하야 以成其德者 故 夫子旣歎其賢하시고 而又言 若 魯無君子 則此人 何所取以成此德乎아하시니 因以見魯之多賢也.
자천은 아마도 현인(賢人)을 존중하고 익우(益友: 이로운 벗)를 취하여서 자신의 덕을 완성할 수 있었던 사람인듯하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이미 그의 인품을 칭탄(稱歎: 탄복하여 칭찬함) 하시고, 또 말씀하시기를 만약 노나라에 군자가 없었다면 이 사람이 어느 곳에서 취하여서 이러한 덕을 완성하였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 말씀으로> 인하여서 노나라에 현인이 많다는 것을 나타낸 것이다. 

⊙ 蘇氏曰 稱人之善 必本其父兄師友 厚之至也.
소 씨(蘇軾)가 말하기를 다른 사람의 선을 칭찬할 때에 반드시 그 사람의 부모형제나 스승과 벗에 근본을 두는 것은 지극히 후덕한 것이다.
​[三章]
子貢 問曰 賜也 何如하니잇고 子曰 女 器也니라 曰 何器也잇고 曰 瑚璉也니라
자공 문왈 사야 하여하니잇고 자왈 여 기야니라하기야잇고 왈 호련야니라
자공이 묻기를 저는 어떻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너는 그릇이다. 묻기를 어떠한 그릇입니까? 말씀하시기를 호련(제사에 쓰는 그릇)이다.
  1. 賜也 何如 : 사기(史記)에는賜也 何人(저는 어떤 사람입니까?)로 되어있다.

 

​器者 有用之成材 : 그릇(기물)은 쓰임이 있는 완성된 재기(材器)이다.
夏曰瑚이요 商曰璉이요 周曰簠簋 皆 宗廟盛黍稷之器而 飾以玉하니 器之貴重而 華美者也. : <제기를 일러> 하나라 때에는 호라고 하였고, 상나라 때에는 연이라고 하였고, 주나라 때에는 보궤라고 하였으니 모두 종묘에서 서직(黍稷: 기장과 피)을 담는 그릇인데 옥으로써 장식을 하였으니 그릇 중에는 귀중하면서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子貢 見 孔子以君子許子賤이라 故 以己爲問한대 而孔子告之이차하시니 然則子貢 雖未至於不器 其亦器之貴者歟.
자공은 공자께서 군자로써 자천을 허여(許與: 허락하여 줌)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자신을 가지고 질문하였는데 공자가 이 말씀을 가지고 말씀해 주었으니 그렇다면 자공은 비록 그릇을 하지 않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으나 아마도 그릇 중에 귀중한 것인듯하다.
보궤(簠簋)는 주나라 때 제기(祭器)인데 보(簠)는 밖은 모가 나고 안은 둥근 모양으로 서직(黍稷: 기장과 피)을 담고, 궤(簋)는 밖은 둥글고 안은 모난 모양으로 도량(稻粱 :벼와 조)을 담는다. 둥근 모양은 하늘을 뜻하고 모가 난 모양은 땅을 뜻한다. 보궤는 똑같이 한말 두되가 들어가고 종묘의 제사에는 날것으로 올린다.



​[四章]
或曰 雍也 仁而不佞이로다
혹왈 옹야 인이불영이로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염옹(冉雍)은 인() 하지만 말재주는 없도다.
子曰 焉이리오 禦人以口給이라가 屢憎於人하나니 不知其仁이어니와 焉用佞이리오
자왈 언용영이리오 어인이구급이라가 누증어인하나니 부지기인이어니와 언용영이리오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느냐, <사람들에게> 말재주로써 상대하다가는 자주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이니 <중궁이>()한줄은 모르겠으나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느냐.
  1. : 진실이 없는 말재주[無實之口才]이다. 당시에는 영()을 잘하는 것을 현(賢)으로 여겼다.

 

  • 孔子弟子 姓冉이요 字仲弓이라 : 옹은 공자의 제자이니 성은 “염”이고 자는 “중궁”이다.
  • 口才也. : 영은 <진실이 없는> 말재주이다.
仲弓 爲人 重厚簡默한대 而時人 以佞爲賢이라 故 美其優於德이나 而病其短於才也.
중궁은 사람됨이 중후하면서 과묵하였는데 당시 사람들은 말재주가 있는 것을 훌륭하게 여겼다. 그러므로 중궁의 덕이 넉넉한 것을 칭찬하고 말재주가 부족한 것을 결점으로 여겼다.

  • 當也 猶應答야라. : 어는 상대하는 것이니 응대와 같은 것이다.
  • 辦(辨-辯)也. : 급은 말을 잘하는 것이다.
  • 惡也. : 증은 미움을 받는 것이다[惡之也].
言 何用佞乎 佞人所以應答人者 但以口取辨하고 而無情實하여 徒多爲人所憎惡爾 我雖未知仲弓之仁이나 然 其不 乃 所以爲賢이요 不足以爲病也. 再言焉用 所以深曉之니라.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라고 한 것은 말재주가 있는 사람이 사람들을 응대하는 방법은 단지 입으로 말만 잘하는 것을 취하고 실정(실제의 사정이나 정세)이 없어서 단지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는 일이 많을 뿐이다. 내가 비록 중궁이 인한지는 모르겠으나 그러나 그가 말재주가 없다는 것은 바로 현자가 될 수 있는 이유가 되고, 결점이 될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두 번이나 “말재주를 어디에 쓰겠는가.”라고 말한 것은 깊이 깨우쳐 주려는 이유이다. 

⊙ 或疑 仲弓之賢으로도 而夫子不許其仁 何也 曰 仁道至大하여 非 全體而不息者 不足以當之 如 顔子亞聖으로도 猶 不能無違於三月之後어든 況 仲弓雖賢이나 未及顔子하니 聖人 固 不得而輕許之也.
어떤 사람이 중궁은 현덕(賢德)을 지녔는데도 공자께서 그의 인을 허여(許與: 허락해 줌) 하지 않은 것은 어째서입니까?라고 의문이 들었다. 주자가 말하기를 인()의 도()는 지극히 커서 전체(천리의 혼연한 일체)를 체득하고서 중단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면 <仁者에> 해당될 수 없다. 이를테면 안자와 같은 아성(성인 다음가는 현인)일지라도 석 달이 지난 뒤에는 인을 떠나는 것이 없지 않았는데 하물며 중궁이 비록 현덕(賢德) 하다고는 하나 안자에게 미치지 못하니 성인께서 진실로 가볍게 허여할 수 없는 것이다.


[五章] 
子使漆雕開 仕하대 對曰 吾 斯之未能信이로이다 子說하시다
자사칠조개 사하대 대왈 오 사지미능신이로이다 자열하시다 
공자가 칠조개로 하여금 벼슬하라고 하였는데 대답하기를 “저는 이것(주자註:제가 배운 . 공안국註:벼슬하는 방도)에 대하여 자신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니 공자께서 기뻐하시다.
  1. : 한서(漢書)에는「啓(다 열다)」로 되어있다.
  2. 斯之未能信 : 斯를 정이천은 『자신의 학문[己之學]』이라고 했고, 공안국은 『직임(職任)을 수행하는 방법[仕進之道]』이라고 했다.

 

  • 漆雕開 孔子弟子 字子若이라. : 칠조개는 공자 제자이고 자는 “자약”이다.
  • 指此理而言이라. : 사는 이 이치(修己之學: 자신의 학문)를 가리켜서 말한 것이다.
  • 謂 眞知其如此 而無毫髮之疑也. : 신은 진실로 그가 이와 같은 이치를 알아서 털끝만큼이라도 의심이 없는 것을 말한다.
開 自言未能如此하여 未可以治人이라 故 夫子說其篤志하니라.
칠조개는 스스로 이와 같은 이치에 대하여 자신할 수 없어서 다른 사람을 다스릴 수 없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그의 뜻이 확고한 것을 기뻐한 것이다.

⊙ 程子曰 漆雕開已見大意라 故 夫子說之라 又曰 古人 見道分明이라 故 其言如此라.
정자(明道)가 말하기를 칠조개는 이미 대의(仁의 道)를 보았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기뻐한 것이다. 또 말하기를 옛사람들은 도를 아는 것이 분명하였다. 그러므로 그 말이 이와 같았다.
⊙謝氏曰 開之學 無可考나 然 聖人 使之仕하니 必其材可以仕矣어니와 至於心術之微하여는 則一毫不自得이면 不害其爲未信이라 此는 聖人所不能知어늘 而開自知之하니 其材可以仕로되 而其器不安於小成이라 他日所就를 其可量乎아 夫子所以說之也니라. 
사 씨(謝良佐)가 말하기를 칠조개의 학문을 상고할 수는 없으나 성인께서 그로 하여금 벼슬을 하라고 시켰으니 그의 재목(材木)은 벼슬할만하였을 것이다. 심술(마음 씀씀이)의 은미(隱微) 한 곳에 이르러서는 털끝만큼이라도 자득(스스로 만족스러움) 하지 않았다면 자신이 아직 자신할 수 없다는 것은 불해(무방) 한 것이다. 이것(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함)은 성인께서도 알 수 없는 것인데 칠조개가 스스로 그것을 안 것이니 그 재목은 벼슬할만하였으나 그에 그릇은 조금 완성하는 데에 안주하지 못한 것이다. 훗날 학문의 성취를 어찌 헤아릴 수 있겠는가? 공자께서 그러므로 기뻐하신 것이다.

 

출처 : 권경상 선생의 강의 내용을 요약 정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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