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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종합자천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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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환공(桓公)|작성시간26.06.21|조회수2 목록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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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라고 한건 그전에 한 것을 다시 되돌려 생각해보니 그런 것인데 겨울 모임을 정읍 무성서원  태산서원문화관에서 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왜냐하면 준비하고 장소 마련한 분들이 언짢을 수도 있어서 그냥 넘어가려고 한 것이죠. 그분들의 기분이 불편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선 여기의 물줄기가 두개가 큰게 있는데  동진강과 칠보천입니다. 동진강이 주된 물줄기인지 합쳐져도 동진강이라고 합니다. 이 동진강의 방향이 사선으로 동에서 서로 흐르는 것이 정상이고 순리적인 방향입니다. 그것을 칠보천이 막아서서 동진강의 방향을 서북쪽으로 흐르게 하는 거대한 행위를 합니다.

이렇게 방향을 바꾸게 하는 물줄기가 있는 곳이 바로 중요한 자리가 됩니다.

게다가 전체적인 흐름인 동진강의 방향과 반대로 흘러와서 이러하니 이건 거역하는 것이고 역수인데 나쁘게 말하면 혁명이고 좋게 말하면 개혁이나 창의적인 것이나 그렇게 말하겠죠.

작은 산과 들, 강을 말하면 너무 복잡하니 크게는 이러하다고 시작합니다.

그다음이 이날은 내가 첫 강의를 시작하는 날이었습니다. 물론 6줄이나 겨우 강의했나요? 그다지 진도는 지지부진했는데 강의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가 아니 사실 처음 이 건물에 들어서면서 천정부터 보긴 했습니다.

천정을 보자마자 아~ 했죠.천정이 없더군요 그냥 팔자로 나누어진 지붕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자!!!

여기서 부터 입니다. 이제부터 설명하는 것을 잘 읽으셔야 합니다. 독해를 잘해야 오해가 적어집니다. 안그러면 전혀 반대의 의미로 들을 수도 곡해할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왜 당황하는지 왜 놀라는지 그것을 잘 살피길 바랍니다.

 

언제부터 일까요?

아마 병신년 가을에 경주에서 드롭탑이라는 카페에서 기울어진 천장 밑에서 있다가 얼마 안되어 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 그 이후에 어딜 가도 천정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들었고 이렇게 기울어진 천정을 보면 시껍해하는 버릇이 들어 버렸습니다. 정말 가슴 조이는 일만 늘어나서 차라리 안보고 싶은데 버릇이 되어 버리는 건 어쩔 수 없기도 합니다. 이걸보면 한 번의 사건이 심리적인 위축을 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면 여기서 판단을 해야 하기도 합니다. 이런 천정을 보고 나가야 하나 이곳의 일을 포기하고 가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분명 불길한 기미인건 맞고 오늘의 의미로 봐서 큰일인건 맞는데 그냥 나갈까? 하는 판단의 기로에 서게 됩니다.

 

이럴때마다 마음의 준비를 하게 됩니다. 힘들 것이고 어려운 일이 일어날 것이지만 그래도 견디어야지 하며 마음의 준비를 합니다. 힘들고 고통스러운건 나와 이세상들입니다. 그러면 분명 거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면서 견디고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죠 힘들 것이라서 못하겠다거나 안하겠다거나 하는 생각은 항상 합니다. 그럼에도 각오하는 마음으로 하지 포기하거나 이건 힘들 것이니 다르게 하거나 피해가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자주 있다보니 마음의 다른 층에선 겁이 늘어나고 걱정이 늘어나고 두려움이 쌓이고 슬픔이 누적되어 가는 것도 알게 됩니다. 주눅들고 위축되어 가슴졸이게 되는 것이 점점 심해집니다. 이런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때마다 오금이 저립니다. 이번에건 견딜 수 있을까? 얼마나 각오해야 하는 것일까? 하는 그러한 두려움이 한켠으로 스멀거리며 오면 진저리가 나죠.

 

다음날 어떤 카페에서 마무리하게 되는 상황이었는데 그 카페도 역시 천정이 이런 모양이었습니다.(내 기억이 맞나?)

그리고 거긴 너무 덥더군요 겨울인데 지금 겨울이 그다지 춥지 않아서 이로인한 사회나 나라의 운의 문제가 있을 거라는 것은 짐작하고 있던 것인데 이 카페가 너무 너무 덥더군요 30도라나...

이걸 길로 해석할지 흉으로 해석할지인데 어제의 서원에서의 그러함이 이어지니 힘듦으로 해석하게 됩니다. 그당시엔 간단히 계절에 안맞는 일이 일어난다. 입니다. 철없는 일,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 앞뒤 안맞는 일 이런 것이 일어나게 될거라는 의미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날 집에 돌아오면서 두통과 속의 매스꺼움이 심해 참다참다 집까지 겨우 와서 화장실로 달려가 위로 아래로 쏱아내고 누웠습니다. 결국 흉한 것이 일어날 것인거군 사람들이 모여서 일낸다로 보는데 이유는 이렇게 위로 아래로 쏟아내면 사람들이 모이고 감정적인 갈등있고 깨지고 아파하는 일들이 있어와서입니다. 

 

작게는 다 쓰기 힘들고,

크게는 이렇게 4가지의 것이 있습니다.

강의 방향, 지붕, 계절과 병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질문이 있게 됩니다.

거기 서원에 간게 나만인가 그 많은 사람들은 무엇이었을까?

아픈 사람도 여럿이었고 다 같이 같은 장소에 있었는데 또 왜 굳이 지금이고 이런 것이 궁금하게 됩니다.

지금인건 지금 이러한 것들이 모여서 앞으로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전에 여러 사건들이 누적되는 것을 보고 있었습니다. 저번달 또 저저번달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원인이 있고 그로인한 다른 것으로의 진행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달을 넘어 해의 변화과정도 있지만 너무도 방대한 말이 되니 이런건 넘어가고요.

그리고 일을 발생시키는 것에선 우선 계제 입니다.

계제가 없어도 이러한 장소나 사건들이 주위에 일어나고 기이한 일치성 동시성들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전에도 말했듯이 내가 하는 마구는 특이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누구나 경험하고 일어나는 것인데 내가 거기에 의미성이나 방향성을 주는 것이지 전혀 없던 것이나 전혀 다른 것에서 뭔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걸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계제가 우선 있어야 누구나 경험하는 이러한 것에서 또다른 의미와 방향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능력이 없으면서 자기가 겪은 것이 나와 비슷하거나 더 신비로운 것들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아니라고 그건 다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럼 나만 잘난거냐고 하면 그게 아니라 자기의 계제의 역량만큼이라는 것이고 이 계제는 각고의 노력에 의해 성취하는 것인데 우선 이거부터 성취하고 날 따라 하라는 것입니다.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순서가 틀렸다는 것입니다. 계제부터 입니다. 이건 철칙입니다.

 

이유는 의미성과 방향성을 주기위한 힘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때론 자기가 생각한게 사회에 일어나고 자기가 이러한 것을 해서 이런 것이 나타난다고 보는 것도 있는데 그래서 계제없이 또 계제의 한계넘어의 것에 이러한 것을 말한다면 난 그대가 한게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판을 누가 만드느냐입니다. 주체성을 도에서 난 무척 강조합니다. 그 주체적으로 어떤 시공에서 설정해가는 것인데 그럴려면 스스로 설정하는 그 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럴려면 그만한 안목과 과거와 미래가 이어지는 그 결정적인 요점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이런것을 생각하고 있다면 자기가 만든 설정에서 그 역할을 무엇이 또 누가 해주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혼자 마구하고 다닌다지만 그건 내가 할 것이고 그로인해 영향받고 다음의 일처리와 이어지는 진행을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물이 해가는 것을 마련해두었기 때문입니다. 오랜시간 판을 만들기 위한 배치와 안배를 해두고 하고 있는데 이런 사전에 해두는 것을 안하고서 내 흉내 내면서 나도 그렇게 되더라 한다면 안되는 것이죠.

 

음 스스로 난 계제가 높으니까 할 수 있다. 이러면 계제 높아서 그 깊은 과정이나 치밀한 배후조정이나 근거나 원리를 왜 설명해주거나 말해주면서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말하는 것도 안배이고 안하는 것도 안배이며 사람과 관계하고 갈등하며 해가는 것인데 그런 것 없이 독단적으로 해가는 것은 역시 안목부족인데 그건 계제없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계제가 높으면 당연히 그로인한 자기 이해와 설명이 있게 됩니다. 그 지식으로 드러나는 것부터 일이 시작되고 있으니까요 이런 원리를 모르면 좀 더 심사숙고해야 하며 계제에 대한 이해부터 해야 합니다.아니면 내가 하는 것이 부러워 보이거나 대단해 보인다면 아까 말한 두려움과 견딤이 뭔지 모르는 것입니다. 속으로 삮히는 거 한스러운거 짜증과 불편함으로 미쳐버리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흉한 일이 일어나는 것에 일조한다면 그로인한 대가를 지고 있게 되는데 이걸 견딜 수 있어야 합니다. 뭔가 자기가 의미 있는 듯한거에 혹해서 이런걸 한다고 생각한다면 더이상 잔소리 할건 없겠죠. 마음이 닫힌 것이 뭔지 모르니 마음이 닫히면 이미 아닌 것입니다.

이런말하는 것이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하라는 것입니다.

마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내가 가르치는 도인데 당연히 가르칠 것이고 다른 분들이 이걸 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근데 어설프게 따라하거나 엉성한 배움이라면 곤란합니다. 그건 마구에 대한 이해부터 없는 것으로 배울려면 확실하게 배울 것을 요구하겠습니다.

 

그리고 정의의 문제가 있습니다.

판단의 기로에 선다고 하는데 이때 가장 큰 문제가 희생입니다.

언제나 목숨이 담보되어 있습니다.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같은 것을 읽고 그런 것으로 고민한다면 또 고민해야 하는 것인데 내가 엄청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이긴 합니다. 다수를 위해 소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보이니까요 하지만 이렇지만은 않아서 시껍한다고 한 것이긴 합니다. 또 얼마나 내가 힘들까도 분명 있지만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눈물이 동반되는지가 더 감당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게 언제나 판단하는 기로에서 힘겨운 것이 됩니다. 근데 사실 이런 생각하는 것마저도 망설입니다. 내가 그러한 능력이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는 것인데 난 아직도 내가 하는 것에 정말 이러한가 하는 의구심이 있어서 이걸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이 말을 이해해주는 사람들도 없더군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러할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난 글쎄요 인데, 정말 이게 이러한가 내가 한게 이러한 것으로 이어지는게 맞을까? 이런 고민을 안하면서 이런 것을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보는데 그래서 난 그들의 마구나 그 비슷한 것을 한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나도 즉 내가 만든 이러한 개념을 다 믿지 않는데 그들은 날 믿나? 그래서 바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인정되지 않습니다. 내 흉내로서 세상을 이끌거나 영향을 준다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되는 것처럼 보인다면 스스로의 착각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죠.(다시 말하면 내가 이 사회나 세상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아직도 든다는 것이라서 내가 당연히 이런 희생을 발생시켰다고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그다음의 죄책감이나 책임의 번민으로 넘어가는 것부터 망설임이 있게 됩니다.)

 

내가 위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설명한 것이 진짜라고 생각하나요? 난 진짜를 말하지 않아요 그렇다면 앞으로도 결코 내 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사고로 나와 같은 것을 한다고 여기진 마시길 바랍니다. 너무 어리석어 보입니다.

 

그런데 다른 분들도 나름으로 그날 이거 저거 보면서 의미를 부여하고 앞으로의 것에 짐작을 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나와 뭐가 다른 것일까요?

그건 우선 그분들이 다 틀렸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의 사건에 여러 관점과 나름의 입장에서의 해석이 있게 되는 것이니까요.

난 어떻게서든 객관적으로 우리나라나 세상에 나타나는 어떤 사건들이라고 하는 식으로 봅니다. 사건이 일어나게 하는 것이지, 그 사건이 이러한데 이러면 어쩌지 더 좋은 사건이어야 하는데 어쩌지 이런 것이 아닙니다. 사건이 일어나는 것과 어떤 사건인가는 다른 것입니다. 어떤이란 길흉으로나 선악으로나 시비거나 하는 판단이 이미 들어간 것인데 난 그런 판단이 있기 이전의 그냥 사건이 있게 한다는 것에 더 중점 둔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그 사건의 성향이나 의미를 파악하고 그로인한 다음의 진행을 생각하는 것이라서 이러한 구분이 명확하고 순서가 있어야 합니다. 아니면 혼란함이고 혼란하다면 마구가 이미 아닌 것이 됩니다.

 

그래서 사건이 길하다 흉하다식의 판단은 안하려고 하죠. 하지만 감정이 또 그렇지만은 않아서 흉한 일이 일어날 거 같아서 마음졸이고 두렵지만 결국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이 항상 유혹이고 시험에 드는 것입니다. 언제나 이런 갈등이 멈추지 않는다는 이것을 잘 보시길 바랍니다. 

내가 계제가 있는 건 이러한 갈림에서 아직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아서 입니다. 그래서 희생이나 다른 것이나 어려움이 있어도 그렇게 진행하려고 합니다. 이런 것에 감정이 휩싸여서 잘못된 판단을 하면 계제가 곤두박질 치고 있는 것이고 그러면 나도 하나의 사건에 나름의 관점이 있는 수준이거나(이것이 낮추어 보는 것이 아니라 내경우엔 계제가 내려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선에서 행하는 다른 분들을 우습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도 못해서 그냥 일반인이 되겠죠.다른 분들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이해하는 가는 그분들이 이로인한 사건들에 그러한 감정과 해석과 의도를 가지려는 것이 되겠죠.

 

예를 들면 지금의 현 시점에서의 서로간의 이해관계는 다를 것입니다.

원리도 다르게 알고 원인도 다르게 알고 의미도 다르게 알겠죠. 그런 차이가 있게 되겠죠. 그 다르게 아는 것이 다르게 진행하는 것을 보게 되고 그 보게 되는 것에 따라 다르게 일하겠죠.

 

강의 방향과 지붕모양은 산천입니다.

산천이론을 적용해서 일어날 일에 대한 기미를 파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절이나 병은 일어나는 주위 사건이나 신체의 변화를 보고서 기미로 파악하는 것입니다.간단히 신체와 주위의 모든 것들을 다 살핀다는 것인데 이러면 너무 정보가 방대해 헷갈리니 그중에 몇가지 관법을 써서 사용하게 됩니다.

산천이 그중 하나이고 명리나 기문이나 다른 것들도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씁니다.

 

산천이 제일 많이 쓰긴 합니다.

방, 집, 도로, 산, 강, 건물, 의자, 자동차 어느 것이나 형상이고 형상은 산천으로 우선 공부해서 뭔가 원리 파악이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 날씨나 구름, 태양과 달 그런 천기의 변화도 그러하며 사람들의 말, 길에서 보이는 여러 글이나 그림이나 들리는 소리나 사건들이나 그 사건들의 의미나 모든 일어나는 것, 감각에 들어오는 것이나 들어오게 한 것이나 이러해서 주위라는 것 자체가 산천이니 이것 위주라고 하겠습니다.

 

또 사회적인 것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게 정치적인 관점이 있게 됩니다.

요즘은 특히 민감하게 된 진보나 보수끼리의 다툼인데 이런 것이 어떻게 진행되어가는지 그 진행에 어떤 사건이 주가 되고 뭐가 주요 관심사이고 주장하는 근거가 어디서 나온 것이고 무엇이고 그러한 것과 여러 사건들과의 연관성과 기미들을 살피면서 그러한 흐름을 파악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건 별거 아닌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지만 아무도 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진보 아니면 보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입장에서 해석하다보니 이미 정해진 것에 자기가 원하는 자료를 취합해 근거 삼는 것이 됩니다. 이걸 요즘은 답정너 라고 하던가요

이미 답이 있고 즉 이미 관점은 정해져 있고 원하는 말만해라 원하는 자료만 모아라 입니다.이러면 마구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선 자기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고 어떤 것을 원하고 어떤 것에 편을 들려고 하고 어떤 결론을 내려고 하고 어떤 것을 가슴상해하고 어떤 것에 분노하고 어떤 것에 감정이 불편하고 하는 이런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마구는 물건너 가는 것이고 강마을도 아니게 됩니다.

근데 아무도 이런 것에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헤어나오는 그 기미가 보이면 계제가 그럴듯한 분이겠죠. 기미뿐인지 진짜인지는 이후에 확실하게 시험할 것이긴 하지만 우선 그러한 자질을 보게 되죠. 일할 만 한 사람인가 아닌가는 언제나 긴장해야 합니다. 한번 같이 한다고 언제나 할거라는 안도가 있다면 또 한순간에 마음이 흔들리면 하늘의 뇌정은 뇌로 들어갑니다. 흐흐흐

 

사실 이런 것 이전에 사회구조에 대한 지식이나 아마 사회과학이라고 할 것인데 철학도 당연히 그러하고 이런것으로 공부할 수 있어서 요즘은 훨 쉬운데 이걸 공부한 사람이 없더군요 그것도 참 난감한 것입니다. 

철학이나 사회과학을 공부하면 도움이 많이 되는데 결국 우리가 사는 이사회와 세상이고 인간의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이게 무조건 해야 하냐고 하면, 뭐 안해도 됩니다.

그만큼 마음이 열렸다면 그안에서 다 나오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깨달으면 다 안다고 하는 신화도 있습니다. 그런분들이 하는 말이나 책을 읽어봤는데 조금 열리면 다 연 건지 알아 대단한 깨우침을 얻은 듯한 융식으로 자아팽창을 하도 해서 깨달음이 심히 의심되는 단어이긴 합니다.

어느 누구도 깨달아서 확연히 안자는 역사 이래로 없다고 내가 강력하게 말하겠습니다. 깨우침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진행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있어도 그렇게 진행된다고 할 순 없습니다. 진행된 것과 그렇게 진행되었다고 아는 것은 다르고 그런 진행으로 설명하는 것이 또 다르고 그렇게 진행된다고 알아 듣는 거 또 다릅니다. 이런 구분이 있습니다.

마음을 열면 저런거 다 안다고 하는 말을 내가 했는데 마음을 열면 저런 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이 따로 있습니다. 다만 마음이라는 것의 정체가 우선 모르겠고 연다는 것이 대문여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하는게 여는 것이지가 또 이상하고 알아야 한다는데 아는게 뭔데 마음이 열린 것과 어떻게 연관되는 것인데 이런 기본적인 것을 안다면 무슨말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까지입니다. 

경계를 모르면 황당한 소리 합니다. 경계를 보지 못하는 인식력인데 그걸 알아야 하는 것인지요

 

아~ 그래서 이러한 사건들이 부정적인 세상운을 만드는 건 아니에요

일차적으론 그러한 것이 일어나는 것이지만 그런 것이 되는 이유가 또 있는 것이어서 장기적으론 또 다른 면에선 긍정적인 사건이 있는 것이죠.

현실에 보여지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긍정부정으로 보지 않고 그러한 것을 해석하면 뭔가 보일지도 모르겠는데 요점을 모르면 피상적인 이해가 되겠지요 그래서 지금의 사건과 동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있는데 이게 우선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이 요점이 무엇인지 말하기가 좀 어려운 것이긴 하지만요(조언은 태산문화회관이라는 것이고 내가 강의 첫 시작이고 등등)

그리고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것은 꼭 긍정적인 것만이 있는 것은 아니고 어떻게 볼지는 기준을 뭘로 삼아서 할지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준을 우선 정하고 그에 따른 관점을 판단하는 식의 사고를 하지 않는다면 오해되거나 납득하기 힘든 것이긴 하지만요.구제척인 판은 무술년에서 부터 시작하고 무술년에 시작해야 하는 당위는 또 그 전전해인 병신년이 되고 또 병신년의 것은 갑오년으로 되고 이런 과정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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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빛몸 | 작성시간 26.06.21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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