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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종합자천공부법

관념은 틀이고자 하는데

작성자환공(桓公)|작성시간26.06.19|조회수7 목록 댓글 1

 

 

관념은 틀이고자 하는데

 

 

 

 

사재에서 객관과 주체와 방향 정하기와 융합이라고 했습니다. 객관은 주체가 대상으로 보는 모든 것인데 나도 해당되어서 주체에겐 나 역시 비판하고 성찰할 대상이죠. 주체는 이해하는 자나, 해석하는 자나. 알려는 자나, 판단하려는 자나, 이런 식입니다. 이건 의식적인 것이고 살려고 하고 즐겁고 싶고 슬픔이나 분노를 느끼는 것 같은 감정을 가지는 것도 주체입니다. 주체는 의식과 마음이 합쳐진 것이 됩니다.

 

관념은 관점이나 개념이나 가치관, 세계관 같은 자신의 모든 사유체계의 총체인데 이건 그 사람의 자아이면서 본래입니다. 즉 불교식으로 아뢰야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엄밀히는 아뢰야식의 언어화하는 욕구입니다. 사유 체계나 언어로 된 개념을 말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하려는 그 의지입니다. 또 관념은 체계를 세우고 정리하고 규정하고 싶어 합니다. 이걸 말로 하지만 말을 연결하고 의미를 연결하며 어떤 틀을 구성하며 형태를 이루는 기하학적인 것도 하고 싶어 합니다.

우린 모든 전생을 포함해 지금의 삶에서 겪은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는 인간으로의 진화에 해당하는 생물적인 기억도 있어야 할 거 같고 미래에 해당하는 미래 기억도 있어야 합니다. 내가 아뢰야식을 확장해서 적용한 의미이긴 합니다. 그런데 우린 한정된 기억 외엔 기억하지 못하는데,잊어버린 것은 아니며 다른 방법으로 기억하는 게 있는데 그게 관념입니다. 관념은 기억들의 통일성이나 이치를 추려서 가지게 된 개념들의 사고체계이며 자기 기억의 상위기억입니다.

 

이것이 정보처럼 방대한 사건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그 의미를 기억하고 이치를 알아내서 기억하는 것이며 이건 성향이며 움직이고 하려고 하며 일으켜 가는 작용입니다. 그래서 관념은 본성이고 아뢰야식의 다른 모습입니다.

 

이래서 그 사람의 사고유형이나 행동이나 하는 일의 결과나 생각방법을 보면서 사람됨이나 그 한계나 정도를 보고 살아온 과정을 유추합니다. 그렇지만 물론 쉬운 건 아닙니다. 내가 보기에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려면 약간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심하게 말하면 그 사람이 관심 갖고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것과 평소의 사유가 그 사람의 본래라는 것입니다. 그것 외에 잠재되어 있거나 다른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관념엔 과거의 기억들과 미래의 도래할 사건들의 종합적인 작용인데 이것을 이생의 학습과 경험으로 가진 사고체계라고만 볼 순 없습니다. 사람마다 그런 관념을 가진 원인을 소급해야 하고 그 소급은 과거와 미래에 다 해당합니다. 그러면 관념엔 그럴만한 원인이 있습니다. 그런 원인이 과거는 경험한 것이고 미래는 경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념은 과거의 기억에 기대어 만들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미래에 경험할 것을 위한 준비로서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관념은 단순한 사고체계가 아닌 머리에 있는 본성입니다. 본성이 부위마다 있다는 전제로 말합니다. 부위의 특성에 맞게 있습니다. 또 그 관념이 가슴에선 욕구라고 하는 것인데 언어화 된 것인지 아닌지,행동으로 나오는 것인지와 아닌지의 차이, 즉 욕구는 관념에서 언어화 되지 않은 것이고 행동으로 나오지 않은 것인데 또 욕구 이면엔 욕망이 있다고 난 생각합니다. 이거 역시 본성입니다. 욕구는 가슴에서 가지는 본성입니다. 우린 이렇게 항상 자기의 본성과 대면하며 살아갑니다. 심층으로 저 밑에 아무도 모르고 인식하지 못하는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린 본성이 직접 살아갑니다. 인식하고 못하고는 눈앞에 보여도 그게 그건지 모르면 인식을 못하는 것처럼 항상 생활하면서도 그것이 본성에서 심층에서 나온 건지 모르는 것입니다.

 

근데 욕구가 일어날 때 언어화 하지 않으면 어떨까요?

욕구나 감정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감정이나 어떤 욕구가 일어났다는 것을 안다는 건 그것의 이름을 부르기 때문입니다.

 

화, 즐거움, 성욕, 기쁨, 짜증, 불쾌.......이런 것이 다 관념입니다. 그래서 관념엔 네 개가 있습니다. 뭔가의 일어남이 있고 그것을 언어화하고 규정하면서 알려는 욕구가 있고 그렇게 언어화와 규정된 것이 있습니다. 물론 이러면 언어화 되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내가 감정에 이런 감정, 저런 감정이라고 안다는 것은 이름 지어 부르는 것인데 이렇게 언어로 사유하지 않는다면 감정은 어떻게 될까요? 뭔지 규정하고 정의하면서 결정하지 않으면 우린 어떻게 될까요? 자기 안에 뭔가 일어나는데 굳이 그게 뭔지 언어로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형상이 일어날까요?

 

그러면 감정도 사라집니다. 사라지지 않는다면 많이 약해집니다.

왜? 그건 우린 확인받고 싶으니까 확인하고 규정하며 누가 알아주면 일종의 증감효과가 있습니다. 언어라는 게 그러한 것의 시작이고 끝일 정도로 중요합니다. 명예욕이죠. 더 감정을 강하게 과장하게 되고 반대로 더 약하게 감소시키는 힘을 가집니다. 언어라는 게 내가 이런 감정이 일어난다고 알면 더 발광을 합니다.

 

어린애가 울고 있을 때 엄마가 자기가 울고 있다는 걸 못 본다면 아기는 울고 싶은 맘이 적어질 것입니다. 엄마가 봐야 땡깡 부리듯이 과장해서 울 거 아닌가요? 이런 게 스스로도 그러합니다. 내가 어떤 감정이 일어났는지 확인하지 않는다면 언어화하지 않는다면 뻘쭘 합니다.

 

이게 묵언수행입니다. 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욕구부터 언어화하지 않아서 말을 잊어가는 것입니다. 말을 잊어 가면 감정의 의미나 어떤 감정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하고 일어나도 별 감흥이 없습니다. 내가 남에게 하소연을 하는 이유가 내 감정을 알아달라고 하는 것이 됩니다. 남에게 내가 화가 났다는 거 억울하다는 것을 확인 받는 것입니다. 말하면서 감정을 추스리고 말하면서 뭔지 모를 감정을 정리하고 말하면서 감정을 증폭해서 흥분시키려고 하고 말하면서 모든 감정을 더 증가시키는데 이러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게 내 안에서도 나에게 하소연하는 것이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말로 내 감정을 부추기고 과장하면서 놔두거나 생각하지 않으면 사라질 것을 붙잡는 것입니다. 생각한다는 건 언어로 말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판단중지는 이런 말도 제거하면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어떤 감정이 일어났는지 어떤 것인지 그 자체를 잊거나 제거하는데 말부터 안 해야 합니다. 감정을 말부터 하지 않으면서 내버려 둡니다.

 

말은 명령이나 허락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말이 감정이 일어나면 그것을 해도 된다는, 일이나 행동이나 감정을 가져도 된다는 허락이 됩니다. 또는 그렇게 하라는 명령도 됩니다. 명사화하면서 이름 부르고 하는 건 확고하게 만드는 효과도 있습니다.

 

자천할 때 자기에게 어떤 감정이 일어났을 때 그게 뭔지 말로, 이름으로 규정하지 않으며 내버려 둡니다. 그렇게 내버려두면 내가 그 감정에 신경 쓰지 않는 게 되며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감정이 있어도 없는 거처럼 별다른 작용을 안 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이 관념의 또 다른 작용이며 이것을 이용해 잡념을 줄이거나 감정을 어느 정도 제어 합니다. 관념은 자기의 확인이나 명령이나 허락이나 규정이나 틀을 만들고 구체화하기 위한 정리를 합니다. 이런 것을 하지 않아서 틀이나 형식에 자유로워진다면 그만큼 간략화 된 인생이 됩니다. 관념의 욕구를 언어로만 말했는데 언어로 하지 않으면 이미지로도 하고 이미지도 아니면 대강의 흐름이나 불명확한 어떤 방법으로도 합니다.

 

감정을 어떤 감정이라고 말하지 못한다고 그것이 뭔지 모르는 건 아닙니다. 관념으로 머리로 옮기지 않는 것이며 그로인해 외부로 향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이며 일어나는 감정을 일어난 그 상태에서 내버려두며 사그라지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항상 지켜보는 다른 의식이 있는데 감정을 말로 규정하지 않지만 내 안에서 일어나는 것을 항상 알고 있는 그 무엇도 있습니다. 이것도 관념입니다의식도 무의식도 관념인 것입니다. 이런 관념에 해당하는 것은 욕구에도 있고 욕망에도 있습니다. 선정의 방법으로 이렇게 자기감정을 말로 확인하지 않는 것을 하다보면 그렇게 뭔가 일어나는 것은 알아도 인식은 안 되게 합니다. 뭔가 일어난다는 이 말도 말이니 이런 것도 안해야 할 것이고, 선정을 머리에서 하거나 마음으로 하거나의 차이가 있는데 이런 건 전문적이고 고도의 훈련이 필요 합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거 같은데 잡념을 안 일어나게 한다고 하지만 잡념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막나요? 잡념도 다 말이고 감정이고 또 삶인데 이건 머리의 관념이 삶의 부위로 옮겨간 것입니다. 그래서 삶이란 우리 신체의 첨단입니다. 삶도 몸의 일부입니다.

 

이런 식으로 관념을 정의해 가면 그전에 쓰던 관념이라는 것과 달라진 게 되는데, 그래서 이 관념을 “도리”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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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빛몸 | 작성시간 26.06.19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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