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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종합자천공부법

틀비틀,틀무틀

작성자환공(桓公)|작성시간26.06.05|조회수8 목록 댓글 1

 

 

틀비틀,틀무틀



틀비틀이라고 생각하는데 틀도 있고, 틀이 아닌 것도 있을 것입니다. 틀무틀이기도 합니다. 틀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틀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지금 문명도 틀입니다. 이러한 집과 옷과 먹을거리가 풍족하고 원하는 옷이나 음식이나 집에서 사는 것은 분명 엄청난 일이고 오랜 기간의 틀의 쌓임이 있어서입니다. 자본주의나 과학문명이나 민주주의나 법이나 관례나 모두가 오랜 우리 인류들의 고심이 담긴 것이겠죠. 그 안에서 희생과 고통과 기쁨과 다양한 감정들이 있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의 뒤엉킨 알 수 없는 바람과 마음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함부로 문명비판이나 해체나 욕을 하지는 못합니다.

다만 좀 더 나은 문명과 더 보편적인 인간애를 실현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에게 효율적으로 삶의 기회를 가지며 누리게 하고 싶기 때문에 비판하고 해체하면서 새로운 구성을 하려는 것입니다. 거기에 인간만이 아니라 무생물이나 생물이나 세상 자체에 대한 이해도 알게 되어서 인간만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만을 보다가 인간 너머의 자연이나 우주도 볼 수 있는 안목이 있게 되었고, 하나의 존재가 살기 위한 더 많은 연관성과 협조와 소통이 있어야 한다는 자각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해체만 말하고 그 재구성하는 방법과 원리나 종목이나 시작하는 방법을 말하지 않는다면 무의미한 응석의 부르짖음일 것입니다. 틀비틀이라고 틀이 아니라고 틀을 비판하고 넘어야 한다는 것이 틀을 제거하고 부정하라는 것이 아니며 틀을 틀로써 그 틀의 의미를 다시 보고 제대로 보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공이 비어진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나와 세상을 더 현명하게 알기 위한 방법입니다. 당연하게 여기고 그것 외에는 보지 못하는 가려진 인식을 비판하는 것이고 확장하려는 것입니다. 본래의 의미를 알기 위한 방법입니다. 내가 이러한 개념으로 더 나은 사물인식과 지기인식이 안된다면 이런 개념은 무의미합니다.

그것이 아닌 세상의 여러 지식은 불필요합니다. 무가치하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그로 인해 더 나아지는 것이 아닌 것은 분명 쓸데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나아지기 위한 것은 세상과 더 나은 관계를 가질려는 것입니다. 우린 틀을 만들 것입니다. 앞으로도 없는 틀을 찾아내어 만들 것이며 잘못된 것은 바로잡을 것이고 이런 과정 중에서 잘못된 틀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현명한 판단력을 길러야 하며, 틀이 없어서 우리가 불편하거나 못하는 것이 있다면 있게 해야 하고, 있어서 해롭고 불편한 것은 제거해야 합니다. 틀무틀은 새로운 방법으로 나은 결과를 원할 때 쓰는데 틀을 있게 하거나 없게 하거나 하는 것이며, 외부와 객관을 직접 다루는 방식입니다. 틀비틀은 기존에 있는 틀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으로 해체재구성을 하는 것이며, 객관은 그냥 두고 내 인식만을 다루는 것입니다. 사물에 문제가 있어서 또는 틀에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볼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구분은 맞지 않습니다.

나에게 나도 객관입니다. 그래서 나에게도 틀무틀이 적용되고 외부도 주관이 되어 틀비틀도 적용됩니다. 그래서 틀을 있게 할지 없게 할지, 아니면 틀이 아니게 할지 틀이게 할지를 고민하자는 것이며 나에게서 먼저 틀을 찾고 외부로 나아가서 틀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방식이 틀비틀이고 외부의 것의 문제를 먼저 보고 나에게로 소급해서 문제점을 찾는 것은 틀무틀인데 이런 걸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성찰을 잘하면 그냥 하는 과정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문제인 것과 없어서 문제인 것을 찾아야 하고 틀이어서 문제와 아니어서 문제도 찾습니다. 틀을 무조건 부정하기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떤 항목이나 부분적으로 부정하고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인데 그럴 경우 명확한 이유와 원리를 설명하면서 해야 하고 또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틀이 없다고 말한다면 그 말하는 것도 틀에 의존하는 것이기 때문에 틀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틀은 없다거나 다른 것으로 바꾸었으면 한다고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린 주위에 엄청나게 많은 틀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결코 틀을 제거하거나 부정할 수 없습니다. 현실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다만 다른 목적을 위한 틀 자체를 거부하거나 부정할 수 있는데 그거 역시 그 목적에 맞는 경우에만이지 현실은 틀 속에서 살 뿐입니다. 틀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자신을 부정하면서 사라져야지, 틀 자체가 사라지거나 없어져서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무한 반복이고 영원한 틀 속에서 임시적인 안위는 있어도 결코 사라지지는 않을 겁니다. 내가 사라진다고 해도 사라지는 것도 세상의 틀의 방법을 따라야 합니다.

그 안에서 사는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갈지를 정하는 것이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무틀이라는 것에서 무는 적용범위를 한정해야 합니다. 세상이 있다 없다는 내가 말할 성질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세상을 알지 못하고 세상에게 함부
로 내 지식을 강요하지 않아야 합니다. 내가 세상과 거리를 두면서 나만의 인식을 한다고 하면서 그런 말을 한다면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또 없다는 것이 아니라 항상 달라지고,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니어서 그렇게 말한다면 세상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이니 그건 비틀입니다.

세상은 나와 상관없이 있습니다. 다만 내가 알거나 원하거나 이해하는
방식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서 없다거나 아니라거나 말할 뿐입니다.
세상이 어떤 형상이고 어떤 모습이며 존재인지는 결코 내가 알 수 있는 사항이 아니며 그것을 알고 싶어서 이렇게 자천하는 것이지만 언제나 난 미흡합니다.암튼 틀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틀은 없어도 된다고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세상자체보다 우리 일상의 것에서 있을 것과 없을 것을 찾는 그러한 인식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거창하거나 거대한 천지창조나 세상 근원보다는 우리 일상이나 주위나 내 삶에 더 관심 가져야 합니다.

나나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것이 있어야 하고 없어야 하는지를 고민해
야 합니다. 그리고 비틀은 우리가 틀 속에 사는데 불필요하거나 잘못되거나 하는 것을 찾아가야 하며 항상 새로운 것이 다가오고 변해가는 것인데 과거의 틀 속에서 머물며 새롭게 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그것이 비틀입니다. 이미 그것이 아닌 것입니다.
세상은 변하는데 나만 그것을 부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있는 것에서 다른 이해를 하고 또 변한 의미에서 내가 잘못 인식한 것을 찾기 위해 즉, 제대로 사물인식과 상황파악하기 위해 자기의 틀을 점검하고 현명함을 얻기 위해 틀비틀입니다.이 책의 글들은 어떤 면에선 틀입니다. 내가 비틀이나 무틀을 주장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해체하고 부정하면서 비판했지만 또 다른 방법으로 틀을 만들고 형식을 만들면서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틀무틀이든 틀비틀이든 이러한 것이 중요한 것은 어떤 것을 틀로 하고 어떤 것은 무틀이나 비틀로 하면서 현명한 판단을 할지 그 판단력에 있습니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법을 따를지, 따르지 않을지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행동하기가 어렵습니다. 항상 자기를 관조하면서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이 글들이 쓸데없는 틀로 작용해 걸리적거리고 불편하며 힘들게 한다.면 과감히 버리고 부정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든 판단은 자기마음의 현실에 따르는 것이지 외부의 무엇에 내 마음을 맞출 필요는 없습니다.오직 그대가 사는 것입니다.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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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빛몸 | 작성시간 26.06.05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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