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의 분류적 성격2
10신도 그렇고
그다음 구정이나 사중이나 단전들이나 이런 것은 그런 식으로도 된다는 것이라서 따로 설명할 건 별로 없다.
왜 그러냐고 물어봐야 팔이 왜 있냐고 묻는 것과 같아서 구조가 그러니 그렇다.
기의 분류적 성격
기를 정기, 전령과 신령으로 나누었는데,
이건 내가 느끼는 기의 종류를 거칠게 세 개로 나누어서 설명한 것이다.
정기는 일반적으로 하는 기 수련으로 대맥은 대맥으로 꼭 흘러야 하고 임맥은 임맥으로 꼭 흘러야 하는 고정적인 의미로 배우는 것이고 그렇게 흘러가는 것을 말한다. 대개의 기에 대한 설명은 이걸 말한다고 보면 된다.
임독이 흐르고 시간이 지나면 그 기의 느낌이 액체, 고체식으로도 변해가는데 그런 설명이다.
전령은 기가 흐르는 맥의 경로가 딱히 없다. 기존의 맥으로 흐르다가도 제멋대로이기까지 한 길로 흐르기도 하고 안과 밖을 왕래하고 불규칙적인 것인데 다만 흐름이 있다는 것이 하나의 한계이다.
다양하게 흐르는 방식은 무한하게 변해가지만 흐른다는 것은 있다가 된다. 그 흐르는 어떤 감각이 있다.
이건 약간의 시간차가 있다. 의식과는 다른 것이라서 감정으로 즉 마음으로 흐름을 제어해야 한다. 그래서 의식으로 기를 제어하던 버릇으로는 좀 어려울 수 있다. 그로 인한 의식과 감정의 시간차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근데 이걸 해야 할 이유는 없다. 해도 그만이고 안 해도 그만이다. 이런 게 있어서 글로 쓴 것이지 이걸 모두가 경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기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나 이런 식으로 공부한 사람은 참고사항이긴 하다.
이 전령을 느끼게 되면 천지의 기운이나 지기나 인기나 어떤 기운이든지 느끼는 요령을 알게 된다. 흐르는 무엇이든 그것이 흐르는 어떤 것이라면 감각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흐른다면이란 감각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감각할 수 있다는 것은 의식적인 감정적인 그리고 현재적인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신령
이건 시간차가 더 난다.
생각이 현실에 구현되는 시간이 하루일 수도 일주일일 수도 한 계절일 수도 일 년 일 수도 있는 것처럼 그 시간차가 있다.
그런 현상으로 아는 것이지 기의 감각으로 접근하면 알 수 없다.
감각은 전령이 마지막이다. 이후는 그런 흐름이 감각되지 않는다. 주위에 벌어지는 현상과 구현으로 또 사람이라면 행동과 말을 보면서 의미를 이해하는 식의 이면을 알아봄 의도를 파악하는 식의 접근이다.
그래서 이건 흐름적인 감각이 아니라 나타나고 벌어지는 사건들로서 그 의미를 알아가는 것이다. 사건의 맥락이나 의미이해가 되어지는 것이다.
누군가 나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다면 이건 전령으로 느낄 수 있다. 이런 말하면서 어떤 감정을 가지고 말하는지 느끼게 되는데 이건 진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어서 전령으로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다. 감각은 감각이다. 감정이 일어나고 사그러지는 원리를 알면 왜 그런지 아는데 신령으로 본다면 이사람의 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 지속적으로 보면서 신뢰할 수 있는 행동을 해가는지 언제는 신뢰하지만 언제는 안되는 사람인지 이건 신뢰하지만 저건 아니라든지 하는, 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이후의 실재 일어나는 그 사람으로 인한 현상들을 보면서 결정나 가는 것이다. 이게 신령이다.
어쩌면 이 세 개가 정기신 과도 비슷하다. 같은 것의 다른 관점이긴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