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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종합자천공부법

깨우침도

작성자환공(桓公)|작성시간19.03.09|조회수21 목록 댓글 0

 

깨우침도

 

 

 

깨우침은 보편적이지만 그 경험의 다양성이 너무 많으며 방법은 보편적으로 하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이 말은 모두 깨우치라고 할 수 있지만 모두 같은 경험을 하라고 할 수 없고 방법이나 과정이나 강도나 무엇 하나 같은 것은 없습니다. 깨우침의 경험은 누구나 하지만 그 경험의 방법이 너무도 다릅니다. 그래서 딱히 별다른 경험이 없다고 아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깨우침의 경험은 불가능의 뜻이라기보다 깨우침은 인식의 문제이므로 사유나 이성적 판단, 또는 아는 것을 좋아하고 통찰력이 성향에 맞는 사람이 좋아하고 이러한 것에 민감한 사람이 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이 무엇인가 알게 된 거 같고 안목이나 견해가 커진 거 같은 것을 인식하는 것을 잘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지적인 희열을 좋아하고 원하는 사람이 이런 과정을 더 겪는 것이지 모두가 이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격에 잘 맞는 사람이 이 분야에 두각을 보이는 것입니다. 무엇을 알거나 이해하거나 견해가 명철하거나 예리한 것에 대해 별로 무관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는 지적인 희열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알아가는 재미를 못 느끼는 분은 없었습니다. 그러한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기까지가 좀 어려울 순 있습니다.

 

관심의 정도 차이가 있는 것이어서 모든 자천자가 같은 것을 이해하고 알며 견해를 가질 이유도 없고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보다는 삶입니다. 사는 것이지 아는 것이 아니며 지식도 삶의 다른 양상으로 압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 비슷한 지적인 각성을 깨우치라고 하지는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머리가 아닌 마음의 깨우침도 있습니다. 마음은 태도와 자세이며 안배하는 능력입니다. 자기만의 자천의 길이 있고 살아가는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자천하여 대오각성 한다고 크게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깨우침의 강도나 현상의 신비함은 중요치 않습니다. 이것도 자신의 성향이나 운명의 다름이지 깨우침의 질적 깊이는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걸 오해하는 듯합니다. 파천황적 깨우침의 경험을 해야 진짜인지 압니다. 혹세무민일 겁니다. 경험의 자극이 강한 것이지 더 대단한 것을 이룬 것이 아닙니다. 감각의 차이를 각성의 차이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정신 속에서, 의식적으로, 마음으로, 어떤 것을 깨우쳤다고 강렬함이나 위대한 듯 말해도 역시 감각입니다. 잘 생각해야 합니다.

 

그저 깨우침은 마음의 안정과 삶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삶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성향이 다르고 원하는 것과 사는 운명이 다르니 천편일률적으로 비슷하고 같은 경험과 깨우침과 느낌을 가지라고 해선 안 될 겁니다.

 

모두 아름답게, 후회해도 즐겁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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