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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종합자천공부법

삼학

작성자환공(桓公)|작성시간26.06.11|조회수19 목록 댓글 1

 

 

삼학




삼학이 계정혜일건데 전에도 쓴 적 있는데 또 뭘 쓰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계 : 대개는 하지 말라는 것을 위주로 여러 규율을 정해 놓은 것인데 불교에서 많이 말하니 찾아보면 알 수 있을 거 같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몇 가지를 덧붙이고 싶은데 그건 형식적인 규칙이고 일종의 매뉴얼처럼 학습하기 쉽게 하는 것이나 프로그램처럼 단계적으로 익히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게 일목요연하게 보기도 쉽고 이해도 편하며 하루하루 일과를 정하거나 한 달이나 일 년이나 단위를 정해서 자기의 학습단계도 알 수 있고 배우기도 훨 용이한 면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말합니다. 간단히 쉬운 형식을 말하는 것으로 지금은 학교에서 배운 교과과정이나 학원에서 해봐서 익숙하고 또 역시 편한 건 사실입니다.


그리고 또 이론적인 설명을 익히거나 지식 쌓기 같은 것도 됩니다. 뭐든지 알기 위해선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서 이론 탐구는 해야 합니다. 뭘 하는지, 어떻게 하는 건지, 어떤 식으로 가르치는지, 원리는 어떤지, 쉬운지, 어려운지, 내가 원하는 가르침이 있는지, 배울만한 건지, 이런 간 보는 것에서부터 좀 더 심도 깊은 지식을 알아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감이라도 잡고 뭔가 알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되어야 뭘 하더라도 할 거 같습니다. 신체적인 형식과 이론적인 형식을 전부 계라고 넓게 의미를 정해봅니다. 


정 : 이건 형이상학인데 다만 마음의 형이상학입니다.
어떤 이론이나 세상의 지식이나 사물에 대한 것이나 뭐든지 궁지에 몰리는 한 곳으로 수렴됩니다. 일종의 평등한 무엇이거나 평등 자체이거나 입니다. 세상의 사물이 전부 제각각이고 다르다는 건 반대로 평등한 전일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이론을 추구하다 보면 끝나지 않는 무한함을 만나거나 초월적인 뭔가를 만나거나 하는 근원적인 형이상학에 직면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형이상학을 해체하는 철학도 많은데 그런 것 자체도 형이상학일지 모릅니다. 해체라는 것도 하나의 형이상학일 수도 있는 거죠. 탈중심이나 다원성이나 이것도 형이상학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이거나 여럿이거나 일즉다이고 다즉일이라는 식의 말로 이미 오래전에 넘어간 흔한 이론입니다. 이런 막다른 골목에 처하는 한계 부딪힘까지 공부해 가서 다다라야 계가 끝난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까지가 계입니다. 이 다음이 형이상학에서 돌파되어 가야 정이 됩니다.


정은 이런 형이상학의 이론적인 추구에서, 즉 지적인 이론의 형이상학 부딪힘에서 마음의 심적인 형이상학으로 내면화되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지적추구에서 심적추구로 방향전환이 일어납니다. 형이상학이 지적추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형이상학과 함께 세상을 산다는 것입니다. 머리로 따지는 게 아니라 그렇게 내가 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형이상학의 마음이 되어 평상심과 부동심의 마음이 됩니다.
고요함이고 평온함인데 그런 마음 상태에서 사물과 세상과 사람과 모든 외부를 보면 전일함 속에서 화려하고 감각적이고 분석적이며 다양하고 여러 현상들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전일성은 이론적인 사고에서 나온 것으로 알지만 그것을 체득해 그 전일함의 마음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본체의 보편이나 진이나 무극이나 여래장이나 진여나 뭐라고 하든지 그것을 이론의 추구가 아닌 몸의 변화로 획득한 것입니다.


이러면 외부의 모든 것과 내가 분리되며 난 형이상학 속으로 빠져가고 외부는 그저 있기만 하고 나와는 동떨어진 괴리가 됩니다. 형이상학이 된 나는 보편이 오히려 개체적인 분리로 된 것이기도 합니다. 전일성에 의한 부분성의 획득으로 하늘이 된 하늘나는 그렇게 성취된 전일성과 부분성의 원융입니다. 보편과 특수의 합일이며 진여와 생사의 일치입니다.


혜 : 혜는 이러한 정에서 사물을 보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데, 그대로본다는 건 그동안 어떤 사물을 대할 때 배우거나 습관적인 지식으로 보거나 어떤 목적으로 보려고 하던 것을, 내가 다시 보면서 생소함을 느끼고 그것도 넘어서 주체적으로 보는 사물이 됩니다. 나만의 사물이 되고 고정관념이나 사전에 이미 정해 놓은 지식과 정보로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보는 그대로 그 사물은 존재하게 됩니다. 내가 봄으로서 그 사물은 그 사물만의 고유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사람을 보더라도 선입견이나 미리 정해놓은 인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항상 새롭고 항상 지금 하는 그대로를 보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과거의 잘못이나 인상으로 지금을 평가하지 않고 내가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행동하라고 요구하지 않게 되고 지금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로 인해 그전에 보던 것만 보려고 하고, 알던 거만 보려고 하고, 알려고 하던 것에서 이런 가려짐으로 못 보던 것이 보이는데, 그래서 더욱 자세하게 사물을 알게 되며 항상 새로운 인식과 지적추구가 가능해집니다. 사물과 사람에서 새로움을 느낀다는 건 달라진 뭔가를 찾게 하고 그러한 다름에서 기존에 알던 지식을 넘어 또 다른 지식을 인식할 수 있게 합니다. 새로움은 흥미를 느끼게 하고 흥미는 관심을 부르며 관심이 지능발달을 유도합니다.


볼 때마다 필요할 때마다 난 항상 새롭게 사물과 사람을 재구성하고 보기 때문에 그전에 알던 대로 습관처럼 보거나 편견으로 보지 않으려 합니다. 전혀 다른 비전이나 발상도 가능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이런 것 역시 내가 정해지지 않은 순수한 상태이기 때문이며 외부를 볼 때도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고 언제나 다르게 볼 수 있기 때문에 다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적능력과 감수성이 더욱 예민해져서 당연하던 것도 당연하지 않는 것이 있고 이상하던 것이 오히려 평범해 지기도 합니다.


전일한 형이상학과 다양한 현상들이 서로 어울리는 게 보이고 서로간의 차원을 넘나들며 동일함을 봐야할 때와 차이성을 봐야 할 때를 정해가며 새로운 지식을 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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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빛몸 | 작성시간 26.06.11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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