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연구 15 - 사람 몸과 金丹紫調落水中
올해 아픈 분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빠진 분이 많이 있습니다. 왜 어떤 경우 어떤 해는 유독 더 그런지, 그리고 왜 하다못해 작은 감기와 몸살이라 하더라도 유행처럼 돌아다니는지 오늘은 金丹紫調落水中과 관련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즉, 金丹紫調落水中이 사람 몸과 관련해서 어떤 고찰이 이루어질 수 있는 지 살펴보겠다는 겁니다.
잘 알고 계시겠지만, 다시 한 번 얘기해보면 사람 몸은 일정한 변환기관으로서 나름대로 자동차로 친다면 나름의 rpm이 있듯이, 어느 정도 순환하는 자기 나름의 변환력이 있는 거지요. 그것을 사람과 관련지은 氣에서 810장이라는 이야기를 했었고 또 다른 표현으로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 얘기를 조금 더 하면서 앞서 오늘 드린 말씀과 이어가겠습니다.
앞으로 어쩌면 이런 것은 무시하더라도 사람의 변환체계가 마치 하나의 사이클처럼 표준화될 수 있는 시기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예를 들어서 임의적으로 인간에 있어서 100이라는 어떤 수치를 얻었을 때 인간의 피 온도가 마치 37도를 좌우하는 것처럼 인간은 100을 좌우해서 ±5이내에서 인간은 생각되고 산다는 것이 나오면 아마 이 인간 밖에서 들어가는 것, 인간 밖으로 다시 나오는 것에 관한 과학도 세워질 수 있을 겁니다.
인 체
들어가는 것 ----------------------------------------------------- 나오는 것
변 환 체
만약에 이것을 어떤 방법, 氣 파장도 좋고 무엇도 좋겠습니다. 언젠가는 인간을 나름대로의 그런 그 무어라고 표현해야만 할 것입니다만, 그 무엇을 찾아내는 시기가 나름대로 올 겁니다. 지금 현재는 들어가는 것이라면 음식을 대표적으로 들겠지요. 음식의 경우에 지금은 영양분이 얼마나 있는가에 따라서 또 밖에 나오는 것과의 관계를 설명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영양분은 이 음식의 전체 어떤 무게 분은 1,000인데 그것이 열량도 좋고 어떤 영양분도 좋습니다, 이것이 50인 것과 이것이(무게 분)이 500인데 이것이(영양분) 100인 게 있다면, 이것을 먹어야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식품영양학, 어쩌면 그와 비슷한 것일 겁니다.
물론 여기에는 복잡한 계산과 표준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인체 자체가 무엇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인가 했을 적에, 변환한다고 했을 적에 그것을 칼로리라든가 어떤 영양소라든가 비타민이라든가, 이런 데에서 파악했기 때문에 덩치는 커도 비타민이 적은 것과 덩치는 작아도 비타민이 많은 것 그리고 그 가운데서 가장 인간에게 잘 소화되는 비타민, 그런 것을 결국 인간이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기준으로 삼는 거예요.
그러한 氣와 관련해서 어떤 類似 氣적인, 기와 유사한 어떤 것이 그렇게 표준으로 삼는다면 이런 것이 아니라 그와 가장 유사한 파장이 무엇이냐, 가장 충격을 주지 않고 인간에게 큰 변환 없이 들어갈 수 있는 게 무어냐, 물론 똑같은 건 없겠지요. 인간은 인간 나름대로 어떤 유적인 존재로서 고유한 어떤 스펙트럼을 갖고 있을 테니까요.
그러나 가장 가까운 것 그리고 가장 가깝게 있는 것에서는 이런 문제가 과거도 나왔겠지요. 그래서 어떤 음식들은 이런 기준에서 이런 기준에 따라 실제 연역적인 이론에 따라 귀납적으로 입증해 봤더니 실제로 이런 음식과 이런 음식에 상당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 나올 수도 있고, 또 일정한 원칙도 나올 수 있겠지요. 어떤 음식의 경우에 음식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경우에 우리가 지금까지 잘 먹고 참 좋은 것으로 이런 데에서 입증됐거니와 또 우리가 경험적으로 그렇다고 했던 것이 가만 보니까 105에서 ±5가 되었다는 거지요. 이렇게 입증되어 나올 수 있다는 거지요. 반대로 이것은 먹기만 하면 체하고 먹기만 하면 무언가 부작용이 일어나는 어떤 음식을 이런 각도에서 측정해봤더니 이런 어떤 표준이 나와서 이것은 그 전체가 160에서 ±10이나 5가 됩니다. 이런 결론이 나올 수도 있겠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직 입증되지도 않았고 어느 누군가에 의해서 가설로서 세워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누군가에 의해서는 언젠가 가설도 세워지고, 어느 누군가에 의해서는 나름대로 임상과 경험을 통해서 입증되겠지요. 그리고 이것을 하는데 있어서는 현대 사회의 단 한 분야의 학문이 이것을 이루지는 못할 것입니다. 많은 분야가 거기에 요구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작업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분명히 언젠가는 이것이 과거의 나라는 어떤 氣라는 기준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와 같은 기준이 분명 식품영양학을 한편에는 계량하고 한편에는 대체하는 효과를 갖고 있고.
코페르니쿠스가 비록 천동설 대신에 지동설을 입증하지는 못했지만 또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천동설을 계량하는 과정에서 지구를 중심으로 돌고 있던 수많은 천구들, 이것을 자꾸 이상한 별들을 선정하려고 하다 보니까 40몇 개 80몇 개 차원까지 필요했던 이 천구들을 나름대로의 발상이 전혀 지동설로 돌아가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드러났던 몇 개로 만들어놓고 나니까 나중에 결과적으로 천구에 관점을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지구 자체를 사고방식 자체를 바꿔보자는 관점으로 봐서 마침내 언젠가는 지동설을 나았듯이, 그렇듯이 분명히 언젠가는 식품영양학을 개선하기 위해서 시작한 노력에 의해서 다분야의 노력의 결합에 의해서 그것을 대체하는 어떤 것이 이루어질 것입니다만, 지금 현재로서는 이 얘기를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인간은 인간 나름의 고유한 그런 자기 변환장치로서의 어떤 규정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 수련공간에서 그것을 인간다운 기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지요. 인간 고유의 기. 그럼 이 사회에 있어서는 이 인간 고유의 기라는 것은 유적인 문제, 특수한 어떤 유적인 문제… 그러므로 그 기의 기준치는 있을 것입니다. 810장이라고 했던 것을 이제는 바꾸어서 말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 100이라고 바꾼다면, 거기에는 개별 편차가 심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어떤 것과도 확연하게 구분되는 ±음식일 것입니다. 100이라는 것은 가장 쉬운 숫자이니까 얘기를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 ±를 최대한 어디까지로 허용하느냐에 따라서 인간 범위가 이것을 변환시키게 하는 인간 건강과 결정될 것이기도 할 것입니다.
인간 체온이 사람에 따라서 37도를 기준으로 해서 물론 이것도 섭씨라는 표준에 따라서입니다만, 동양에서는 온도를 어떻게 다루느냐 하면 동양의 이 도 개념은 ‘。’개념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개념이죠. 물론 이거하고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도는 이거의 도가 있게 되면 이거거든요. 그러나 이것은 사라졌습니다. 오늘날의 섭씨를 어떻게 또 화씨를 어떻게 진정 동양의 도 개념으로 합치시킬까 하는 개념 하나로 싸웠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역도라고 있습니다. 이 온도계가 이 서양식 온도계가 섭씨 또는 화씨온도계가 들어오기 전에도 분명히 이 도는 있었고 이것을 재는 수단과 또한 도라는 것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인간의 온도를 섭씨로 한다고 할 때 인간의 정상 온도를 37도라고 했을 때 정상인이라고 하더라도 그가 건강한 상태에 있다고 하더라도 ±1도면 1도, 얼마가 있거든요. 그래서 이 사람은 +1이라고 했을 적에 38도라도 이 사람은 건강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38이 되면 고열이 될 수도 있죠. 36이, 36에 훨씬 가까운 사람이 어느 날 40도가 된 것하고, 38에 훨씬 근접하던 사람이 어느 날 40도가 된 것하고는 많은 차이가 있겠죠. 그러나 어쨌든 간에 이 범위를 전체범위를 벗어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듯이 마찬가지로 이 속에도 개별성이 존재할 것입니다. 5가 아니라 2일 수도 1일 수도 있고 이것이 진정 무엇이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감기라는 것을 한번 따져 볼까요. 감기라는 것을 따졌을 적에 감기라는 것은 유행하거든요. 여기에 어떤 사람은 95부터 105까지 있다고 하고. 그런데 여기에서 무언가 외부에서부터 들어오는 음식이 아니라 또 다른 공기 등 세균은 감기 이외에도 늘 깔려있습니다. 365일 그 균은 늘 상존하고 있습니다. 단 하루도, 홍콩 A형이라고 하죠. 이 홍콩 A형이라고 불릴 때 이 인플루엔자는 늘 깔려있습니다. 지구가 생기고 나서 한 번도 없었던 적이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늘 이것이 걸리는 것은 아니거든요. 걸릴 때가 있고, 또한 걸리는 때가 있다는 것은 사람의 이것도 늘 100이라는 설정치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며, 이것조차도 계절의 변화라든가 지역성의 변화라든가 에 따라 약간의 차등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 상수마저도 일정하게는 또 다른 ±라는 것에 의하여 조정되고, 그 다음에 개별편차가 주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쨌든 이것이 95이하에서 무언가 들어왔습니다. 그러면 여기에서 있는 사람들의 편차는 무려 10입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가 비슷합니다. 이 균이 들어왔을 때 이 사람들은 이 병에 쉽게 걸리지 않겠지요. 반대로 105이상에서 뭔가 들어왔습니다. 이 사람들은 잘 걸리지 않겠지요. 이 사람들은 잘 걸리겠지요. 그런데 감기를 보면 분명히 어떤 감기가 걸릴 때 비슷한 환경에 살았던 사람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체질을 가진 사람이 같은 유형의 감기에 걸립니다. 물론 이것은 보고된 사항은 아닙니다. 제가 어디를 다니고 사람을 만나면서 접한 나름대로의 추측일 뿐입니다. 여러분도 한번 유심히 살펴보세요. 자기가 감기 걸렸을 때는 자기와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밖에 같이 있었어도 체질이 나와는 상당히 다르다는 느낌만으로도 그랬던 사람은 잘 안 걸려있습니다. 설령 감기에 걸려있다고 하더라도 나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감기에 걸려있습니다. 이것과 일본 독감이라고 있죠. 같은 시기에 유행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이게 걸리고 어떤 사람은 다른 게 걸리는데 이것은 체질과 상당한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 것처럼 인간자체 내에 어떤 변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물론 이론적으로 그렇습니다만, 95나 105정도 되어 가지고는 소화할 수 있는 정도지요. 사람을 아프게 하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여기에서 견딜 수 있는 최대 한도수가 있겠지요. 이 개별성이든 보편성이든 합해 가지고 최대한 버틸 수 있는 생존 가능범위가 있겠지요. 예를 들어 140부터 160까지라든지 어떤 최대범위가 있겠죠. 이 최대범위를 벗어나면 즉각적으로 반응을 일으키겠죠. 그러나 이 최대범위 안에서도 나름대로 이 차이가 심할 경우에는 부작용을 일으키겠죠. 감기라든가 몸살이라든가 아니 자신의 몸에 뭔가 들어오지 않았는데, 들어오는 것은 똑같은데 몸을 이처럼 해서 어떻게 몸을 움직이다가 과로해서 100이라는 기준을 스스로 깨버렸다고 해도 몸살이 오겠죠. 이것은 유행은 아니죠.
오늘날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아프다는 것은 어쩌면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환경 요인… 먹을 수는 없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먹고 있는 환경. 환경이 실제로 먹을거리는 아니지만, 먹을거리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저는 음식을 가져다 놓고 먹을 것이 있으면 먹고 하는데 ‘먹거리’ 하면 사실은 이것은 사람을 죽이는 발음입니다. ‘먹거리’ 하면 사람이 함박 죽는단 말입니다. 부드럽게 먹을 것이라고 좀 길게 발음하면 탈날 것이 없는데 ‘먹거리’라고 발음하는 것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을 쓸 때에는 한글을 즐겨 씁니다. 원칙적으로 한글을 쓰는 데에서는 한문을 쓰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할 때도 그렇고 저는 음식이라는 말을 즐겨 씁니다. 우리가 먹는 이 곡기를 취하는 것입니다. 왜? 나머지 다 먹고 있습니다.
음식이라는 것은 먹는 것 중에서 ‘먹다’가 아니라 ‘막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혼들이 떠나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이죠. 우리가 삼키는 것은 다른 것이죠. 음식이라는 것은 이것을 먹는 두 가지 형식입니다. 뭔가 건더기 같은 것을 씹어서 넘기거나 액체 같은 것을 들이키거나 하는 두 가지 형식입니다. 그러므로 뭐든 먹을거리가 음식은 아니죠. 음식은 이 먹을거리 가운데서 유형화 되어있는 액체와 고체 등, 또는 액체와 고체 중간에 있는 어떤 것, 두 가지를 가리키는 것이지 전체 먹을거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죠. 굳이 먹을거리라고 한다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 모두가 전부 먹을거리입니다. 흙도, 땅도 공기도 내 곁에 있는 사람도 다 내 먹을거리입니다. 이 사람으로부터 하는 상호관계 속에서 내 기운을 빠져나가지 않게 하는 재료를 취하고 하는 모든 것이 ‘막을거리’죠. 그런데 이 ‘막을거리’를 취하는 이 환경적 요소가 갑자기 이러한 선에서 유지가 안 되고 이렇게 또는 그 이상, 그 이하로 바뀌고 또는 그러한 흐름 과정에서 있을 때 어떤 사이클에서 이러한 사이클에 왔을 때 이 과정 속에서는 이 전체 견딜힘이 인간에 있어서는 어쩌면 140과 160이 아니라 과장컨대 더 무한할 수 있겠으나 평균적으로는 이 속에 있겠지요.
평균적으로 이 속에 있는 사람이 감당하지 못할 때는 그 범위 내에 있는 사람들은 탈락시키는 것이죠. 바로 그런 면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아픈 것을 이 기를 수행한다는 면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아픈 유형들도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서 왜 금단자조낙수중과… 여기까지만… 금단자조, 금단자조의 구성은 두 개로 구성된 것입니다. 주체는 명백히 이 하나지만 또 하나가 추가되는 것입니다. 자 그럼 이것이 두 가지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앞서 그렸던 그림을 다시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전부가 가설입니다. 100에서 ±5라고 하죠. 그러면 여기에 들어올 때 처음으로 부딪히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처음으로 바깥에 있는 이 모든 먹을거리, 음식을 비롯한 공기, 물을 비롯한 모든 것이 처음 들어와서 이것으로 이것과 처음 만나야 하는 첫 통로, 그리고 변화의 진행과정들 그리고 마지막 통로… 이 첫 통로를 그 단면을 그려본다면, 만일 그것을 물질화시켜서 단면을 그려본다면, 밖에서 들어온 140 등으로 표현되는 어떤 것과 안에서 이를 맞이하는 100 또는 90몇으로 표현되는 내적인 무엇이 공존하고 있는 단면구조를 그리죠. 그게 외형적으로 그런 단면에 있는 내용물을 이야기한다면 이는 금단자조가 되죠. 그리고 그 첫 통로를 이야기한다면 이는 이궁이 되고, 이궁은 그 첫 통로이고 금단자조는 그 내외 첫 통로 속에 들어있는 섞인 단면입니다. 그러므로 이 섞인 단면에서부터 이미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것은 첫 단추가 잘못되면 다 안 되는 것처럼 두 번째 단추는 이것을 변환시켰을 때 이것이 어떠한 것으로, 140이라는 성격을 유지하면서 100적인 것으로 전환시켰을 적에 즉, A라는 것 아래에 있는 프로그램을, 한글 프로그램을 훈민정음 프로그램으로 바꿨을 적에, 이 훈민정음 틀을 유지하면서 이것의 성격은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틀은 분명히 이거죠. 틀은 분명히 바뀌었죠. 물론 아예 성격마저도 완전히 바꿔야 하는 경우도 있겠죠. 그러나 우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봤을 적에 이 틀 위에 이걸 실어야 하는데 못 실으면 이것은 못내 괴롭다가 그 다음 단계로 내려가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실어져야만, 100이라는 성격에 실어줘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즉, 금단자조 현상이 몸 속에서 수행과정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음과정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는 수레역할을 하는 것이 이궁이라고 합니다. 이궁은 첫 통로이자 밖에서 들어오는 것을 자기 속에 실어주는 하나의 수레가 된다. 이 수레가 얼마만큼 튼튼하고 넓은가, 얼마나 건강하며 제대로 작동하는가. 이 이궁이 XT인지 Pentium인지에 따라서 사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궁단련이 그렇게 중요했던 것이고 이궁단련에 첫 목표는 금단자조 현상을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인 체
들어가는 것 ---------------------------------------------------------------------- 나오는 것
(금단자조) 변 환 체
첫 통로(이궁)
마지막 통로
그 내용물들이 제대로 구성되어 140이 아니라 180도 200도 괜찮아야 됩니다. 물론 그런 부하를 일부러 안을 필요는 없겠지요. 그러나 여러분들께서 사시면 그러한 부하를 일부러 안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0이라는 것에 대해서 부하가 1,000을 견딜 수 있다고 하죠. 근데 그것이 이궁의 개념이죠. 그걸 가진 이 이궁은 첫 통로이자 마지막 통로이기도 하죠. 여기에서 무리하게, 자기과정 속에 있는 것을 변환시키지 않고 고스란히 보낼 수도 있거든요. 잠시 먹거리를 어디서 빌려다가 놓고 자기 속에서 변환시키지 않고 내 것으로 삼지 않고 바로 밖으로 내보낼 수 있거든요. 살짝 만 금단자조로 만들어 가지고 말입니다. 즉, 이곳에서 1,000을 소화하지 못하고 120도 소화하지 못하는 어떤 사람에 있어서 그 사람에게 이것을 전가시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 바로 이 1,000적인 내용이 전가되면 이 사람이 소화를 못하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 100으로 실어 가지고 1,000적인 성격을 가지고 전달하면 전달이 되는 거지요. 그게 이론적으로 기 치료입니다. 그렇게 되면 순식간에 이 사람은 자기 저항력이 엄청나게 떨어지겠죠. 순간적으로. 이렇듯 또한 마지막 통로로도 이궁에서 연결됩니다.
이궁은 인간에 있어서 인간외부와 만나는 처음이자 마지막 통로인 것입니다. 금단자조낙수중은 내가 우주와 물질이라는 차원에서, 눈, 귀라는 차원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진정 기운이라는 차원에서 우주와 만날 수 있는 상징이자 방법입니다. 이런 점을 이해해야 금단자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이 자조라는 성격, 이것을 전체 수치로서 표현했지만 이것은 수치라는 상하 개념이 아니라 전체 선택의 폭에서도 인간다운 어떤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도 폭이 있고 저것도 폭이 있고, 폭이 다 있죠. 그 좌표가운데 자조는 또 하나의 선택 폭을 의미하죠.
비록 100이라는 어떤 것과 맞았을지라도 전혀 이것과 정반대에 있는 것이 들어간 건 문제죠. 만약에 우리가, 어떤 생명체는 흙 속에서 실제로 소화해 냅니다. 직접 받아서 그것을 먹고 삽니다. 인, 칼슘 등… 사람은 직접 흙으로부터 못 캐 먹거든요. 흙을 섭취할 수 없어요. 근데 이것이 자꾸 돌아서 이것과 비슷한 흐름까지 오면 이것을 섭취할 수 있거든요. 이것을 개미가 먹고… 농축되어오면 마침내 먹을 수 있지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것은 하나 줄지 않으며, 누가 중간에서 먹는다고 줄지 않고 다만 변환시킨다는 것, 들어간 놈은 나오고, 그 자체 내에서도 기본적으로 재료성은 유지되며, 우주 전체 내에서도 재료성이 유지되겠죠. 바로 자라난 자조라고 하는 것은 이 수치의 높이에서는 비슷할지 몰라도 이 스펙트럼에 있어서는 다르다는 것을 상기하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금단청조가 된다던가 이것을 색상으로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바로 그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 금단청조라든가 금단백조라든가 금단흑조라든가 하는 이러한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리 1,000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 놓는다고 하더라도 전혀 다른 무언가의 100이 들어오면 쓰러집니다. 지금 인간에게 있어서 아무리 과학문명이 발전한다고 해도 녹색식물이 전부 사라지면, 모든 우주의 질서, 인간이 만든 법질서는 한 달이 안 되어서 쓰러집니다. 물론, 녹조 홍조 청조 다 안 됩니다. 오로지 자조입니다.
이 자조가 금색(색의 상징물)을 만나서 - 빛 자체를 말함, 빛깔이 아님. 세모꼴은 볼 수 있어도 세모는 볼 수 없듯이 금색도 마찬가지… 금단자조를 신봉하게 되면 그 금색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색은 빛이 비친 것이지 빛깔이 아니지요. 그러나 빛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의 수련도 몸에서부터 즉, 뚱이가 포함되어 있는 몸에서부터 마음으로 가듯이 직지본심 할 수 없듯이. 여기서 ‘지’도 손가락 지 아닙니까? 이 뚱이가 없으면 어떻게 본심을 가리킬 수 있겠습니까? 태초에는 마음이, 말씀이 있었겠죠. 그러나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수행자가 인식할 수 있는 태초에는 말씀이나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재료가 있었지요. 재료가 없으면 말씀도 없고 재료가 없으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말씀도 한 구절이 더 추가되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태초에는 말씀이 있으셨는데 허나 그 말씀을 받아 인간이 볼 때에는 먼저 재료가 있었지요. 재료가 없으면 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소리는 있으나 소리 꼴이 있어야 하니까요. 그렇듯이 머리에서 마음으로 간다는 한계처럼 이것이 금이 아니고 이것이 부라(보라)가 아닐지라도 그것이 부라 빛깔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그 빛이 만들어 놓은 깔이 가장 그 빛을 잘 표현하는 유사치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의 오차는 있지만. 그 오차의 차이가 단순한 차이가 아닙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관념을 파괴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빛에 대한 관념. 여러분 눈앞에 비치는 안대비백하고 비대제륜 했을 적에 수렴하시 했을 적에, 수렴하시, 안대비백, 비대제륜 했을 적에 비치는 그 경색이 처음에는 여러분이 볼 때 뭔 색깔 같지만,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그런 거 어디에서 본 적 있나. 투명한 듯싶으면 투명하지 아니하고 빛이 있고, 그래서 무슨 깔이 있나하면 깔이 없고, 무슨 결이 있나보면 결이 없고, 결이 없나 보면 결이 있고, 그것을 보고 그 속에서 결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막 섞여서 요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하듯이 여러분들이 역기마세를 취해서 금단자조를 했을 경우 진정으로 하나하나 쪼개져 있는 금단자조들이 빛으로 인식되어 가지고 그 인식이 앞에서 되었는지 눈앞에서 되었는지 뱃속에서 되었는지 전혀 분간조차 되지 않은 그때까지 하셔야 합니다. 한 달 동안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이게 구구단에 비교하자면 1단입니다. 1단은 1부터 9까지를 익히는 것이죠. 높이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기본수에 대한 인식은 투철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시게 되실 것입니다. 한 달 동안 그렇게 하시면 자신조차 잊어버릴 정도로 하시면 꿈을 생생히 보는 사태 등 여러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람 몸에 있어서 금단자조는 매우 중요합니다. 금단자조를 제대로 할 수 없는데 낙수를 할 수는 없죠. 물론 금단흑조, 금단녹조가 되더라도 낙수를 해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몸에서 일어나는 반작용을 금방 느끼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 인간을 규정짓고 있는 인간이 외부와 만나는 것을 상징하는 이궁의 두 물질의 현상, 또는 물질적인 어떠한 것의 현상이라고 생각하시고 수행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여기에서 그치겠습니다.
- 박현 강의록 (1999. 3. 17)