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필연
진여나 열반이나 그런 상태에 들어 있거나 그런 입장에서는 모든 게 우연입니다. 대단에 오르면 평상심이라고 하듯이 일상에서 이러한 고요함을 느끼며 사는데, 그런 경지에서는 왜 우연이 되느냐고 하면 생각이 없고 감정이 없고 그저 그러하고 가치관도 의미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관념과 의식이나 판단이 없고 욕구나 바라는 것도 없습니다.
이걸 일상이나 항상 행동이나 생각이나 감정의 근저로서 살아야 하는데 사람들은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이게 비우는 것이고 진이며 무이고 공인데 잘 모르데요. 내가 천중을 느껴보라고 한 심법이나 나를 관찰하는 중의에 있어 보라는 것도 이것을 한번쯤 경험하면서 각성을 해보라는 것이며 각성은 지적 이해가 됩니다. 물론 그 이해를 자기변형으로 가야 진짜가 되지만 말입니다. 공이나 무아나 마음을 비우는 것이나 행이 없다거나 욕심 없다거나 이러한 것도 우연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연입니다.
어떤 이유도 원인도 목적도 당위도 필연도 없습니다. 내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고, 돈도 아니며, 명예도 아니고, 권력도 아니고, 이익과 고통과 갈등과 번뇌와 아픔이 신경 쓰고 감정 일으킬 게 아닌 것입니다. 필연이 빠지면 남는 건 그저 그렇게 서로 배치만 되어 있는, 연이어져만 있는 것이지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이런 게 오연이 됩니다.
하지만 우연은 우연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오연은 다음으로 넘어가 내가 새롭게 창조해야 할 삶을 위한 것이니 우연 역시 우연으로 끝나는 게 아닙니다. 필연을 위한 과정입니다. 그렇다고 필연 역시 필연이 목적이어서 우연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연은 우연대로 자기 자신이고 필연은 필연 대로 자기 자신입니다. 즉 자연입니다. 그 독립성은 인정해야 합니다. 다만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자천하는 사람들이 필연적인 것에서만 너무 심력을 소모하는 것 같아서입니다. 사회생활에 찌들어서 살고 자천하다보니 필연적인 당위와 목적의식과 의미에 대한 집착이 보입니다. 나도 목적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필연적인 이유와 원인을 찾고 설명하기도 했지만 분명히 모든 목적과 이유와 의미는 누군가의 의도라고 했으니 그건 애초에 그런 필연이 있어서가 아니라는 의미도 됩니다.
사실 자천해서 대단 넘어가며 진여를 알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의미 줄 게 없고 아무것도 필요 없고 우연일 뿐이고 그래야 하는 이유가 애초에 없다는 것을 압니다. 이걸 모른다면 어찌 제대로 된 대단이겠어요? 그러니 이런 것을 바탕으로 깔고 하는 말이 목적이고 뜻이고 세상을 위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신도 없고 섭리도 없고?하늘도 무시하고 하면서 초월적인 것을 거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부처나 노자나 그런 필연의 원인에서 가르치기보다 우리의 노력과 모색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부처는 신을 거부하고 형이상학적인 존재나 이치를 거부하는 것은 깨달아 이르러야 하는 것이지 그걸 논하며 궁금해 할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노자의 도덕경은 인간이 본의에서?세상을 이용하고 다스리며 얼마나 어떻게 행할 수 있을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정해진 법칙도 숙명도 없습니다. 그것을 좌지우지하는 존재도 없습니다. 그건 내가 자천하며 공부해서 이르러 보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그 무저갱의 공허한 심연 속에 들어가 보면 아는 것인데 왜 이게 논란이 되겠어요? 그건 가보지 못한 추측에서 말하기 때문입니다. 가봐야 아는 건 가봐야 아는 것입니다.
오연이나 진여에 들어가 보면 우연이기도 하지만 이건 우연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연과 필연은 서로 대립된 개념이 아닙니다. 우연도 얼마나 우연인지 따져야 하는 것이고 필연도 얼마나 필연인지 따져야 하는 것인데 그러면 이중에 하나만 가지고 말해도 되는 것이며 굳이 둘로 나누어 대립시키면서 이원적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연적인 게 많아지면 필연적인 게 적어지는 것이니 같은 것을 어떻게 보느냐 이지 않은가요 우연 아니면 필연이라는 단순이해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껏 이런 단순한 이원적인 방법으로만 볼 것이니 어쩔 수 없이 두 단어를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 그 모습이며 그런 것이라고 한다면 이걸 우연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다른 개념의 말을 만들어야 하나요? 우연이라고도 필연이라고도 말하기 싫습니다. 꼭 무엇이라고 규정지으며 한정하고 싶지 않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이거 같고 어느 정도 저거 같고 이거였으면 하고 저거였으면 하고 또 한 번 이거였다고 언제까지나 이거여야 하지도 않고 한 번 저거였다고 언제나 저거여야 하지도 않습니다. 이런 게 모두 우리를 억압합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안 되나요? 내버려 둔 채로 살았으면 하는데, 그래서 난 항상 자신이 없습니다.
내가 주장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 별다른 근거와 확신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앞에 말했듯이 내 마음 근저엔 모든 게 별 상관없고 다 긍정하며 좋고 그렇고 그렇습니다. 상관없고 관심 없고 아무래도 좋습니다. 그래야 할 이유가 마땅히 없습니다. 꼭 그래야 하냐고 되묻는다면 난 아니라고 합니다. 꼭 그래야 하는 거라서가 아니라 내가 바라는 거라서 라고 합니다. 항상 난 내가 바라는 것이 있어서 이런다고 말했습니다.
그저 꿈꾸는 거라고.......
우연
원래 세상의 모든 것이 진, 무, 우연이라고 한다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젯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진이나 무에서 세상이 창조되었나요?
혼돈에서요? 그러면 우리의 생활체계의 근거부터 무너지는 것이 됩니다. 관례, 법, 도덕, 윤리, 지금의 민주주의나 자본주의나 어떠한 학문과 신념과 종교적인 신앙이나 선이나 바름이나 뭐나 모든 게 사실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 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지금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살인 같은 범죄나 어떠한 극악한 범죄도 사실은 그게 범죄인 것은 우리사회가 그것을 범죄로 규정하기 때문이지?근원적으로 절대 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도덕 감정과 윤리의식에 반하는 모든 것의 사례를 말하면 기분이 안 좋으니 그냥 알아서 유추해 보길 바라며 어떤 관념이든 개념이든 학문이든 철학이든 다 그렇지 않은가요? 어차피 종교 같은 것도 다 인간의 산물이니 다른 거야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이라는 것도 신 이전이 있으니 그 이전은 진이겠죠. 신도 근거 없는 것에서 나온 자기 집착입니다. 부모, 형제부터 나라나, 이웃이나 뭐나 이런 개념부터 사실 별 근거 없습니다. 날 낳았다고 해서 부모로 공경할 이유는 되지 않습니다. 이게 너무 상식이고 당연한 것이라서 결코 다르게 생각해 본적이 없을 것인데 그랬다면 자천을 엄밀히 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자기 성찰을 아무렇게나 한 것이겠죠.
물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일지 모르고 여러 이유를 대면서 부정할 수도 있지만 상관없습니다. 그런 근거들이야 인간이 만든 관념일 테니까요. 무엇에 호소하며 자기의 주장을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고 하겠어요? 과거엔 천리이고 하늘의 법칙이나 절대성을 부여하지만 솔직히 이런 것도 웃기는 말이죠. 하늘이 내게 저러한 것을 어기지 말라고 한 적은 없습니다. 인간들이 한 거죠. 이 세상은 구조적으로 근본부터 전혀 근거 없음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그 근거 없음에서 이렇게 무언가 틀이 되고 바탕이 되고 형태를 이루고 지속하며 세상이 세상일 수 있는 그것이 위대한 것이며 이 우주나 지구나 세상을 경외해야 하는 이유이겠죠.그것이 신의 힘이라고 해도요. 암튼 근거 없음은 나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 말도 무슨 근거가 있는 건 아니니까여.
게다가 또 우리의 이것이 옳은 거 같거나 저것이 맞는 거 같다는 감정이나 욕구나 욕망들도 모두 근거 없습니다. 우리의 감정들도 학습된 것이고 경험이 쌓이거나 습관들여진 것이지 무조건 신뢰할 만한 자격이 있는 건 아닙니다. 언제 익숙해진 것이고 받아들여지고 습관된 것인지는 분명 어려운 얘기이고 태어난 이전과 이후의 것들이 복합적이고 중층적이라 더욱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려는 건 이런 내 안의 어떠한 것도 결국 선의 근거나 도덕의 근거는 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름의 선과 나름의 철학을 가지는 것이고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할 논리는 있어도 그것이 진리가 되지는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진리 자체의 불가함이고 모든 의미와 가치의 불가함이고 존재 자체의 무근거입니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영원 자체도 영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원이라는 말이 있을 수 없는 말입니다.어떤 것도 사라짐을 면할 수 없습니다. 결국 모든?존재는 불가능함에서 홀로 버티는 인내가 됩니다.
우리의 도덕이라는 것도.......
신이 그것을 죄라고 나쁜 거라고 또는 이것이 옳은 거라고 바른 거라고 도덕이고 선이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신은 없다고 말했으니까요. 우리의 모든 사회적인 가치는 모두 인간이 생각하면서 만들어낸 것이니까 그걸 신의 의지이거나 근원적인 영향으로 만들어진 거라고 한다면 결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정직하게 생각하면 다 아는 거 아닌가요? 신의 계시는 말이 안 됩니다. 신이 계시를 줄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 신이 절대자라고는 인정하지 못합니다. 계시는 일반 영혼도 할 수 있는 것이고 아무나 하는 잡술입니다. 서양에서야 그런 거로 사람을 현혹한다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이런다면 좀 거시기합니다. 그 외 우리의 문명과 전통과 과거부터 내려온 가치와 관례와 법과 규율은 우리가 만든 거라는 것은 다 압니다. 성인이라고 우리는 말하지만 성인이야 어차피 인간입니다. 업적을 존중하고 기리는 것입니다. 물론 자천적으로 말하면 어느 이상 경지 이룸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절대이지는 않습니다.
분명 어떤 것도 근거가 불충분 하다는 건 확실합니다. 그래서 서양은 합의라는 것을 만들어서 논의 하는지도 모릅니다. 인간끼리의 합의에 의해 정치든 선이든 정의든 말하려고 하는 거 같습니다.
즉, 진입니다.
아무것도 근거가 없습니다. 이건 심각한 겁니다. 이 심각성을 말하지 않는 건 뭘까여? “진(무)에서 세상이 나온다.”라고 말하는 것의 무서움!!
이걸 인정해야 논의를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옳다고 하는 것의 부당함과 근원적 불가함을 서로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대화를 하는 것이 됩니다. 그저 의견입니다. 그 이상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래서 난 관점, 관법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보는 세상을 만들고 내가 이해하는 견해를 가지며 사는 것입니다.그렇다고 독불장군처럼 내 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살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타적으로 살라는 것도 아닙니다.
자천적으로야 남을 위해 살라고 하지 않아도 남과 연관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깨우침이 생기는 것이지만 일반인에게 그래야 한다는 근거는 분명 없으니 과거처럼 무조건 복종하고 이것이 옳은 거라고 강압적으로 할 순 없고 이치를 설명하며 그래야 하는 당위를 말할 때가 된 거죠. 공동체를 위하고 더 많은 사람이 살기 위한 것이라구요. 모두가 행복해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자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암묵적인 동의인가요? 그보다는 말할 건 말하고 또 합리적인 설명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동의할 수도 안할 수도 따를 수도 따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 같이 할 수 없는 것이니 그에 따른 행동이 있겠죠. 그렇다고 뭐라 할 건 아닙니다. 같이 할 수 없으면 같이 할 수 없는 거지만 동의하지 않아도 홀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동의하는척하며 살지도 모릅니다. 개인이 혼자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으니까요. 이러한 것도 알고 배려가 되어야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