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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종합자천공부법

위치적인 이해가 있다

작성자환공(桓公)|작성시간26.06.07|조회수17 목록 댓글 1

 

 

위치적인 이해가 있다.

 

 

 

 

사주는 위치, 경향, 형태들의 의미를 보는데,

위치는 계절이 우선 있습니다. 계절이 때이기도 하고 그 계절의 위치이기도 합니다.

봄에 금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봄에 가을이 왠말이냐가 되죠.

이건 비겁이 많으면 관의 무력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실관에선 비겁이 많으면 관의 흉이 덜한데 덜하게 하는 방법이 또 있게 됩니다.

때론 비겁을 잡아서 관에 주면서 살 수도 있는 것이며, 희생이라고도 하겠죠.

 

그래서 비겁을 희생시켜서 살아가는 것이 있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부려서 자기 이득을 취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노동인데 노동은 결국 자본가의 이익을 위한 행위를 말합니다. 이것도 비겁을 자길 위해 희생시켜서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는 거라고 해도 됩니다.

형사나 경찰이나 판검사나 변호사나 이들은 비겁을 잡고 판결하고 변호하고 법을 들이대면서 자기 살길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이걸 이렇게 말하면 감히라고 할지 모르는데 이런 감히라는 생각이 든다면 아직 기성세대의 가치관에서 못 벗어난 구시대의 사고입니다. 위아래가 과거식으로 나누어지는 것에서 벗어난지 한참인데 상하를 그렇게 구분하면서 복종하는 심리를 간직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비겁을 가르치면서 또는 병을 고쳐주면서 이런식으로 하면 거의 모든 사회생활이 사람을 상대하면서 사는 것인데 대부분 이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다만 관으로냐 인성으로냐 식상으로냐 재성으로냐 뭘로 비겁을 다룰 것이냐가 될지도요 그리고 어떤 모양을 한 비겁이냐 십성이냐를 12운성이나 신살로 구분합니다.

비겁도 같은 비겁이 아니라는 또는 십성도 같은 십성이 아니라는 식의 겉모양과 속모양을 알아야 하는 것이기도 해서 입니다.

 

아무튼 위치란 또 장소인데 불의 장소에선 수가 약합니다.

불의 장소란 번화가이고 그 사회의 중심이나 각분야의 중심입니다.

중심하면 토일거라고 생각하는데 중심이라는 것의 개념이 있습니다.

그냥 위치적인 전후좌우의 가운데 이러면 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중심은 그런 공간적인 분할이 아니라 가장 밝은 곳이라는 의미로 불입니다.

 

엄밀히는 토라는 것도 장소적인 중앙을 말하는 것은 아닌거 같습니다. 이거에서 저거로 넘어가는 길목이고 관절을 토라고 하며 문이나 출입구나 관문이기도 하며 완충을 말하고 보호하거나 기다리는 거나 그런식으로 이것에서 저것으로 넘어가는 그 과정이나 그 과정에서의 어떤 것을 말한다고 봅니다.

아무튼 즉 축구하면 지금 가장 밝은 곳이 어디에요? 영국의 프리미어리그나 스페인이겠죠.거기가 축구의 중심이라고 하면 다들 이해하잖아요 그런식으로 입니다.

대학은 결국 서울의 대학이고 압구정이나 강남이 중심이고 또는 시내이고 공직자들이 있는 곳이기도 하고 방송에 자주 나오는 것이기도 하는 그런 중심입니다.

 

그런 곳에선 물이 좀 약합니다. 그런곳에서 활동하려면 물이 경쟁력이 떨어지죠.안되는 것은 아닌데 그건 자세히 들어가면 복잡한 원리가 또 있지만 우선 불보다는 힘겨움이 있을거라는 간단하게만 생각해서 입니다.

이렇듯 어떤 위치가 있다는 것을 염두하고 판단하는 것이 있습니다.

각오행으로 위치를 볼 수도 있고 계절을 기준으로 할 수도 있고 천간이나 지지의 각글자의 위치도 따로 있어서 그런 것으로 하기도 합니다. 어떤 것이든 위치가 있고 딱 고정된 위치가 아니라 그런식으로 말할 수 있는 은유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있고 변해가는 것이지 말뚝을 박아 놓듯이 언제나 여기가 불이다식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변화하고 중추적인 것이라는 의미는 안 변합니다. 그런 것을 화하고 하는 것입니다.

 

화의 의미는 같은데 그 의미에 해당하는 장소나 사물은 유행이나 시대나 관념이나 가치관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축구도 과거엔 독일의 분데스리거가 더 대단했습니다. 지금은 아니지만요.이런식으로 장소가 변하는데 말하자는 것은 화나 물이나 천간의 뭐나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안 변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화가 번화가나 중심이 아닌 상황도 분명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물이 번화가일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 왜 없겠어요. 이렇게도 말할 수 있습니다. 난 도닦는 사람인데 영적인 관심이 지대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 영적인 곳을 바라는데 그 영적인 정신세계는 물입니다. 그곳이 번화가죠. 너무 억지인가요?

 

다르게 이걸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사람따라 다른 의미로 이것을 보는 방법을 찾거나 다르게 정의하는 것이 있다면 입니다. 난 번화가를 화가 아니라 물이라고 할 것이다. 하면서 그런식으로 체계를 세우고 다른 원리들도 다 제각각 일관성 있게 만들며 됩니다. 천간의 순서나 오행의 원리도 다 바꾸면서 그렇게 하면 되지요.

 

물론 때론 물이 갈 수 있는 번화가나 중추적인 곳이 있기도 합니다.

물은 정신적인 것이니 정신적인 중심을 가는 것엔 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즉 물이 있어야 가는 번화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번화가라는 이 말 자체가 화입니다. 번화가라는 개념이 말이죠. 그러니 화가 번화가라는 것은 변하지 않습니다.

 

때라는 것이 시간 적인 것인데 유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유행할 동안은 그것의 장소가 된다는 것이어서 이런 것은 그 유행이 주로 나타나는 장소가 있을 수도 있고 장소 없이 여기저기 모든 곳에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시간이 공간이라는 공간이 시간이라는 요즘의 지식이 굳이 아니라도 이건 이미 사주원리에 있는 것입니다.천간지지가 다 시간적인 것인데 공간적인 구성을 하면서 해석하고 분석하고 있으니 이런 것은 자유롭게 적용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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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빛몸 | 작성시간 26.06.07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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